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재편과 K콘텐츠③] 샤히드·Viu·넷플릭스, 아랍어 OTT가 여는 K드라마 계약시장

자막·더빙·편성권·리메이크가 수익구조로 이동…사우디 거점화와 플랫폼 검열은 새 비용

2026-05-27     전성진 기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전성진기자]한국 드라마가 중동에서 팬들이 찾아보는 콘텐츠에서 플랫폼이 사들이는 편성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샤히드는 CJ ENM과 손잡고 한국 드라마 20편을 MENA 지역에 공급했고, Viu는 한국 드라마 300편 이상을 영어·아랍어 자막과 더빙으로 제공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시청층을 넓히고 있다. 중동 K드라마 시장의 변화는 인기 순위보다 계약 구조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OTT 편성권, 아랍어 더빙, 검열 대응, 리메이크 권리, 현지 법인 설립이 K콘텐츠의 새 가격표가 되고 있다.

중동 한류의 유통축은 위성방송에서 OTT로 넘어갔다. 과거에는 일부 방송 채널이 한국 드라마를 편성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샤히드, 넷플릭스, Viu, 스타즈플레이, OSN+ 같은 플랫폼이 한국 시리즈를 별도 카테고리와 큐레이션 상품으로 다룬다. 한국 드라마가 더 이상 틈새 콘텐츠가 아니라 가입자 확보와 체류시간 확대를 위한 주류 편성 자원이 됐다는 의미다.

MBC그룹이 운영하는 샤히드는 아랍어권 최대 OTT 플랫폼으로 꼽힌다. 샤히드는 CJ ENM과의 계약을 통해 20편의 프리미엄 한국 시리즈를 MENA 시청자에게 제공했다. CJ ENM도 사우디 리야드에 중동 법인을 세우며 MENA를 전략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리야드 법인은 음악, TV, 영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극본·비극본 콘텐츠를 아우르는 협업을 추진하는 지역 거점으로 설정됐다. CJ ENM은 샤히드 계약을 최근 중동 사업의 주요 사례로 직접 언급했다.

사우디 거점화는 단순한 판매망 확보가 아니다. CJ ENM은 리야드 법인을 통해 현지 스튜디오와 오디션 프로그램, 아티스트 발굴, K팝 공연, 영상 콘텐츠 제작·유통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밝혔다. 사우디 인구의 62% 이상이 30세 미만이라는 점도 현지 전략의 근거로 제시했다. 콘텐츠 기업이 중동에 법인을 세운다는 것은 방송권 판매 이후의 문제, 곧 제작 파트너, 행사 운영사, 심의기관, 플랫폼, 광고주와 직접 만나는 사업 구조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Viu는 더빙과 자막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Viu MENA는 ‘조립식 가족’ 자막판이 공개 기간 전체 한국 콘텐츠 시청의 40%를 차지한 뒤 아랍어 더빙판으로 확장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아랍어 더빙판으로 편성하며 현지화 전략을 강화했다. Viu MENA 측은 UAE와 사우디에서 한국 드라마 수요가 커지고 있으며, 300편이 넘는 한국 콘텐츠를 영어·아랍어 자막과 함께 제공한다고 밝혔다.

아랍어 더빙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다. 중동 시장에서 더빙은 가족 단위 시청, TV 연동 소비, 모바일 시청, 비영어권 시청자 접근성을 함께 넓힌다. 한국 드라마의 로맨스와 가족 서사는 자막으로도 팬덤을 만들 수 있지만, 더빙은 팬덤 밖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장치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더빙 비용을 감수할 만큼 한국 드라마가 가입자 유지와 재방문을 만드는 콘텐츠로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중동 K드라마 시장의 글로벌 기준점 역할을 한다.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같은 K시리즈는 한국 콘텐츠가 비영어권 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각 지역 플랫폼에 확인시켰다. 넷플릭스가 다국어 자막과 더빙으로 한국 시리즈의 언어 장벽을 낮추자, 로컬 OTT도 한국 콘텐츠를 단순 수입물이 아니라 현지화할 가치가 있는 장르로 보기 시작했다. 중동에서 샤히드와 Viu가 한국 드라마를 적극 편성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검증된 K시리즈의 시청 데이터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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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히드와 Viu의 경쟁은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샤히드는 아랍어권 시청 기반과 MBC그룹의 방송·제작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Viu는 한국 드라마 라이브러리와 아시아 콘텐츠 큐레이션, 자막·더빙 현지화에 강점이 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오리지널과 알고리즘 추천, 동시 공개 전략을 앞세운다. 스타즈플레이와 OSN+ 같은 플랫폼도 한국 드라마 카테고리를 강화하며 틈새 시청층을 잡는다. 한국 콘텐츠 기업 입장에서는 한 플랫폼에 의존하기보다 독점권, 비독점권, 방영 기간, 더빙권, 2차 이용권을 나눠 협상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현지 리메이크는 계약시장의 다음 단계다. MBC그룹은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의 사우디판 ‘카리프 알 칼브’를 MBC1과 샤히드에서 공개했다. 사우디판은 원작의 신생아 교환 설정을 현지 정서에 맞춰 각색한 작품으로, MENA 방송사가 한국 드라마의 서사를 현지 드라마 문법으로 재구성한 사례다.

리메이크는 방송권 판매보다 깊은 협력 방식이다. 원작 IP의 권리, 각색 범위, 현지 배우 캐스팅, 제작비, 플랫폼 공개, 지역별 유통권, 후속 시즌 가능성이 모두 계약에 들어간다. 한국 드라마의 서사가 중동 문화권에서 통한다는 점은 기회지만, 원작의 감정선과 현지 가치관 사이의 조율이 필요하다. 가족, 출생, 계층, 사랑, 결혼, 여성 서사 같은 소재는 중동에서도 흡수력이 크지만, 표현 방식은 각국의 방송 기준과 종교적 민감성을 통과해야 한다.

팬 자막에서 공식 더빙으로 넘어간 흐름도 중요하다. 중동 한류 초기에는 팬 번역과 온라인 커뮤니티가 한국 드라마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라쿠텐 비키와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크라우드소싱 자막이 제공되고, 샤히드 같은 로컬 플랫폼에서는 검증 번역자나 기관 단위 번역이 붙는다. 팬덤이 만든 언어 통로가 플랫폼의 공식 현지화 체계로 흡수되고 있는 셈이다.

현지화가 깊어질수록 비용도 커진다. 아랍어 자막은 표준 아랍어와 지역 방언, 종교 표현, 존칭과 감정 표현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더빙은 성우 캐스팅과 녹음 비용, 대사 길이 조정, 문화적 표현 수정이 붙는다. 로맨스 장면, 음주 장면, 젠더 표현, 가족관계 묘사는 플랫폼별 심의와 각국 규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콘텐츠 기업이 중동 계약을 맺을 때 편집권과 검열 책임, 비용 부담, 수정본의 2차 이용 여부를 사전에 정해야 하는 이유다.

사우디와 UAE는 해외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감독 체계를 강화해왔다. 사우디는 미디어 규제기관을 통해 스트리밍 콘텐츠를 감독하고, UAE도 스마트폰과 OTT를 포괄하는 미디어 규제를 도입했다. GCC 회원국들이 넷플릭스에 이슬람 가치에 반하는 콘텐츠 삭제를 요구한 사례도 있다. 샤히드는 일부 K드라마 회차를 제외하거나 편집하는 방식으로 지역 정서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시행해왔다.

플랫폼 검열은 중동 시장의 구조적 비용이다. 한국 드라마가 가족 중심 서사와 낮은 선정성으로 비교적 우호적으로 수용돼온 것은 사실이지만, OTT 시대에는 장르가 더 넓어졌다. 복수극, 학원물, 범죄물, 판타지, 연애 리얼리티, BL 코드, 젠더 서사, 사회비판형 드라마가 모두 같은 기준을 통과하지 않는다. 플랫폼 계약에는 방영권만이 아니라 삭제·편집 가능성, 에피소드 누락, 연령등급, 마케팅 문구, 예고편 노출 방식까지 포함돼야 한다.

중동 K드라마 시장은 미국·동아시아 시장과 다른 시간표를 가진다. 미국 플랫폼은 글로벌 히트와 구독자 규모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일본·동남아 시장은 이미 오래된 한류 소비 경험이 있다. 중동은 팬덤의 열기는 높지만 제도권 계약시장은 상대적으로 새롭다. 이 새로움은 성장 여지이자 위험 요인이다. 권리 가격의 기준, 현지 더빙의 품질, 계약 정산 방식, 광고 결합 상품, 플랫폼별 데이터 공개 범위가 아직 충분히 표준화돼 있지 않다.

호르무즈 리스크와 미국 관세 불확실성은 OTT 시장에도 간접 영향을 준다. 스트리밍은 해상 운송에 직접 묶인 산업은 아니지만, 콘텐츠 기업의 중동 전략은 공연, 굿즈, 광고, 관광, 소비재 협업과 함께 움직인다. 해상 물류와 환율이 흔들리면 오프라인 행사와 굿즈 비용이 오른다. 미국 시장의 비용과 규제가 커질수록 한국 기업은 중동처럼 지불 의향이 높은 대체 성장축을 더 적극적으로 찾게 된다. 플랫폼 계약은 물류 리스크가 낮은 진입 방식이지만, 현지 법·심의·정산 리스크는 그대로 남는다.

CJ ENM과 사우디 망가 프로덕션의 협력도 중동 플랫폼 전략의 범위를 넓힌다. 두 회사는 애니메이션, TV시리즈, 영화, 웹툰, 인프라 등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반의 공동 제작과 유통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CJ ENM은 사우디 문화부와의 협력, KCON 개최, 망가 프로덕션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중동에서 방송권 판매를 넘어 제작·유통 파트너십을 키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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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계약시장은 앞으로 세 갈래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 첫째는 완성작 판매다. 이미 제작된 드라마를 자막·더빙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현지 리메이크다. 검증된 한국 IP를 사우디·UAE 시청자 정서에 맞게 각색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공동 기획과 공동 제작이다. 한국 제작 시스템과 중동 자본, 현지 배우와 로케이션, 아랍어권 플랫폼이 처음부터 결합하는 방식이다. 세 갈래 모두 권리 설계와 현지화 역량이 수익률을 가른다.

한국 제작사와 플랫폼이 중동을 볼 때 필요한 기준은 시청률보다 계약 조건이다. 어느 플랫폼이 어떤 권역을 가져가는지, 독점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랍어 더빙본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현지 검열로 수정된 버전이 다른 권역에 재판매될 수 있는지, 리메이크 권리가 드라마 원작자와 제작사에 어떻게 배분되는지 따져야 한다. 중동에서 K드라마가 커질수록 IP 권리 관리가 흥행만큼 중요해진다.

사우디와 UAE는 K콘텐츠 소비자의 지갑을 이미 확인시킨 시장이다. 한국 콘텐츠 소비자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은 두 나라에서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높은 지불 의향은 OTT 가입, 공연, 굿즈, 뷰티, 식품,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지불 의향이 곧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지화 비용, 플랫폼 수수료, 규제 대응, 마케팅 비용, 파트너 선정이 잘못되면 시장 규모와 별개로 수익성이 흔들릴 수 있다.

중동 OTT 시장은 한국 드라마의 새 유통로이자 협상장이다. 샤히드는 아랍어권 플랫폼의 규모를 제공하고, Viu는 더빙과 큐레이션의 실험장을 제공하며, 넷플릭스는 한국 시리즈의 글로벌 기준을 만든다. MBC1과 샤히드에서 공개된 사우디판 ‘가을동화’는 원작 IP가 현지 서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 드라마가 중동에서 장기 성장하려면 작품을 파는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자막과 더빙, 편집과 심의, 리메이크와 공동제작, 데이터와 정산까지 하나의 산업 계약으로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