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트렌드①] 세계 선거판 오른쪽으로, 물가와 국경이 흔든 표심

트럼프 복귀·유럽 우파 약진 속 한국은 계엄 뒤 선거로 헌정 회복

2026-05-26     박준식 기자
[속보] 이재명 대통령,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협조해달라… 트럼프에 직접 요청 사진=2025 10.29   ktv 갈무리/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선거인단 312명을 확보해 백악관에 돌아왔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226명에 그쳤다. 대중투표에서도 트럼프는 7730만2580표, 해리스는 7501만7613표를 얻었다. 득표율은 트럼프 49.80%, 해리스 48.32%였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선거인단과 대중투표에서 모두 민주당을 앞선 것은 2004년 조지 W. 부시 이후 처음이었다.

미국 유권자는 두 차례 탄핵, 형사기소, 2020년 대선 불복 논란을 안은 전직 대통령에게 다시 권력을 맡겼다. 예전 정치 문법이라면 치명적 약점으로 남았을 이력은 2024년 선거에서 전부 약점으로만 작용하지 않았다. 워싱턴 정치, 주요 언론, 법원, 관료조직을 한 덩어리의 기득권으로 보는 유권자에게 트럼프의 상처는 결격 사유보다 기득권과 부딪힌 흔적으로 읽혔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우파 정당들은 의석을 늘렸다.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 중도 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 자유주의 성향 리뉴유럽은 결합 과반을 지켰다. 유럽연합의 중심 세력이 한꺼번에 무너진 선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민, 국경, 농업 규제, 기후정책, 에너지 비용을 둘러싼 논쟁은 선거 뒤 더 거칠어졌다. 중도 정당은 과반을 지켰지만, 유권자의 불만이 몰린 쟁점은 우파 정당이 먼저 차지했다.

독일에서는 변화의 폭이 더 컸다. 2025년 연방하원 선거에서 독일대안당 AfD는 152석을 얻었다. 2021년보다 69석 늘어난 숫자다. 사회민주당은 120석으로 86석을 잃었고, 녹색당은 85석으로 33석 줄었다. 전후 독일 정치에서 극우 성향 정당이 전국 선거를 통해 이 정도 규모로 커진 장면은 기성 정당이 쌓아온 방화벽만으로 표심 이동을 막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마트 계산대와 집세 고지서는 정권 평가의 앞자리에 놓였다. 정부와 여당은 고용률, 성장률, 재정 여건을 설명했지만, 유권자는 장바구니 가격과 월세, 전기요금, 난방비, 자동차 연료비를 먼저 봤다. 월급 통장에 남는 돈이 줄어드는 동안 우파 정당은 국경을 닫겠다, 범죄자를 추방하겠다, 세금을 낮추겠다, 에너지 가격을 잡겠다는 말로 파고들었다. 긴 설명보다 짧은 약속이 더 빨리 퍼졌다.

이민 문제는 가계부와 동네 사정을 한데 묶었다. 일자리 경쟁, 주택난, 학교 과밀, 복지 예산, 거리 치안, 종교와 생활문화 차이가 이민이라는 단어에 걸렸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과 주민이 느끼는 불편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수 있다. 선거에서는 체감이 먼저 움직였다. 우파 정당은 이민자를 복지 재정의 부담, 동네 치안의 변수, 노동자 몫을 줄이는 경쟁자로 그렸다.

기후정책도 세금과 규제의 문제로 옮겨갔다. 유럽의 탄소규제와 친환경 전환은 도시 중산층과 환경정책 지지층에는 미래 산업전략으로 읽혔다. 농민, 제조업 노동자, 운송업 종사자에게는 농기계와 화물차, 비료와 전기요금, 공장 전환 비용의 문제였다. 우파 정당은 기후정책을 서민 부담을 키우는 엘리트 정책으로 몰았다. 기후 문제는 환경과 과학의 말에서 세금, 일자리, 농업 생존, 산업경쟁력의 말로 다시 불렸다.

학교와 가족을 둘러싼 갈등은 표심을 더 빠르게 흔들었다. 젠더, 성소수자 권리, 학교 교육, 종교, 표현의 자유 문제는 경제지표보다 직접적인 분노를 만든다. 임금과 물가의 관계는 설명이 필요하지만, 학교에서 아이가 무엇을 배우는지, 공공기관이 어떤 말을 쓰는지, 스포츠와 화장실에서 성별을 어떻게 나눌지는 훨씬 빨리 논쟁으로 번진다. 우파 정당은 물가 문제를 정부 무능으로, 문화 갈등을 엘리트의 오만으로 묶었다.

트럼프 진영은 이 흐름을 가장 거칠고 빠르게 선거 공식으로 만들었다. 민주연구원 연구보고서는 트럼프 정치가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상식 대 몰상식’의 대립으로 바꿨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트럼프가 민주당을 ‘몰상식 정당’으로 몰아붙이며 공화당을 ‘상식의 정당’으로 재편하려 했고, 2024년 승리의 바탕에는 백인 블루칼라뿐 아니라 흑인·히스패닉 노동자층 일부까지 묶은 다인종 노동자 계층 연합이 있었다고 봤다.

프랑스 국민연합, 독일 AfD, 이탈리아 형제들, 오스트리아 자유당, 네덜란드 자유당, 미국 트럼프주의는 역사와 제도, 경제정책이 다르다. 그러나 유권자를 부르는 말은 닮았다. 국경을 지키겠다, 범죄를 잡겠다, 관료와 언론이 숨긴 사실을 말하겠다, 납세자의 돈을 되찾겠다는 구호가 좌우 이념보다 먼저 들린다. 우파 정당이 커진 곳에서는 ‘보수 대 진보’보다 ‘보통 사람 대 기득권’이라는 구도가 선거판을 흔들었다.

한국은 같은 시기 다른 장면을 남겼다. 제21대 대통령선거는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뒤 치러진 조기 대선이었다. 2025년 6월 3일 투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728만7513표, 득표율 49.42%로 당선됐다. 투표율은 79.38%였다. 계엄과 탄핵을 거친 뒤에도 헌법기관의 결정과 선거가 차례로 작동했고, 권력 공백은 투표로 정리됐다.

한국의 대선은 세계 정치의 우향 흐름 속에서 따로 놓이는 비교 사례다. 여러 나라에서 반제도 구호와 강경 우파의 언어가 커지는 동안, 한국 유권자는 헌정 회복과 정권 교체를 동시에 선택했다. 선거 결과는 한 정당의 승패를 넘어 비상계엄 이후 국가 운영의 중심을 다시 헌법과 투표로 돌려놓은 과정이었다. 세계 선거판이 국경과 분노의 말로 기울던 시기에 한국 정치는 헌정 절차, 높은 투표 참여, 새 정부 출범을 한 흐름 안에서 완성했다.

이재명 정부의 출발선도 세계 정치의 비교축에 놓인다. 123대 국정과제는 국민이 하나되는 정치,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를 5대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세부 전략에는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확립, AI 3대 강국 도약, 활력이 넘치는 민생경제, 함께 누리는 창의적 문화국가, 세계로 향하는 실용외교가 포함됐다.

계엄 이후 출범한 한국 정부는 극우 구호를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헌정 회복, 민생경제, 문화 역량, 실용외교를 함께 놓는 쪽으로 국정 방향을 잡았다. 물가와 일자리, 주거와 지역 격차, 한반도 안보와 미중 경쟁, K컬처의 국제적 영향력까지 한꺼번에 다뤄야 하는 자리다. 세계 정치가 갈등을 단순한 구호로 줄이는 동안, 한국 정부는 민주주의 복원 이후 경제와 문화, 외교를 실제 성과로 연결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중도좌파와 자유주의 정당의 약점도 같은 과정에서 드러났다. 노동자와 중산층의 정당을 자처했던 세력은 도시 고학력층, 전문직, 문화적 진보 의제와 더 강하게 묶였다. 공장과 항만, 농촌과 중소도시의 유권자 일부는 자기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뒤로 밀렸다고 받아들였다. 민주연구원 보고서는 미국 민주당의 위기를 국정 실패, 정체성 상실, 브랜드 파산으로 나눴고, 민주당 브랜드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정당’이 아니라 ‘나를 가르치려 드는 정당’으로 훼손됐다고 분석했다.

과거 선거 분석은 소득을 먼저 봤다. 고소득층과 기업은 우파, 노동자와 복지국가는 좌파라는 구도가 비교적 익숙했다. 최근 선거에서는 교육 수준, 사는 지역, 이민에 대한 생각, 학교와 가족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소득 못지않게 크게 작용한다. 대도시 고학력층은 자유주의·중도좌파 정당으로 모이고, 산업도시와 지방의 노동자층 일부는 우파 쪽으로 이동한다. 복지는 원하지만 이민에는 부정적이고, 국가 개입은 바라지만 관료와 언론은 믿지 않는 유권자층이 커졌다.

유튜브와 팟캐스트, 틱톡, X는 표심의 이동 속도를 더 높였다. 긴 연설과 신문 사설, TV 토론이 여론을 이끌던 시기에는 정당의 설명과 언론의 검증을 거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분노와 조롱, 폭로 형식의 짧은 메시지가 먼저 돈다. 우파 정치인은 기존 언론의 비판을 손해로만 보지 않는다. 언론이 공격할수록 지지층에는 “기득권이 두려워한다”는 신호로 전달된다. 논란은 해명보다 노출을 만든다.

의석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쟁점이었다. 유럽의 중도우파는 이민 규제를 더 강하게 말하고, 중도좌파도 치안과 국경 문제를 뒤로 미루기 어려워졌다. 기후정책은 산업경쟁력과 물가 문제에 묶였고, 난민정책은 인권의 말만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미국 공화당도 트럼프 이후 자유무역과 작은 정부를 앞세운 전통 보수에서 관세, 국경, 산업보호, 문화전쟁을 함께 내세우는 정당으로 바뀌었다.

2026년 이후 선거는 우파 정당의 추가 약진만으로 읽기 어렵다. 기성정당이 물가, 주거, 이민, 치안, 지역 격차를 설득력 있게 다루지 못하면 국경과 반엘리트 정치는 더 넓은 표심을 끌어들일 수 있다. 우파 정당이 집권 뒤 물가와 일자리, 사회통합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반체제 정치는 다시 심판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헌정 회복 이후 민생경제, 혁신산업, 문화국가, 실용외교가 새 정부의 성과를 가를 기준으로 올라왔다. 세계 선거판은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남은 경쟁은 유권자의 밥상과 동네 문제를 누가 먼저 자기 말로 붙잡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