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아티스트①] 로나 심슨 'Third Person', 회화 이후 전시의 새 무대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에 펼쳐진 설치형 회화와 감각 중심 현대미술

2026-05-22     임민정 기자
Lorna Simpson Comes Full Circle in Venice with ‘Third Person’. 사진=James Wang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에 로나 심슨의 회화, 설치, 조각, 콜라주, 필름 작업이 들어섰다. 2026년 3월 2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Third Person'은 피노 컬렉션 총감독 겸 큐레이터 엠마 라빈이 작가와 협업해 기획한 전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의 파트너십으로 마련됐고, 보테가 베네타가 단독 후원사로 참여했다.

안도 다다오가 재생한 푼타 델라 도가나는 베네치아의 옛 세관 건물을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바꾼 공간이다. 붉은 벽돌, 노출 콘크리트, 높은 천장, 긴 동선은 작품을 걸어두는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로나 심슨의 'Third Person'은 건축의 물성, 관람자의 이동, 회화의 표면, 설치물의 부피가 한 전시 안에서 맞물리는 구조로 짜였다.

Lorna Simpson Comes Full Circle in Venice with ‘Third Person’. 사진=James Wang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청색 계열의 대형 회화와 흑백 이미지가 결합된 작품, 바닥 위에 쌓인 종이 더미 형태의 설치물, 유리와 오브제가 놓인 구조물이 푼타 델라 도가나의 긴 동선 안에 배치됐다. 작품은 한 점씩 독립된 대상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관람자는 벽면의 회화 앞에 멈추고, 바닥 설치물의 가장자리를 지나며, 멀리 놓인 이미지와 가까운 오브제를 번갈아 마주한다. 회화는 전시장 한쪽에 걸린 평면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조직하는 중심 장치로 움직인다.

설치예술의 변화는 전시장 안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설치는 더 이상 조형물을 놓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벽면, 바닥, 빛, 오브제, 동선, 관람자의 체류 시간이 함께 작품 경험을 만든다. 로나 심슨의 전시는 회화가 설치에 흡수되는 방식보다 회화가 설치의 언어를 끌어들여 전시 공간을 다시 구성하는 방식에 가깝다.

심슨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개념사진으로 주목받은 작가다.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한 작업에서 출발해 콜라주, 영상, 조각, 회화로 매체를 넓혀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Lorna Simpson: Source Notes'는 최근 10년 동안의 회화 작업을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였고, 회화·조각·콜라주를 통해 젠더, 인종, 정체성, 재현, 역사를 둘러싼 작가의 회화적 전환을 다뤘다.

Lorna Simpson Comes Full Circle in Venice with ‘Third Person’. 사진=James Wang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hird Person'은 뉴욕에서 회화 중심으로 정리된 흐름을 베네치아의 공간 안으로 옮긴다. 전시에는 'Ice', 'Special Characters', 'Earth and Sky' 등 2015년 이후 주요 연작과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 푼타 델라 도가나 공간을 위해 제작된 신작이 포함됐다. 50점 안팎의 작품은 피노 컬렉션, 개인 소장, 국제 기관, 작가 아카이브에서 온 회화·콜라주·조각·설치·필름으로 구성됐다.

전시 제목 'Third Person'은 1인칭의 고백과 2인칭의 호명에서 벗어난 거리의 시점을 품고 있다. 심슨의 작업에서 거리감은 관찰자의 안전한 위치가 아니라, 이미지와 관람자 사이에 생기는 해석의 간격으로 작동한다. 아카이브 이미지 속 인물, 흐려진 얼굴, 잘려 나간 신체, 불분명한 배경은 관람자가 이미지를 곧바로 소유하거나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청색과 흑백, 회색조는 심슨의 최근 회화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시각 언어다. 청색은 차가운 풍경과 얼음의 감각을 부르고, 흑백 이미지는 오래된 사진과 기록의 시간을 끌어온다. 색은 장식이 아니라 시간을 조절하는 장치가 된다. 파란 물감이 인물과 배경을 덮거나 밀어낼 때, 작품 속 형상은 또렷한 초상보다 기억의 잔상에 가까워진다.

Lorna Simpson Comes Full Circle in Venice with ‘Third Person’. 사진=James Wang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바닥에 놓인 종이 더미 형태의 설치물은 기록과 축적, 폐기와 보존 사이의 긴장을 만든다. 종이는 읽히는 문서가 아니라 쌓인 시간의 덩어리처럼 놓인다. 투명한 구조물과 오브제는 작품을 보호하거나 전시하는 장치처럼 보이면서도, 관람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계속 의식하게 만든다. 전시는 이미지를 제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미지가 놓이는 조건까지 함께 드러낸다.

심슨에게 베네치아는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장소다. 작가는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고, 2015년 오쿠이 엔위저가 기획한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에도 초청됐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Source Notes'는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된 회화까지 포함해 심슨의 회화 작업을 다뤘다. 베네치아는 작가가 국제 미술계 안에서 축적해온 시간을 다시 호출하는 장소가 됐다.

심슨은 하나의 장르 안에 머물지 않고 사진, 텍스트, 아카이브, 회화, 설치, 영상의 경계를 이동해왔다.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방식은 최근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작품은 한 점의 이미지나 하나의 오브제로 완결되지 않고, 공간과 동선, 관람자의 체류 시간까지 포함하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Lorna Simpson Comes Full Circle in Venice with ‘Third Person’. 사진=James Wang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최근 미술 현장에서 신진 작가들은 작품 제작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시장 구조, 관람 동선, 사운드, 향, 조명, 오브제, 협업 방식, 온라인 이미지 유통까지 함께 다룬다. 회화는 캔버스 안에서 완결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관람자가 작품을 만나는 환경 전체를 구성하는 출발점으로 바뀌고 있다. 로나 심슨의 'Third Person'은 국제 미술관 제도 안에서 감각 중심 전시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확인하게 하는 사례다.

국내 미술계에서도 회화는 표면의 완성도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물성, 감각, 설치, 소리, 향, 동선, 관람자의 체류 시간이 작품 경험의 일부가 된다. 설치예술과 회화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젊은 작가들은 감각의 편집자이자 전시 경험의 설계자로 움직이고 있다.

로나 심슨의 'Third Person'은 회화의 종말을 말하지 않는다. 회화가 다른 매체와 결합하며 다시 전시장 중심으로 돌아오는 장면에 가깝다. 베네치아의 오래된 건축 공간 안에서 회화는 아카이브 이미지를 다시 불러내고, 설치물은 기억의 물성을 만들며, 관람자는 작품 앞에 선 한 사람에서 전시 공간을 통과하는 해석자로 바뀐다.

회화 이후의 현대미술은 매체의 폐기가 아니라 감각의 재편으로 움직이고 있다. 로나 심슨의 전시는 평면, 오브제, 건축, 동선, 기억이 한 전시장 안에서 결합할 때 회화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힘을 얻는지 드러낸다. 작품은 한 점의 이미지로만 남지 않고, 공간과 시간, 관람자의 몸을 통과하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