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①] AI가 음악을 만든다, 제작 현장에 들어온 새 경쟁자
생성형 AI, 작곡·보컬·믹싱까지 확산 K콘텐츠 산업, 창작 도구보다 권리·팬덤·기획력이 승부처
[KtN 홍은희기자]약 1,200명의 음악인을 대상으로 한 2025년 LANDR 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작곡, 믹싱, 마스터링 등 창작 과정 일부에 AI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음악 제작 현장에 들어온 AI는 더 이상 추천곡을 골라주는 보조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문장을 입력하면 곡의 구조와 보컬을 만들고, 음원 신호를 분석해 사운드를 다듬으며, 완성된 결과물을 글로벌 플랫폼에 올리는 단계까지 제작 흐름 안으로 들어왔다.
음악 산업은 이미 여러 차례 기술 변화로 구조를 바꿔왔다. 1999년 냅스터 등장은 CD 판매 중심 시장을 흔들었고, 2003년 아이튠즈 스토어는 합법 다운로드 시장을 열었다. 스마트폰 보급 뒤 음악은 기기 안으로 들어갔고, 스포티파이의 미국 진출 이후 소비 방식은 음반 소유에서 스트리밍 접근으로 이동했다.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는 아티스트가 레이블을 거치지 않고 음악을 공개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 2015년 스포티파이의 ‘디스커버 위클리’ 이후 추천 알고리즘은 음악 소비를 좌우하는 장치가 됐다.
2020년대 들어 변화의 방향은 유통에서 제작으로 옮겨갔다. 2010년대 후반 AIVA, Amper Music 같은 AI 작곡 플랫폼이 제작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도구로 등장했다면, 생성형 AI는 곡의 초안과 보컬, 편곡, 후반 작업까지 한꺼번에 건드린다. LANDR 조사에서 AI 도구 활용 비율은 기술적 작업 79%, 창의적 작업 66%, 홍보 및 프로모션 52%로 나타났다. 사운드 보정에 그치지 않고 창작의 앞단까지 AI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Suno AI와 Udio AI는 텍스트를 입력받아 곡의 구조와 보컬을 포함한 결과물을 만든다. Soundraw, Beatoven.ai, Mubert는 템포, 악기 구성, 감정 같은 조건에 맞춰 음악을 생성하고 변형한다. iZotope와 LANDR는 음원 신호를 분석해 이퀄라이징, 다이내믹 처리, 음압 조정 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음악 생성, 제작, 사운드 최적화, 유통으로 이어지던 작업은 단계별 AI 도구의 등장으로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제작 현장에서 가장 먼저 달라지는 부분은 시간이다. 예전에는 데모 한 곡을 만들기 위해 작곡가, 편곡자, 보컬 가이드, 엔지니어가 차례로 붙어야 했다. 생성형 AI 도구를 쓰면 여러 장르의 초안을 짧은 시간 안에 비교할 수 있다. 후렴을 바꾸고, 템포를 조정하고, 영어권 시장에 맞춘 버전과 숏폼 플랫폼용 버전을 따로 실험하는 작업도 쉬워진다. 대형 기획사에는 후보곡 탐색의 속도를 높이는 도구가 되고, 중소 제작사와 독립 창작자에게는 제작비 부담을 낮추는 장치가 된다.
창작자의 역할도 바뀐다. 멜로디를 처음부터 쓰는 능력만으로는 제작 과정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생성형 AI가 만든 여러 결과물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어느 구간에 인간의 감각을 넣을지, 어떤 사운드가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맞는지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욕비즈니스센터 보고서는 생성형 AI 음악 기술 확대로 창작 역량의 중심이 전통적인 음악 이론에서 생성 결과를 설계·선별·조정하는 ‘기획·선택·편집’ 능력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K-POP 산업은 이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K-POP 제작은 원래부터 작곡, 안무, 영상, 스타일링, 팬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운영이 묶인 종합 기획에 가깝다. 한 곡의 흥행도 음원 자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챌린지, 콘서트, 팬 플랫폼, 굿즈, 세계관이 함께 움직인다. AI가 곡 제작 속도를 높이면 K-POP 기업은 더 많은 시안을 검토할 수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장에서 차별성을 입증해야 한다.
제작 문턱이 낮아질수록 경쟁은 쉬워지지 않는다. 누구나 일정 수준의 음악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면, 완성도만으로는 우위를 만들기 어렵다. 아티스트의 서사, 퍼포먼스의 설계, 팬덤의 충성도, 플랫폼에서 반복 소비될 수 있는 구간, 장기적으로 확장 가능한 지식재산권이 더 큰 비중을 갖는다. AI가 만든 곡이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 창작자의 취향과 판단, 기획사의 선별 능력이 더 비싸지는 구조다.
유통 구조도 함께 바뀌고 있다. DistroKid, RouteNote, LANDR Distribution 같은 디지털 유통 플랫폼은 완성된 음원을 별도 중개 과정 없이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 배포한다. 레이블과 유통사를 거치던 단계가 줄어들면서 창작과 유통의 경계도 약해졌다. AI로 만든 음원을 곧바로 플랫폼에 올릴 수 있는 환경은 신인과 독립 창작자에게 기회를 주지만, 플랫폼 안에서 발견되지 못하는 콘텐츠의 양도 함께 늘린다.
노출 경쟁의 중심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숏폼 플랫폼에서 어느 구간이 반복 재생되는지, 추천 피드가 어떤 이용자에게 어떤 음악을 밀어주는지, 팬들이 어떤 음원을 배경으로 영상을 만드는지가 흥행의 속도를 바꾼다. K-POP은 이미 틱톡 챌린지, 유튜브 쇼츠, 팬 편집 영상, 스트리밍 총공 같은 참여형 유통에 익숙한 장르다. AI 제작 도구가 여기에 결합하면 곡의 제작 단계부터 숏폼 확산 가능성, 후렴 반복성, 안무 전환 구간까지 계산하는 흐름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권리 문제는 제작 속도보다 늦게 따라오고 있다. AI가 어떤 음악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특정 가수의 음색을 구현할 때 어느 수준의 동의가 필요한지, AI가 만든 멜로디와 인간이 수정한 결과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음악 산업에서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가수의 정체성이자 수익의 원천이다. AI 음성 합성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동의 없는 복제와 모방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K콘텐츠 기업이 서둘러 정해야 할 것은 AI 도입 여부가 아니다. 창작 과정에서 AI를 어디까지 쓸지, 아티스트의 음성과 이미지를 어떤 계약으로 보호할지, AI 생성·보정 사실을 팬과 시장에 어떻게 알릴지, 해외 플랫폼과 계약할 때 학습 데이터와 2차 활용 권리를 어떻게 제한할지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 기술을 빨리 쓰는 능력 못지않게 권리를 관리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점이다.
AI는 음악을 더 빨리 만들고, 더 싸게 만들고,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많이 만들어진 음악이 모두 오래 살아남지는 않는다. K콘텐츠 산업의 다음 승부는 생성형 AI로 몇 곡을 더 뽑아내느냐가 아니라, 인간 창작자의 판단과 팬덤의 신뢰를 어떤 방식으로 작품 안에 남겨두느냐에 달려 있다. 제작 도구는 바뀌었지만 시장이 끝까지 값을 치르는 것은 여전히 차별화된 IP와 믿을 수 있는 창작의 질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