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재편과 K콘텐츠④] 웹툰·게임·키즈 콘텐츠, 중동 IP 시장의 다음 품목

아랍어 웹툰, 모바일 게임, 패밀리 공연으로 넓어지는 K콘텐츠…사우디·UAE는 드라마 이후의 권리시장으로 이동

2026-05-28     전성진 기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전성진기자]사우디아라비아의 망가 아라비아가 한국 웹툰을 아랍어로 정식 서비스하기 시작하면서 중동 K콘텐츠 시장의 무게중심이 드라마와 K팝 밖으로 넓어지고 있다. ‘메디컬 환생’, ‘식물인간’, ‘귀신도감’ 등 한국 웹툰은 망가 아라비아 유스 앱을 통해 아랍어권 독자에게 제공됐고, 망가 아라비아는 키다리 스튜디오, 브이브로스와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팬 번역과 비공식 유통으로 먼저 알려졌던 한국식 세로스크롤 만화가 사우디 플랫폼 안으로 들어간 장면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UAE비즈니스센터는 중동 한류의 장르를 드라마, 영화, 음악, 예능, 애니메이션, 웹툰·웹소설, 게임으로 나눴다. 드라마와 K팝이 수요를 열었다면, 웹툰·게임·키즈 콘텐츠는 중동 시장에서 장기 권리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품목이다. 한 편을 방영하고 끝나는 콘텐츠가 아니라 번역권, 앱 유통권, 캐릭터 라이선스, 게임 운영, 오프라인 공연, 굿즈,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웹툰은 중동 K콘텐츠의 다음 진입 품목으로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다. 모바일 친화적인 세로스크롤 방식은 스마트폰 소비에 익숙한 중동 젊은층과 맞는다. 에피소드 단위 결제와 무료 회차 공개, 팬덤 기반 추천 구조는 OTT 드라마보다 진입 비용이 낮다. 아랍어 번역과 현지 심의만 통과하면 사우디와 UAE뿐 아니라 이집트,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아랍어권으로 동시에 확장할 수 있다. 망가 아라비아의 한국 웹툰 서비스는 한국 IP가 중동에서 드라마 원작이나 애니메이션 원작으로 쓰일 수 있는 경로를 열었다.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이용자 기반도 중동 확장의 배경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월간 활성 이용자가 약 1억5610만 명이며, 전체의 10~15%가 MENA와 인도 등 신흥 영어권 시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중동은 북미·유럽·일본·동남아에 이어 전략시장으로 지목된다. 영어 서비스로 먼저 유입된 독자를 아랍어 정식 서비스와 현지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수익화의 관문이다.

웹소설은 아직 간접 소비 단계에 가깝다. 일부 한국 웹소설이 영어 플랫폼을 통해 중동 판타지 독자층에 도달하고 있지만, 아랍어권 정식 서비스와 결제 구조는 초기 단계다. 웹툰 상당수가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는 만큼, 웹툰이 자리 잡으면 웹소설 시장도 시간차를 두고 따라올 가능성이 있다. 중동에서 한국식 판타지, 회귀물, 무협, 학원물, 헌터물은 낯선 장르이지만, 모바일 독서와 짧은 회차 소비에 익숙한 젊은 독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낮다.

게임은 중동 IP 시장에서 가장 큰 자본이 움직이는 분야다. 사우디, UAE, 이집트를 묶은 MENA-3 게임시장은 2024년 20억 달러 규모로 집계됐고, 2029년에는 28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게이머 수는 7200만 명에서 843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UAE의 이용자당 평균매출은 84.60달러, 사우디는 54.89달러, 이집트는 3.39달러로 차이가 크다. UAE와 사우디는 지불 능력이 높은 시장이고, 이집트는 이용자 규모가 큰 시장이라는 구분이 필요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도 같은 구조를 짚는다. 이집트는 게이머 수가 많지만 ARPU가 낮고, 사우디와 UAE는 인구 대비 지출이 높다. MENA 게임 매출의 65% 이상은 모바일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한국 게임의 중동 성과도 모바일과 온라인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크래프톤의 ‘PUBG 모바일’은 중동 주요국에서 다운로드와 매출 상위권을 장기간 유지했고, 넥슨의 ‘FIFA 온라인’,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펄어비스의 ‘검은사막’도 지역 이용자 기반을 확보했다.

사우디의 게임 전략은 콘텐츠 소비시장을 넘어 산업정책에 가깝다. 사우디 국가 게임·이스포츠 전략은 게임산업을 경제 다변화와 디지털 경제 육성의 축으로 설정하고, 2030년까지 39000개 이상의 일자리와 500억 리얄 이상의 경제 기여를 목표로 제시했다. 사우디는 게임을 청년 고용, 기술 인력, 지역 개발, 국제 행사 유치, 국가 이미지 재편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

국부펀드 자본은 사우디 게임 전략을 세계 시장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사우디 공공투자펀드가 지분을 보유한 새비게임즈그룹은 글로벌 게임사 지분과 인수합병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로이터는 사우디 공공투자펀드가 ‘그랜드 테프트 오토 VI’ 출시를 앞둔 테이크투 인터랙티브 지분을 새비게임즈그룹으로 이전했다고 보도했다. 새비게임즈그룹은 바이트댄스의 게임 자회사 문톤 인수에도 나섰고, 문톤은 ‘모바일 레전드: 뱅뱅’으로 알려진 모바일 게임 개발사다.

한국 게임사에는 기회와 부담이 동시에 있다. 사우디와 UAE는 결제력이 높은 시장이고, 모바일·e스포츠·축구 게임 선호가 강하다. 그러나 게임은 드라마보다 규제와 운영 변수가 더 복잡하다. 확률형 아이템, 결제 방식, 청소년 보호, 채팅 관리, 종교·정치적 표현, 여성 캐릭터 의상, 폭력성 등 심의 요소가 많다. 아랍어 현지화는 번역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제 수단, 서버 안정성, 고객 응대, 라마단과 방학 시즌 운영, 현지 커뮤니티 관리까지 맞춰야 한다.

웹툰과 게임은 서로 맞물릴 가능성도 크다. 한국에서는 웹소설이 웹툰으로, 웹툰이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다시 드라마와 굿즈로 이어지는 IP 순환 구조가 이미 형성됐다. 중동에서는 이 순환 구조가 아직 초기 단계다. 망가 아라비아가 한국 웹툰을 들여오고, 사우디가 게임산업을 국가전략으로 키우며, OTT 플랫폼이 K드라마 편성을 늘리는 흐름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원천 IP를 확보한 기업이 번역, 영상화, 게임화, 캐릭터 사업까지 이어갈 수 있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키즈 콘텐츠는 가족 단위 소비를 통해 중동 시장에 접근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뽀로로’, ‘로보카 폴리’, ‘타요 버스’ 등이 스페이스툰을 포함한 키즈 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방영됐고, ‘라바’는 언어 장벽이 낮은 코미디 애니메이션으로 중동 어린이에게 인기를 얻었다고 정리했다. ‘라바’는 대사 의존도가 낮아 자막·더빙 부담이 작고, 가족 단위 시청에 맞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핑크퐁과 ‘아기상어’는 키즈 IP의 확장성을 잘 드러낸다. ‘베이비 샤크 라이브’는 중동·북아프리카 투어에 들어갔고, 쿠웨이트 공연을 시작으로 사우디와 UAE 일정까지 잡혔다. 공연형 키즈 콘텐츠는 영상 시청을 티켓, 가족 외출, 캐릭터 상품, 브랜드 협찬, 관광시설 방문으로 연결한다. 드라마와 K팝이 청년층 시장을 움직였다면, 키즈 IP는 부모와 어린이를 함께 묶는 가족 소비시장을 연다.

키즈 콘텐츠는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장르지만, 현지화 기준은 더 엄격하다. 부모가 함께 보는 콘텐츠인 만큼 언어, 복장, 행동, 가족관계, 교육 메시지, 음악과 춤의 표현 방식까지 검토 대상이 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가족 친화적이고 교육적 메시지를 갖춘 콘텐츠는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현지 정서와 맞지 않는 장면은 빠르게 거부될 수 있다. 키즈 IP는 장기 라이선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초기 번역과 검수, 캐릭터 사용 기준을 세밀하게 잡아야 한다.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도 중동에서 장르 폭을 넓힌다. ‘신의 탑’, ‘나 혼자만 레벨업’,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 같은 한국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중동 시청자에게 도달하고 있다. 크런치롤 같은 애니메이션 특화 플랫폼은 아랍어 자막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팬덤과 한국 웹툰 IP를 연결한다. 한국 웹툰은 만화 앱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애니메이션과 게임, 드라마로 넘어갈 수 있는 원천 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와 UAE의 역할도 다르다. 사우디는 게임과 e스포츠, 대형 공연, 국가 주도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국부펀드와 대형 플랫폼, 정부 주도 행사, 리야드 중심의 산업 클러스터가 시장을 만든다. UAE는 두바이와 아부다비의 미디어 허브, 관광 인프라, 국제 콘텐츠 마켓, 글로벌 브랜드 협업이 강하다. 웹툰과 키즈 콘텐츠는 UAE를 통해 아랍어권 유통과 라이선스 네트워크를 넓히고, 게임과 e스포츠는 사우디의 국가전략과 맞물리는 방식이 유력하다.

호르무즈 리스크와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은 디지털 IP의 상대적 가치를 키운다. 드라마·웹툰·게임은 원유와 LNG처럼 해협에 직접 묶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연, 굿즈, 캐릭터 상품, 오프라인 체험 행사는 물류와 환율, 보험료의 영향을 받는다. 디지털 IP로 먼저 시장을 만들고, 현지 파트너와 오프라인 사업을 단계적으로 붙이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중동의 불안정성은 진입을 막는 장벽이지만, 물류 의존도가 낮은 콘텐츠 권리사업에는 오히려 우선순위를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동한다.

한국 기업이 중동 IP 시장에서 조심해야 할 대목은 권리 관리다. 웹툰은 아랍어 번역권, 앱 유통권, 2차 저작권, 영상화 권리가 나뉜다. 게임은 퍼블리싱권, 서버 운영권, 결제 수수료, e스포츠 대회 권리, 캐릭터 상품권이 붙는다. 키즈 콘텐츠는 방송권, 공연권, 캐릭터 라이선스, 교육용 콘텐츠 권리, 오프라인 체험시설 권리가 결합된다. 중동 시장에서 첫 계약을 낮은 가격에 넘기면 이후 드라마화, 게임화, 공연화 단계에서 수익을 놓칠 수 있다.

검열과 심의도 장르별로 다르게 작동한다. 웹툰은 폭력성, 로맨스, 의상, 종교적 상징, 주술·귀신 소재가 검토될 수 있다. 게임은 결제 구조와 청소년 보호, 채팅 환경, 폭력성과 중독성이 규제 대상이 된다. 키즈 콘텐츠는 교육성과 가족 친화성이 기준이 된다. 한국 콘텐츠가 중동에서 우호적으로 소비돼온 배경은 가족 중심 서사와 비교적 낮은 선정성이었지만, 웹툰과 게임은 드라마보다 표현 범위가 넓다. 장르가 확장될수록 현지 심의 전략도 정교해져야 한다.

중동 IP 시장의 다음 경쟁은 인기 순위보다 현지화 역량에서 갈린다. 아랍어 번역의 품질, 표준 아랍어와 지역 방언의 선택, 결제 시스템, 앱 운영, 현지 플랫폼과의 수익 배분, 캐릭터 상품의 유통망, 가족 단위 오프라인 행사의 안전 기준이 모두 사업 성패를 가른다. 한국 콘텐츠 기업이 중동을 단순 수출시장으로 보면 이 복합 구조를 놓친다. 중동은 콘텐츠를 파는 곳이 아니라 권리를 쪼개고 묶어 장기 수익을 만드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사우디 망가 아라비아의 아랍어 웹툰, 새비게임즈그룹의 글로벌 게임 투자, 핑크퐁의 중동 공연형 IP, 크런치롤을 통한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 유통은 같은 흐름 안에 있다. K콘텐츠는 드라마와 K팝의 팬덤을 기반으로 웹툰, 게임, 키즈 콘텐츠까지 확장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가 원하는 것은 단순 수입물이 아니라 현지 청년층과 가족 소비자를 붙잡을 수 있는 IP다. 한국의 중동 전략도 작품 한 편을 파는 방식에서 원천 IP, 현지화, 플랫폼, 공연, 캐릭터, 게임 운영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