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②] 1980 광주와 2024년 12월 3일
이재명 대통령 기념사에 놓인 오월의 기억과 민주주의의 현재
[KtN 박준식기자]2026년 5월 18일 광주 5·18민주광장에 선 이재명 대통령은 1980년 5월 광주와 2024년 12월 3일을 한 문장 안에 놓았다. “12월 3일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의 질문이었습니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는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현재의 민주주의가 어떤 기억 위에서 지켜졌는지를 묻는 정치적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기념사 초반 1980년 5월을 신군부의 국가폭력으로 규정했다. “독재의 군홧발로 민주화의 봄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했고, “국민을 지키라고 우리 국민이 준 총칼로 주권자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말했다. 5·18을 지역의 비극이나 과거사의 한 장면으로 좁히지 않고, 국가권력이 주권자에게 가한 폭력으로 다시 못 박은 대목이었다.
대통령은 신군부의 폭력뿐 아니라 은폐의 시간도 함께 언급했다. “잔혹한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진실을 틀어막던 무도한 독재정권” 때문에 희생자들이 눈을 감지 못했고,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통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5·18을 기억한다는 일은 희생의 순간만이 아니라, 이후 오랜 왜곡과 침묵의 시간을 함께 말하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기념사의 흐름은 추모에서 현재 정치로 옮겨갔다. 이 대통령은 “다시 태어난 오월의 영령들이 2024년 12월 3일 밤, 오늘의 산 자들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산자가 죽은 자의 부름에 응답했고, 먼저 떠난 이들이 절망 앞에 선 현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라는 문장도 이어졌다. 1980년 광주의 희생이 2024년 겨울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살아 있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었다.
대통령은 두 시기를 직접 병치했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계엄군에 맞섰던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처럼, 2024년 위대한 대한국민들도 무장한 계엄군들을 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1980년 광주의 시민항쟁과 2024년 12월의 시민 행동을 민주주의 방어의 같은 계보에 놓은 발언이었다.
기념사에는 ‘대동세상’과 ‘빛의 혁명’이라는 표현도 나란히 배치됐다. 이 대통령은 1980년 5월 불의한 권력이 철수했던 공간에서 광주가 온 힘을 모아 꽃피운 ‘대동세상’이 2024년 12월 혹독한 겨울밤에 서로의 체온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빛의 혁명’으로 부활했다고 말했다. 1980년 광주의 공동체 경험과 2024년 겨울의 시민 행동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 묶은 문장이었다.
1980년 광주의 ‘대동세상’은 계엄군이 일시적으로 물러난 뒤 시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세우고 부상자를 돌보며 공동체를 유지했던 시간과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광주의 기억을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와 연결했다. “저절로 오는 민주주의도, 저절로 지켜지는 민주주의도 없습니다”라는 문장은 기념사의 방향을 과거 추모에서 현재의 책임으로 돌렸다.
5·18은 이 기념사 안에서 완결된 역사가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의 질문”이라는 표현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과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다시 국민 위에 서려 할 때, 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까지 포함한다. 이 대통령은 1980년 광주의 항거를 2024년 12월의 시민 행동을 설명하는 역사적 기준으로 제시했다.
기념식 뒤 나온 박영순 씨와의 대화는 두 시기를 잇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대통령 부부는 복원된 옛 전남도청을 찾아 1980년 5월 27일 광주 전역에 마지막 방송을 전했던 박영순 씨를 만났다. 박 씨는 계엄군이 도청을 에워쌌다는 소식에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학생과 시민들을 살려주십시오!”라고 방송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박영순 씨에게 “제가 12월 3일에 이 방송을 따라 했던 겁니다”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의 마지막 호소와 2024년 12월 3일의 정치적 순간을 직접 연결한 발언이었다. 박 씨가 겪은 공포와 폭행, 감금, 이후 오랜 낙인의 시간은 5·18이 단순한 기념 문장으로 정리될 수 없는 역사라는 사실도 함께 보여줬다.
대통령의 발언은 5·18 기억을 현재 정치의 언어로 되살렸다. 1980년 광주의 시민들은 계엄군에 맞선 주체로, 2024년 12월의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킨 주권자로 호명됐다. 기념사는 두 시기를 각각 따로 세우지 않았다. 오월의 희생과 겨울의 시민 행동을 하나의 민주주의 계보로 묶었다.
이런 연결은 강한 정치적 효과를 갖는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다. 2024년 12월 3일을 오월의 연장선에 놓으면,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주권정부’의 정체성과도 맞닿는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힘은 오직 주권자의 간절한 열망과 실천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 것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다만 1980년 광주와 2024년 12월 3일을 연결하는 언어에는 신중함도 필요하다. 5·18은 군부독재와 국가폭력, 민간인 희생, 은폐와 왜곡, 유가족의 긴 고통이 겹친 역사다. 현재 정치의 장면과 나란히 놓일수록 5·18의 역사적 특수성과 피해자의 경험이 단순한 상징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념사의 정치적 힘은 구체적인 희생과 증언을 지우지 않을 때 더 커진다.
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 정신을 “불의에 단호하게 맞서는 용기”이자 “위기를 함께 넘어서는 연대”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1980년 광주를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와 연결하는 기준이 됐다. 오월의 기억은 과거를 애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민주주의가 다시 흔들릴 때 시민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는 기준으로 제시됐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재명 정부가 꺼낸 오월의 언어는 위령과 경고를 함께 담았다. 1980년 광주는 국가폭력의 기억으로, 2024년 12월 3일은 민주주의 방어의 현재형 사건으로 배치됐다. 박영순 씨의 마지막 방송은 두 시기를 잇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언어로 부를수록 정부와 정치권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민주주의 제도 보완이라는 현실의 책임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