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②] K-POP, 국적보다 제작 시스템이 먼저 팔린다

한국인 없는 팀까지 K-POP 문법으로 미국 시장 진입 영어곡·글로벌 협업 뒤에 남은 경쟁력은 훈련·퍼포먼스·팬덤 운영

2026-05-18     홍은희 기자
스트레이 키즈가 제40회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에서 4관왕을 휩쓸고, 투어스가 올해의 신인상 격인 뉴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를 거머쥐면서 일본 시장에서 커진 K팝 존재감을 다시 확인했다. 사진=2026. 03.12 소속사  블랙핑크 제니/  KATSEYE도 신인 부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홍은희기자]한국인 멤버 없이 구성된 KATSEYE는 K-POP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욕비즈니스센터가 2026년 5월 낸 ‘미국 AI 음악 산업 동향과 K-POP 산업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는 최근 K-POP 산업에서 ‘K’의 정체성이 약화되는 탈국가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K-POP이 특정 국가 기반 장르라기보다 표준화된 글로벌 음악 산업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짚었다.

K-POP의 미국 진입은 한국에서 만든 노래를 해외로 보내는 방식에서 출발했다. 이후 글로벌 시장이 커지면서 제작 방식은 달라졌다. 서구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제작 과정에 참여했고, 영어 가사와 영어곡 비중도 늘었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작곡가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협업한 영어 싱글 ‘Dynamite’로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블랙핑크는 셀레나 고메즈와 ‘Ice Cream’, 레이디 가가와 ‘Sour Candy’를 발표하며 글로벌 팝 아티스트와의 공동 제작을 확대했다.

영어곡 확대는 미국 시장 진입 장벽을 낮췄다. 글로벌 협업은 현지 라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팬덤 확산에 필요한 접점을 만들었다. 다만 K-POP이 미국 팝과 같은 방식으로만 움직인 것은 아니다. 서구 팝의 사운드와 영어 가사를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식 아이돌 트레이닝, 퍼포먼스 중심 구성, 팀 서사, 팬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유지됐다. 보고서는 이를 글로벌 생산 방식과 한국적 요소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설명한다.

K-POP을 가르는 기준은 노래 한 곡이 아니라 제작 공정에 가까워졌다. 연습생 선발과 훈련, 군무 중심의 퍼포먼스, 멤버별 캐릭터 설계, 앨범과 영상과 무대를 함께 묶는 기획, 팬 플랫폼을 통한 지속 접촉이 한꺼번에 움직인다. 미국 팝 시장에서도 아티스트 브랜딩과 팬 관리가 중요하지만, K-POP은 데뷔 전부터 팀 전체를 하나의 상품 구조로 설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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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SEYE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인 멤버가 있느냐보다 어떤 제작 체계를 거쳤는지, 어떤 퍼포먼스 문법을 갖췄는지, 팬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올라섰다. K-POP이 국적 표시에서 산업 방식의 이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특정 국가의 음악이 아니라, 특정한 훈련과 제작, 유통과 팬덤 운영을 묶은 시스템으로 팔리기 시작한 셈이다.

한국어의 위치도 단순하지 않다. 미국 진입 초기에는 영어곡이 접근성을 높이는 수단이었다. 최근에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비영어 콘텐츠 수용성이 커지면서 한국어가 다시 차별화 요소로 남는 흐름도 나타난다. 보고서는 초기 영어 중심 전략과 달리 한국어 사용 비중이 유지되거나 강화되는 방향이 나타나며, 한국어가 문화적 진정성과 브랜드 고유성을 높이는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가사는 해외 팬에게 번역과 해석의 과정을 요구한다. 그 과정은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팬덤 활동의 출발점이 된다. 가사를 옮기고, 발음을 익히고, 무대의 배경과 세계관을 설명하는 활동이 온라인에서 이어진다. K-POP 팬덤은 음악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콘텐츠를 해석하고 퍼뜨리는 유통망으로 움직인다.

방탄소년단, 멕시코 15만 관객 매료…대통령실 초청에 1500억 경제효과까지 ...방탄소년단(BTS)의 멕시코 공연은 한류 콘서트를 넘어 도시 교통, 관광 소비, 외교 의전까지 움직인 대형 문화경제 이벤트였다. 사진=2026. 05.12 @bts_bighit 빅히트뮤직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팬덤 경제는 K-POP 시스템의 핵심이다. 보고서는 글로벌 K-POP 산업이 음원과 공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팬 플랫폼, 굿즈, 멤버십, 독점 콘텐츠를 결합한 다층 수익 구조로 확대됐다고 설명한다. 이는 미국 주류 팝 산업의 스트리밍 중심 수익 구조와 다른 지점이다.

팬은 단순 구매자가 아니다. 앨범 발매일과 투어 일정, 멤버 기념일에 맞춰 광고를 집행하고, 콘텐츠를 번역하며, 스트리밍과 투표에 참여한다. 보고서는 세븐틴과 스트레이 키즈 팬덤이 미국 주요 도시에서 디지털·옥외 광고를 게재해 아티스트 인지도 확산에 기여한 사례를 언급했다. BTS 팬덤 아미가 공연장 주변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수거한 사례도 팬덤이 소비 집단을 넘어 문화 공동체로 움직인 사례로 소개했다.

K-POP의 탈국가화는 한국 콘텐츠 산업에 기회다. 한국 기업은 더 이상 한국인 아티스트만 해외에 보내는 방식에 머물 필요가 없다. 훈련 체계, 제작 방식, 팬 플랫폼 운영, 퍼포먼스 설계, 세계관 구축 능력을 해외 인재와 결합할 수 있다. K-POP이 하나의 제작 시스템으로 인정받으면 미국, 일본, 동남아, 유럽에서 현지 팀을 만들고도 K콘텐츠의 산업 문법을 유지할 수 있다.

부담도 같은 지점에서 생긴다. K-POP이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포맷으로만 인식되면 한국 콘텐츠의 고유성은 약해진다. 멤버 국적이 다양해지고 제작진과 자본이 글로벌화될수록 ‘무엇이 K-POP을 K-POP으로 남게 하는가’라는 질문은 더 커진다. 한국어, 군무, 연습생 시스템, 팬덤 운영, 세계관, 멤버 서사 가운데 어떤 요소를 남기고 어떤 요소를 현지화할지에 따라 산업의 방향이 달라진다.

미국 시장은 K-POP에 기회를 주는 동시에 K-POP을 미국식 팝 산업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장이다. 현지 레이블과 협업하고, 영어곡을 발표하고, 틱톡과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맞춰 홍보하면 확산 속도는 빨라진다. 반대로 그 과정이 지나치게 깊어지면 K-POP만의 구분점은 희미해질 수 있다. 글로벌화와 평준화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K-POP 기업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현지화만 앞세우면 빠르게 들어갈 수 있지만 오래 남기 어렵다. 한국식 제작 시스템만 고집하면 시장 확장은 느려진다. 글로벌 인재와 자본을 받아들이되 훈련, 퍼포먼스, 팬덤, 언어, IP 운영을 하나의 질서로 묶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K-POP의 ‘K’는 국적의 표시에서 제작 방식의 표시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인 멤버, 한국어 가사, 한국 제작사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K-POP을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미국 시장에서 K-POP이 계속 힘을 가지려면 한국적 요소를 장식처럼 붙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노래와 무대, 팬덤과 플랫폼, 언어와 IP를 함께 설계하는 산업 시스템으로 남아야 한다. 다음 경쟁은 어느 나라 사람이 부르느냐보다, 누가 그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운영하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