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은 끝났다" 칸 심사위원장 박찬욱, 세계 영화계 중심에서 'K-무비' 선포
[심층분석] 박찬욱과 칸의 79년 인연, '변방'에서 '심사위원장'으로 올라서기까지 데미 무어와 함께하는 박찬욱의 칸... "정치적 편견 없는 예술 그 자체를 본다"
[KtN 임우경기자] 박찬욱 감독이 한국 영화인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자리에서 “한국 영화는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다”며 세계 영화계 안에서 달라진 한국 영화의 위상을 말했다.
▢ 칸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선 박찬욱
박찬욱 감독이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공식 석상에 섰다.
12일 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 내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날 열린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국 영화인 최초로 칸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감을 밝혔다.
박 감독은 처음 심사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의 상황도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아내가 가지 말자고 했다”며, 과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험 때문에 그 자리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 “이제는 봉사할 때”…수락 이유 밝힌 박찬욱
박찬욱 감독은 부담이 큰 자리임을 알면서도 심사위원장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봉사”라는 말로 설명했다.
그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여러 차례 초청받고 상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봉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칸의 초청을 받고 평가받던 감독이 이제는 세계 각국의 영화를 심사하는 위치에 선 셈이다.
박 감독은 과거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동료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고도 했다. 이번 제안을 받았을 당시 다른 심사위원들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이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 데미 무어·클로이 자오 등과 황금종려상 심사
올해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에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배우 데미 무어, 아일랜드 배우 겸 프로듀서 루스 네가, 벨기에 감독 로라 완델, 중국계 미국 감독 클로이 자오, 칠레 감독 디에고 세스페데스가 참여했다.
코트디부아르 배우 이삭 드 번콜, 스코틀랜드 각본가 폴 라베티,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도 심사위원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올해 칸 경쟁 부문 초청작을 심사해 황금종려상 등 주요 수상작을 결정한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 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자리에 앉았다.
▢ “한국 영화,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올해 칸영화제에 한국 영화 3편이 초청된 데 대해 한국 영화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올해 칸에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 연상호 감독의 ‘군체’, 정주리 감독의 ‘도라’가 초청됐다. 한국 영화가 여러 섹션에서 동시에 이름을 올리며 칸 무대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박 감독은 “한국 영화는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의 중심이 확장되면서 더 많은 나라와 다양한 영화가 포용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한국 영화가 특정 지역의 성과로만 소비되던 시기를 지나, 세계 영화제의 중심부에서 경쟁하고 평가받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읽힌다.
▢ “예술과 정치는 분리할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은 작품 심사 기준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예술과 정치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며 두 영역이 서로 충돌한다고 보는 발상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예술 작품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겼다고 해서 예술의 적으로 봐서는 안 되고, 반대로 정치적 메시지가 없다고 해서 배제해서도 안 된다는 설명이다.
박 감독은 어떤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순수한 관객의 시선으로 자신을 놀라게 할 영화를 볼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심사위원장으로서 특정 기준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이 가진 힘을 먼저 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찬욱 감독의 칸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 위촉은 한 감독의 개인적 성취를 넘어 한국 영화의 달라진 위치를 보여준다. 한국 영화가 칸의 초청을 받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세계 영화의 흐름을 평가하는 자리까지 이동했기 때문이다.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오는 23일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박찬욱 감독이 이끄는 심사위원단의 선택과 한국 영화 3편의 현지 반응이 남은 관전 포인트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