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같은 문화의 이름⑥] 이재명 정부, 태권도 공동등재를 외교 의제로 올릴 시간

대통령실·외교부·통일부·문체부·국가유산청, 같은 메시지로 움직여야 한다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정 회의가 아니지만, 유네스코 설득의 접점은 만들 수 있다

2026-05-24     임우경 기자
국가유산청은 2026년 3월 31일 유네스코 본부에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 신청서를 먼저 냈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 2026년 7월 부산에는 유네스코 고위 관계자와 회원국 대표단이 모인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7월 13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협약에 따른 유산의 등재와 보존을 다루는 회의다. 태권도처럼 살아 있는 전승과 공동체의 실천을 다루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 회의와는 절차가 다르다. 태권도 등재 결정은 부산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태권도 남북 공동등재를 유네스코 고위 관계자와 회원국 대표단 앞에서 설명할 외교 접점은 부산에서 만들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2026년 3월 31일 유네스코 본부에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 신청서를 먼저 냈다. 남북이 같은 이름의 유산을 서로 다른 설명으로 제출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져 있지 않다. 한국 신청서를 별도 등재 절차로 밀고 갈지, 공동등재 가능성을 열어둘지, 북한 등재 이후 확장등재를 검토할지 정부 차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최재춘 코리아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과 태권도계는 민간의 길을 열어왔다. 2019년 민간 차원의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논의는 태권도계 내부 설득, 북측 ITF 계열 접촉, 정부 협력 요구, 범국민 서명운동으로 이어졌다. 국가신청서가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된 뒤에는 민간의 축적을 정부 외교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 남았다. 대통령실, 외교부,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이 따로 움직이면 태권도 공동등재의 설득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최재춘 단장이 이끈 코리아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신청 마침내 완료/사진=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대통령실은 태권도 공동등재를 평화와 공동문화의 의제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2018년 씨름 공동등재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남북 씨름 공동등재를 논의했다. 한국과 북한은 각각 공동등재 요청 서한을 냈고, 유네스코 사무국은 씨름 공동등재 안건을 정부간위원회 긴급안건으로 올렸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신청서와 심사를 대신하지 못한다. 다만 유네스코와 회원국이 남북 공동등재를 정치 구호가 아니라 공동문화의 의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외교적 무게를 줄 수 있다.

외교부는 유네스코 사무국과 회원국을 상대하는 창구다. 씨름 공동등재는 남북의 공동등재 요청, 유네스코의 중재, 정부간위원회의 만장일치 결정이 맞물리며 성사됐다. 태권도는 씨름보다 절차가 복잡하다. 북한 신청서가 먼저 들어갔고 한국 신청서가 뒤따라 제출됐다. 병합 가능성, 확장등재 가능성, 별도 등재 이후 공동 설명 가능성을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따져야 한다. 외교부가 회원국 설득 논리와 유네스코 접촉 일정을 미리 정리해야 하는 이유다.

통일부는 남북 접촉의 기준을 정리해야 한다. 통일부가 2026년 2월 공개한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은 남북 간 평화공존 제도화, 한반도 공동성장 기반 구축,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목표로 제시했다. 추진 원칙에는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이 포함됐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이 원칙을 문화유산 절차 안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북한의 전승 체계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한국 신청서의 독자성과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의 근거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최재춘 추진단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잇따라 만나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추진 현황을 보고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체육관광부는 태권도 진흥 정책과 국제 스포츠 외교의 축을 갖고 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이자 올림픽 종목이고, 세계 각국 도장에서 수련되는 문화다. 그러나 유네스코 신청서가 앞세운 태권도는 경기 종목보다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에 가깝다. 문체부는 스포츠 외교의 성과를 문화유산의 언어로 옮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세계 태권도 네트워크, 해외 사범, 국제대회, 도장 전승망을 유네스코 신청 논리와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가유산청은 신청서와 무형유산 절차를 책임진다. 유네스코 심사에서는 태권도의 명성보다 전승 공동체의 존재, 세대 간 전승, 공동체 참여, 보호 조치의 현실성이 중요하다. 국가유산청이 제출한 신청 명칭은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다. 일선 도장과 사범, 수련생, 지역 전승, 해외 전승망의 자료가 신청 명칭을 뒷받침해야 한다. 태권도의 세계적 인지도만으로는 무형유산 등재 논리가 완성되지 않는다.

태권도진흥재단,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코리아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은 정부 전략의 현장 기반이다. 태권도진흥재단과 태권도원은 연구·전시·교육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국기원은 승품·승단 체계와 도장 전승 자료를 갖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경기와 현장 조직의 연결망을 가진다. 최재춘 추진단은 남북 공동등재 의제, 민간 여론, 북측 ITF 계열 접촉 경험을 축적해왔다. 정부가 태권도계의 자료와 네트워크를 하나의 전략 안에 묶지 못하면 유네스코 설득도 힘을 얻기 어렵다.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유네스코 고위 관계자와 회원국 대표단이 모인다. 정부가 태권도 남북 공동등재의 취지와 씨름 선례를 설명하고, 무형유산 심사 절차와 별도로 협조 기반을 쌓을 수 있는 외교 무대로 활용할 수 있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7월 부산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태권도 등재 결정을 요구할 수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유네스코 고위 관계자와 회원국 대표단을 상대로 태권도 남북 공동등재의 취지, 2018년 씨름 공동등재의 선례, 한국 신청서의 도장 공동체 전승 논리를 설명하는 일이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공식 의제와 무형유산 등재 절차를 혼동하지 않는 선에서, 부산 회의의 외교적 접촉면을 활용해야 한다.

한국 신청서는 2028년 12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북한 신청서는 한국보다 먼저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가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를 검토한다면 부산 회의 이후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유네스코 사무국 접촉, 위원국 대상 설명, 북한 신청 절차의 진행 상황 파악, 국내 태권도계 의견 정리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의 메시지는 하나로 정리돼야 한다. 대통령실은 평화와 공동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외교부는 유네스코 외교를 맡고, 통일부는 남북 접촉 기준을 정하고, 문체부는 태권도 진흥과 국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국가유산청은 신청서와 보호 조치를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관별 설명이 서로 다르면 공동등재 논리는 곧바로 흔들린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한 부처의 단독 사업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위해 5개 단체 '한 목소리'…국가유산청과 '원팀' 체계 구축/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내 태권도계의 정리도 정부 외교의 전제다. 공동등재를 두고 남측 태권도의 정체성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북한의 선행 신청을 경쟁 구도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와 태권도계는 공동등재가 남측 태권도의 위상을 낮추는 절차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출발한 태권도의 공동문화적 기반을 국제사회에 설명하는 절차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등재 논리가 내부에서 흔들리면 유네스코 설득도 흔들린다.

최재춘 추진단이 2019년부터 쌓아온 민간의 축적은 정부가 단기간에 만들기 어려운 자산이다. 태권도계 내부 설득, 북측 ITF 계열 접촉, 씨름 공동등재 선례 제기, 범국민 서명운동은 태권도 공동등재 논의를 국가신청 단계까지 끌고 온 동력이었다. 민간의 축적은 정부의 실행 전략과 연결될 때 힘을 얻는다. 민간이 만든 통로를 정부가 제도권 외교 안으로 옮기지 못하면 공동등재 논의는 선언과 캠페인에 머물 수 있다.

남북 태권도의 공통 전승 기반을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도 시급하다. 한국 신청서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와 북한 신청서의 전통무술 태권도가 어떤 공통 기반을 갖는지 설명해야 한다. 몸의 기술, 예의와 규범, 사범과 수련생의 관계, 세대 간 전승, 한반도 문화적 뿌리를 문서와 자료로 정리해야 한다. 공동등재 논리는 “같은 이름”이라는 주장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태권도는 씨름보다 제도 지형이 복잡하지만, 선례가 남긴 절차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부는 씨름의 전례를 반복이 아니라 응용의 근거로 사용해야 한다. /사진=KOREA 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장,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유네스코와 회원국을 상대로 한 설명에는 씨름 공동등재의 선례가 필요하다. 2018년 씨름은 남북이 따로 신청한 유산도 공통 전승과 남북 동의, 유네스코 중재, 정부 외교가 맞물리면 하나의 이름으로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태권도는 씨름보다 제도 지형이 복잡하지만, 선례가 남긴 절차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부는 씨름의 전례를 반복이 아니라 응용의 근거로 사용해야 한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이재명 정부의 평화정책을 행정과 외교의 절차로 시험한다. 북한이 곧바로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유네스코 절차가 병합보다 확장등재 쪽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한국 신청서가 별도 등재 절차를 먼저 밟게 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정부는 하나의 시나리오에만 기대지 말고, 공동등재·확장등재·별도 등재 이후 협력까지 포함한 복수의 경로를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세계유산협약 가입 후 38년 만에 최초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2026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에서 17일간(7. 13. ~ 7. 29.) 열린다. /사진=VISIT BUS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7월 부산에는 태권도 등재 결정권이 없지만, 유네스코 외교의 접점은 만들어진다. 대통령실의 메시지, 외교부의 유네스코 접촉, 통일부의 남북 협의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의 신청서 전략이 따로 움직여서는 공동등재의 설득력이 생기기 어렵다. 부산 회의를 계기로 정부 안의 역할 조정과 대외 메시지 정리가 시작돼야 한다.

태권도는 이미 신청서의 단계에 들어갔다. 남은 일은 정부의 조율이다. 최재춘 추진단과 태권도계가 민간의 길을 열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외교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기대의 문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처별 역할, 유네스코 설득, 남북 협의 기준, 국내 전승 공동체 참여를 하나로 묶는 실행 전략이 필요한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