[법조 트렌드] 독립성 훼손된 반부패 총괄기구, 권익위 ‘명품백 사건 부당 관여’ 수사 의뢰

정승윤 전 사무처장 ‘관저 회동·의결서 수정’ 정황 포착… 실무 의견 묵살 등 절차 왜곡 방지 위한 제도 쇄신 시급

2026-05-10     김 규운 기자
사진=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KtN 김 규운기자]국민권익위원회가 스스로 과거 사건 처리 과정을 조사해 전직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을 수사기관에 넘기기로 했다. 권익위 정상화 추진 태스크포스(TF)는 2026년 5월 8일 운영 결과를 발표하고,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 종결 과정에 정승윤 전 사무처장의 부당 관여 정황이 있었다며 국가수사본부 수사의뢰 방침을 밝혔다. TF는 3월 16일부터 5월 8일까지 54일 동안 과거 논란 사건과 내부 신고센터 접수 사안을 점검했다.

김건희 씨 명품백 사건은 2024년 권익위가 ‘위반 사항 없음’ 취지로 종결하면서 청탁금지법 해석 논란을 불렀다. 당시 쟁점은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직접 제재 규정이 있는지 여부였다. 2026년 5월 TF 발표 뒤 논란은 법 조항 해석을 넘어 권익위 내부 절차로 옮겨갔다. 사건 처리 기한이 왜 늘어났는지, 담당 부서 의견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전원위원회 의결 전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의결서 문안은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가 새 쟁점으로 올라왔다.

TF 발표에는 권익위 조직 운영을 겨냥한 내용이 여럿 담겼다. 정 전 사무처장이 김건희 씨 명품백 사건 처리를 지연했고, 사건 종결 전 윤석열 당시 대통령 등과 대통령 관저에서 비공식 회동한 정황이 있으며, 담당 부서 작성이 원칙인 의결서에 애초 포함되지 않은 사항을 추가한 정황도 확인됐다는 것이다. TF는 관련 의혹을 국수본에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관저 회동 의혹은 권익위의 독립성 논란을 키웠다. 권익위는 고충민원 처리와 부패방지, 공익신고, 공직자 행동강령 업무를 맡는 중앙행정기관이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권익위가 고충민원 처리, 행정제도 개선, 부패 예방과 규제를 위해 설치된 기관이며,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규정한다. 사건을 판단해야 할 기관의 고위직이 사건 당사자 측과 비공식으로 만났다는 정황만으로도 권익위 결정의 신뢰는 손상될 수밖에 없다.

전원위원회 절차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 전 사무처장 측은 김건희 씨 명품백 사건 종결 결정이 전원위원 15명의 표결로 도출됐고, 결정문도 위원회 검토를 거쳐 확정됐다고 반박했다. 정 전 사무처장은 TF 발표를 선거를 앞둔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고, 현행법상 공직자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종결 결정은 법률 조문과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표결이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표결은 권익위 절차의 끝이지 전부가 아니다. 위원들에게 제공된 자료, 담당 부서의 원래 의견, 회의 전 비공식 논의, 의결서 초안과 최종본의 차이가 함께 확인돼야 한다. 합의제 기관의 신뢰는 표결 숫자보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온다. 실무 검토가 묵살되고, 회의 전 결론이 사실상 정해지고, 의결서가 사후에 방향을 맞추는 방식으로 작성됐다면 전원위원회는 독립적 판단 절차가 아니라 결론을 승인하는 통로가 된다.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민원사주’ 의혹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뒤 헬기 이송 논란도 TF 조사에 포함됐다. TF는 류 전 위원장 사건에서 담당 부서가 감사원·경찰청 등 제3기관 송부 의견을 보고했으나 정 전 사무처장이 이를 거부했고, 전원위 안건에서 분과위원회 판단 내용과 결론을 삭제하도록 한 정황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재명 당시 대표 헬기 이송 사건에서는 담당 부서가 기관송부 의견을 제시했지만 행동강령 위반 통보로 처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봤다.

세 사건은 법률과 사실관계가 다르다. 김건희 씨 명품백 사건은 대통령 배우자의 금품 수수 의혹과 청탁금지법 적용 문제였고, 류희림 전 위원장 사건은 민원 제기 과정의 이해충돌 의혹이었으며, 이재명 당시 대표 헬기 이송 사건은 공무원 행동강령 적용 여부가 쟁점이었다. 서로 다른 사건들이 같은 보고서에 묶인 이유는 결론의 방향보다 처리 방식에 대한 의문이 겹쳤기 때문이다. 담당 부서 의견이 어떤 경로로 바뀌었는지, 최종 문안이 어떻게 정리됐는지, 고위직 판단이 위원회 절차를 앞질렀는지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권익위의 위기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민이 부패 의혹을 신고했을 때 처리기관이 권력과의 거리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느끼면 신고 제도는 힘을 잃는다. 공직자가 내부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가 업무 배제나 공개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기록과 이견은 사라진다. 반부패기관 내부에서 반대 의견을 남기기 어렵다면, 외부 공익신고자 보호라는 권익위의 역할도 설득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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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씨 명품백 사건 종결에 반대 의견을 냈던 전 부패방지국장 관련 조사 결과도 권익위 내부 문화를 향하고 있다. TF는 정 전 사무처장이 고인에 대해 회의 발언권을 제한하고 주요 사건 업무에서 배제했으며,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토대로 비난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TF는 그런 부당 처우 등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사망과 특정 행위 사이의 직접 인과관계는 수사와 별도 절차를 통해 가려져야 한다.

권익위가 내놓은 사과도 기관 위기의 크기를 드러냈다. 정일연 권익위원장은 TF 발표 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결정으로 고통을 받은 사건 관계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사건 처리 지연 방지, 상급자의 부당 지시 방지, 회의 운영과 사건 처리 절차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냈다.

권익위 쇄신은 사건 처리 기록을 남기는 방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사건 처리 기한 연장 사유와 횟수, 담당 부서 원안과 최종 의결서의 차이, 전원위원회 전 비공식 논의 여부, 의결서 수정 지시 경로가 문서로 남아야 한다. 권력형 사건에서는 회피·제척 기준도 더 엄격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 캠프, 인수위, 선거조직 참여 경력이 있는 인사가 권익위 고위직을 맡을 경우 관련 사건 처리에서 어떤 기준으로 배제될지 명확해야 한다.

전원위원회 운영도 표결 중심에서 기록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위원들이 어떤 자료를 받았는지, 반대 의견이 회의록에 남았는지, 사전 회의가 결론을 사실상 정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합의제 기관의 권위는 만장일치의 외형이 아니라 이견을 남기고 검증할 수 있는 절차에서 나온다.

국수본 수사는 정 전 사무처장의 개인 책임을 가리는 절차로 진행된다. 관저 회동의 일시와 참석자, 사건 관련 대화 여부, 의결서 작성·수정 경위, 담당 부서 의견 배제 여부가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권익위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개인 수사 결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권력형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내부 통제와 합의제 절차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답을 기관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

정승윤 전 사무처장 의혹은 수사 전 단계다. TF 조사 결과와 정 전 사무처장 측 반박이 맞서고 있고, 최종 판단은 수사와 사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권익위에 남은 과제는 사건 결론을 다시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사건 처리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기관이 권력 사건 처리 논란의 당사자가 된 이상, 권익위의 회복은 수사 결과보다 더 긴 제도 쇄신으로 판단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