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소피아 회동②] 불가리아가 움직인 이유, 남북 공동등재 논의의 유럽 채널

EU 회원국이자 남북 모두와 외교 접점을 가진 제3 공간 소피아 회동은 장소의 상징을 넘어 중재 가능성을 드러낸 외교 변수

2026-05-31     임우경 기자
최재춘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장 /사진=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2007년 1월 1일 불가리아는 루마니아와 함께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발칸반도와 흑해, 유럽연합의 동쪽 외교 지형이 만나는 소피아는 단순한 회동 장소가 아니었다. 태권도 유네스코 남북 공동등재 논의가 소피아에서 다뤄진 배경에는 불가리아가 가진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 남북 모두와 이어온 외교 채널, 태권도계와 정치권을 잇는 현지 네트워크가 놓여 있다.

1990년 한국과 불가리아는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양국 관계는 정부, 공공, 민간, 경제, 문화, 교육, 스포츠 분야로 넓어졌다.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논의가 불가리아에서 열린 대목은 한국 태권도계의 민간 활동이 유럽의 제도권 외교 공간과 만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

2025년 7월 23일 안드레이 테호프(Andrey Tehov) 주북 불가리아대사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신임장을 제정했다. 코로나19 이후 단절됐던 외교 현장의 복원이 이뤄진 시점이었다. 불가리아가 한국과 북한 양측에 모두 외교 채널을 가진 유럽 국가라는 점은 소피아 회동의 외교적 의미를 설명하는 핵심 조건이다.

[태권도, 소피아 회동②] 불가리아가 움직인 이유, 남북 공동등재 논의의 유럽 채널. 키틴무뇨즈(좌측), 시메온 왕자, 최재춘 단장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소피아 회동에서 불가리아 측이 내세운 논리는 이 외교 조건 위에 놓였다. 불가리아는 한국과 북한 가운데 어느 한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양측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위치를 갖고 있다. 남북이 직접 마주 앉기 어려운 국면에서 불가리아는 공동등재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중간 접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밀렌 케레메치예프(Milen Keremedchiev)는 소피아 회동에서 불가리아가 남북 모두와 평화적 정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양측에 외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발언은 불가리아가 남북 공동등재를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남북 사이의 공식 접촉이 막힌 상황에서, 불가리아가 태권도 공동등재 논의를 문화유산 의제로 이어갈 수 있는 제3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슬라비 비네프(Slavi Binev·Слави Бинев)는 불가리아 태권도계와 유럽 스포츠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물로 움직였다. 비네프는 태권도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남북 사이의 소통 통로이자 유네스코의 평화 가치와 맞닿은 문화로 설명했다. 소피아 회동에서 불가리아의 역할은 외교부 청사만의 언어로 구성되지 않았다. 태권도계 네트워크, 유럽 스포츠 인맥, 문화외교의 상징성이 함께 작동했다.

[태권도, 소피아 회동②] 불가리아가 움직인 이유, 남북 공동등재 논의의 유럽 채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키틴 무뇨즈(Kitín Muñoz) 유네스코 친선대사의 참여도 불가리아 채널의 성격을 넓혔다. 유네스코 등재는 국가와 유네스코 절차가 움직이는 제도 영역이지만, 국제사회 설득 과정에서는 친선대사와 문화외교 네트워크가 상징적 힘을 만든다. 소피아 회동은 태권도계의 민간 요구가 유럽의 문화외교 네트워크와 접속한 장면이었다.

국가유산청은 2026년 3월 31일 유네스코 본부에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 신청서를 먼저 냈고, 북한 신청서는 이미 심사 절차에 들어가 있다. 남북이 같은 이름의 유산을 서로 다른 설명으로 유네스코 절차에 올린 상황에서, 불가리아 채널은 경쟁 구도를 협의 구도로 바꿀 수 있는 외교적 여지를 보여준다.

소피아 회동에서 공동 신청과 공동등재 필요성이 강조된 대목은 정확히 다뤄야 한다. 한국과 북한의 개별 신청은 이미 유네스코 절차에 존재한다. 단독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면 절차 설명이 흔들린다. 불가리아 측의 발언은 이미 제출된 남북 신청서를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 방향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외교적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태권도, 소피아 회동②] 불가리아가 움직인 이유, 남북 공동등재 논의의 유럽 채널. (왼쪽부터) 시메온 하산 무뇨즈 왕자, 슬라브 비네프 (Slav Binev)불가리아 태권도협회장, 최재춘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장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8년 씨름 공동등재는 불가리아 채널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선례다. 남북은 씨름을 각각 신청했지만, 유네스코 사무국 검토와 남북의 공동등재 요청, 정부 외교가 맞물리며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긴급안건으로 상정됐다. 24개 위원국은 만장일치로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을 남북 공동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태권도는 씨름보다 제도 지형이 복잡하다. 한국의 신청 명칭은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이고, 북한의 신청 명칭은 전통무술 태권도다. 남측에는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진흥재단의 제도망이 있고, 북측에는 ITF 계열 전승 체계가 있다. 올림픽 종목으로 세계화된 스포츠 이미지와 도장 공동체의 생활문화, 남북의 역사적 전승 논리가 한 이름 안에서 겹친다.

불가리아 채널은 이 복잡한 조건 때문에 더 주목된다. 남북 당국이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3국의 회동은 공식 협상의 대체물이 아니라 예비 접촉의 형식이 될 수 있다. 태권도계 인사, 유네스코 친선대사, 불가리아 외교 경험자, 유럽 스포츠 네트워크가 함께 움직이면 남북 공동등재 논의를 정치 현안보다 문화유산 의제로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최재춘 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장은 불가리아 한국대사관 김동배 대사의 초청으로 관저에서  김동배대사와 슬라비 비네프회장 그리고 대사관 직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권도 공동등재 논의에서 불가리아가 가진 장점은 균형감이다. 불가리아는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한국과 제도권 관계를 이어왔고, 북한과도 외교 채널을 유지해왔다. 남북 어느 한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양측에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위치는 흔하지 않다. 소피아 회동은 이 위치를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논의에 적용한 첫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최재춘(Che Chun Choi) 코리아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장이 소피아에서 만난 대상도 단순한 현지 태권도계가 아니었다. 슬라비 비네프의 스포츠 네트워크, 키틴 무뇨즈의 유네스코 친선대사 네트워크, 밀렌 케레메치예프의 외교 경험, 브라나 레지던스의 상징 공간이 한자리에 놓였다. 국내에서 쌓아온 민간 운동은 소피아에서 유럽의 복합 네트워크와 접속했다.

한국 정부가 살펴야 할 지점은 소피아 회동의 상징성보다 채널의 활용 가능성이다. 민간 네트워크가 만든 접촉면을 유네스코 사무국, 회원국 설득, 북한 신청 절차, 한국 신청서 보완 작업과 어떻게 연결할지 정리해야 한다. 불가리아 채널은 독자적으로 등재를 성사시키는 길이 아니라, 남북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 논의를 공식 절차로 옮기기 위한 보조 통로다.

[태권도, 소피아 회동②] 불가리아가 움직인 이유, 남북 공동등재 논의의 유럽 채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불가리아는 태권도 공동등재의 결정권자가 아니다. 남북의 동의, 유네스코 절차,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 북한의 호응, 태권도 전승 공동체의 참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소피아 회동이 보여준 것은 결정권이 아니라 접촉면이다. 남북이 직접 마주 앉기 어려운 국면에서, 유럽의 제3 공간이 문화유산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태권도 공동등재 논의는 소피아를 거치며 한 단계 넓어졌다. 국내 캠페인과 정부 신청서, 남북의 개별 유네스코 절차 위에 불가리아라는 유럽 채널이 더해졌다. 브라나 레지던스 회동은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논의가 한국 내부의 호소나 남북 양자 구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남은 과제는 불가리아에서 열린 접촉면을 유네스코 절차와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 안으로 옮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