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나 인사이트①] 임하나, 감각을 작곡하는 작가

LIMHANA Composer, 새장과 깃털, 황마 로프와 파동, 차와 음악으로 전시의 리듬을 만들다

2026-05-16     박준식 기자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콘크리트 천장이 낮게 내려앉은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에 검은 새장이 놓였다. 흰 가벽 위로 검은 깃털이 흩어졌고, 조명은 새장의 음영을 벽에 길게 드리웠다. 맞은편에는 검은 거울과 또 다른 새장이 걸렸다. 검은 바닥 위 흰 받침대에는 둥지와 매듭형 오브제, 흑백의 구형 조각들이 자리했다. 전시장 한쪽 벽에는 ‘connect: MUSIC’이, 다른 벽에는 ‘TEA THERAPY’가 놓였다. 임하나의 작업은 하나의 작품 앞에 관람객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었다. 새장과 깃털, 거울과 둥지, 실과 매듭, 음악과 차가 서로 다른 감각의 층을 만들며 한 공간 안에서 이어졌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서울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에서 열린 'Interactive Playground: 다른 세상으로'는 2026년 5월 7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전시다. 스튜디오 오버파워가 주최했고, Precariat(김다겸·박노완), 박주영, 석연교, 임하나, 정호영, 황성호가 참여했다. 고가도로 아래 자리한 전시장은 도로도 건물도 아닌 경계적 장소다. 차량이 지나가는 도시의 하부, 일상과 비일상이 맞닿은 공간에서 여섯 작가의 작업은 각기 다른 방식의 접속을 열었다.

임하나 섹션은 접속이라는 전시의 언어를 복합적인 감각으로 바꾼다. 관람객은 작품을 정면에서 감상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새장 사이를 지나고, 깃털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검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다시 마주한다. QR 코드 앞에서는 음악을 듣고, ‘TEA THERAPY’ 앞에서는 차와 향, 컵의 표면에 새겨진 흑백의 파동을 마주한다. 작품은 눈앞에 놓인 대상이 아니라 걷고, 듣고, 맡고, 마시는 경험으로 이동한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LIMHANA Composer’는 임하나를 단순히 음악을 만드는 작가로 부르는 말이 아니다. 미술에서 작곡가는 소리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공간의 밀도, 오브제의 간격, 빛의 방향, 관람자의 이동, 소리와 향이 들어오는 순간을 하나의 악보처럼 조직하는 창작자에 가깝다. 임하나는 회화, 설치, 조각, 향, 차, 음악, 패키지 디자인을 따로 흩어놓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감각을 각기 다른 음역처럼 배치하고, 관람자의 몸이 작품 사이를 지나며 전시의 시간을 완성하게 만든다.

새장은 낮은 음처럼 공간의 긴장을 깐다. 깃털은 긴장 위에 남은 잔향처럼 흩어진다. 검은 거울은 반복되는 후렴처럼 관람자의 시선을 되돌린다. 황마 로프와 매듭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리듬을 만든다. 컵과 용기의 파동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진동을 시각으로 끌어올리고, 차와 향은 작품을 신체 안으로 들이는 악장이 된다. 음악 QR은 정지된 오브제에 시간을 부여한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고, 감각의 악보를 따라 전시장 안을 걷는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작업은 전시장 안에 고립된 섬처럼 놓이지 않는다. 작품 주변의 공간, 빛, 동선, 주변 작품의 존재와 함께 울린다. 여러 작가의 작업이 각자의 세계를 열어놓는 사이, 임하나 섹션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통과하며 느끼는 몸의 방향까지 끌어들인다. 새장 앞에서 멈춘 시선은 거울 앞에서 되돌아오고, 음악 QR 앞에서 길어지며, 차의 표면 앞에서 손과 입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검정은 임하나 작업의 첫인상을 만든다. 검은 새장, 검은 깃털, 검은 거울, 검은 둥지와 매듭은 흰 가벽과 강하게 부딪힌다. 검정은 어둠을 칠한 색이 아니다. 상처를 덮는 표면이면서 동시에 상처가 다시 드러나는 통로다. 새장은 닫힌 구조지만, 바깥에는 이미 깃털이 흩어져 있다. 안에 무엇이 갇혔는가보다 밖으로 무엇이 빠져나갔는지가 먼저 다가온다. 벽에 번진 음영은 실물보다 더 크게 남고, 거울은 관람자를 다시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By My Thread: Weaving the Void'는 임하나 작업의 기본 구조를 압축한다. ‘나의 실로 공허를 엮는다’는 의미는 검은 둥지와 매듭, 황마 로프, 새장, 깃털의 관계를 한 줄로 묶는다. 공허는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다시 엮어야 하는 자리다. 황마 로프는 공허를 손으로 붙잡는 재료다. 부드러운 실보다 거칠고, 매듭을 만들면 힘의 흔적이 남는다. 풀어도 자국이 사라지지 않는 재료가 상처와 회복의 시간을 품는다.

둥지는 공허의 감각을 더 깊게 만든다. 둥지는 원래 머무는 장소지만, 임하나의 둥지는 안정된 보금자리로 보이지 않는다. 가지처럼 뻗은 검은 구조물은 감싸면서도 불안하게 벌어진다. 안쪽의 매듭형 오브제는 알처럼 보이기도 하고, 응고된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어 있는 자리 때문에 관람객은 자신의 기억을 둥지 안에 놓게 된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상(李箱)의 시는 임하나 작업에서 분위기를 빌려오는 이름이 아니다. 임하나가 붙잡은 것은 문장이 아니라 구조다. ‘건축무한 육면각체’와 ‘3차각 설계도’로 이어지는 기하학적 상상력, 설계도처럼 접히는 시선, 내부와 외부가 불안정하게 뒤바뀌는 감각은 새장과 사각 구조, 둥지와 매듭 안에서 다시 조립된다. 이상 문학의 공간적 불안은 전시장 안에서 오브제와 동선, 소리와 차의 경험으로 옮겨간다.

‘connect: MUSIC’은 배경음악을 뜻하지 않는다. 흰 벽 위에 놓인 검은 글자와 QR 코드는 관람객을 작품의 다른 시간으로 이끈다. 소리를 듣는 순간 새장과 깃털은 정지된 오브제가 아니라 시간 안에서 다시 움직이는 장면이 된다. 음악은 작품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같은 이미지를 다시 보게 만든다. 소리는 시각을 늦추고, 작품을 한 번 더 통과하게 한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EA THERAPY’는 임하나 작업의 또 다른 축이다. 컵과 용기에 적용된 이미지는 장식적 패턴이 아니라 파동이다. 작가가 만든 흑백의 파동은 관람객의 시선에서 물결, 산수, 구름, 지형의 윤곽처럼 읽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동과 흐름은 차를 마시는 행위와 만나 자연의 감각으로 번진다. 컵의 표면에 새겨진 파동은 ‘다른 세상으로’라는 전시 제목을 시각과 미각, 공간의 경험으로 이어주는 장치가 된다.

파동은 미시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일상에서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 떨림, 에너지의 이동, 보이지 않는 결이 컵의 표면에서 시각적 형상으로 바뀐다. 관람객은 파동을 과학적 도식으로만 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물의 흔들림으로, 누군가에게는 산의 능선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구름이나 바람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파동의 이미지는 관람객의 해석 속에서 자연의 이미지로 열리고, 고가 아래 공간은 미시 세계와 자연 이미지가 겹쳐지는 감각의 장소가 된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차는 전시 기념품도, 부속 프로그램도 아니다. 차는 작품이 눈에서 손으로,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몸 안으로 이동하는 매개다. 회화가 시각을 통해 관람자에게 들어왔다면, ‘TEA THERAPY’는 미각과 후각을 통해 작품을 신체 내부로 옮긴다. 작품은 벽에 머물지 않고 체온과 호흡, 냄새와 기억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마시는 행위가 감상의 방식이 되는 순간이다.

SUPERSAVE 패키지와 임하나의 흑백 파동 이미지를 비교하면 변화의 방향이 또렷해진다. 기존 패키지는 초록색 라벨과 곰보배추 이미지를 통해 기능성 음료의 정보를 전달한다. 임하나의 시안은 컵과 원통형 용기의 표면을 흑백 파동 이미지로 바꾼다. 상품의 표면은 정보 전달의 공간에서 감각 이미지의 운반체로 바뀐다. 제품은 소비재의 형식을 유지하지만, 작가의 회화적 시간이 표면에 입혀진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현재 작업은 회화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회화의 감각을 다른 표면으로 옮기는 과정에 가깝다. 캔버스 안에 머물던 이미지는 컵의 곡면, 용기의 투명한 벽, 전시장의 흰 가벽, QR 코드, 음악 안내판, 향과 차의 경험으로 이동한다. 회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회화가 다른 감각의 통로를 얻는다. 임하나는 그림을 제품에 입히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미지가 다른 감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신 진경산수화 新 眞景山水畵대리석 알갱이, 크롬 도금 등 90.1X72.2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앞선 작업인 ‘신 진경산수화’와 ‘Mind Map’은 이번 작업을 읽는 중요한 길을 연다. ‘신 진경산수화’에서 산수는 외부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지형이었다. 수백 겹의 레이어는 감정과 회복의 시간을 쌓는 방식이었다. ‘Mind Map’에서 감정은 지도처럼 조직됐다.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위치를 갖고 경로를 만드는 감정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지형과 경로는 전시장 전체로 번진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내면의 산수는 컵과 용기 표면의 파동으로 바뀌고, 감정의 지도는 음악 QR과 설치 동선으로 확장된다. 검은 새장과 깃털은 닫힘과 이탈을 만들고, 둥지와 매듭은 풀림과 재직조를 만든다. 차와 향은 작품을 몸 안으로 들이고, 음악은 경험에 시간을 부여한다. 회화의 감각이 설치와 제품, 소리와 냄새, 몸의 기억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회화에서 설치로, 설치에서 음악과 차로, 차에서 패키지 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의 표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산만한 확장이 아니다. 서로 다른 매체가 전시장 안에서 각기 다른 음역을 맡고, 관람객의 몸이 작품 사이를 지나며 경험을 완성한다. ‘LIMHANA Composer’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임하나의 작업 방식을 설명하는 이름이 된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전시 이후 협업과 기록의 구조가 임하나 작업의 다음 장면을 결정한다. ‘TEA THERAPY’의 제품화 여부, 음악과 티 블렌딩의 아카이브, 이동 가능한 오브제의 해외 전시 가능성, 공공디자인 플랫폼과의 접점, 사진과 영상 기록의 유통 방식은 앞으로의 작업을 밀어 올릴 조건이다. 임하나의 작업은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작품을 몸으로 통과하는 방식으로 옮겨간다. K-아트의 다음 언어도 그 이동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