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같은 문화의 이름⑦] 군비의 시대, 태권도는 한국 문화외교의 전선에 섰다

세계 군사비 2조8900억 달러, 무력분쟁은 1946년 이후 최대 수준 태권도 공동등재는 전쟁의 해법이 아니라, 한국이 국제사회에 내놓을 문화유산 외교다

2026-05-25     임우경 기자
태권도 남북 공동 유네스코 등재 논의는 평화의 언어보다 군비와 동맹, 억지와 제재의 언어가 더 커진 국제질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 2025년 세계 군사비는 2조8900억 달러에 육박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5년 세계 군사비가 전년보다 실질 기준 2.9% 늘었고, 11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고 집계했다. 미국·중국·러시아 세 나라의 군사비는 세계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태권도 남북 공동 유네스코 등재 논의는 평화의 언어보다 군비와 동맹, 억지와 제재의 언어가 더 커진 국제질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2024년 세계 무력분쟁도 전후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오슬로평화연구소(PRIO)는 웁살라분쟁자료프로그램(UCDP)을 토대로 2024년 국가가 개입한 무력분쟁이 36개국 61건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1946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자지구 전쟁,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내전의 여파는 국제정치의 배경을 바꿨다. 전쟁은 특정 지역의 예외가 아니라 세계질서의 상수가 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24년 말 전 세계 강제이주민을 1억2320만 명으로 추산했다. 박해, 전쟁, 폭력, 인권 침해,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사건이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밀어냈다. 1억 명을 넘는 강제이주 규모는 평화와 문화의 언어가 얼마나 취약한 시대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태권도 공동등재를 둘러싼 논의도 이런 국제 환경과 떨어져 있지 않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 등재신청서를 먼저 제출했다. 한국은 2026년 3월 31일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로 신청서를 냈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반도는 세계 재무장의 흐름 밖에 있지 않다. 북한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고, 남북의 정치·군사 대화는 사실상 막혀 있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축으로 안보 태세를 강화하고,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외교적 밀착을 넓혀 왔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이 안보 구도를 바꾸는 장치가 아니다. 다만 군사와 적대의 언어만 남은 듯한 한반도에서 같은 문화의 이름을 국제기구 절차 안에 남길 수 있는 제한된 통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도는 오래된 전통을 장식처럼 보존하는 목록이 아니다. 유네스코는 무형유산을 공동체와 집단이 자신의 문화유산으로 인정하는 실천, 표현, 지식, 기술로 설명한다. 태권도는 경기장 안의 종목이면서 도장 안의 수련문화다. 한국 신청서가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를 앞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장, 사범, 수련생, 예의와 절제, 세대 간 전승이 유네스코 심사의 언어가 된다.

세계가 군비를 늘릴수록 문화외교의 공간은 작아진다. 안보 위기 앞에서 각국 정부는 무기, 제재, 동맹, 군사훈련을 먼저 말한다. 문화유산 의제는 후순위로 밀리기 쉽다. 그러나 후순위로 밀린 의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군사 현안이 정면 충돌을 만들 때, 문화유산은 낮은 압력의 접촉면을 남긴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바로 그 낮은 접촉면의 성격을 갖는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 등재신청서를 먼저 제출했다. 한국은 2026년 3월 31일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로 신청서를 냈다. 남북이 같은 이름의 유산을 서로 다른 설명으로 유네스코에 올린 상황은 충돌 구도로 남을 수도 있고,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의 협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전쟁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거창한 평화 수사보다 이런 절차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인류무형유산 태권도는 더 섬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도장에서 이어진 몸의 수련, 사범과 수련생의 관계, 지역과 해외의 전승 현장, 남북이 공유하는 문화적 기반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본지가 축적해온 취재 흐름에서 최재춘 코리아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은 태권도를 남북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이자 세계 태권도인이 함께 전승해온 수련문화로 설명해왔다. 2019년 민간 차원의 문제 제기, 북측 ITF 계열 접촉, 태권도계 내부 설득, 정부 협력 요구, 범국민 100만 서명운동은 모두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세계가 진영과 군비의 언어로 움직이는 동안, 민간 태권도 네트워크는 국가 간 대립과 다른 결의 접촉면을 만들어 왔다.

태권도는 한국의 대중문화와도 다른 문화외교 자산이다. K팝과 드라마, 영화가 소비와 팬덤의 경로로 세계에 퍼졌다면, 태권도는 도장과 사범, 수련생, 승품·승단 체계, 품새와 겨루기, 예의와 절제를 통해 확산됐다. 태권도장의 전승망은 공연장이나 플랫폼보다 느리지만 오래 간다. 유네스코 등재는 이 전승망을 문화유산 제도 안에서 설명하는 작업이다.

전쟁의 시대에 스포츠와 문화는 자주 과장된다. “스포츠가 평화를 만든다”는 문장은 쉽지만, 전쟁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유엔은 4월 6일을 ‘스포츠 발전과 평화의 날’로 정했고, 유네스코도 스포츠가 건강과 시민적 삶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스포츠의 상징성은 전쟁의 현실 앞에서 늘 한계를 드러냈다. 태권도 공동등재도 남북 군사 긴장을 해소하는 해법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최재춘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장 /사진=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 공동등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작고 구체적이다. 남북이 같은 문화의 이름을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함께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남기는 일이다.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와 북한의 전통무술 태권도가 어떤 공통 기반을 갖는지 문서로 설명하는 일이다. 사범과 수련생의 관계, 예의와 규범, 몸의 기술, 세대 간 전승을 국제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리하는 일이다.

세계 각국의 도장과 국제대회,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위상은 태권도의 강점이다. 동시에 세계화된 스포츠라는 이미지는 부담이 된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은 유명세보다 전승 공동체를 본다.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장 공동체가 어떻게 태권도를 살아 있는 문화로 이어왔는지, 국내외 전승 주체가 등재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내놓을 설명도 과잉 수사보다 정확한 문장이어야 한다. “태권도가 세계 평화를 이끈다”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남북이 공유하는 전승문화를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함께 다루려는 시도”라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전쟁의 시대일수록 문화외교는 큰 구호보다 작은 사실을 축적해야 한다. 태권도의 세계 전승망, 도장 공동체의 지속성, 남북의 문화적 공통성, 2018년 씨름 공동등재의 선례가 그 재료다.

대한민국의 세계유산협약 가입 후 38년 만에 최초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2026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에서 17일간(7. 13. ~ 7. 29.) 열린다. /사진=VISIT BUS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7월 부산에는 유네스코 고위 관계자와 회원국 대표단이 모인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태권도 등재를 결정하는 회의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태권도 공동등재의 취지와 씨름 공동등재의 선례를 설명할 외교 접점은 만들 수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공식 의제와 무형유산 심사 절차를 혼동하지 않되, 부산의 국제무대를 문화유산 외교의 접촉면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선행 신청은 국제정세가 나빠질수록 더 까다로운 변수가 된다. 북한이 공동등재 논의에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한국 신청서가 별도 등재 절차를 먼저 밟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공동등재, 확장등재, 별도 등재 이후 협력까지 포함한 복수의 경로를 준비해야 한다. 군사와 외교 환경이 불안정할수록 유네스코 절차의 선택지는 더 정교해야 한다.

최재춘 추진단과 태권도계가 쌓아온 민간의 축적은 전쟁의 시대에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식 외교가 막힐 때도 민간 네트워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북측 ITF 계열과의 접촉 경험, 국내 태권도계 결집, 범국민 서명운동, 세계 태권도인의 호응은 정부가 단기간에 만들 수 없는 자산이다. 군비와 진영의 언어가 커질수록, 이런 자산은 더 세심하게 관리돼야 한다.

태권도는 이미 세계가 아는 한국의 이름이다. 2026년 이후 태권도 유네스코 공동등재 논의는 한국이 재무장과 진영 경쟁의 시대에 어떤 문화외교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사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5년의 세계는 더 많은 돈을 군사비에 썼고, 2024년의 세계는 더 많은 분쟁을 기록했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그 흐름을 뒤집지 못한다. 다만 한국이 전쟁의 시대에 내놓을 수 있는 문화외교의 형식은 될 수 있다. 무기를 줄이는 협정이 아니라 몸의 문화와 전승 공동체를 함께 설명하는 절차다. 평화를 선언하는 행사가 아니라 공동의 이름을 국제기구 안에 남기는 작업이다.

태권도는 이미 세계가 아는 한국의 이름이다. 2026년 이후 태권도 유네스코 공동등재 논의는 한국이 재무장과 진영 경쟁의 시대에 어떤 문화외교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전쟁의 시대에 문화외교는 작다. 작다는 말이 무력하다는 뜻은 아니다. 총성과 군사비가 국제질서를 흔드는 동안에도, 도장과 사범, 수련생, 남북의 공동문화라는 낮은 목소리는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오래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