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나 인사이트②] 이상, 건축무한 육면각체, 그리고 임하나의 사각 구조

문학적 인용이 아니라 구조의 재해석, 새장과 프레임, 둥지와 매듭으로 옮겨간 이상 문학의 기하학

2026-05-17     박준식 기자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흰 가벽 앞에 놓인 검은 새장은 사각의 반복으로 만들어졌다. 철선은 안과 밖을 나누지만, 시선은 그 사이를 통과한다. 벽 위에는 깃털이 흩어져 있고, 조명은 새장의 그림자를 실제보다 크게 드리운다. 검은 거울은 관람자의 시선을 다시 전시장 안으로 돌려세운다. 임하나의 작업에서 사각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다. 안과 밖, 갇힘과 통과, 설계와 불안이 동시에 놓이는 구조다.

임하나가 이상(李箱)에게서 가져온 것은 분위기가 아니다. 문학적 장식도 아니다. 작품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상 문학의 구조다. ‘건축무한 육면각체’와 ‘3차각 설계도’로 이어지는 이상 특유의 기하학적 상상력, 설계도처럼 접히는 시선, 내부와 외부가 불안정하게 뒤바뀌는 감각이 임하나의 새장과 프레임, 둥지와 매듭 안에서 다시 조립된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상 문학에서 공간은 안전한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방은 방으로 고정되지 않고, 선과 면은 심리의 압박을 만든다. 수학적 질서처럼 보이는 문장은 불안정한 내면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숫자와 도형, 설계도와 건축의 언어는 차가운 이성의 형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흔들리는 자아와 분열된 시선이 들어 있다. 임하나는 바로 이 지점을 조형의 언어로 옮긴다.

새장은 그 구조를 가장 먼저 보여준다. 새장은 내부와 외부를 나눈다. 그러나 철선 사이로 안이 보이고, 밖도 보인다. 완전한 차단이 아니라 불완전한 경계다. 갇혀 있지만 보이고, 보이지만 닿을 수 없다. 임하나의 새장은 이 모순을 품는다. 새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보다 새장 밖으로 흩어진 깃털이 먼저 다가온다. 닫힌 구조가 이미 열린 흔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상 문학의 사각은 안정된 도형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을 만드는 장치다. 면과 면이 겹치고, 방과 방이 이어지며, 설계도는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라 아직 지어지지 않은 가능성의 도면으로 남는다. 임하나의 사각 구조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새장, 거울, 가벽, 프레임은 모두 관람자를 한 방향으로만 이끌지 않는다. 시선은 통과하고, 되돌아오고, 다시 멈춘다.

검은 거울은 이 구조를 한 번 더 흔든다. 관람자는 새장과 깃털을 바라보다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마주한다. 작품 바깥에 있다고 믿었던 시선이 작품 안으로 들어온다. 관람자는 관찰자인 동시에 구조 안에 포함된 존재가 된다. 이상 문학에서 자아가 하나의 고정된 위치에 머물지 않듯, 임하나의 설치에서도 관람자의 자리는 계속 바뀐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3차각 설계도’라는 말은 임하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설계도는 완성된 공간이 아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공간의 약속이다. 동시에 어떻게 세워질지, 어디가 비어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를 보여주는 구조의 언어다. 임하나는 완성된 형태보다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낸다. 새장과 프레임, 둥지와 매듭은 닫힌 결과물이 아니라 조립되고 풀리고 다시 엮이는 과정에 놓인다.

‘건축무한 육면각체’에서 중요한 것은 육면체라는 완결된 물체만이 아니다. 무한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구조는 끝나지 않는다. 사각의 면은 닫힌 벽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단위가 된다. 임하나가 작은 오브제를 하나의 기본 단위처럼 놓는 방식도 여기에 닿아 있다. 작은 구조가 모이고, 반복되고, 다른 감각의 장치와 연결되면서 하나의 공간적 경험을 만든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사각은 건축적 구조를 갖지만 차갑게 닫히지 않는다. 사각 안으로 황마 로프와 매듭, 둥지의 물성이 들어오면서 선은 손의 감각을 얻는다. 로프는 설계도 위의 선처럼 납작하지 않다. 손으로 잡히고, 묶이고, 풀리며, 힘이 닿은 자리에 마찰과 자국을 남긴다. 종이 위에서 공간을 가르던 선은 전시장 안에서 몸을 가진 재료가 된다. 이상 문학의 기하학은 임하나의 작업을 거치며 촉각의 구조로 바뀐다.

황마 로프는 매끈하지 않다. 거친 섬유는 묶이는 순간 힘의 방향을 드러내고, 풀린 뒤에도 눌린 흔적을 남긴다. 임하나의 매듭은 문제를 해결한 결말처럼 보이지 않는다. 풀리지 않은 상태를 잠시 붙잡아두는 형식에 가깝다. 매듭은 봉합이지만 완전한 회복은 아니다. 끊어진 것을 다시 잇되, 끊어졌던 시간을 지우지 않는다. 상처와 회복의 시간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묶인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스튜디오 오버파워,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둥지는 사각 구조 안에 놓인 또 다른 공간이다. 둥지는 보호의 장소로 읽히지만, 임하나의 둥지는 편안한 보금자리로만 보이지 않는다. 가지처럼 뻗은 검은 구조물은 감싸면서도 불안하게 벌어진다. 안쪽의 매듭형 오브제는 알처럼 보이기도 하고, 응고된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 둥지는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비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감정을 끌어들인다.

이상에게서 출발한 구조가 임하나에게서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언어는 조형의 언어로 번역된다. 시의 기하학은 새장의 철선이 되고, 설계도의 선은 황마 로프가 되며, 불안정한 내부와 외부의 관계는 거울과 가벽의 배치로 옮겨간다. 텍스트를 설명하는 작품이 아니라, 텍스트의 구조를 다른 감각으로 다시 작동시키는 작업이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LIMHANA Composer’라는 이름도 이 구조 안에서 다시 읽힌다. 작곡은 멜로디를 만드는 일만 뜻하지 않는다. 반복과 간격, 긴장과 이완, 침묵과 전환을 조직하는 일이다. 임하나는 새장, 거울, 둥지, 로프, 매듭을 하나의 악기처럼 놓는다. 사각은 박자를 만들고, 깃털은 그 박자를 흔든다. 거울은 시선을 되돌리는 반복구가 되고, 둥지는 감정이 잠시 머무는 낮은 음역이 된다.

음악은 이 구조에 시간을 부여한다. ‘connect: MUSIC’ 앞에서 관람객은 QR 코드를 마주한다. 소리를 듣는 순간 새장과 프레임, 둥지와 매듭은 정지된 오브제에 머물지 않는다. 같은 구조가 시간 속에서 다시 보인다. 음악은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구조를 경험하는 속도를 바꾼다. 관람자의 걸음은 느려지고, 시선은 되돌아오며, 전시장 안의 사각은 하나의 시간적 장치가 된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구조가 흥미로운 이유는 차갑고 이성적인 기하학을 감각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데 있다. 이상 문학의 기하학은 종종 계산과 설계, 숫자와 도형의 언어로 다가온다. 임하나는 그 언어를 딱딱한 형식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새장과 거울로 시선을 흔들고, 로프와 매듭으로 손의 감각을 넣고, 둥지로 감정의 자리를 만든다. 기하학은 몸을 얻고, 설계도는 기억을 품는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각 구조는 임하나 작업에서 반복되는 조형 문법이다. 새장은 사각의 철선을 겹쳐 안과 밖을 나누고, 검은 프레임의 거울은 관람자의 몸을 전시장 안으로 되비춘다. 흰 가벽은 기존 공간 안에 또 다른 경계를 세우고, 받침대는 작은 오브제를 하나의 단위처럼 분리해 놓는다. 사각은 관람자를 단순히 가두는 장치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 있는 위치, 바라보는 방향,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기준을 계속 흔든다.

'다른 세상으로'라는 전시 제목도 같은 구조 안에서 구체화된다. 다른 세상은 멀리 떨어진 환상이 아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시선의 방향이 바뀌고, 경계가 흔들리며, 안과 밖의 위치가 뒤집히는 순간 열린다. 새장 앞에서는 갇힌 것과 빠져나간 흔적이 동시에 보이고, 거울 앞에서는 관람자의 자리가 작품 안으로 이동한다. 둥지와 매듭 앞에서는 기억의 위치가 흔들린다. 임하나의 사각 구조는 관람자를 다른 장소로 보내지 않는다. 이미 서 있는 공간을 다른 감각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마인드맵(Mind Map): 잃어버린 내면세계의 경로탐색Acrylic on Canvas 30cm, 90x65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앞선 ‘신 진경산수화’에서 임하나의 산수는 외부 풍경의 재현보다 내면의 지형에 가까웠다. ‘Mind Map’에서는 감정이 지도처럼 조직됐다. 위치와 경로, 층위와 이동이 이미 작업의 중요한 축이었다. 'Interactive Playground: 다른 세상으로'에서는 그 지형과 경로가 사각 구조 안으로 들어온다. 내면의 산수는 새장과 프레임의 공간으로 바뀌고, 감정의 지도는 관람자의 동선과 시선의 회로로 확장된다.

이번 작업에서 이상은 과거의 문학가로 머물지 않는다. 이상 문학의 구조는 임하나의 손을 거쳐 현재의 전시 공간으로 이동한다. 시의 기하학은 새장의 철선과 사각 프레임으로 나타나고, 설계도의 선은 황마 로프와 매듭으로 변환된다. 불안한 자의식은 거울 앞의 관람자에게 돌아오고, 내부와 외부의 흔들림은 새장 밖으로 흩어진 깃털에서 다시 열린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학과 미술의 만남은 자주 인용의 수준에 머문다. 작품 옆에 문장을 붙이고, 작가명을 제목에 넣는 방식만으로는 깊은 번역이 이뤄지지 않는다. 임하나의 작업은 그 방식과 거리를 둔다. 이상을 설명하는 대신, 이상적 구조를 작품의 내부 원리로 들여온다. 문학의 문장이 조형의 배치가 되고, 설계도의 감각이 관람자의 움직임이 된다.

사각과 새장, 로프와 매듭, 둥지와 거울은 임하나 작업의 조형 어휘가 됐다. 음악과 차, 향과 파동이 더해지면서 이상에게서 온 기하학은 더 이상 문학의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새장의 철선은 공간의 경계를 만들고, 황마 로프의 매듭은 공허를 붙잡으며, 음악은 구조에 시간을 입히고, 차는 감각을 몸 안으로 옮긴다. 임하나는 이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문학의 구조를 현재의 몸과 전시의 동선, 감각의 리듬으로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