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 재편③] 대한민국 AI G3, 9조9000억 원의 첫해
인공지능기본법 시행과 대규모 예산 편성으로 국가 AI 전략의 틀 마련 독자 모델, 컴퓨팅 자원, 산업 전환, 인재 활용 성과가 다음 평가 기준으로
[KtN 최기형기자]정부가 올해 AI 관련 예산을 9조9000억 원 규모로 편성했다. 전년 대비 3배 수준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공개한 ‘전 부처 AI 예산사업 통합 설명자료’에는 41개 부처가 추진하는 741개 AI 관련 사업이 담겼다. 부처별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조1000억 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통상자원부 1조7000억 원, 중소벤처기업부 9000억 원이 뒤를 이었다. 정부가 말해온 ‘AI G3’ 목표는 올해 법과 예산, 집행 체계를 갖춘 첫해를 맞았다.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은 모델 성능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전력망, 수출통제까지 한데 묶여 움직인다. 유럽연합은 AI 규범을 시장 진입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HBM 공급망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AI 질서 전체를 놓고 보면 독자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 산업용 AI 서비스, 공공 적용 능력을 함께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반도체 수요 증가만으로 ‘AI G3’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인공지능기본법은 올해 1월 22일 시행됐다. 법 이름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다. 과기정통부는 시행 초기 현장의 준비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최소 1년 이상 규제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인명 사고나 인권 침해처럼 중대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면 사실조사와 과태료도 계도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법 시행 첫해의 방향은 규제 집행보다 산업계 적응과 제도 정착에 맞춰져 있다.
시행령에는 국가 AI 정책을 움직일 조직과 기준이 들어갔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인공지능책임관 협의회, 분과위원회와 특별위원회, 지원단 운영 근거가 마련됐다. 고영향 AI와 생성형 AI 제품·서비스에는 이용자 사전 고지 의무가 붙는다. 생성형 AI 결과물과 딥페이크 결과물은 이용자가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표시해야 한다. 산업 진흥과 신뢰 확보를 함께 담은 법이지만, 현장에서는 고영향 AI 판단 기준, 고지 방식, 내부 업무용 AI와 대외 서비스용 AI의 구분이 먼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기정통부와 전문기관은 인공지능기본법 지원데스크도 열었다. 지원데스크에는 NIA, TTA, KISDI, AISI 등이 참여한다. 상담 분야에는 고영향 AI 판단, 고영향 AI 사업자 책무, 영향평가, 생성형 AI 투명성, 최첨단 AI 안전성 확보가 포함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 조항 자체보다 실제 서비스 설계와 출시 과정에서 적용 가능한 기준이 중요하다. 고영향 AI에 해당하는지, 생성형 AI 표시 의무를 어떤 방식으로 이행해야 하는지에 따라 개발 일정과 비용이 달라진다.
예산 구조는 정부가 어느 지점을 AI 정책의 병목으로 보는지 드러낸다. 국가AI전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9조9000억 원 가운데 과기정통부 예산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AI 컴퓨팅 자원 활용 기반 강화 사업에는 2조1000억 원이 배정됐다. 딥테크·AI 스타트업 펀드 3000억 원, 국민성장펀드 2000억 원, 산업과 일상 전반의 AI 전환을 위한 AX Sprint 사업 6000억 원도 포함됐다. GPU와 컴퓨팅 자원, 창업 자금, 산업 전환이 올해 AI 예산의 앞줄에 놓인 셈이다.
컴퓨팅 자원은 한국 AI 정책의 첫 관문이다. 독자 모델을 만들려면 GPU와 데이터센터, 전력,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기업이 제조와 금융, 의료, 유통, 행정 현장에 AI를 쓰려면 모델 호출 비용과 데이터 처리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예산이 투입돼도 효과는 배분 방식에서 갈린다. 어느 기업과 연구기관이 어떤 조건으로 연산 자원을 쓰는지, 공공 연구와 민간 사업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데이터센터 입지와 전력 조달을 어떻게 풀지가 성과를 좌우한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은 상징성이 크다. 과기정통부는 2026년 업무계획에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1차 개발을 2026년 1월 완료하고, 올해 안에 세계 톱10 수준의 AI 모델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방·제조·문화 분야 특화 AI 서비스 개발, AI 민생 프로젝트, 전 국민 AI 교육 강화, 과학기술 연구용 AI Co-Scientist 개발도 함께 제시했다.
독자 모델의 성과는 순위표 하나로 판단하기 어렵다. 세계 톱10 수준이라는 표현은 평가 기준이 분명해야 힘을 갖는다. 한국어 성능, 산업 데이터 적용성, 보안성, 비용 효율, 공공·산업 현장 배포 능력을 함께 봐야 한다. 범용 모델 하나를 확보하는 일보다 제조, 금융, 의료, 국방, 행정에서 쓸 수 있는 모델과 데이터 체계를 만드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산업 AX는 올해 정책 성과가 가장 먼저 드러날 영역이다. 제조업의 품질관리, 설비 예지보전, 물류 최적화, 에너지 효율화는 AI 도입 효과를 수치로 확인하기 상대적으로 쉽다. 금융과 의료, 교육, 행정 분야는 데이터 접근권과 개인정보, 책임 소재가 더 복잡하다. 예산이 컨설팅과 실증사업에 머물면 성과는 제한된다.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불량률 감소, 처리 시간 단축처럼 확인 가능한 지표가 뒤따라야 한다.
공공 AX도 도입 건수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행정서비스에 AI를 붙이면 민원 응대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동시에 잘못된 답변, 개인정보 처리, 책임 소재 문제가 따라온다. 공공기관이 AI를 제대로 쓰려면 모델 성능보다 조달 기준, 보안 심사, 데이터 품질, 직원 교육, 감사 기준이 먼저 정리돼야 한다. 공공 AI가 행정 효율을 높였다는 평가는 민원 처리 시간, 오류율, 인력 재배치, 예산 절감 같은 수치로 확인돼야 한다.
인재와 활용 능력은 예산 밖의 문제가 아니다. AI 투자 전체의 효율을 좌우하는 조건이다. 가트너 자료는 AI 투자수익률이 낮아지는 배경으로 직원의 AI 활용 역량 부족을 지목했다. 자료에 따르면 CEO가 AI 투자 수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한 임원·AI 리더는 30% 수준에 그쳤고, CIO의 81%는 생성형 AI 역량 격차가 2025년 목표 달성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직원 63%는 핵심 업무에 생성형 AI를 써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의 전 국민 AI 교육도 수강 인원보다 현장 적용률과 업무 전환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역 AX는 균형발전 과제와 맞물린다. 과기정통부는 지역별 4대 AX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특화 산업에 AI를 접목하겠다는 방향은 타당하지만, 지역 기업의 데이터 보유 수준, 대학·연구기관 역량, 지자체 조달 능력,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가 함께 따라와야 한다. 지역마다 비슷한 실증사업을 반복하면 예산은 흩어지고 성과는 작아질 수 있다.
한국 AI 정책은 올해 세 가지 숫자로 출발했다. 9조9000억 원 예산, 41개 부처, 741개 사업이다. 숫자는 정책 의지를 드러내지만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집행률, 민간 투자 유발액, GPU 이용률, 산업별 생산성 지표, 공공서비스 개선 수치, 독자 모델의 실제 사용량이 뒤따라야 한다. AI G3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성과의 축적으로 판단받을 목표다.
2026년 한국 AI 정책은 법 시행과 예산 집행이 동시에 시작되는 첫해다. 정부는 9조9000억 원 예산과 41개 부처 741개 사업을 앞세웠다. 다음에 확인될 숫자는 발표액이 아니라 실제 집행률, GPU 이용률, 독자 모델 사용량, 산업 현장의 생산성 변화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얻는 수혜가 국가 AI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모델 개발, 컴퓨팅 자원 배분, 산업 적용, 법제 대응, 인재 활용이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올해 각 부처의 집행 결과와 기업 현장의 활용 지표가 AI G3 구상의 첫 성적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