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전략②] 호르무즈 사태, 한국 산업의 에너지 비용표를 흔들다
원유·LNG·나프타·운임으로 번진 중동발 경제안보 압박
[KtN 김 규운기자]2026년 봄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은 한국 정유사와 석유화학 기업의 원가표부터 흔들었다. 한국은 원유의 70.7%, 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오는 구조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사이의 좁은 해상로는 중동 분쟁의 현장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산업의 비용을 결정하는 통로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 이스라엘이 만든 호르무즈 긴장은 원유 가격, 나프타 가격, 해상 운임, 보험료, 전력요금과 물가 대응으로 번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좁지만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기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고,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약 25%가 이 해협을 지났다고 집계했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와 석유제품의 80%는 아시아로 향했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같은 에너지 수입국이 호르무즈 차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LNG 시장도 같은 통로에 묶여 있다. 카타르 LNG 수출의 약 93%, 아랍에미리트 LNG 수출의 약 96%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두 나라의 물량은 세계 LNG 교역의 19%에 해당한다. 원유는 일부 산유국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우회 수출할 수 있지만,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 LNG의 상당 물량은 해협 차질에 직접 노출된다. 발전용 연료와 도시가스, 산업용 에너지 비용이 원유 가격과 동시에 흔들리는 배경이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뒤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 유가 기사 속 지명이 아니라 한국 산업 현장의 비용 항목으로 들어왔다. 로이터는 전쟁이 에너지 가격을 밀어 올리며 세계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휴전 연장 논의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 개방과 이란 핵무기 보유 불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란은 해협 관리는 이란과 오만이 결정할 문제라고 맞섰다.
IEA의 2026년 5월 석유시장 보고서는 공급 충격의 규모를 수치로 제시했다. 4월 세계 원유 공급은 하루 9510만 배럴로 줄었고, 2월 이후 누적 공급 손실은 하루 1280만 배럴에 달했다. 호르무즈 폐쇄 영향을 받은 걸프 산유국의 생산은 전쟁 전보다 하루 1440만 배럴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3월과 4월 세계 관측 원유 재고도 각각 1억2900만 배럴, 1억1700만 배럴 감소했다.
가격 충격은 선박 비용으로 옮겨붙었다. IEA 4월 보고서는 호르무즈 해협 선박 통항의 사실상 중단이 세계 교역 항로를 바꿨고, 대체 선적지와 대서양권 선박 수요를 집중시켰다고 분석했다. 중동 걸프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 운임은 한 달 전보다 배럴당 8.07달러 오른 12.86달러로 뛰었고, 5년 평균보다 약 600%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원유 가격만 오른 것이 아니라 선박 확보, 연료 보급, 보험료, 항만 대기 비용이 동시에 불어났다.
한국무역협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때 한국 수출입 물류가 심각한 불확실성에 놓일 수 있다고 봤다. 중동산 원유와 LNG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대체 항로를 활용할 경우 해상 운임이 50~80% 오르고, 내륙 운송과 통관 절차로 운송 기간이 3~5일 늘어날 수 있다. 과거 중동 지역 사건 때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오른 사례도 거론됐다.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한국의 총수출액은 0.39% 줄고, 총수입액은 2.68% 증가하며, 제조업 비용은 0.68% 상승한다는 추산도 함께 제시됐다.
정유업계는 가장 먼저 원유 도입선을 다시 짰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브라질, 서아프리카 등에서 대체 원유를 찾고, 중동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과 항로를 검토했다. 호르무즈 인근에 한국행 원유를 실은 유조선 7척이 묶였고, 선박 한 척당 최대 200만 배럴을 실을 수 있어 국내 약 1주일 소비량에 해당하는 물량이 지연된 것으로 집계됐다. 정유사의 부담은 유가 한 줄이 아니라 원유 품질, 정제 수율, 납기, 결제 조건, 운송 거리까지 포함한 조달 구조 전체로 번졌다.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에서 압박을 받았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섬유, 고무, 자동차 부품 소재로 이어지는 기초 원료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자 2026년 3~4월 한국의 중동산 나프타 수입 비중은 전년 같은 기간 59.5%에서 30%로 낮아졌고, 인도·미국·그리스 물량이 빈자리를 일부 메웠다. 같은 기간 중동산 원유 비중은 67.5%에서 59%로, 중동산 LNG 비중은 16.7%에서 3.8%로 떨어졌다. 대체 조달은 가능했지만, 가격과 물류 조건은 이전과 달라졌다.
석유화학 기업의 재고 부담도 커졌다. 국내 일부 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로 이미 감산을 거친 상태였고, 나프타 재고를 1~2개월치만 보유한 곳도 있었다. 여천NCC는 공급 차질에 따른 생산 문제로 주요 고객사에 납품 지연 가능성을 알렸다. 호르무즈 사태는 원료 도입 차질이 곧바로 공장 가동률과 납품 일정으로 연결되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취약한 지점을 건드렸다.
항공과 해운, 반도체도 같은 비용표에 들어왔다. 항공사는 항공유 가격 상승과 중동 경유 항공편 차질을 동시에 봤고, 해운사는 유가와 보험료 상승을 운임에 반영해야 했다. 반도체 업계는 노광 장비 냉각과 웨이퍼 누설 검사에 쓰이는 헬륨 공급을 주시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헬륨의 약 90%가 카타르에서 들어온다는 점이 호르무즈 사태를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로도 연결시켰다.
이재명 정부의 대응은 에너지 절약, 비축유, 대체 조달, 외교 협의로 나뉘었다. 3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차질에 따른 석유·가스 공급 위험을 언급하며 범국민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요구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승용차 이용을 줄이고, 민간 차량 제한은 자율 방식으로 두되 경보 단계가 높아지면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당국은 원전 5기를 5월까지 재가동하고 석탄발전 제한을 완화하며, LNG 의존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도 병행하겠다고 했다.
4월 들어 정부의 대응은 산유국 외교로 옮겨갔다.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 차질 속에서 중동산 원유 수입에 일정 수준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고, 한국 당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알제리 등과 대체 항로와 물량 확보를 협의했다. 산업부는 한국 선적 선박 5척을 홍해 항로에 투입하는 방안과 정부 비축유를 민간 정유사에 먼저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기획재정부는 걸프협력회의 회원국 대사들과 원유, LNG, 나프타, 요소 등 주요 자원 공급 안정을 논의했다.
5월 26일 열린 IPEF 공급망 위기대응 네트워크 회의는 호르무즈 사태가 에너지 외교를 넘어 공급망 외교가 됐다는 점을 드러냈다. 한국은 해당 네트워크의 초대 의장국으로, 호주·일본·싱가포르 등 9개 회원국과 중동 전쟁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원유와 LNG뿐 아니라 나프타, 요소, 헬륨까지 다뤄졌다. 회원국들은 정보 공유와 항로 다변화, 가격·수급 안정 조치를 놓고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해상 안보 변수도 한국 외교의 직접 현안으로 올라왔다. 5월 4일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던 HMM 운항 벌크선 ‘나무’가 두 차례 공격을 받았고, 한국 외교부는 조사 결과 이란제 대함미사일과 유사한 부품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란 책임 여부와 고의성은 최종 단정하지 않았지만, 이란 대사를 불러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항의했다. 이란 측은 관여를 부인했다. 에너지 수송로 보호는 유조선 확보나 보험료 문제가 아니라 외교적 항의와 해상 안보 조율까지 포함하는 사안이 됐다.
트럼프 관세가 동남아 생산기지의 수출 비용을 흔들었다면, 호르무즈 사태는 같은 공급망의 에너지·물류 비용을 흔들었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 시장으로 향하더라도 원자재와 연료, 선박, 보험료는 중동발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은 관세율과 원산지뿐 아니라 원유 도입선, LNG 계약, 나프타 가격, 항로 위험, 보험료를 함께 계산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호르무즈 사태의 남은 변수는 네 갈래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연장 논의가 실제 해협 재개방으로 이어질지,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다시 확대될지, 한국의 대체 원유·LNG·나프타 조달이 비용 상승을 견딜 수 있을지, 정부의 비축유·에너지 절약·산유국 외교가 산업 현장의 원가 압박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다. 한국 경제에는 유가 상승보다 넓은 계산표가 남았다. 정유와 석유화학, 항공과 해운, 반도체와 물가, 동맹 외교와 걸프 외교가 같은 해협 위에 올라섰다. 호르무즈는 중동의 좁은 바닷길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 경제안보 외교가 실제 비용으로 확인되는 해상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