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재편과 K콘텐츠②] 사우디·UAE, 한류 소비가 지불시장으로 바뀐 이유

UAE 37달러·사우디 28.8달러, OTT 정주행과 공연·뷰티·식품 소비가 만든 중동 한류의 가격표

2026-05-26     전성진 기자
UAE 37달러·사우디 28.8달러, OTT 정주행과 공연·뷰티·식품 소비가 만든 중동 한류의 가격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전성진기자]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국 콘텐츠 소비자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은 각각 37.0달러와 28.8달러로 집계됐다. 전 세계 평균 15.4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중동 한류를 더 이상 “팬덤이 있는 시장” 정도로 묶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사우디와 UAE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K팝을 듣고, 공연장을 찾는 데서 멈추지 않고 콘텐츠 구독, 굿즈, 뷰티, 식품, 관광으로 돈을 쓰는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UAE비즈니스센터가 정리한 중동 한류 구조에서 사우디와 UAE는 중동 소비의 양대 축으로 분류된다. 두 국가는 모바일 커머스, 프리미엄 브랜드, 콘텐츠 구독, 구매 전환율에서 중동 내 높은 지불 의향을 보이는 시장이다. 콘텐츠 소비가 생활소비로 이어지는 속도도 빠르다. 드라마와 K팝이 관심을 만들고, OTT와 SNS가 이용 시간을 늘리며, 공연과 브랜드 협업이 실제 지출을 끌어내는 구조다.

문체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도 한류 소비의 질적 변화를 확인한다. 해외 30개 지역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자 2만7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월평균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 시간은 14.7시간, 월평균 지출액은 16.6달러로 나타났다. 조사 분야도 드라마, 예능,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출판, 웹툰, 게임, 한국어뿐 아니라 패션, 뷰티, 음식, 캐릭터, 공연으로 넓어졌다. 한류가 영상물 소비를 넘어 생활형 소비재와 오프라인 경험으로 확장됐다는 의미다.

사우디와 UAE의 지불 의향은 중동의 인구 구조와 문화정책 변화 속에서 커졌다. 사우디는 엔터테인먼트와 관광을 ‘비전 2030’의 우선 분야로 키우고 있다. 미국 상무부 국가상업가이드는 사우디가 국내 여가·엔터테인먼트 지출 확대와 글로벌 관광지 전환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으며, 엔터테인먼트 부문 방문객과 라이선스 발급이 빠르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리야드와 제다, 알울라 같은 도시가 공연, 스포츠, 영화제, 팝업 레스토랑, 대형 페스티벌을 묶어 소비 공간을 넓히는 방식이다.

UAE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두바이는 창작경제 전략을 통해 글로벌 인재와 투자자, 창업자를 끌어들이는 제도·투자 환경을 만들고 있다. 두바이문화예술청은 두바이를 창작경제의 글로벌 수도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창작산업의 법·투자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을 내세웠다. 콘텐츠 기업 입장에서 UAE는 소비시장인 동시에 아랍어권 유통, 광고, 관광, 브랜드 협업이 연결되는 허브다.

K콘텐츠가 사우디와 UAE에서 돈이 되는 이유는 장르별 소비 경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OTT 구독과 더빙, 현지 리메이크로 이어진다. K팝은 공연, 굿즈, 팬 이벤트, 브랜드 협업으로 확장된다. 뷰티와 패션은 아이돌 스타일과 SNS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타고 움직인다. 음식은 드라마와 예능, 숏폼 영상 속 장면을 거쳐 라면, 소스, 간편식, 외식 경험으로 연결된다. 한류 소비자가 콘텐츠를 본 뒤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로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

문체부 조사에서도 영상물과 한국 상품 구매 사이의 연결이 확인된다. 한류 경험자의 58.9%는 한국 제품·서비스에 지불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구매 이유 가운데 영화와 TV 프로그램 노출을 꼽은 비율은 전년보다 올랐다. UAE는 영화와 TV 프로그램 노출이 한국 제품·서비스 구매에 영향을 준다고 답한 비율이 높은 국가군에 포함됐다. 영상물 속 음식, 화장품, 패션, 여행지가 소비 목록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중동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OTT는 중동 한류의 지불 구조를 만든 첫 관문이다. 샤히드, 넷플릭스, Viu, OSN+ 같은 플랫폼은 한국 드라마를 별도 카테고리로 편성하고, 아랍어 자막과 더빙을 붙인다. Viu는 MENA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 300편 이상을 제공하고 영어·아랍어 자막과 아랍어 더빙을 강화해왔다. ‘조립식 가족’은 자막판 공개만으로 Viu MENA의 한국 콘텐츠 시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후 아랍어 더빙판으로 시청층을 넓혔다.

샤히드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MBC그룹이 운영하는 아랍어권 OTT 플랫폼 샤히드는 CJ ENM과의 계약을 통해 프리미엄 K드라마를 MENA 지역에 대규모 제공했다. 한국 드라마는 더 이상 일부 팬이 찾아보는 수입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이 가입자 확대와 차별화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편성 자산이 됐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산다는 것은 현지어 번역, 심의, 마케팅, 추천 알고리즘, 독점 공개 전략까지 함께 움직인다는 뜻이다.

UAE 37달러·사우디 28.8달러, OTT 정주행과 공연·뷰티·식품 소비가 만든 중동 한류의 가격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공연 시장은 지불 의향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는 통로다. KCON 사우디아라비아는 첫 개최 때 2만 명 이상, 다음 행사에서 2만3000명의 관객을 모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KCON 같은 대형 한류 페스티벌이 오프라인 관객과 온라인 시청 기록을 동시에 만들며 현지 통신, 식음료, IT 기업의 후원 관심을 끌었다고 정리한다. 공연 티켓은 시작점일 뿐이다. 팬들은 항공, 숙박, 식음료, 굿즈, 화장품, 패션, 온라인 인증까지 함께 소비한다.

브랜드 협업도 중동 한류의 수익화를 넓힌다. 맥도날드의 BTS 메뉴가 GCC 지역에서 한정 출시됐을 때 현지 매장 방문과 SNS상의 추가 출시 요구, 한정 패키지 수집 열풍이 이어졌다. 사우디 관광청은 K팝 테마 관광 이벤트를 추진했고, 두바이 엑스포 한국관의 K팝 콘서트는 대규모 현장 관객을 모았다. 콘텐츠가 소비재와 관광으로 번지는 장면은 사우디·UAE 시장의 특징을 압축한다. 팬덤은 브랜드의 초기 수요를 만들고, 브랜드는 한류를 현지 소비 생활 안으로 넣는다.

K콘텐츠의 강점은 가족 단위 시청이 가능한 정서에도 있다. 중동의 이슬람권 시청자는 가족, 전통, 존중, 도덕적 갈등을 다루는 한국 드라마를 비교적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왔다. 폭력성과 노골적 성애 표현이 적은 작품은 현지의 도덕적 민감성과 충돌을 줄였다. 한국 드라마가 서구 콘텐츠의 대안적 감성 드라마로 소비됐던 초기 경험은 지금의 OTT 확장에도 영향을 준다. 중동 플랫폼이 한국 드라마를 아랍어로 더빙하고 가족 시청층을 겨냥할 수 있는 이유다.

지불시장이 커질수록 반작용도 커진다. 문체부 조사에서 한류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동의한 응답은 37.5%였고, UAE는 부정적 인식 동의율이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나타났다. 한류 관심과 소비가 높은 지역일수록 관련 상품과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쓰지만, 동시에 문화 피로감과 상업화에 대한 반감도 커질 수 있다. 중동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가격과 팬덤 규모만 보고 움직이면 위험이 생긴다. 현지 정서와 종교적 기준, 콘텐츠 심의, 브랜드 노출 방식까지 함께 조정해야 한다.

검열과 규제도 비용이다. 사우디와 UAE는 해외 미디어 콘텐츠에 대해 엄격한 감독 체계를 유지한다. 국가정체성, 종교적 가치, 도덕성, 성 표현, 젠더 표현은 유통 단계에서 편집과 삭제, 비공개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 중동에서 한국 드라마가 잘 통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지 플랫폼 계약서에는 편집권, 더빙 품질, 연령등급, 에피소드 제외, 마케팅 문구, 초상권과 음악권리까지 세밀하게 반영돼야 한다.

사우디와 UAE의 차이도 분명하다. 사우디는 국가 주도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와 공연·관광 인프라가 빠르게 확대되는 시장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대형 플랫폼, 국부펀드 연계 기업이 시장 질서를 만든다. UAE는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미디어 허브, 국제 콘텐츠 마켓, 관광, 광고, 크리에이터 경제가 결합된 시장이다. 사우디가 대형 이벤트와 내수 소비를 키우는 방향이라면, UAE는 아랍어권 유통과 글로벌 비즈니스 접점을 제공하는 성격이 강하다.

한국 콘텐츠 기업의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사우디에는 공연, 페스티벌, 게임, 영화제, 리메이크, 대형 브랜드 협업이 맞는다. UAE에는 OTT 유통, 콘텐츠 마켓, 광고·뷰티·관광 연계, 아랍어 더빙과 중동·북아프리카 확장 전략이 중요하다. 같은 중동이라도 계약 상대, 가격 구조, 심의 조건, 마케팅 방식이 다르다. 사우디와 UAE를 하나의 ‘중동 시장’으로 묶으면 지불 구조를 제대로 읽기 어렵다.

호르무즈 리스크와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은 중동 소비시장의 가치를 더 크게 만든다. 미국 시장의 관세와 물류 비용이 흔들리면 한국 기업은 수익률이 높은 대체 성장축을 찾아야 한다. 중동은 위험 요인이 큰 지역이지만, 동시에 지불 의향이 높고 문화산업 투자가 이어지는 시장이다. K콘텐츠 기업이 중동을 단기 행사 시장으로만 보면 기회를 놓친다. 플랫폼, 공연, 굿즈, 뷰티, 식품, 관광을 함께 묶는 장기 수익 구조가 필요하다.

사우디와 UAE의 한류 소비는 이미 취향을 넘어 가격표를 갖기 시작했다. 드라마 한 편은 OTT 가입을 부르고, 아이돌 한 팀은 공연과 굿즈를 만들며, 예능 속 음식과 배우의 스타일은 식품·뷰티 소비로 이어진다. 중동 한류의 다음 경쟁은 팬 수가 아니라 결제 전환율, 현지화 품질, 규제 대응, 브랜드 결합력에서 갈린다. K콘텐츠가 중동에서 전략산업이 되려면 “좋아하는 시장”을 넘어 “지속적으로 돈을 쓰는 시장”을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