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재편과 K콘텐츠⑧] 한국의 선택, 콘텐츠 수출을 산업외교로 묶는 중동 전략

호르무즈 리스크, 트럼프 관세, 한·UAE CEPA, 사우디 문화투자가 겹친 중동…K콘텐츠는 수출품에서 전략 패키지로 이동

2026-05-31     전성진 기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전성진기자]한·UAE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발효된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불안과 미국발 관세 리스크는 한국 기업의 해외 전략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UAE 정부는 한·UAE CEPA가 양국 상품 교역 관세의 90% 이상을 단계적으로 없애거나 낮추는 고도화된 경제협력 틀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관세청도 UAE와의 협정을 중동 신시장 창출과 자원부국 협력의 기반으로 분류했다. 중동은 더 이상 에너지 도입처나 건설 수주시장에 머물지 않는다. 콘텐츠, 소비재, 플랫폼, 관광, 물류, 금융이 함께 움직이는 복합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해협 재개와 핵 협상, 제재 완화가 논의되고 있지만, 이란은 최종 합의가 임박했다는 해석을 부인했다. 이스라엘 정치권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협상 구도가 지역 안보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중동의 통항 재개는 선박 이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핵 활동, 항만 봉쇄, 제재, 이스라엘 안보, 걸프 국가의 외교 계산이 얽힌 정치 과정이다.

트럼프 관세 리스크는 한국 기업의 시장 배분 전략을 다시 흔들고 있다. 미국 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10% 글로벌 관세에 제동을 건 하급심 판단을 일시 정지했고, 관세는 항소 절차 속에서도 비용 변수로 남아 있다. 관세는 자동차와 철강, 전자제품에만 붙지 않는다. K팝 굿즈, 공연 장비, 앨범 패키지, 촬영 장비, 화장품, 식품, 캐릭터 상품까지 K콘텐츠 주변 산업의 가격표를 바꾼다.

한국의 중동 전략은 이 세 흐름을 따로 볼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 호르무즈는 원유와 LNG의 길이고, CEPA는 상품과 투자 흐름을 여는 제도적 길이다. 샤히드와 Viu, 넷플릭스, 웹툰 앱, 게임 플랫폼은 한국 IP가 아랍어권으로 이동하는 문화의 길이다. 세 길이 따로 움직이면 기업은 행사성 수출과 단기 계약에 머물고, 함께 묶이면 중동은 한국의 글로벌사우스 전략 거점이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 사우디는 대형 내수시장, 국부펀드, 공연·게임·스포츠·관광 프로젝트를 앞세운다. 사우디 비전 2030의 삶의질 프로그램은 문화,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관광의 확대를 국가 전환 전략 안에 넣고 있다. CJ ENM이 리야드에 중동 법인을 세운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CJ ENM은 중동 법인을 통해 음악, TV, 영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제작·유통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UAE는 다른 성격의 거점이다. 두바이는 창작경제 전략을 통해 창작산업의 GDP 기여도를 2020년 2.6%에서 5%로 높이는 목표를 제시했다. UAE는 항공·항만·금융·관광 인프라와 국제 콘텐츠 마켓, 아랍어권 플랫폼 유통망을 함께 갖춘 허브다. 한·UAE CEPA는 K뷰티, 식품, 콘텐츠 연계 상품, 지식재산권 기반 사업이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제도적 통로가 될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UAE비즈니스센터의 중동 한류 분석은 한류가 팬덤 단계에서 산업화·제도화 단계로 이동했다고 정리한다. 중동 한류는 드라마, 음악, 예능, 애니메이션, 웹툰·웹소설, 게임으로 확장됐고, 플랫폼 변화와 로컬라이징 구조가 유통의 중심에 놓였다. 샤히드는 CJ ENM과의 계약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MENA 지역에 대규모로 제공했고, 넷플릭스와 Viu 등은 다국어 자막과 더빙으로 한국 콘텐츠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중동 한류의 지불 능력도 확인됐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국 콘텐츠 소비자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은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콘텐츠 수출 상담에서도 리야드 K콘텐츠 엑스포와 두바이 국제콘텐츠마켓은 중동 바이어와 한국 기업의 접점을 넓혔다. 중동 전체 콘텐츠 수출액은 아직 아시아 주요권역보다 작지만, 지불 의향과 플랫폼 경쟁, 국가 주도 문화투자가 겹치면서 성장 여지는 커졌다.

한국 기업의 선택지는 단순한 시장 확대가 아니다. 사우디에는 대형 공연, 게임, 공동제작, 리메이크, 현지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붙여야 한다. UAE에는 OTT 유통, 콘텐츠 마켓, 아랍어 더빙, CEPA 기반 소비재 수출, 금융·물류·광고 네트워크를 결합해야 한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에는 아랍어판 콘텐츠와 저가형 모바일 상품, 키즈·교육 콘텐츠가 맞고, 남아시아 네트워크에는 영어·아랍어 병행 서비스와 모바일 결제 기반 상품이 필요하다.

콘텐츠 수출도 작품 단위에서 IP 단위로 바뀌어야 한다. 드라마 한 편을 파는 방식은 성장의 출발점일 뿐이다. 원작 IP, 아랍어 자막·더빙권, 리메이크권, 웹툰·웹소설 영상화권, 게임화권, 캐릭터 상품권, 공연권, 교육용 콘텐츠 권리를 따로 설계해야 한다. 중동 파트너와의 첫 계약에서 권리를 낮은 가격에 넘기면 이후 드라마화, 게임화, 공연화, 굿즈 사업에서 수익을 놓칠 수 있다.

중동 투자는 현지화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한국 드라마가 가족 중심 서사와 비교적 낮은 선정성으로 이슬람권 시청자에게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강점이다. 그러나 OTT, 웹툰, 게임, 예능, 리얼리티로 장르가 넓어질수록 규제 변수는 더 복잡해진다. 종교적 가치, 국가정체성, 도덕성, 성 표현, 젠더 표현은 편집과 삭제, 비공개 조치, 마케팅 문구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도 사우디와 UAE의 미디어 규제, GCC 차원의 콘텐츠 삭제 요구, 로컬 플랫폼의 편집 사례를 중동 유통의 주요 변수로 정리했다.

계약서의 언어도 달라져야 한다. 중동 계약에는 더빙본의 소유권, 검열로 수정된 버전의 재사용 여부, 에피소드 누락 시 정산 기준, 공연 취소와 연기 조건, 환율 변동, 물류비 분담, 관세 변경, 보험료 상승, 현지 규제 변경에 따른 비용 부담을 넣어야 한다. 미국 관세와 호르무즈 리스크가 동시에 움직이는 국면에서는 콘텐츠 계약도 통상·물류 계약에 가까워진다.

디지털 IP는 중동 전략에서 우선순위가 높다. 드라마 스트리밍, 웹툰, 웹소설, 모바일 게임은 해상 운송과 관세의 직접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반대로 공연, 굿즈, 캐릭터 상품, 키즈 라이브쇼, 브랜드 팝업은 항공·해운 운임, 보험료, 보안 비용, 환율에 민감하다. 디지털 IP로 먼저 팬덤과 결제 데이터를 확보하고, 현지 파트너와 오프라인 사업을 단계적으로 붙이는 방식이 필요하다.

공공외교와 산업계약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한국문화원과 세종학당은 한국어 교육, 한식 체험, K팝 프로그램, 한국영화제 등으로 문화 접점을 만든다. 기업은 OTT 계약, 웹툰 라이선스, 게임 퍼블리싱, 공연, 굿즈, 브랜드 협업으로 수익 구조를 만든다. 정부 간 협정은 관세, 투자, 지식재산권, 물류, 인력 교류의 틀을 제공한다. 세 축이 분리되면 한류는 행사성 홍보에 머물고, 함께 묶이면 산업외교가 된다.

사우디 국부펀드와 UAE 투자자의 움직임도 별도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사우디 공공투자펀드 산하 게임 투자와 한국 게임사 투자, UAE 투자 회사의 웹툰 플랫폼·애니메이션 제작사 관심을 중동 한류 투자 흐름으로 제시했다. 중동 자본은 단순한 재무투자자가 아니라 현지 유통, 정부 인허가, 행사 운영, 플랫폼 편성, 공동제작을 연결할 수 있는 파트너다. 다만 투자금은 지배권, IP 권리, 데이터 접근권, 현지 우선권을 동반할 수 있어 계약 단계에서 통제선을 세워야 한다.

한국 정부의 지원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콘텐츠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은 전시관 운영과 쇼케이스 개최에 머물 수 없다. 관세·비관세 장벽, 현지 인증, 할랄 기준, 아랍어 라벨, 지식재산권 보호, 불법 유통 대응, 결제 시스템, 현지 법률 자문, 보험과 보안 기준을 묶은 패키지가 필요하다. 중동은 문화산업 시장이면서 동시에 규제·외교·물류 리스크가 높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K콘텐츠와 소비재의 결합은 한·UAE CEPA 시대에 더 중요해진다. 드라마 속 음식은 라면과 소스, 간편식으로 이어지고, 아이돌의 스타일은 화장품과 패션으로 이동한다. 웹툰과 게임은 캐릭터 상품과 앱 결제로 연결된다. CEPA가 관세와 시장 접근성을 낮추면 콘텐츠가 만든 브랜드 친숙도는 소비재 수출의 선행 자산이 된다. 다만 가격 경쟁력은 콘텐츠 인지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관세 혜택, 유통 수수료, 현지 인증, 물류비, 환율, 프로모션 비용을 함께 맞춰야 한다.

글로벌사우스 전략에서 중동은 단일 시장이 아니다. 걸프는 고소득 소비와 자본, 북아프리카는 인구와 아랍어 확산, 남아시아는 노동·소비 네트워크와 영어권 접점, 아프리카는 신흥 교역과 인프라 수요를 제공한다. UAE와 사우디를 출발점으로 삼되, 이집트·모로코·케냐·인도·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언어와 물류, 소비재 유통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중동 한류가 아랍어권에 안착하면 한국 콘텐츠는 아시아와 북미 중심의 수출 구조에서 한 단계 벗어날 수 있다.

호르무즈 리스크는 중동 전략을 중단시킬 이유가 아니라 비용 구조를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변수다. 국제통화기금은 중동 전쟁이 에너지 생산과 수출, 항공, 물류, 금융시장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해상보험료와 운송비 상승, 항공편 차질, 금융시장 변동은 콘텐츠 기업에도 행사 비용과 환율, 스폰서십 조건, 소비심리의 형태로 전이된다.

트럼프 관세는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라는 신호로 작동한다. 미국은 여전히 K콘텐츠의 가장 큰 수익시장 가운데 하나지만, 관세와 투자 압박, 법원 공방은 장기 계약의 안정성을 낮춘다. 중동과 글로벌사우스는 미국의 대체지가 아니라 비용과 수익 구조를 나누는 두 번째 축이다. 한국 기업은 미국, 일본, 동남아, 중동, 유럽을 시장 규모가 아니라 리스크와 수익률, 권리 회수 가능성의 조합으로 다시 배열해야 한다.

중동 전략의 마지막 기준은 속도가 아니라 축적이다. 사우디와 UAE의 대형 행사는 단기간에 주목도를 만들지만, 장기 수익은 현지어 인력, 번역 품질, 플랫폼 데이터, IP 권리 관리, 소비재 유통, 파트너 신뢰에서 나온다. 한국 기업은 현지 법인, 공동제작 파트너, 법률·세무 자문, 보험사, 물류사, 플랫폼, 공연장, 교육기관을 묶은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류 팬덤은 출발점이고, 산업 생태계가 수익을 남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에 에너지 안보의 비용을 일깨우고, 트럼프 관세는 미국 시장 의존의 비용을 드러냈다. 한·UAE CEPA는 중동 진출의 제도적 길을 열었고, 사우디·UAE의 문화산업 투자는 K콘텐츠가 들어갈 공간을 넓혔다. 한국의 선택은 콘텐츠를 따로 팔고, 소비재를 따로 팔고, 외교를 따로 움직이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K콘텐츠를 산업외교의 중심 자산으로 묶을 때 중동은 위험지역을 넘어 글로벌사우스 전략의 전진기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