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같은 문화의 이름①] 태권도 유네스코 공동등재, 신청은 끝났고 외교가 남았다

한국은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로 신청, 북한은 ‘전통무술 태권도’로 선행 신청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정 무대가 아니지만, 공동등재 의제를 꺼낼 외교 무대다

2026-05-18     임우경 기자
[태권도,같은 문화의 이름①] 태권도 유네스코 공동등재, 신청은 끝났고 외교가 남았다 /사진=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 국가유산청이 2026년 3월 31일 유네스코 본부에 태권도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 명칭은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라는 이름으로 신청서를 먼저 냈다. 남과 북이 같은 이름의 문화를 서로 다른 설명과 제도 안에서 유네스코 절차에 올렸다.

태권도 남북 공동 유네스코 등재 논의는 구호의 단계를 지나 국제기구의 심사 절차 안으로 들어섰다. 본지가 축적해온 최재춘 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 취재는 민간 차원의 문제 제기, 태권도계 내부 설득, 정부 협력 요구, 남북 공동등재론으로 이어져 왔다. 2019년 민간에서 출발한 추진단의 활동은 2026년 5월 태권도계 단체 참여와 범국민 100만 서명운동으로 이어지며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를 태권도계 내부 의제에서 국가 문화외교의 의제로 끌어올렸다.

2019년 민간에서 출발한 추진단의 활동은 2026년 5월 태권도계 단체 참여와 범국민 100만 서명운동으로 이어지며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를 태권도계 내부 의제에서 국가 문화외교의 의제로 끌어올렸다. /사진=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를 둘러싼 첫 쟁점은 회의의 성격이다. 2026년 7월 13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유네스코 공식 일정에는 개최지가 대한민국 부산, 본회의는 2026년 7월 19일부터 29일까지로 명시돼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협약에 따른 유산의 등재와 보존을 다루는 회의다. 태권도처럼 살아 있는 전승과 공동체의 실천을 다루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 회의와는 절차가 다르다.

부산 회의는 태권도 등재 결정 무대가 아니지만, 외교 무대의 성격은 분명하다. 유네스코 고위 관계자와 회원국 대표단, 문화유산 분야 관계자들이 한국에 모인다. 정부가 태권도 남북 공동등재 의제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국제 무대다. 부산에서 등재 결정을 끌어낸다는 접근은 절차상 맞지 않는다. 부산을 계기로 유네스코와 회원국을 상대로 공동등재의 명분을 축적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대한민국의 세계유산협약 가입 후 38년 만에 최초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2026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에서 17일간(7. 13. ~ 7. 29.) 열린다. /사진=VISIT BUS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는 신청서에서 경기 종목이나 시범 공연이 아니라 도장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공동체 수련문화로 제시됐다. 태권도진흥재단은 국가유산청이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로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신청서 보완 과정에는 2018년 씨름 남북 공동등재 당시 실무를 담당한 심승구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도 참여했다.

‘도장 공동체’라는 표현은 등재 전략의 방향을 보여준다. 태권도가 대한민국의 국기라는 상징만으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논리를 완성하기 어렵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은 국가 브랜드보다 공동체의 전승, 실천, 참여, 지속 가능성을 본다. 태권도 등재 논리는 경기장의 승패나 시범단의 기술보다 일선 도장에서 이어져 온 몸의 훈련, 예의, 규범, 사범과 수련생의 관계, 세대 간 전승 구조에 놓여 있다.

태권도 등재 논리는 경기장의 승패나 시범단의 기술보다 일선 도장에서 이어져 온 몸의 훈련, 예의, 규범, 사범과 수련생의 관계, 세대 간 전승 구조에 놓여 있다.  /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북한의 선행 신청은 공동등재 논의를 복잡하게 만든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로 등재신청서를 제출했고,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국가유산청은 2018년 씨름에 이어 태권도를 두 번째 남북 공동등재 사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공동등재가 당장 성사되지 않을 경우 추후 확장등재도 검토 대상이다.

공동등재와 확장등재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선택해야 할 방식이다. 공동등재는 남북이 함께 하나의 신청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고, 확장등재는 먼저 등재된 유산에 다른 국가가 뒤따라 참여하는 방식이다. 북한 신청 건이 먼저 심사를 받고 한국 신청서가 별도 절차에 올라간 상황에서는 북한 등재 전 병합 가능성, 북한 등재 뒤 한국의 참여 가능성, 2028년 한국 신청서 심사 일정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 한국 신청서의 최종 등재 여부는 2028년 12월 제2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2018년 11월,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남북이 각각 제출한 씨름 신청서를 병합해 전례 없는 공동등재를 결정했다. /사진=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8년 씨름 공동등재는 태권도 논의의 가장 중요한 선례다. 남북은 각각 씨름 관련 신청서를 냈지만, 유네스코의 중재와 남북의 동의 속에 공동등재가 성사됐다. 유네스코는 당시 남북의 신청을 병합한 등재를 전례 없는 사례로 설명했다. 씨름 공동등재는 남북이 같은 문화유산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국제기구 절차 안에서 확인한 사건이었다.

태권도는 씨름보다 더 어려운 유산이다. 씨름은 남북 모두에서 민속놀이와 전통 경기의 성격이 강하다. 태권도는 남측의 국기원·세계태권도연맹 체계, 북측의 ITF 계열 전승 체계가 국제적으로 병존해 왔다. 세계인은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기억하지만, 한국 신청서가 말하는 태권도는 도장에서 몸과 규범을 익히는 생활문화다. 북한 신청서의 태권도는 ‘전통무술’이라는 다른 설명 체계를 갖고 있다. 공동등재는 남북 태권도의 차이를 지우는 절차가 아니다. 다른 체계 안에서도 같은 문화의 이름을 함께 인정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절차다.

최재춘 추진단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잇따라 만나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추진 현황을 보고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8년과 현재의 남북관계도 전혀 다르다. 씨름 공동등재 당시에는 남북 정상회담과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의 대화 국면이 있었다. 현재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뒤 정치·군사 대화가 사실상 막혀 있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평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교류 사업이 아니라, 단절 국면에서 남은 좁은 문화외교 통로에 가깝다.

최재춘 추진단장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거듭 요구하는 배경에는 남북관계의 경색과 유네스코 절차의 시간표가 함께 놓여 있다. 최재춘 추진단은 태권도계 내부의 공감대를 만들고, 해외 태권도인과 북측 ITF 계열 인사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본지 취재 흐름에서도 최재춘 추진단, 정부 협력, 태권도계 단체 참여, 범국민 서명운동은 반복해서 확인된다. 민간의 축적만으로 유네스코 등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정부 제출 신청서, 심사기구 평가, 회원국 설득, 북한의 동의 가능성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 정책' 언급' 이 대통령, 우호적인 북·중 관계 지렛대로 남북 관계 해결 하자  사진=2025 11.01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 정부의 역할은 절차와 외교를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상징성이 크지만, 상징만으로 등재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정부는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를 태권도 등재 결정 회의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 부산 회의를 계기로 유네스코와 회원국을 상대로 남북 공동등재의 취지를 설명하고, 무형유산 심사 일정에 맞춘 별도 외교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통일부, 외교부, 태권도진흥재단,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의 역할 정리도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은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을 추진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태권도 공동등재가 성사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같은 문화의 이름을 국제기구 절차 안에서 함께 다룰 수 있다면, 남북관계가 군사와 적대의 언어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작은 근거가 생긴다. 문화유산 외교는 단절 국면에서도 협의 가능한 의제를 남긴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김중헌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왼쪽)과 최재춘 코리아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장/사진=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절차는 시작됐다. 남은 단계는 신청보다 어렵다. 한국은 태권도가 도장 공동체를 통해 이어져 온 전승문화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설득해야 한다. 북한의 선행 신청과 충돌하지 않는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 방식도 찾아야 한다.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결정을 내리는 자리는 아니지만, 한국 정부가 태권도를 평화와 공동문화의 의제로 꺼낼 수 있는 올해의 국제무대다.

태권도는 이미 세계가 아는 한국의 이름이다. 남은 과제는 북한의 선행 신청과 한국의 신청을 충돌 구도로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서로 다른 제도와 정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문화의 이름을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함께 다룰 외교 해법이 필요하다. 신청서는 제출됐고, 등재보다 어려운 조율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