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트렌드①] 브랜드가 보이지 않는 시대, 2027 마케팅의 출발점

AI 콘텐츠 범람과 광고 과잉 속, 브랜드 경쟁의 기준이 ‘노출’에서 ‘고려 시간’으로 이동

2026-05-25     최기형 기자
[마케팅트렌드①] 브랜드가 보이지 않는 시대, 2027 마케팅의 출발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모바일 피드에는 숏폼 광고가 지나가고, 커머스 앱에는 추천 상품이 먼저 뜨며, 거리의 옥외광고는 디지털 화면으로 바뀌고 있다. 브랜드가 소비자 앞에 나타나는 자리는 늘었지만, 소비자가 브랜드 하나를 구별해 기억하는 시간은 더 짧아졌다. 광고는 많아졌고, 브랜드는 희미해졌다.

글로벌 트렌드 분석기관 WGSN은 2027년 마케팅 시장을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의 시대로 봤다. 소비자는 온라인에 계속 연결돼 있으면서도 디지털 피로를 느끼고, 브랜드는 AI 기반 창작을 활용하면서도 인간의 감각과 제품의 본질을 다시 전면에 세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WGSN은 2027년 마케팅이 온라인 생활과 디지털 피로, 인간적 제작 감각과 AI 창작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고 분석했다.

브랜드 동질화는 2027년 마케팅의 출발점이다. WGSN은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지루한 건축을 설명할 때 쓴 ‘blandemic’이라는 표현을 마케팅에도 적용했다. AI가 만든 이미지와 문장, 비슷한 캠페인 톤, 안전한 브랜드 언어가 늘면서 소비자의 눈앞에는 매끄럽지만 구별하기 어려운 콘텐츠가 쌓이고 있다. VML 조사에서 소비자의 72%는 차별적으로 보이는 브랜드가 거의 없다고 답했다.

광고산업은 오랫동안 주의력을 사고팔았다. 몇 초 안에 멈춰 세우는가, 첫 장면에서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가, 조회수와 저장 수를 얼마나 끌어올리는가가 캠페인 성과의 중심에 놓였다. WGSN이 인용한 카메론 기다리 메이저리그베이스볼 소셜미디어·혁신 담당 부사장은 Z세대가 짧은 주의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짧은 고려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브랜드가 확보해야 할 대상이 눈길에서 판단 시간으로 옮겨간 셈이다.

한국 광고시장도 같은 압력 안에 들어와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발간한 ‘2025 광고시장 결산 및 2026 전망’에서 2025년 국내 총광고비는 약 17조2700억 원으로 집계됐고, 2026년에는 17조9400억 원 규모로 예측됐다. 온라인 광고는 전체 광고비의 약 60%를 차지했고, 방송광고는 전년 대비 약 13% 감소했다. 옥외광고는 디지털 옥외광고를 중심으로 2% 이상 성장했다.

광고시장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광고가 놓이는 자리가 바뀌고 있다. 방송·인쇄 중심의 대형 노출은 줄고, 검색·디스플레이·소셜미디어·숏폼·OTT·커머스·디지털 옥외광고가 소비자 동선에 더 촘촘히 붙었다. 매체 이동은 광고 효율의 문제를 넘어 브랜드 기억 방식의 변화를 뜻한다. 한 편의 광고를 모두 보고 판단하는 시간보다, 여러 접점에서 브랜드 조각을 스치며 판단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디지털 광고의 장점은 분명하다. 광고주는 성별, 연령, 위치, 관심사, 구매 이력, 검색 행동, 콘텐츠 반응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더 정밀하게 만날 수 있다. 성과 측정도 빨라졌다. 클릭률, 전환율, 체류 시간, 장바구니 진입, 재구매율이 광고 운영의 언어가 됐다. 다만 모든 브랜드가 같은 도구를 쓰면 기술은 차별점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 된다.

CJ메조미디어의 2026 트렌드 리포트는 2026년 디지털 마케팅·미디어 흐름으로 AI 마케팅, 발견형 커머스, OTT, 디지털 옥외광고를 제시했다.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 가운데 모바일 쇼핑 비중은 2024년 76%까지 올라섰고, 쇼핑 흐름은 명확한 목적을 갖고 검색하는 방식에서 콘텐츠를 보다가 상품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모바일 쇼핑의 확대는 광고와 구매의 경계를 흐린다. 소비자는 광고를 본 뒤 검색창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콘텐츠를 보다가 상품을 확인하고, 리뷰를 읽고, 바로 결제한다. 광고, 콘텐츠, 추천, 결제, 후기, 커뮤니티가 한 화면 안에서 이어진다. 브랜드는 광고를 집행하는 주체에서 소비자의 발견 경로를 설계하는 주체로 이동하고 있다.

AI는 광고 제작과 운영 속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광고 문구, 이미지, 영상 소재, 타기팅, 입찰, 성과 분석, 개인화 추천까지 자동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소규모 브랜드에도 제작 역량을 열어줬지만, 동시에 비슷한 결과물을 빠르게 늘렸다. 누구나 더 빨리 만들 수 있는 시장에서는 빠른 제작보다 선명한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제시한 키워드 가운데 휴먼인더루프, 필코노미, 제로클릭, 픽셀라이프, 근본이즘은 마케팅 변화와 맞닿아 있다. 휴먼인더루프는 AI 과정에 인간 개입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담고, 필코노미는 기분과 감정이 소비 동력이 되는 흐름을 가리킨다. 제로클릭은 검색과 클릭을 거치지 않고 답과 추천이 바로 제공되는 환경을, 근본이즘은 빠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와 본질을 찾는 흐름을 설명한다.

한국 소비자는 편리한 추천과 자동화된 구매 경로를 받아들이면서도, 브랜드가 주는 감정과 취향, 신뢰, 본질을 함께 요구한다. AI가 추천한 상품을 사고, 숏폼에서 발견한 브랜드를 저장하며, 팝업스토어에서 경험한 장면을 다시 온라인에 공유한다. 소비의 단위는 작아지고 속도는 빨라졌지만, 구매 이유는 더 복합적으로 바뀌고 있다.

WGSN은 2027년 마케터들이 과도한 마케팅 소음과 부드러운 마케팅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화려한 스턴트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모든 브랜드가 큰 소리로 자신을 설명할수록 소비자는 알림을 끄고 피드를 벗어난다. AI 실험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AI는 2027년을 지나며 특별한 기술에서 보편적 업무 조건으로 내려앉고, AI 사용 여부만으로는 브랜드 차별점이 되기 어렵다.

제품은 다시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WGSN은 2027년의 좋은 마케팅이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원칙을 다시 바라보고, 제품을 브랜드 이야기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봤다. 감정적·문화적 공명, 인간 중심성, 제품의 실제 가치가 함께 요구되는 환경이다. AI가 문장을 만들고 이미지를 합성해도, 소비자가 마지막에 판단하는 대상은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과 제품이다.

2027년 마케팅의 출발점은 더 많은 노출이 아니다.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 소비자에게 어떤 경험을 남길 수 있는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의 취향과 판단을 어디에 남길 것인지 다시 정리하는 일이다. 국내 광고비는 디지털로 이동하고, 커머스는 콘텐츠 안으로 들어가며, AI는 제작과 운영의 기본 도구가 되고 있다. 남은 경쟁은 얼마나 자주 보이는지가 아니라, 소비자가 잠시 멈춰 살펴볼 만한 이유를 얼마나 분명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