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트렌드⑤] 놀이가 KPI가 된 시장, 팬덤과 참여를 설계하는 브랜드
스포츠·게임·팝업·인터랙티브 광고가 소비자를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이동시키는 방식
[KtN 최기형기자]야구장 좌석은 응원봉과 유니폼, 포토카드, 굿즈, 숏폼 영상으로 채워지고, 게임 속 세계관은 브랜드 협업의 무대가 된다. 팝업스토어에서는 상품을 보기 전에 미션을 수행하고, 옥외광고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뜯고 맡고 눌러보는 행동을 요구한다. 광고가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식은 “보여주기”에서 “움직이게 하기”로 바뀌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분석기관 WGSN은 2027년 마케팅 전략 가운데 하나로 ‘놀이를 전 세대의 전략 KPI로 채택하라’는 흐름을 제시했다. 놀이는 아동 대상 캠페인이나 일회성 이벤트에 머물지 않는다. WGSN은 놀이가 세대를 잇는 연결 장치가 되고, 몸을 움직이게 하며, 웰니스와 팬덤 참여를 끌어내는 마케팅 축으로 올라설 것으로 봤다.
놀이가 KPI가 된다는 말은 브랜드가 재미있는 광고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KPI는 캠페인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얼마나 오래 머물게 했는지, 몇 명이 직접 참여했는지, 얼마나 많이 공유됐는지, 참여 뒤 구매나 재방문으로 이어졌는지까지 측정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광고의 성과가 노출과 클릭을 넘어 행동과 관계로 확장되고 있다.
2025년 KBO리그는 국내 스포츠 팬덤의 규모를 다시 확인시켰다. 정규시즌 최종 관중은 1231만2519명으로 집계돼 전년의 역대 최다 기록을 넘어섰고, 전체 경기의 약 46%인 331경기가 매진됐다. 평균 관중은 1만7101명, 좌석 점유율은 82.9%를 기록했다. 야구장은 경기 관람 공간을 넘어 응원, 패션, 사진, 굿즈, 먹거리, 소셜미디어 콘텐츠가 결합한 참여형 플랫폼으로 바뀌었다.
스포츠 팬덤은 브랜드가 놀이를 설계하기 쉬운 영역이다. 경기 결과를 예측하고, 유니폼을 입고, 응원가를 부르고, 인증 사진을 올리고, 굿즈를 모으는 행동은 모두 참여 데이터가 된다. 브랜드는 경기장 광고판을 사는 데서 멈추지 않고, 팬이 경기 전후에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모이며 어떤 콘텐츠를 올리는지까지 본다. 스포츠 마케팅은 로고 노출보다 팬의 루틴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WGSN이 2027 럭비 월드컵과 2028 올림픽을 앞둔 스포츠 모멘텀을 언급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시청률과 중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가 소비자를 움직이게 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며, 팬덤의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계기다. 놀이가 웰니스와 결합하면 스포츠 캠페인은 관람을 넘어 신체 활동, 커뮤니티, 자기관리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세계보건기구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까지 성인 35%가 권장 신체활동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 기준으로는 전 세계 성인 약 31%, 약 18억 명이 권장 수준의 신체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브랜드가 놀이와 움직임을 결합하는 캠페인에 관심을 두는 배경에는 건강과 활동 부족이라는 생활 문제가 함께 놓여 있다.
운동을 설교하는 캠페인은 오래 가기 어렵다. 소비자는 “건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브랜드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은 의무감보다 즐거움이다. 걷기 챌린지, 팀 단위 미션, 러닝 크루, 댄스 챌린지, 경기 관람과 연계한 체험 부스, 커뮤니티형 운동 프로그램은 건강 메시지를 놀이의 언어로 바꾼다. 몸을 움직이는 이유가 관리에서 참여로 바뀔 때 캠페인의 지속성도 커진다.
게임은 놀이 기반 마케팅의 또 다른 핵심 접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게임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3.9% 증가한 23조8515억 원으로 집계됐다. 수출액은 85억346만 달러를 기록했고, 한국 게임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7.2%로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를 유지했다.
게임은 광고가 끼어드는 공간이 아니라 사용자가 머무는 세계다. 캐릭터, 아이템, 스킨, 맵, 퀘스트, 길드, e스포츠, 스트리밍이 하나의 생활권을 만든다. 브랜드가 게임 속에 들어갈 때 단순 배너나 로고 삽입에 그치면 이용자는 즉시 이질감을 느낀다. 반대로 세계관과 플레이 방식에 맞는 아이템, 미션, 보상, 협업 콘텐츠를 설계하면 브랜드는 팬덤의 놀이 규칙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국내 게임산업에서 모바일게임은 2024년 매출 14조710억 원으로 전체의 59.0%를 차지했다. PC게임 매출은 6조94억 원, 콘솔게임은 1조1836억 원으로 집계됐다. 모바일 중심 구조는 브랜드가 게임형 경험을 더 넓은 소비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임은 특정 이용자층의 취미가 아니라 출퇴근길, 대기 시간, 짧은 휴식 안으로 들어온 일상형 콘텐츠가 됐다.
팬덤 마케팅도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팬덤은 단순한 충성 고객 집단이 아니다. 팬은 콘텐츠를 해석하고, 밈을 만들고, 굿즈를 사고, 투표와 예매에 참여하고, 커뮤니티 안에서 브랜드의 의미를 확장한다. 브랜드가 팬덤을 활용하려면 팬을 소비자로만 보면 안 된다. 팬은 캠페인의 수신자가 아니라 캠페인을 재가공하는 공동 생산자에 가깝다.
팝업스토어는 팬덤과 놀이가 결합하는 대표적인 오프라인 장치다. 입장 대기, 스탬프 미션, 한정 굿즈, 포토존, 시식과 체험, SNS 인증은 모두 참여를 유도하는 설계다. 공간 자체가 광고이면서 동시에 놀이판이 된다. 소비자는 제품을 산 뒤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경험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브랜드 서사를 확산시킨다.
WGSN은 미국 면도 브랜드 Billie의 스크래치 앤 스니프 옥외광고, 뉴욕 MoMA Design Store 안의 MoMA Mart, Theory의 뜯어갈 수 있는 옥외광고 사례를 참여형 마케팅 장면으로 제시했다. 지나가는 사람은 광고를 보기만 하지 않는다. 냄새를 맡고, 물건을 만지고, 탭을 뜯어 매장에서 혜택을 받는다. 광고는 시각물에서 행동 장치로 바뀐다.
소비자를 움직이게 하는 광고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지만, 실행 난도도 높다. 참여 방식이 번거로우면 소비자는 이탈한다. 보상이 약하면 행동이 이어지지 않고, 브랜드와 관련 없는 미션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난다. 캠페인이 재미있더라도 제품과 연결되지 않으면 기억은 남아도 매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놀이가 KPI가 되려면 재미와 제품 가치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놀이형 캠페인의 또 다른 부담은 진정성이다. 팬덤과 게임, 스포츠 커뮤니티는 외부 브랜드의 억지 개입에 민감하다. 팬이 쓰는 언어를 표면적으로 흉내 내거나, 유행하는 밈을 늦게 따라가거나, 커뮤니티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협업은 빠르게 반감을 부른다. 브랜드가 놀이판에 들어가려면 먼저 그 판의 문법을 배워야 한다.
AI는 참여형 마케팅의 운영 방식을 더 세밀하게 만들 수 있다. 브랜드는 이용자의 반응에 따라 미션 난도를 조정하고, 개인별 보상과 메시지를 다르게 주며, 커뮤니티 반응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다만 놀이의 매력은 자동화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비자가 “내가 참여했다”고 느끼는 지점, 친구에게 공유하고 싶은 장면, 다시 돌아올 이유는 여전히 인간의 기획과 감각에서 나온다.
대한민국 마케팅 시장에서 놀이의 의미는 가벼운 재미보다 넓다. 스포츠 관람, 게임 플레이, 팝업 방문, 숏폼 챌린지, 굿즈 수집, 팬덤 커뮤니티 활동은 모두 소비자의 시간을 점유한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는 방식보다 소비자가 기꺼이 시간을 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027년을 향한 브랜드 경쟁에서 놀이의 성과는 웃긴 장면의 수가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움직이고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힘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