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자주국방 최상위 억제 카드로

신채호함 방문 뒤 핵추진잠수함 도입 속도 주문 국산 미사일 싣는 수중 플랫폼, 북한 핵·SLBM과 해양안보 불안에 맞선 장기 전략

2026-05-30     정석헌 기자

 

[KtN 정석헌기자]이재명 대통령이 5월 26일 3,000톤급 잠수함 신채호함에 올랐다. 전투지휘실 보고와 승조원 격려, 기관제어실 점검으로 이어진 일정은 해군 현장 방문의 형식을 띠었지만, 발언의 무게는 핵추진잠수함에 실렸다. 이 대통령은 핵추진잠수함을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핵심 전력으로 규정했다.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는 인공지능, 드론, K방산, 다자 안보 네트워크, 전시작전권 환수와 함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미래 국방력의 핵심 과제로 올렸다.

핵추진잠수함의 힘은 먼저 공격하는 능력보다 상대가 공격을 결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압박에서 나온다. 지상 기지와 공군 활주로, 미사일 발사대는 위성·정찰기·드론·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바다 밑으로 들어간 잠수함은 위치를 찾기 어렵다. 핵추진체계를 갖추면 장기간 잠항과 원거리 기동이 가능해진다. 한국의 지휘부와 주요 군사시설이 먼저 타격받더라도 반격 능력이 수중에 남아 있다는 계산이 생긴다. 핵잠의 억제력은 바로 이 생존성에서 시작된다.

이 대통령이 말한 자주국방도 이 대목에서 구체성을 갖는다. 자주국방은 국산 전차와 전투기, 미사일을 더 많이 보유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이 만든 무기를 한국이 만든 플랫폼에 싣고, 한국이 선택한 해역과 시점에서 운용할 수 있어야 완성된다. 핵추진잠수함은 그 구조를 바다 밑에서 실현하는 전력이다. 은밀한 수중 플랫폼, 장기 잠항을 가능하게 하는 원자로, 국산 정밀타격 미사일과 어뢰, 전투체계와 소나, 통신·정비 인프라가 하나로 묶여야 한다.

신채호함은 핵잠 이전 단계에서 한국 해군이 쌓아온 기술의 실물이다. 신채호함은 도산안창호함, 안무함에 이어 국내에서 독자 설계·건조한 3,000톤급 잠수함이다.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은 한국 해군이 수중전력의 독자 설계와 건조 기술을 축적해온 흐름을 압축한다. 도산안창호함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운용 능력을 갖춘 잠수함으로 평가돼 왔고, 수직발사체계도 장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은 3,000톤급 잠수함의 수직발사관 세부와 SLBM 개발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아 왔다.

핵잠 논의의 본질은 추진체계와 무장체계의 결합이다. 원자로를 단 잠수함만으로 억제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장기간 잠항할 수 있는 플랫폼 위에 국산 수중발사 미사일, 순항미사일, 어뢰, 대함·대지 정밀타격체계가 올라갈 때 핵잠은 자주국방의 최상위 카드가 된다. 정부가 새 핵추진잠수함의 구체 무장 구성을 공개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이 잠수함 독자 설계, 수중발사체계,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 함정 전투체계에서 축적한 기술은 핵잠 사업의 전략적 출발선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핵잠 구상을 밀어 올린 첫 번째 압력이다. 북한은 지상 발사 탄도미사일과 이동식발사대뿐 아니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수중 발사 능력으로 한미 감시·타격망을 흔들어 왔다. 수중 발사 능력이 커질수록 한국은 발사 직전 요격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 북한 잠수함이 기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추적하고, 출항 뒤 은밀하게 따라붙고, 유사시 발사 플랫폼을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핵잠은 북한 지휘부에 바다 밑에도 한국의 반격 능력이 살아 있다는 계산을 강요한다.

이재명 대통령 '수십년 숙원 핵잠 시대 개막'…백악관도 최초 명문화 [종합] 이재명 대통령 한미 관세·안보 팩트시트 발표 사진=2025 11.14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디젤전기 잠수함은 좁은 해역에서 높은 은밀성을 갖지만, 축전지 충전과 공기 공급의 제약을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공기불요추진체계가 잠항 시간을 늘려도 장거리 고속 기동과 장기 체류에는 한계가 남는다. 핵추진잠수함은 원자로로 추진력을 얻기 때문에 물속에서 오래 머물고 더 넓은 해역을 움직일 수 있다. 적 잠수함을 추적하는 대잠작전, 원거리 해상교통로 감시, 동해·남해를 넘어서는 연합작전에서 차이가 벌어진다.

핵추진잠수함은 핵무장과 구분된다. 핵무기를 싣는 전략잠수함과 원자로를 동력으로 쓰는 핵추진잠수함은 다른 개념이다. 한국 정부가 공개한 방향은 핵무기 보유가 아니라 핵추진체계를 통한 장기 잠항과 기동성 확보다. 저농축우라늄 연료, 국내 개발·건조, 국제원자력기구 협의, 미국과의 후속 협의가 함께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잠 사업은 국내 여론전만으로 끝날 수 없다. 핵연료, 검증, 안전조치, 군사기밀 보호, 비확산 체제와의 정합성이 모두 사업의 일부다.

한미동맹은 핵잠 구상의 두 번째 축이다. 2025년 10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과 국방비 증대, 핵추진·재래식 잠수함 도입 문제를 협의했다. 당시 브리핑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잠 건조 등 여건 변화를 언급하며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능력 필요성에 공감했고, 후속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올해 미국 상·하원 대표단 접견에서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핵추진잠수함, 조선 협력은 반복해서 오른 의제였다.

미국의 공감은 출발점이지 결승선이 아니다. 핵잠에는 핵연료, 원자로, 안전조치, 군사기밀, 검증 문제가 따라붙는다. 미국 행정부의 정책 판단, 의회의 동의, 원자력 협력 틀, 국제원자력기구 검증, 비확산 커뮤니티의 신뢰가 함께 필요하다. 한국이 핵잠을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밀어붙이더라도 국제사회가 핵무장 전 단계로 받아들이면 사업은 외교 부담으로 바뀐다. 정부가 저농축우라늄과 비핵 원칙을 강조하는 배경도 이 선을 분명히 긋기 위한 장치다.

호르무즈 해협은 핵잠 논의를 한반도 밖으로 끌어낸다. 한국 경제는 바다를 거쳐 들어오는 원유와 LNG, 원자재 위에 서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와 LNG 흐름이 집중되는 대표적 해상 병목이다. 중동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불안은 군사 뉴스에 그치지 않는다. 해상로가 흔들리면 충격은 해군기지보다 주유소, 발전소, 석유화학 공장, 조선소, 수출 선적 일정에서 먼저 나타난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중동 전쟁 장기화와 물가 안정, 비상경제 대응을 함께 거론한 배경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한국 해군이 모든 해상로를 단독으로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 잠항과 원거리 작전 능력을 갖춘 수중전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연합작전 기여도와 해양안보 협상력은 달라진다. 핵잠은 한반도 방어 전력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물류 안보를 떠받치는 장기 카드로 확장된다.

이재명 대통령 '수십년 숙원 핵잠 시대 개막'…백악관도 최초 명문화 [종합] 이재명 대통령 한미 관세·안보 팩트시트 발표 사진=2025 11.14 mbc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미중 갈등은 세 번째 압력이다. 남중국해, 대만해협, 동중국해, 말라카 해협은 한국 수출입 물동량과 에너지 수송로가 지나는 바다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은 모두 항로와 항만을 통해 움직인다.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 한국 기업은 운임, 보험료, 납기, 원자재 조달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는다. 핵잠은 이런 해양 갈등 속에서 한국이 보호받는 동맹국에 머무르지 않고 해양 질서 유지에 일정한 군사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신호가 된다.

K방산은 네 번째 축이다. 한국 방산은 K9 자주포, K2 전차, 다연장로켓, 방공체계, 항공기, 미사일을 중심으로 수출 기반을 넓혀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무기 재고와 생산능력을 안보의 핵심 지표로 끌어올렸다. 전차, 자주포, 탄약, 방공망, 무인체계의 수요가 커지면서 한국 방산은 납기와 생산력,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혔다. 핵잠 사업은 이 흐름을 수중 전략 플랫폼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다.

지상무기는 생산력과 납기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핵추진잠수함은 조선, 원자력, 미사일, 전투체계, 소나, 전자전, 방사선 안전, 정비보급, 승조원 교육이 결합되는 복합 전략체계다. 한국이 핵잠을 독자적으로 설계·건조하고 국산 무장체계와 통합할 수 있다면, K방산은 빠르게 납품하는 재래식 무기 공급자를 넘어 수중 전략 플랫폼을 설계하는 국가 산업으로 올라선다. 실패하거나 지연될 경우 비용과 기술 리스크, 비확산 논란이 한꺼번에 커진다.

동남권 전략은 핵잠 구상의 산업적 바닥이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에 이어 HMM 이전이 확정됐다고 언급했고, 동남권 투자공사 신설, 항만·항공 인프라 확충, 해양산업 기반 강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부산·울산·경남에는 조선소, 항만, 기자재, 방산 부품, 해양물류 기반이 몰려 있다. 핵추진잠수함은 설계도와 예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조할 조선소, 원자로 안전관리 체계, 정비시설, 항만 보안, 전문 인력, 협력업체 생태계가 함께 필요하다.

전시작전권 환수 발언도 같은 방향에 놓인다. 이 대통령은 “우리 안보는 우리 스스로 책임지고 지키겠다”는 자세를 강조했고, 자주적 국방 의지가 있어야 동맹도 굳건해진다고 했다. 핵잠은 한미동맹을 대체하는 전력이 아니다. 한국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높은 수준의 작전 능력을 갖추겠다는 물적 증거다. 미국에는 방위 부담을 나누는 동맹의 신호이고, 북한에는 수중 은닉 공간이 줄어든다는 압박이며, 국내 산업에는 조선·원자력·방산 고도화의 장기 프로젝트다.

이재명 대통령 '수십년 숙원 핵잠 시대 개막'…백악관도 최초 명문화 [종합] 이재명 대통령 한미 관세·안보 팩트시트 발표 사진=2025 11.14 mbc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내 논쟁은 피할 수 없다. 핵추진잠수함은 막대한 예산과 긴 개발기간을 요구한다. 원자로 안전성, 핵연료 관리, 방사성 폐기물, 항만 안전, 승조원 피폭 관리에 대한 시민적 질문도 뒤따른다. 해군 전력 강화가 육군·공군·사이버·우주·미사일방어 예산을 밀어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핵무장과 무관하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핵연료 확보, 검증 방식, 비용, 안전, 작전개념, 국내 산업 배분을 단계별로 공개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핵잠을 자주국방의 최상위 카드로 꺼낸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은 공격하지 않아도 공격을 막아야 하는 국가다. 북한이 먼저 쏘지 못하게 만들고, 해상로가 흔들려도 경제가 버틸 시간을 벌고, 미중 갈등 속에서도 한국의 전략적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 지상기지가 타격받아도 바다 밑에 남아 있는 반격 능력, 한국산 미사일을 실을 수 있는 은밀한 플랫폼, 장기간 잠항하는 수중 전력이 결합할 때 자주국방은 선언이 아니라 작전 능력이 된다.

신채호함 방문으로 시작된 메시지는 잠수함 한 척의 도입 계획을 넘어섰다. 북한 핵·SLBM 위협, 호르무즈 해협의 에너지 병목,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해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커진 K방산 수요, 동남권 해양산업 재편이 하나의 축으로 모였다. 핵추진잠수함은 그 축의 가장 무거운 이름이다. 남은 과제는 구호가 아니라 설계다. 한미 후속 협의, 국제원자력기구 검증, 저농축우라늄 연료 체계, 국내 건조 역량, 국산 무장 통합, 승조원 양성, 항만·정비 인프라, 사업비 통제가 맞물릴 때 핵잠은 대통령 발언을 넘어 실제 바다 밑 억제력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