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③] 전남도청·'소년이 온다'·남광주시장
탄흔과 기록, 문학과 시장 골목으로 이어진 오월의 기억
[KtN 박준식기자]2026년 5월 18일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는 복원된 옛 전남도청을 찾았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마지막까지 항거했던 공간은 이날 정식 개관했고, 대통령 부부는 본관 서무과와 기획전시실, 상무관을 차례로 둘러봤다. 5·18민주광장에서 국가의 언어로 호명된 오월은 전남도청 안에서 탄흔과 기록물, 생존자의 증언과 유가족의 눈물로 이어졌다.
옛 전남도청은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이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진압을 앞두고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항거했다. 이 대통령과 김 여사는 먼저 본관 서무과를 찾았다. 서무과는 당시 학생수습대책위원회와 시민군 상황실로 사용됐던 공간이다. 대통령 부부는 계엄군 진압 당시 남겨진 탄흔과 당시 모습으로 복원된 내부를 살폈다.
벽과 공간에 남은 탄흔은 5·18을 추상적 기념 문구가 아니라 물리적 흔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총탄 자국은 당시의 폭력과 공포를 설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표식이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SNS에 “불법적 국가폭력에 맞선 최후의 시민항쟁지 전남도청”이라며 “이곳에 오롯이 새겨진 흔적들이 그 날의 참혹함과 시민군의 담대한 용기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고 썼다.
복원된 전남도청은 보존된 건물이면서 새로 문을 연 역사교육 공간이다. 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전남도청을 “세계시민들이 함께 배우고 기억하는 K-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성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가폭력의 현장을 민주주의 교육의 장소로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전남도청의 역할은 복원 개관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총탄 자국과 복원된 사무실, 전시물과 해설이 당시 시민들이 겪은 공포와 결단, 자치와 연대의 경험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는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전남도청 관람 중 대통령 부부는 1980년 5월 27일 광주 전역에 마지막 방송을 전했던 박영순 씨를 만났다. 박 씨는 계엄군이 도청을 에워쌌다는 소식에 “너무 떨렸고,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학생과 시민들을 살려주십시오!”라고 방송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계엄군에게 폭행과 감금을 당했고, 이후 폭도로 몰려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복원된 공간 안에서 나온 생존자의 증언은 전남도청이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의 장소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건물의 복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시간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대통령 부부는 도경찰국 민원실 내 기획전시실에서 개관 기념 특별전 '5·18 광주, 끝나지 않은 시간'도 관람했다. 전시는 '기록', '기억', '기념'을 주제로 구성됐다. 시민군 투사회보와 외신기자 기록물, 희생자와 유가족의 기억이 담긴 자료들이 전시에 포함됐다. 대통령 부부는 자료를 살펴보며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지켜온 시민들의 노력에 공감을 표했다.
기록은 5·18의 진실을 보존해 온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신군부의 은폐와 왜곡 속에서도 시민들이 남긴 자료, 외신기자들이 전한 기록, 유가족과 생존자의 증언은 오월의 기억을 사적인 고통에 가두지 않고 공적인 역사로 옮겼다. 기획전시실의 기록물은 5·18이 왜 계속 기록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기록이 남아야 왜곡에 맞설 수 있고, 기록이 쌓여야 다음 세대가 오월을 배울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함께 언급했다. 대통령은 오월의 광주가 세계시민들이 함께 기억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5·18은 광주의 비극이자 한국 현대사의 사건이지만, 기록과 문학을 거치며 국가폭력과 인간 존엄, 기억과 책임을 묻는 세계 시민의 서사로 확장됐다.
기록은 사실을 보존하고, 문학은 고통의 감각을 전한다. 5·18 기록물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고 남겼는지를 붙잡는다. '소년이 온다'는 숫자와 문서만으로 닿기 어려운 죽음의 공포, 살아남은 사람의 시간, 가족이 감당한 상실을 문학의 언어로 옮긴다. 전남도청 복원은 기록과 문학에 담긴 오월의 기억을 다시 장소 안으로 불러오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혜경 여사는 전시관을 관람하는 동안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의 팔을 잡고 부축했다. 문재학 열사는 소설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문학 속 기억의 배경이 된 실제 희생자의 가족이 복원된 전남도청을 다시 찾은 장면은 오월이 작품과 기록, 유족의 삶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전시관에서는 1980년 5월 행방불명된 아들의 유해를 DNA 검사를 통해 20여 년 만에 찾은 이근례 씨도 대통령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 대통령은 이 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오월의 기억이 세계 시민의 보편 가치로 확장될수록 한 가족이 견뎌온 기다림과 상실의 시간은 더 선명하게 함께 기록돼야 한다. 보편의 언어가 구체적인 이름과 얼굴을 지울 때 기억은 힘을 잃는다.
대통령 부부는 마지막으로 상무관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상무관은 당시 희생자들이 안치됐던 역사적 장소다. 대통령 부부는 상무관에서 국화를 헌화하고 묵념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오월 영령들의 뜻을 기렸다. 전남도청 본관의 탄흔, 기획전시실의 기록물, 상무관의 헌화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5·18을 현재에 불러냈다. 장소는 흔적을 남기고, 기록은 진실을 붙잡으며, 추모는 이름 없는 죽음이 되지 않도록 한다.
전남도청 관람 뒤 대통령 부부의 동선은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으로 이어졌다. 남광주시장은 옛 남광주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시장으로, 매일 새벽 서남해안의 수산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과 상인들이 함께 아픔을 나눈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남광주시장 방문은 오월의 기억이 생활 공간으로 이어지는 장면이었다. 시장에 도착한 대통령 부부에게 시민과 상인들은 “반갑습니다”, “힘나게 손 한번만 잡아주세요”, “최고로 잘하고 계십니다”라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대통령 부부는 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시민들과 악수하고 사진 촬영 요청에도 응했다.
한 시민은 2022년 5월 17일 5·18민주화운동 전야제에서 이 대통령과 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학교에 있는 아들이 대통령님을 뵙지 못해 아쉬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웃으며 안부를 전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다녀왔다는 시민들과의 인사도 이어졌고, 시장 곳곳에서는 대통령 부부를 향한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상인은 “어머니가 5·18 당시 시민들에게 주먹밥과 보리차를 만들어 주셨다”며 “오늘 대통령님을 보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부부는 감사의 뜻을 전하며 당시 시민들과 상인들의 연대와 헌신의 의미를 되새겼다. 주먹밥과 보리차는 5·18을 설명하는 가장 생활적인 상징 가운데 하나다. 총칼 앞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먹이고 돌봤던 기억은 광장과 도청, 시장 골목을 잇는 연대의 언어로 남아 있다.
이 대통령은 수산물 점포를 둘러보며 “이건 뭐냐”고 물었고, 상인들은 “장어와 가물치”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기 상황도 물었다. 김혜경 여사는 시장 내 한복집 앞을 지나며 반가움을 표했고, 상인들은 “다시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대통령 부부는 부꾸미와 효자손 등을 구입했다.
대통령 부부는 시장 내 식당에서 시래기코다리정식으로 점심을 했다. 이 대통령은 식사를 함께한 손승기 상인회장에게 점포 운영 상황과 상권 분위기를 들었다. 남광주시장 방문은 5·18의 기억이 남아 있는 전통시장에서 지역 민생의 현재를 확인한 일정이었다. 기념식장에서는 민주주의와 국가 책임이 말해졌고, 시장 골목에서는 경기 침체와 상권 분위기, 손님과 점포 운영의 문제가 오갔다. 오월의 연대는 기념 문구가 아니라 생활의 관계 속에서도 이어졌다.
대통령 부부가 시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시민들의 배웅은 이어졌다. 시민들은 “힘내십시오”, “건강하세요”라며 응원의 마음을 전했고, 악수와 사진 촬영 요청도 계속됐다. 대통령 부부는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이날 방문은 5·18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살아 있는 광주의 전통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아픔의 기억을 나누고,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일정이었다.
광주에서 5·18은 한 장소에 머물지 않았다. 5·18민주광장에서는 국가기념식으로, 옛 전남도청에서는 탄흔과 전시로, 기획전시실에서는 기록과 문학으로, 상무관에서는 추모로, 남광주시장에서는 주먹밥과 민생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오월의 의미는 의전과 연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장소와 기록, 작품과 증언, 시장 골목의 생활 기억이 함께 놓일 때 5·18은 현재의 시민들에게 다시 도착한다.
'K-민주주의'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국가 브랜드의 구호로 소비될 경우 5·18의 고통은 장식적 상징으로 바뀔 수 있다. 국가폭력의 진실, 시민항쟁의 역사, 유가족과 생존자의 증언, 기록과 문학의 축적을 함께 담아낼 때 한국 민주주의의 경험을 세계 시민에게 설명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복원된 전남도청의 향후 역할도 이 지점에서 결정된다.
2026년 5월 18일 광주에서 오월은 탄흔과 기록, 문학과 시장 골목을 지나갔다. 복원된 전남도청은 국가폭력의 흔적을 남긴 장소로 다시 열렸고, '소년이 온다'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5·18을 세계 시민이 함께 읽는 기억으로 확장했다. 남광주시장의 주먹밥과 보리차 이야기는 오월의 연대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줬다. 5·18은 과거의 사건으로 닫히지 않았다. 남겨진 흔적과 기록, 유족의 눈물과 시장 골목의 기억 속에서 오월은 여전히 현재의 민주주의를 묻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