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재편과 K콘텐츠⑦] 트럼프 관세 리스크, K콘텐츠 산업의 숨은 비용

10% 수입부가금과 법원 공방, 한국 대미 투자 압박까지…공연 장비·굿즈·뷰티·식품 연계 수출도 가격 재산정

2026-05-31     전성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호르무즈(Hormuz) 해협 내 기뢰 설치 선박에 대한 사격 및 격침(Shoot and Kill) 명령을 미 해군에 하달하고, 이란과의 새로운 합의 전까지 해당 수역을 완전히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2026. 04.23  엑스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전성진기자]미국의 10% 수입부가금은 한국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다시 들어왔다. 백악관은 국제수지 문제를 이유로 150일간 10% 종가 방식의 수입부가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고, 적용 시점도 별도로 제시했다. 관세는 제조업의 국경 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K팝 공연 장비, 앨범 패키지, 포토카드와 굿즈, 촬영 장비, 뷰티·패션 협업 상품, 한류 식품까지 미국 소비시장과 연결된 K콘텐츠 주변 산업의 가격표가 함께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세율보다 불확실성이 더 큰 부담이다. USTR은 대통령 관세 조치를 별도 정책 항목으로 공개하며 상호무역, 무역장벽, 미국 수출 확대 전략을 함께 다루고 있다. 관세는 수입품에 붙는 비용이지만, 실제 운용은 제조업 회귀, 무역적자 축소, 동맹국 투자 압박, 시장 개방 요구와 묶인다. 한국 기업에는 품목별 관세율뿐 아니라 예외 조항, 적용 기간, 상대국별 협상 결과가 모두 비용 변수로 작동한다.

미국 법원의 판단도 기업 불확실성을 끝내지 못했다.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10% 글로벌 관세에 제동을 걸었지만, 항소법원이 하급심 판단을 일시 정지하면서 관세는 당분간 유지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관세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계약 가격이다. 수입업체와 유통업체, 공연기획사, 브랜드 협업사는 물건을 들여오는 순간의 세율과 몇 달 뒤 정산 시점의 세율을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투자 압박도 관세 리스크와 맞물려 있다.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에 대한 투명성과 이행을 압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투자는 우호적 관세 조건과 연결된 무역·투자 합의의 일부로 설명됐다. 관세는 세관 행정이 아니라 동맹국의 투자 규모, 시장 접근, 산업정책을 함께 움직이는 통상 압박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K콘텐츠 산업은 디지털 산업처럼 보이지만 수익 구조 안에는 실물 비용이 깊게 들어와 있다. K팝 투어에는 무대 구조물, LED 패널, 조명, 음향 장비, 의상, 메이크업 제품, 이동형 장비가 붙는다. 앨범은 음악 파일만으로 팔리지 않는다. 포토북, 포토카드, 랜덤 굿즈, 패키지, 배송 박스가 팬덤 소비의 일부다. 드라마와 예능도 촬영 장비, 세트, 의상, 협찬 상품, 해외 로케이션 비용을 동반한다. 관세가 오르면 콘텐츠 본편보다 콘텐츠 주변의 실물 상품과 행사 비용이 먼저 반응한다.

미국 시장의 가격 인상은 팬덤의 구매력을 시험한다. 팬덤 충성도가 높아도 모든 상품이 관세와 배송비를 흡수할 수는 없다. 소액 굿즈와 화장품, 식품, 캐릭터 상품은 몇 달러의 가격 차이에도 구매 전환율이 달라진다.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 저항이 생기고, 가격을 유지하면 마진이 줄어든다. 생산지를 바꾸거나 현지 조립·물류 거점을 만들면 관세 부담은 줄일 수 있지만, 인건비와 임대료, 재고 관리 비용이 새로 붙는다.

뷰티와 식품은 한류 확산의 대표적인 연계 산업이다. 드라마 속 음식, 아이돌의 메이크업, 예능 속 간편식은 해외 소비자의 구매 목록으로 이동한다. 미국 관세가 장기화되면 K뷰티와 K푸드 기업은 제품 단가, 프로모션 비용, 현지 유통 수수료, 물류비를 다시 맞춰야 한다. 콘텐츠 인지도만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구간이다. 팬덤과 브랜드 인지도는 진입을 돕지만, 관세와 유통비는 반복 구매를 막는 비용으로 남는다.

중동은 미국발 관세 리스크 속에서 대체 성장축으로 다시 읽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UAE비즈니스센터 자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중동 한류 소비의 양대 축으로 정리된다. 한국 콘텐츠 소비자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은 UAE 37.0달러, 사우디아라비아 28.8달러로, 전 세계 평균 15.4달러를 크게 웃돈다. 두 나라는 모바일 커머스, 프리미엄 브랜드, 콘텐츠 구독, 구매 전환율에서 높은 지불 의향을 보이는 시장으로 제시됐다.

미국 관세가 높아질수록 사우디와 UAE의 지불시장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중동 한류는 드라마 시청과 K팝 소비를 넘어 OTT 구독, 공연, 굿즈, 뷰티, 식품, 관광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샤히드와 Viu 같은 플랫폼은 한국 드라마를 아랍어 자막과 더빙으로 제공하고, 한국 콘텐츠는 현지 플랫폼의 가입자 확보와 차별화 전략에 들어갔다. 콘텐츠 기업에는 미국 중심 매출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두 번째 축이 필요하고, 중동은 지불 능력과 문화산업 투자라는 조건을 동시에 갖춘 시장이다.

중동이 미국의 단순 대체지는 아니다. 사우디와 UAE는 성장성이 높지만, 현지 심의와 검열, 종교적 가치, 국가정체성, 성 표현과 젠더 표현에 대한 규제가 뚜렷하다. 공연과 굿즈, 브랜드 팝업, 키즈 라이브쇼는 항공 운임, 해상보험료, 현지 보안 비용, 환율 영향을 받는다. 미국 시장에서는 관세가 비용을 밀어 올리고, 중동 시장에서는 물류와 행사 안전, 심의 대응이 수익률을 좌우한다. 두 시장은 서로 다른 위험을 가진 성장축이다.

디지털 IP는 관세 압박 속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품목으로 올라선다. 드라마 스트리밍, 웹툰, 웹소설, 모바일 게임은 실물 관세의 직접 영향을 덜 받는다. 아랍어 자막과 더빙, 앱 결제, 플랫폼 라이선스, 게임 퍼블리싱은 해상 운송보다 현지 규제와 결제 인프라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도 중동 한류가 드라마, 음악, 예능, 애니메이션, 웹툰·웹소설, 게임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정리한다.

공연과 굿즈는 비용 압박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 대형 K팝 투어는 장비 이동, 인력 체류, 현지 운송, 보험, 보안, 리허설 공간 비용이 크다. 굿즈는 생산지, 포장지, 배송 경로, 재고 관리, 반품 비용에 따라 마진이 갈린다. 팬미팅과 팝업스토어는 현지 소비를 직접 만들지만, 비용 구조가 복잡하다. 티켓 판매만으로 손익을 판단하기 어려워졌고, 굿즈 마진, 스폰서십, 광고, 현지 협업 상품, 환율 헤지까지 함께 계산해야 하는 국면이다.

한국 기업의 대응은 시장 분산과 수익 구조 전환으로 갈라진다. 미국 시장에서는 현지 생산·조립·물류 거점을 늘려 관세 충격을 줄이는 방식이 필요하다. 중동과 동남아, 유럽에서는 고성장 시장의 매출 비중을 키워 미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앨범과 굿즈 중심의 실물 매출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플랫폼 구독, 라이선스, 게임, 웹툰, 디지털 멤버십 같은 무관세형 수익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계약서도 바뀌어야 한다. 관세 변경 조항, 환율 변동 조항, 물류비 분담, 취소·연기 조건, 현지 규제 변경에 따른 비용 부담, 굿즈 재고 책임을 명확히 넣어야 한다. 공연 계약과 브랜드 협업 계약은 일정과 출연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통상정책과 지정학 리스크가 가격을 바꾸는 시대에는 계약서 안에 리스크 배분 구조가 들어가야 한다.

한국 정부의 콘텐츠 수출 지원도 마켓 참가와 홍보관 운영에서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관세·비관세 장벽, 지식재산권 보호, 현지 인증, 투자협정, 물류 인프라, 결제 시스템이 콘텐츠 수출의 기반이 됐다.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는 제조업 관세뿐 아니라 콘텐츠 연계 소비재와 공연·전시 물류 비용도 산업 생태계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중동 협력에서는 문화교류, 콘텐츠 마켓, 공동제작, 현지어 인력 양성을 함께 묶는 방식이 필요하다.

트럼프 관세는 K콘텐츠 산업의 성장 방식을 다시 계산하게 만든다. 미국 시장은 여전히 가장 큰 수익처 가운데 하나지만, 관세와 투자 압박, 법원 공방, 물류비 상승이 기업의 마진을 흔든다. 중동과 글로벌사우스는 대체 시장이 아니라 비용과 수익 구조를 나누는 두 번째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K콘텐츠가 산업이 된 순간부터 통상정책은 외부 변수가 아니게 됐다. 관세는 세관에서 붙지만, 비용은 무대 위 조명, 앨범 속 포토카드, 드라마 협찬 상품, 팬이 결제하는 굿즈 가격까지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