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나 심슨 'Third Person', 회화가 돌아온 자리의 빛과 그늘
푼타 델라 도가나의 건축, 아카이브 이미지, 브랜드 후원이 만든 전시의 힘과 부담
[KtN 임민정기자]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의 붉은 벽돌과 노출 콘크리트 사이에 로나 심슨의 회화, 콜라주, 조각, 설치, 필름이 놓였다. 옛 세관 건물을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바꾼 공간은 작품 뒤로 물러나는 배경이 아니다. 높은 천장, 긴 동선, 무거운 벽면은 회화의 표면과 설치물의 부피를 함께 밀어 올린다. 2026년 3월 2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리는 'Third Person'은 피노 컬렉션 총감독 겸 큐레이터 엠마 라빈이 작가와 협업해 기획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의 파트너십으로 마련됐다. 보테가 베네타는 단독 후원사로 참여했다.
청색 계열의 회화와 흑백 이미지, 바닥에 놓인 설치물, 조각과 필름은 한 점씩 독립된 작품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관람자는 벽면 앞에 멈추고, 바닥의 구조물 주변을 지나며, 멀리 놓인 이미지와 가까운 오브제 사이에서 시선을 옮긴다. 회화는 전시장 한쪽에 걸린 결과물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동선을 조절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푼타 델라 도가나의 건축이 강한 만큼, 작품은 공간의 힘을 얻는 동시에 공간의 위압과도 경쟁해야 한다.
심슨의 이름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개념사진의 흐름에서 굳어졌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UC샌디에이고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작가는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한 작업으로 재현, 정체성, 젠더, 인종, 역사, 기억의 문제를 다뤄왔다. 이후 필름, 비디오, 드로잉, 회화, 콜라주, 조각으로 매체를 넓혔다. 베네치아 전시는 새로운 작가의 발견보다, 오래 축적된 작업 세계가 회화와 설치의 조건 안에서 다시 읽히는 장면에 가깝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Lorna Simpson: Source Notes'는 최근 10년간의 회화 작업을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였다. 30점이 넘는 회화와 조각, 콜라주가 포함됐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과 'Special Characters' 연작도 함께 다뤄졌다. 심슨은 빈티지 'Ebony'와 'Jet' 잡지, AP, 미 의회도서관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스크린프린트, 잉크, 아크릴, 유리섬유, 나무, 클레이보드 위에서 다시 결합해왔다.
아카이브 이미지는 심슨의 작업 안에서 과거의 증거로만 남지 않는다. 얼굴은 흐려지고, 신체는 잘리며, 배경은 물감과 이미지의 층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오래된 사진과 잡지 이미지는 원래의 맥락을 완전히 보존하지도, 완전히 지우지도 않는다. 흑백 이미지와 청색, 회색조, 얼음과 물의 감각은 기억을 차갑게 만들고, 관람자가 인물과 역사를 곧바로 소유하거나 단정하지 못하게 한다.
'Third Person'이라는 제목도 거리의 감각을 품는다. 1인칭의 고백이나 2인칭의 호명과 다른 3인칭은 말하는 사람과 대상 사이에 간격을 만든다. 심슨의 작업에서 그 간격은 관람자를 안전한 관찰자로 세워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와 관람자 사이에 해석의 빈틈을 만들고, 보는 행위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흐려진 얼굴과 잘려 나간 몸, 불분명한 배경은 관람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계속 다시 묻게 한다.
불확실성은 심슨 작업의 주요 동력이지만, 대형 전시장 안에서는 다른 방향으로도 움직인다. 모호한 이미지, 청색의 표면, 아카이브의 파편성은 관람자를 오래 붙잡는 힘을 갖는다. 동시에 정제된 조명과 긴 동선, 미술관의 침묵 속에서는 역사적 긴장이 세련된 분위기로 정리될 위험도 생긴다. 이미지가 명확한 서사를 피할수록 정치적 밀도는 깊어질 수 있지만, 구체적 충돌이 희미해지는 순간도 함께 따라온다.
보테가 베네타의 단독 후원은 이 전시를 둘러싼 또 하나의 조건이다. 명품 브랜드 후원이 전시를 곧장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미술관의 대형 전시는 이미 컬렉션, 후원, 관광 도시, 브랜드 이미지와 얽힌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다만 이미지의 권력과 재현의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작가의 작업이 글로벌 브랜드와 피노 컬렉션의 제도 안에서 제시될 때, 작품의 긴장은 더 넓은 관객을 얻는 동시에 더 매끄러운 표면으로 소비될 가능성도 함께 갖는다.
푼타 델라 도가나의 건축 역시 양면성을 만든다. 벽돌과 콘크리트, 높은 천장과 긴 통로는 심슨의 회화와 설치를 감각적으로 확장한다. 그러나 건축의 인상이 강한 장소에서는 작품보다 장소의 규모가 먼저 남을 수 있다. 회화가 공간을 조직하는지, 공간이 회화를 감싸며 압도하는지는 전시 안에서 계속 흔들린다. 심슨의 베네치아 전시는 바로 그 경계 위에 놓인다.
회화와 설치의 관계도 단순한 확장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Third Person'에서 회화는 설치의 언어를 끌어들이며 전시장 전체로 번진다. 바닥의 설치물과 조각, 필름과 콜라주는 벽면의 회화를 보조하는 장식이 아니라 관람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 요소가 된다. 설치예술은 조형물을 배치하는 방식에서 벽면, 바닥, 빛, 동선, 관람자의 체류 시간을 편집하는 방식으로 이동했고, 심슨의 전시는 그 변화를 국제 미술관 규모에서 드러낸다.
최근 현대미술에서 회화는 사라지는 대신 다른 매체를 통과해 돌아오고 있다. 사진 이후의 회화, 아카이브 이후의 회화, 설치 이후의 회화라는 말이 심슨의 작업에는 더 어울린다. 캔버스는 독립된 평면으로 끝나지 않고, 기록과 기억, 표면과 건축, 관람자의 이동을 함께 조율한다. 회화의 귀환은 과거 권위의 회복이 아니라 전시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젊은 작가들에게 남은 과제도 이 지점에서 갈린다. 이미지를 잘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전시를 완성하기 어렵다. 작가는 공간을 읽고, 동선을 조율하고, 재료와 기록을 편집하며, 관람자가 머무는 시간을 설계해야 한다. 심슨은 신진 작가는 아니지만, 사진·텍스트·아카이브·회화·설치·영상 사이를 이동해온 작업 방식은 오늘의 작가들이 마주한 환경을 먼저 통과한 사례로 읽힌다.
'Third Person'은 회화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회화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의 표면, 건축의 권위, 브랜드 후원, 미술관 제도, 관광 도시 베네치아의 상징성, 관람자의 시선이 한 전시장 안에서 겹친다. 심슨의 베네치아 전시는 그 겹침을 매끈하게 정리하는 자리라기보다, 아름다운 표면 뒤에 남은 불편한 간격까지 함께 드러내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