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인사이트②] 베니스의 상인, 고전은 왜 대형 무대로 갔나

원로 배우와 대중 배우, 팬덤과 중장년 관객이 만나는 셰익스피어 무대

2026-05-12     김동희 기자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연극 ‘베니스의 상인’이 7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셰익스피어 원작에 신구와 박근형이 무게를 싣고, 카이·최수영·원진아·이상윤 등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배우들이 합류했다. 대학로 소극장보다 큰 무대, 세대가 다른 배우들, 이미 널리 알려진 고전이 한 공연으로 묶였다. 2026년 공연시장에서 고전 연극이 관객을 만나는 방식도 그 안에 담겼다.

고전은 제작 현장에서 비교적 안전한 카드로 여겨진다. 작품명과 인물 구도가 낯설지 않아 관객 접근성이 높고, 검증된 갈등 구조는 무대화의 명분을 만든다. 그러나 익숙한 작품일수록 부담도 커진다. 줄거리와 결말을 아는 관객 앞에서는 사건의 순서보다 해석의 방향이 먼저 평가받는다.

‘베니스의 상인’은 재해석의 부담이 큰 작품이다. 샤일록은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라는 설명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계약의 권리를 요구하는 인물이면서 베니스 사회의 차별과 멸시 속에 놓인 타자다. 안토니오는 친구를 위해 계약을 받아들이지만, 재판 장면에 이르면 생명을 담보로 한 법적 책임의 당사자가 된다. 포셔는 지혜와 재치로 법정의 흐름을 바꾸지만, 판결의 통쾌함 뒤에는 권력과 관용의 문제가 남는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법은 계약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가. 자비는 도덕적 요청인가, 권력을 가진 쪽이 베푸는 언어인가. 정의는 법 조항의 정확한 적용만으로 충분한가. 16세기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희곡이 2026년 한국 관객에게 다시 유효한 이유는 법과 인간성의 충돌이 여전히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신구와 박근형의 동반 출연은 공연의 가장 뚜렷한 축이다. 두 배우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이어 다시 한 무대에 선다. 이번 작품에서 신구는 베니스의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공작을 맡고, 박근형은 법의 문장에 기대어 권리를 요구하는 샤일록을 맡는다. 기다림의 시간으로 마주했던 두 배우가 이번에는 판결의 시간 앞에 선다.

안토니오 역에는 이승주와 카이가 캐스팅됐다. 포셔 역은 최수영과 원진아가 맡는다. 바사니오 역에는 이상윤이 원캐스트로 출연한다. 제시카 역은 김슬기와 김아영, 로렌조 역은 최정헌, 랜슬럿 역은 박명훈과 조달환, 네리사 역은 한세라가 맡는다. 살레리오 박민관, 솔라니오 조한준, 투발 이원승, 모로코 왕자 이지수, 아라공 왕자 이종영, 앙상블 박승재·엄현수·김윤지·이준일·주홍도 무대에 오른다.

출연진 구성은 최근 공연시장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신구와 박근형은 무대의 신뢰를 세우는 이름이다. 이승주와 카이는 연극과 뮤지컬 관객층을 함께 끌어올 수 있는 배우들이다. 최수영, 원진아, 이상윤은 드라마와 영화, 대중문화 영역에서 쌓은 인지도를 공연장으로 옮겨올 수 있는 이름이다. 고전 텍스트의 권위만으로 객석을 채우기 어려운 시대에 배우의 세대, 활동 영역, 팬덤의 이동이 함께 고려되는 흐름이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5월 12일 오후 10시 23분 기준 예매 자료를 보면 30·40대와 여성 예매자 비중이 높았다. ‘베니스의 상인’은 NOL 티켓 연극 주간 1위에 올랐고, 예매자 성별은 여성 77.9%, 남성 22.1%였다. 연령대는 40대 32.4%, 30대 25.4%, 50대 17.7%, 20대 16.4%, 10대 4.9% 순이었다. 예매처별 집계와 시점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어 전체 관객 구성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40대와 30대 비중이 높은 흐름은 고전 연극의 소비 방식과 이어진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과 신구·박근형의 출연은 중장년 관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배우들의 참여는 팬덤 기반 예매를 움직일 수 있다. 전통 연극 관객, 중장년 관객, 배우 팬덤이 한 작품에서 겹치는 양상은 최근 중대형 공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라는 공간도 공연의 성격을 바꾼다. 대학로 소극장 중심의 연극은 배우와 관객 사이의 밀도를 강점으로 삼는다. 대형 공연장에서는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배우의 발화, 장면 전환, 무대 미술, 음악과 조명, 객석 뒤편까지 전달되는 긴장감이 모두 달라진다. ‘베니스의 상인’이 해오름극장으로 향한다는 사실은 고전 연극의 확장 가능성과 부담을 함께 말한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좌석 가격은 4만 원대부터 11만 원대까지다. 대학로 소극장 연극보다는 대형 공연장 기반의 중대형 연극에 가까운 가격대다. 배우진과 공연장 규모가 관객 기대치를 높이는 만큼, 무대 완성도와 가격 수용성도 함께 평가받게 된다. 고전의 이름이 첫 관심을 만들 수는 있지만, 관객이 지불한 비용에 맞는 무대 경험을 제공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문화적 독해도 가능하다. 계약의 문장이 인간의 처지를 압도하는 사회, 법적 권리와 도덕적 판단이 충돌하는 장면, 타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가 반복되는 현실은 샤일록의 법정 장면을 낡은 이야기로 남겨두지 않는다. 샤일록의 요구는 잔혹하지만, 샤일록을 둘러싼 베니스 역시 순진하지 않다. 포셔의 판결은 통쾌하지만, 판결 뒤의 뒷맛도 개운하지만은 않다.

고전은 과거의 명작을 보존하는 방식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익숙한 텍스트가 현재의 감각을 건드릴 때 다시 무대 위에서 움직인다. ‘베니스의 상인’은 법과 자비, 계약과 인간성, 차별과 권리의 문제를 한 무대에 올린다. 관객이 극장을 나선 뒤 떠올릴 쟁점은 줄거리의 결말보다 법정의 해석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은 7월 8일부터 8월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배우의 이름은 객석을 움직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고, 대형 공연장은 주목도를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공연 뒤의 평가는 샤일록과 안토니오, 포셔가 마주하는 법정이 지금의 관객에게 무엇을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 고전의 귀환은 흥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해석이 따라붙을 때 무대 위 고전은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