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아티스트②] 임하나 LIMHANA, 감각으로 확장된 회화

‘신 진경산수화’에서 ‘Tea Therapy’까지, 물성·파동·설치로 옮겨간 내면의 지형

2026-05-23     임민정 기자
신 진경산수화 新 眞景山水畵대리석 알갱이, 크롬 도금 등 90.1X72.2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임하나(LIMHANA)의 회화는 얇은 물감층이 겹겹이 쌓인 표면에서 시작된다. 수백 겹의 레이어는 한 번에 완성된 장면보다 오래 축적된 감정의 밀도에 가깝다. ‘신 진경산수화’에서 산수는 외부 풍경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작가가 통과한 내면의 지형으로 옮겨간다. 서양화의 물성과 동양화의 구조적 시선은 캔버스 안에서 겹치며, 회복과 불안, 고립과 연결의 감각을 동시에 만든다.

‘신 진경산수화’라는 이름은 전통 산수화의 계승보다 변형에 가깝다. 진경산수가 실제 경관을 조선의 시선으로 다시 그려냈다면, 임하나의 산수는 개인의 감정과 기억을 오늘의 물성으로 다시 쌓아 올린다. 작품 안의 상승하는 기류, 겹친 색의 층, 흐릿하게 번지는 경계는 풍경의 묘사보다 감정의 이동에 가깝다. 산은 바깥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의 결로 남는다.

KLOINM의 Black Edition.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작업에서 물감은 색을 입히는 재료에 그치지 않는다. 물감층은 지워진 감정과 다시 떠오른 기억을 붙잡는 막이 되고, 캔버스의 표면은 내면이 드러났다가 다시 가라앉는 장소가 된다. 얇은 층이 반복될수록 작품은 선명해지기보다 깊어진다. 감정은 설명되지 않고, 두께와 질감, 방향과 여백의 관계 속에 남는다.

‘LIMHANA Composer’라는 이름은 작가의 최근 작업 방향을 압축한다. 작곡은 선율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반복, 간격, 침묵, 전환, 긴장과 이완을 배열하는 일이다. 임하나의 작업에서 작곡은 회화와 설치, 차와 음악, 향과 동선, 관람자의 체류 시간을 하나의 감각 구조로 묶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Tea Therapy’는 회화의 파동이 몸의 감각으로 옮겨간 작업이다. 차는 마시는 대상이지만, 작가의 작업 안에서는 향과 온도, 호흡과 정지, 기다림과 머무름을 품은 매체가 된다. 컵과 용기에 적용된 이미지는 장식적 문양보다 파동의 흐름에 가깝다. 캔버스 안에서 움직이던 내면의 결은 차의 온도와 향, 손의 감각, 머무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임하나, K-아트는 어떻게 감각의 언어가 됐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파동은 임하나 작업의 중요한 연결선이다. ‘신 진경산수화’에서 파동은 내면 풍경의 결로 읽히고, ‘Tea Therapy’에서는 감각의 리듬으로 옮겨간다. 보이는 선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진동을 대신한다. 관람자는 작품을 눈으로만 읽지 않고, 차의 온도와 향, 음악의 흐름, 공간의 정지 속에서 감정의 속도를 몸으로 받아들인다.

검은 새장과 깃털, 황마 로프와 매듭은 설치적 확장을 만드는 재료들이다. 새장은 닫힌 구조를 만들고, 깃털은 닫힌 구조 밖으로 흩어지는 흔적을 남긴다. 황마 로프와 매듭은 회복을 매끈한 치유로 정리하지 않는다. 흔적이 남은 상태에서 다시 엮이는 과정이 재료의 표면에 놓인다.

임하나의 설치는 회화를 떠난 결과가 아니다. 캔버스에 쌓였던 감정의 층이 공간 안으로 풀려 나오며 설치적 구조를 이룬다. 회화가 내면을 축적하는 방식이라면, 설치는 축적된 감정이 놓이는 거리와 방향을 만든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 서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새장과 깃털, 로프와 매듭, 컵과 파동 사이를 지나며 감정의 구조를 통과한다.

마인드맵(Mind Map): 잃어버린 내면세계의 경로탐색Acrylic on Canvas 30cm, 90x65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Mind Map’ 연작 역시 내면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흐름 안에 놓인다. 개인의 기억과 정서적 경험은 눈에 보이는 기록으로 쉽게 남지 않는다. 임하나는 감정의 이동과 얽힘을 색, 선, 밀도, 방향, 여백의 질서로 옮긴다. 감정은 서술되는 내용이 아니라 배치되는 구조가 된다.

KLOINM은 임하나의 작업이 협업과 다원적 표현으로 넓어진 흐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콘과 임하나가 결성한 KLOINM은 음악, 평면회화, 설치, 미디어, 영상, 패션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작업으로 소개돼 왔다. 협업은 장르를 나란히 늘어놓는 방식보다 서로 다른 감각의 질서를 하나의 전시 구조 안에 묶는 방식에 가깝다.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에서 이어진 작은 전시의 흐름도 임하나 작업의 장소성을 더한다. 검은 새장과 깃털, 거울과 둥지, ‘Tea Therapy’의 컵과 파동, 음악과 연결되는 장치들은 공간의 규모보다 체류의 밀도를 키운다. 작가의 작업은 넓은 화이트큐브에서만 힘을 얻는 방식이 아니다. 작은 공간의 낮은 천장, 제한된 동선, 가까운 거리에서도 재료와 감각의 관계가 살아난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회화는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라는 말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신 진경산수화’가 동양 산수의 구조를 내면의 풍경으로 바꾸었다면, 이후 작업은 그 풍경을 차, 파동, 로프, 새장, 깃털, 음악, 향, 설치의 질서로 확장한다. 한국적 이미지는 수출용 장식으로 소비되지 않고, 감각을 구성하는 재료와 구조로 다시 놓인다.

작가의 노동도 작품 안으로 들어온다. 최근 인디 아티스트에게 전시는 작품 제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획, 설치, 기록, 행정, 협업, 관람 경험의 설계가 작가의 실천 안으로 들어온다. 임하나의 ‘Composer’는 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 전시의 리듬과 감각의 순서를 조율하는 이름으로 읽힌다.

회화에서 설치, 음악, 향, 차, 아카이빙으로 확장된 임하나의 작업은 인디 아티스트가 제도 밖이 아니라 제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회화의 완성도는 표면의 아름다움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작품이 관람자에게 어떤 시간을 만들었는지, 어떤 감각의 체류를 남겼는지, 공간 안에서 어떤 움직임을 발생시켰는지가 함께 읽힌다. 임하나의 작업은 캔버스에서 출발하지만, 차와 향, 음악과 설치, 로프와 매듭, 새장과 깃털을 거치며 관람자의 몸이 머무는 시간으로 번진다.

임하나 LIMHANA의 작업은 회화 이후의 한국 현대미술이 매체의 폐기보다 감각의 확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드러낸다. 수백 겹의 물감층에서 시작된 내면의 풍경은 파동과 차, 새장과 깃털, 로프와 매듭, 음악과 협업으로 이어졌다. 캔버스에 쌓인 시간은 전시장 안에서 향과 온도, 거리와 동선, 관람자의 호흡을 통과한다. 감각으로 확장된 회화는 작품과 경험의 경계를 다시 조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