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소피아 회동③] 브라나 이후 정부가 움직일 시간, 민간 접점을 유네스코 외교로
소피아에서 열린 유럽 채널, 이제는 제도권 외교와 만날 단계 북한 선행 신청·한국 신청서·부산 세계유산위원회까지 하나의 일정표로 관리해야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브라나 레지던스 회동 이후 태권도 유네스코 남북 공동등재 논의는 민간 네트워크의 장면을 넘어 정부 외교의 선택지로 옮겨가고 있다. 소피아에서 만들어진 접점은 최재춘(Che Chun Choi) 코리아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장의 민간외교, 슬라비 비네프(Slavi Binev·Слави Бинев) 불가리아 태권도·정치 네트워크, 키틴 무뇨즈(Kitín Muñoz) 유네스코 친선대사 네트워크가 맞물린 결과였다. 브라나 이후의 초점은 분명하다. 민간이 만든 국제 접점을 유네스코 절차와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 안으로 옮기는 일이다.
국가유산청은 2026년 3월 31일 유네스코 본부에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북한은 2024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 신청서를 먼저 냈고, 현재 심사 절차에 들어가 있다. 한국 신청서의 등재 여부는 2028년 12월 열리는 제2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남북이 같은 이름의 유산을 서로 다른 설명으로 유네스코 절차에 올린 상황은 단순한 경쟁 구도로만 처리하기 어렵다. 한국 신청서의 핵심은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이고, 북한 신청서의 핵심은 전통무술 태권도다. 이름은 같지만 설명의 출발점이 다르다. 한국 정부가 소피아 이후 검토해야 할 방향은 별도 등재, 공동등재, 확장등재를 모두 포함한 복수의 경로다.
태권도진흥재단은 태권도가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를 위한 차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됐고, 신청서 보완과 영상 제작 과정에서 태권도 단체,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과 협력해왔다고 밝혔다. 신청서 작성 단계의 협력은 이미 진행됐다. 소피아 이후에는 신청서 제출 이후의 외교 협력, 유네스코 사무국 접촉, 회원국 설득, 북한 신청 절차 대응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실은 태권도 공동등재를 남북 평화 구호가 아니라 문화유산 외교 의제로 정리해야 한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이자 세계인이 수련하는 무술이고, 동시에 도장 공동체 안에서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생활문화다. 대통령실의 메시지는 “태권도가 평화를 만든다”는 선언보다 “남북이 공유해온 전승문화를 유네스코 절차 안에서 함께 다룰 수 있다”는 방향으로 정교해야 한다. 과장된 평화 수사는 유네스코 심사와 회원국 설득에서 오히려 힘을 잃을 수 있다.
외교부는 소피아에서 열린 불가리아 채널을 유네스코 외교의 보조 통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불가리아는 유럽연합 회원국이고, 한국과 외교관계를 이어왔으며, 북한과도 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7월 안드레이 테호프(Andrey Tehov) 주북 불가리아대사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신임장을 제정했다. 남북 모두와 접점을 가진 유럽 국가라는 조건은 태권도 공동등재 논의에서 활용 가능한 외교 자산이다.
통일부는 남북 접촉의 기준과 메시지 수위를 정리해야 한다. 북한의 선행 신청을 경쟁으로만 다룰지,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의 가능성을 열어둘지에 따라 대북 메시지의 문장이 달라진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군사·안보 의제가 아니라 문화유산 절차다. 북한 체제나 북측 태권도 전승을 승인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남북이 공유한 전승 기반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태권도 진흥 정책과 국제 스포츠 외교를 유네스코 무형유산의 언어로 옮겨야 한다.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으로 세계에 알려졌지만, 유네스코 신청서가 앞세운 태권도는 경기 종목보다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에 가깝다. 세계 각국의 도장, 사범, 수련생, 승품·승단 체계, 품새와 겨루기, 예의와 절제의 규범은 스포츠 성과가 아니라 전승 공동체의 자료로 정리돼야 한다.
국가유산청은 신청서 이후의 보완 자료와 보호 조치를 촘촘히 관리해야 한다. 유네스코 심사는 유명세보다 공동체의 참여, 세대 간 전승, 보호 조치, 지속가능성을 본다.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은 강점이지만, 등재 논리를 완성하는 결정적 근거는 아니다. 도장 공동체가 태권도를 어떻게 살아 있는 문화로 이어왔는지, 전승 주체가 등재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향후 보호 조치가 어떻게 작동할지를 보여줘야 한다.
국기원, 태권도진흥재단,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 코리아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의 역할도 다시 정리돼야 한다. 국기원은 승품·승단과 사범 체계, 태권도진흥재단은 연구·전시·교육 기반, 대한태권도협회는 국내 현장 조직, 세계태권도연맹은 국제 스포츠 네트워크, 최재춘 추진단은 남북 공동등재 의제와 민간 국제 접점을 갖고 있다. 각 기관의 자료와 메시지가 흩어지면 유네스코 설득의 힘도 흩어진다.
소피아 회동에서 강조된 공동 신청과 공동등재의 필요성은 정부가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표현이다. 한국과 북한의 개별 신청은 이미 유네스코 절차에 존재한다. 단독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식의 설명은 절차와 맞지 않는다. 소피아 이후 정부의 문장은 “공동등재 또는 확장등재를 위한 조율 가능성”에 맞춰져야 한다. 외교적 명분과 유네스코 절차를 구분해야 기사와 정책 모두 설득력을 얻는다.
2018년 씨름 공동등재는 정부가 참고해야 할 가장 가까운 선례다. 남북은 씨름을 각각 신청했지만, 유네스코 사무국 검토와 남북의 공동등재 요청, 정부 외교가 맞물리며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긴급안건으로 상정됐다. 24개 위원국은 만장일치로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을 남북 공동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태권도는 씨름보다 복잡한 제도 지형을 갖고 있다. 씨름은 남북의 전승 양상과 공동체 의미를 하나의 전통놀이로 설명하기 쉬웠지만, 태권도는 남측의 국기원·세계태권도연맹 체계와 북측의 ITF 계열 체계가 나뉘어 있다. 올림픽 종목으로 세계화된 태권도와 도장 공동체의 생활문화, 북한이 앞세운 전통무술의 설명도 함께 조율해야 한다. 씨름의 선례는 반복할 공식이 아니라 응용해야 할 외교 절차다.
2026년 7월 부산에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기간은 7월 19일부터 29일까지이고, 장소는 부산 벡스코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태권도 등재를 심사하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와 절차가 다르지만, 유네스코 고위 관계자와 회원국 대표단이 한국에 모이는 국제무대라는 점에서 외교적 활용 가치가 있다.
부산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할 일은 태권도 등재 결정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유네스코 절차를 정확히 구분한 상태에서 태권도 공동등재의 취지, 씨름 공동등재의 선례, 한국 신청서의 도장 공동체 전승 논리, 소피아 회동으로 열린 유럽 접점을 설명하는 일이다. 부산은 태권도 심사장이 아니라 유네스코 외교의 설명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불가리아 채널은 부산 일정과도 연결될 수 있다. 슬라비 비네프와 키틴 무뇨즈를 통해 확인된 유럽 네트워크, 불가리아가 가진 남북 외교 채널, 브라나 레지던스 회동의 상징성은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 사무국과 회원국을 설득할 때 보조 자료가 될 수 있다. 소피아에서 열린 접점이 부산에서 설명되고, 부산 이후 유네스코 절차로 이어질 때 민간 네트워크는 외교 자산으로 바뀐다.
최재춘 추진단의 역할도 소피아 이후 달라져야 한다. 2019년부터 이어진 문제 제기, 북측 ITF 계열 접촉, 태권도계 내부 설득, 범국민 서명운동은 국가신청 전 단계에서 큰 힘을 냈다. 국가신청 이후에는 민간 운동의 방식만으로 부족하다. 추진단이 가진 북측 접촉 경험과 국제 네트워크는 정부 부처와 공유 가능한 자료, 접촉 기록, 협의 경로, 전승 공동체 의견으로 정리돼야 한다.
국내 태권도계의 내부 정리도 늦출 수 없다. 공동등재를 두고 남측 태권도의 정체성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고, 북한의 선행 신청을 경쟁으로만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와 태권도계는 공동등재가 남측 태권도의 위상을 낮추는 절차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출발한 태권도의 공동문화적 기반을 국제사회에 설명하는 절차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해외 도장과 세계 태권도인의 참여도 신청서 이후 단계에서 중요해진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은 국가가 보유한 명물의 목록이 아니라 공동체가 실천하고 전승하는 살아 있는 문화의 목록이다. 태권도는 세계 각지에서 수련되지만, 세계화의 규모만으로 등재 논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해외 전승망이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세계 수련생들이 태권도를 어떤 가치와 규범으로 받아들이는지 정리해야 한다.
소피아에서 열린 유럽 접점은 정부 외교의 출발선에 놓였다. 대통령실의 메시지, 외교부의 유네스코 접촉, 통일부의 남북 협의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의 태권도 진흥 정책, 국가유산청의 신청서 보완 작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 부처의 설명과 다른 부처의 설명이 엇갈리면 공동등재 논리는 곧바로 약해진다.
브라나 레지던스에서 만들어진 민간 접점은 태권도 공동등재 논의를 유럽의 외교 공간으로 넓혔다. 소피아 이후의 시간은 이 접점을 실제 절차로 옮기는 단계다. 한국 정부가 불가리아 채널, 유네스코 사무국, 회원국 설득, 남북 협의 가능성, 국내 전승 공동체 자료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을 때 태권도 공동등재 논의는 상징을 넘어 외교의 문서와 절차로 들어갈 수 있다.
태권도 유네스코 남북 공동등재 논의는 소피아에서 다시 움직였다. 최재춘 추진단과 태권도계가 브라나 레지던스에서 국제 접점을 만들었다면, 정부는 그 접점을 유네스코 절차 안으로 옮길 차례다. 태권도 공동등재는 이제 캠페인의 언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신청서, 외교 채널, 회원국 설득, 남북 협의 기준, 전승 공동체 참여가 함께 정리될 때 소피아 회동의 의미도 실제 힘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