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아티스트③] 뉴 아티스트의 등장, 작품은 경험으로 확장
설치예술·감각형 회화·협업 구조가 바꾼 현대미술의 전시장
[KtN 임민정기자]전시장은 작품을 걸어두는 장소에서 작품을 통과하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 벽면의 회화, 바닥의 설치물, 사운드, 향, 빛, 동선, 관람자의 체류 시간이 한 작품의 경험 안으로 들어온다. 현대미술의 변화는 장르의 해체라는 말보다 전시장 안에서 감각을 조직하는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열린 로나 심슨의 'Third Person'은 회화가 설치, 콜라주, 조각, 필름, 건축 동선과 결합하는 장면을 드러냈다. 2026년 3월 2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약 50점의 회화·콜라주·조각·설치·필름으로 구성됐고, 피노 컬렉션은 베네치아 전시를 푼타 델라 도가나 공간을 위해 새롭게 확장된 구성으로 소개했다.
심슨의 전시는 회화를 벽면 위의 이미지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아카이브 이미지, 청색 계열 회화, 바닥 설치물, 필름과 조각은 관람자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작품은 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지나가고 머무는 공간의 일부가 된다. 회화는 설치에 밀려난 것이 아니라, 설치의 언어를 흡수하며 전시장 전체를 움직이는 중심 장치로 돌아왔다.
국내 현장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이어진다. 임하나(LIMHANA)의 ‘신 진경산수화’는 수백 겹의 얇은 물감 레이어, 서양화의 물성, 동양화의 구조적 시선, 내면과 외면의 경계를 바탕으로 내면의 풍경을 쌓아 올린 작업으로 다뤄져 왔다. 산수는 외부 자연의 재현보다 감정의 지형으로 옮겨가고, 캔버스의 표면은 기억과 회복, 불안과 연결이 겹치는 장소가 된다.
임하나의 최근 흐름은 회화의 표면을 넘어 차, 음악, 향, 파동, 설치, 관람자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Tea Therapy’는 파동을 차로 옮기고 작품을 몸의 감각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로 소개됐고, 차와 향, 컵의 표면, 음악의 흐름은 시각 중심 감상을 체류와 호흡의 경험으로 바꾼다.
설치예술의 변화는 조형물을 전시장에 놓는 방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품을 둘러싼 거리, 관람자가 걷는 속도, 빛이 닿는 방향, 사운드가 머무는 시간, 향이 남는 감각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전시는 점점 하나의 장면보다 하나의 리듬에 가까워지고 있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 서는 사람에서 작품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으로 바뀐다.
뉴 아티스트의 등장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작가들은 한 가지 매체 안에서만 자신의 언어를 세우지 않는다. 회화는 설치와 만나고, 설치는 사운드와 연결되며, 사운드는 영상·텍스트·향·오브제·굿즈·온라인 이미지 유통과 이어진다.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보다 감각의 순서를 설계하는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KLOINM의 흐름은 이런 변화를 협업의 차원에서 보여준다. 콘과 임하나가 결성한 KLOINM은 음악, 평면회화, 설치, 미디어, 영상, 패션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작업으로 소개돼 왔다. 협업은 장르를 나란히 늘어놓는 방식보다 서로 다른 감각의 질서를 하나의 전시 구조 안에 묶는 방식에 가깝다.
작가의 노동도 달라졌다. 인디 아티스트에게 전시는 작품 제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획, 설치, 기록, 행정, 협업, 홍보, 관람 경험의 설계가 모두 작가의 실천 안으로 들어온다. 임하나 작업에서 ‘Tea Therapy’의 컵과 용기는 이미지를 실어 나르는 표면이 되고, 음악 QR은 전시 안에 시간을 만드는 장치로 다뤄졌다.
미아리고개 하부공간에서 이어진 전시 흐름은 작은 장소가 감각의 밀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Tea Therapy’와 ‘MUSIC’ 문구가 붙은 구조물, 흑백 파동 이미지가 적용된 컵과 용기, 음악과 연결된 장치는 화이트큐브 밖에서도 회화와 설치, 소리와 체류 시간이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현대미술의 전시 방식은 대형 미술관과 독립 공간에서 서로 다른 규모로 움직인다. 로나 심슨의 베네치아 전시는 국제 미술관 제도 안에서 회화와 설치, 아카이브와 건축을 결합한다. 임하나의 작업은 작은 공간, 차와 음악, 파동과 설치를 통해 관람자의 몸 가까이에서 감각을 조율한다. 규모는 다르지만 두 흐름 모두 작품을 이미지에서 경험으로 옮긴다.
K-아트의 방향도 국가 정체성의 표면적 소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전통 문양, 한국적 소재, 동양적 분위기를 앞세우는 방식보다 감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임하나 작업에서 흑백 파동은 전통 산수의 정서와 미시적 진동의 이미지를 겹치고, ‘Tea Therapy’는 차의 문화와 몸의 감각을 연결하는 흐름으로 다뤄졌다.
시장 역시 작품의 물리적 소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설치형 회화, 사운드, 향, 차, 영상, 협업형 전시는 수집과 보존, 유통의 방식을 다시 묻는다. 캔버스 한 점을 거래하는 방식과 달리, 경험형 작업은 기록, 재현, 에디션, 장소성, 참여 방식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뉴 아티스트의 성장은 작품 가격이나 전시 횟수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관람자도 바뀌었다. 작품 앞에서 설명문을 읽고 지나가는 관람보다, 전시장 안에 머물며 소리와 향, 빛과 동선, 재료의 거리감을 함께 감각하는 경험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기록하는 행위도 작품 경험의 일부가 됐다. 전시는 눈앞의 대상과 온라인에서 다시 유통되는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관람 방식을 만든다.
작품의 기준은 표면의 완성도에서 관계의 밀도로 이동하고 있다. 회화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회화만으로 닫히지 않는다. 설치는 독립된 조형 장르로만 남지 않고, 회화의 감정선과 전시 동선을 확장한다. 사운드와 향, 차와 영상은 부가 장식이 아니라 관람자의 시간을 조율하는 장치가 된다.
뉴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역량도 달라졌다. 이미지를 만드는 힘, 재료를 다루는 기술, 전시 공간을 읽는 감각, 협업을 조율하는 능력, 관람자 경험을 설계하는 판단이 함께 요구된다. 작가는 작품 제작자이면서 공간 편집자, 감각의 작곡가, 기록의 관리자, 전시 경험의 설계자로 움직인다.
로나 심슨과 임하나의 작업은 서로 다른 세대와 장소에서 출발했지만, 회화가 다시 전시장 중심으로 돌아오는 방식을 함께 드러낸다. 회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회화는 설치, 아카이브, 차, 음악, 향, 동선, 관람자의 몸을 만나며 다른 방식으로 힘을 얻는다. 현대미술의 변화는 매체의 폐기가 아니라 매체들이 서로의 경계를 통과하며 감각을 다시 짜는 과정에 있다.
뉴 아티스트의 등장은 새로운 이름의 출현만을 뜻하지 않는다. 작품을 만드는 방식,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 관람자가 머무는 방식, 시장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식까지 함께 달라지는 흐름이다. 작품은 한 점의 이미지로 남지 않고, 공간과 시간, 몸과 감각을 통과하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