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나 인사이트③] 검은 새장과 깃털, 닫힌 구조 밖으로 흩어진 흔적

새장·깃털·거울·둥지·매듭으로 읽는 임하나 작업의 검정과 회복의 구조

2026-05-18     박준식 기자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의 흰 가벽 앞에 검은 새장이 놓였다. 새장 안쪽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깥으로 흩어진 검은 깃털이다. 철선은 안과 밖을 나누지만, 깃털은 경계를 넘어선 흔적처럼 벽과 바닥에 남아 있다. 조명은 새장의 그림자를 흰 벽 위로 크게 밀어 올리고, 검은 거울은 관람자의 시선을 다시 전시장 안으로 돌려세운다. 임하나의 작업에서 새장은 닫힌 구조로 출발하지만, 깃털과 그림자, 거울을 지나며 열린 질문이 된다.

'Interactive Playground: 다른 세상으로'의 임하나 섹션은 검정의 밀도로 먼저 다가온다. 검은 새장, 검은 깃털, 검은 거울, 검은 둥지, 검은 매듭형 오브제가 흰 가벽과 검은 바닥 사이에 놓인다. 색채의 대비는 강하지만, 작업은 흑백의 장식적 효과에 머물지 않는다. 검정은 상처를 덮는 표면이면서 동시에 상처가 다시 드러나는 통로다. 닫힘과 이탈, 보호와 상실, 기억과 회복이 검은 물성 안에서 겹친다.

새장은 가장 직접적인 구조물이다. 사각의 철선은 내부와 외부를 가른다. 안을 만들고, 동시에 밖을 만든다. 갇힘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차단은 아니다. 안쪽은 보이고, 바깥의 시선도 철선 사이로 들어간다. 막혀 있지만 보이고,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상태가 긴장을 만든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새장 안에 무엇이 갇혔는가보다 새장 밖으로 무엇이 빠져나갔는지가 먼저 읽힌다. 벽 위에 흩어진 깃털은 몸에서 떨어져 나온 흔적처럼 보인다. 깃털은 새장의 내부를 설명하지 않는다. 새장 밖의 시간을 불러낸다. 닫힌 구조가 이미 한 번 흔들렸다는 사실, 안쪽에 있던 무언가가 바깥으로 이동했을 가능성, 갇힘과 탈주가 동시에 있었던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깃털은 가볍다. 손바닥 위에 올리면 금방 날아갈 물성이다. 흰 벽 위에 붙은 검은 깃털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은 깃털의 약한 물성을 눌러 공간의 정서를 바꾼다. 날아갈 수 있는 물질이 멈춰 있고, 흩어져야 할 물질이 벽에 고정돼 있다. 움직임의 흔적과 정지의 상태가 한 장면 안에 겹친다.

조명이 만든 그림자는 실물보다 크다. 새장은 작은 오브제로 놓여 있지만, 벽 위 그림자는 전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만큼 확장된다. 그림자는 실물의 복제이면서 다른 존재다. 철선은 그림자 속에서 더 굵어지고, 닫힌 구조는 더 강한 감각으로 번진다. 새장은 물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자로 한 번 더 존재한다. 실물과 그림자 사이에서 관람자는 갇힘의 구조를 두 번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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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시선을 되돌리는 장치다. 검은 프레임을 가진 거울 앞에 서면 관람자는 작품 바깥에 머물 수 없다. 새장과 깃털, 둥지와 매듭을 바라보던 시선은 거울을 통해 자기 몸으로 돌아온다. 관람자는 관찰자인 동시에 구조 안에 포함된 존재가 된다. 새장의 안과 밖을 보던 시선은 거울 앞에서 관람자의 안과 밖으로 옮겨간다.

거울은 전시장 경험의 방향을 바꾼다. 새장 앞에서는 외부의 관찰자가 되고, 거울 앞에서는 작품 안에 포함된 몸이 된다. 관람자의 얼굴, 손, 움직임이 거울에 들어오는 순간 작품은 완성된 대상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관계가 된다. 보는 행위 자체가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

검은 둥지는 새장과 다른 방식으로 닫힌 구조를 만든다. 새장이 철선으로 만든 폐쇄라면, 둥지는 감싸는 구조다. 본래 둥지는 보호와 탄생의 장소다. 임하나의 둥지는 편안한 보금자리로만 보이지 않는다. 가지처럼 뻗은 검은 구조물은 안쪽을 감싸면서도 날카롭게 벌어진다. 품는 동시에 밀어내고, 보호하는 동시에 불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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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안쪽에는 매듭형 오브제가 놓인다. 알처럼 보이기도 하고, 응고된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 둥지는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감정의 밀도가 높다. 빈자리와 매듭은 서로를 밀어 올린다. 무엇인가 태어나기 전의 자리, 이미 사라진 것이 남긴 자리, 다시 엮어야 할 기억의 자리가 함께 떠오른다.

매듭은 해결보다 보류에 가깝다. 매듭은 끊어진 것을 다시 잇지만, 끊어졌던 사실을 지우지 않는다. 묶인 자리는 더 굵어지고, 힘이 몰린 흔적이 남는다. 황마 로프와 매듭은 회복을 매끈한 치유로 만들지 않는다. 회복은 흔적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흔적이 남은 상태로 다시 엮는 과정이다.

검정은 바로 그 과정을 품는 색이다. 임하나의 검정은 단일한 어둠이 아니다. 새장의 검정, 깃털의 검정, 거울의 검정, 둥지의 검정, 매듭의 검정은 각기 다른 무게를 갖는다. 새장의 검정은 구조의 차가움을 만든다. 깃털의 검정은 이탈의 흔적을 만든다. 거울의 검정은 시선을 되돌린다. 둥지의 검정은 비어 있는 자리를 깊게 만든다. 매듭의 검정은 풀리지 않은 시간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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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가벽은 검정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흰색은 중립적 배경처럼 보이지만, 임하나의 작업에서는 검정이 드러나는 긴장의 표면이 된다. 깃털의 작은 형태, 새장의 그림자, 거울의 검은 프레임, 둥지의 거친 선이 흰 벽 위에서 또렷해진다. 화이트큐브의 깨끗한 흰색과 달리,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의 흰 가벽은 콘크리트 천장과 검은 바닥 사이에서 임시적이고 이동 가능한 표면처럼 보인다. 불완전한 표면 위에서 검정은 더 강한 현장성을 얻는다.

검은 바닥도 중요한 장치다. 흰 가벽이 검정의 윤곽을 세운다면, 검은 바닥은 오브제의 무게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새장과 둥지, 받침대와 그림자는 바닥 위에서 무거워진다. 관람객의 발걸음도 검은 바닥을 지나며 느려진다. 작품을 읽는 시선은 벽에서 시작하지만, 몸의 감각은 바닥에서 만들어진다.

임하나의 검정은 감정의 과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울부짖거나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사물의 구조 안에 감정을 눌러 담는다. 새장, 둥지, 매듭은 모두 감정을 담는 구조다. 감정은 표면으로 흘러넘치지 않고 구조 안에서 머문다. 머묾이 오래 남는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새장과 깃털은 상처와 회복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회복 서사는 갇힘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읽히기 쉽다. 임하나의 작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깃털이 바깥에 흩어져 있다고 해서 탈주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새장은 여전히 놓여 있고, 그림자는 더 크게 남아 있다. 빠져나간 흔적과 남아 있는 구조가 동시에 존재한다. 회복은 탈출의 결말이 아니라, 남은 구조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으로 읽힌다.

둥지도 마찬가지다. 둥지는 돌아갈 수 있는 집처럼 보이지만, 편안한 귀환의 장소가 아니다. 검은 가지와 매듭은 품는 동시에 긴장시킨다. 회복은 안전한 장소로 되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불안한 구조 안에서 다시 자리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비어 있는 둥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을 품는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거울은 회복의 질문을 관람자에게 돌려준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며 타인의 상처를 감상하는 위치에 머물 수 없다. 거울은 보는 사람의 몸을 작품 안에 넣는다. 새장과 깃털이 만든 질문은 관람자에게 돌아온다. 무엇이 닫혀 있는가. 무엇이 빠져나갔는가.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가. 질문은 작품 안에서 멈추지 않고 관람자의 기억으로 이동한다.

임하나 작업의 강도는 의미를 고정하지 않는 데 있다. 새장은 감옥일 수도 있고, 보호의 장치일 수도 있다. 깃털은 탈주의 흔적일 수도 있고, 상실의 잔해일 수도 있다. 둥지는 회복의 자리일 수도 있고, 돌아갈 수 없는 장소일 수도 있다. 매듭은 봉합일 수도 있고, 풀리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작품은 하나의 해석으로 닫히지 않는다. 관람객은 각자의 기억을 통해 다른 경로로 들어간다.

'By My Thread: Weaving the Void'의 공허도 같은 방식으로 읽힌다. 공허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무언가 사라진 뒤 남은 빈칸이고, 다시 엮어야 할 자리다. 새장 밖의 깃털, 둥지 안의 빈자리, 매듭에 몰린 힘은 모두 공허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공허는 시각적으로 비어 있지만 감각적으로는 꽉 차 있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은 공허를 감싼다. 밝은 색으로 치유를 말하지 않고, 검정으로 남은 시간을 붙잡는다. 임하나의 회복은 상처를 지우는 방식이 아니다. 상처를 다른 구조 안에 다시 놓고, 다시 볼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새장은 그대로 남고, 깃털은 흩어지고, 둥지는 비어 있고, 매듭은 풀리지 않는다. 바로 그 상태가 작품의 힘이 된다.

검은 오브제들은 전시장 안에서 서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새장이 깃털을 설명하지 않고, 깃털이 둥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각각의 오브제는 독립적인 장면으로 놓이면서도 서로를 향해 감각의 선을 만든다. 관람객은 하나의 중심을 찾기보다 여러 흔적 사이를 이동한다. 검정은 작품을 하나로 묶는 색이면서, 각 오브제 사이의 침묵을 유지하는 색이다.

침묵은 음악과도 연결된다. ‘connect: MUSIC’이 놓인 공간에서 소리는 검은 오브제 사이의 침묵을 깨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의 밀도를 바꾼다. QR을 통해 음악을 듣는 순간, 새장과 깃털, 거울과 둥지는 시간의 층을 얻는다. 소리는 오브제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바라보는 시간을 늘린다. 검정은 소리와 만나 더 천천히 읽힌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업은 관람자를 빠르게 통과시키지 않는다. 새장 앞에서 멈추고, 깃털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거울 앞에서 다시 멈추게 만든다. 둥지와 매듭 앞에서는 가까이 다가가게 하고, 그림자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게 한다. 거리의 변화가 작품 읽기의 일부가 된다. 가까이 보면 재료의 거칠음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구조와 그림자가 먼저 다가온다.

검은 새장과 깃털은 전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장면이지만, 작품의 의미를 모두 소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리즈 전체에서 임하나 작업을 읽는 중간 통로가 된다. 이상 문학의 사각 구조가 새장과 프레임으로 들어왔고, 'TEA THERAPY'의 파동은 차와 미각으로 확장된다. 검정과 깃털, 둥지와 매듭은 구조와 감각 사이에서 정서의 밀도를 담당한다.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이라는 장소도 검정의 의미를 강화한다. 고가도로 아래라는 조건은 작품에 완전한 정적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소음과 이동, 낮은 천장과 거친 표면이 전시장 안에 남아 있다. 새장은 실내 장식물처럼 놓이지 않고, 도시의 하부 공간에 임시로 내려앉은 구조처럼 보인다. 깃털은 자연의 흔적이면서도 도시의 틈에 남은 잔해처럼 읽힌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은 도시의 하부 공간과도 맞닿는다. 밝게 정돈된 미술관의 흰 벽과 달리,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의 검정은 현실의 어둠과 가깝다. 임하나는 어둠을 비극으로만 밀어붙이지 않는다. 검은 오브제들은 차갑지만 섬세하고, 불안하지만 조용하다. 상처의 장면을 과장하지 않고, 관람자가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로 남긴다.

임하나의 새장과 깃털은 하나의 문장으로 닫히지 않는다. 닫힌 구조 바깥으로 흩어진 흔적, 비어 있지만 무거운 둥지, 풀리지 않은 매듭, 관람자를 되돌려 세우는 거울이 함께 남는다. 작품은 상처를 설명하지 않고, 상처가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회복도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엮을 수 있는 자리를 남긴다.

전시 이후에도 장면은 사진과 영상, 관람자의 기억 속에서 계속 이동한다. 새장은 철거될 수 있고, 깃털은 다른 위치로 옮겨질 수 있다. 닫힌 구조 밖으로 흩어진 흔적이라는 이미지는 임하나 작업의 중요한 축으로 남는다. 검정은 어둠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엮이는 시간의 표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