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경제⑤] 캣츠아이 이후의 K-팝, 국적보다 제작 시스템
하이브·게펀의 미국 기반 걸그룹 실험, 오디션·트레이닝·팬덤 운영의 현지 생산 모델
[KtN 전성진기자]캣츠아이(KATSEYE)는 12만 건 이상의 지원자 가운데 20명의 참가자를 추려낸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The Debut: Dream Academy)’를 거쳐 탄생했다. 다니엘라(Daniela), 라라(Lara), 마농(Manon), 메간(Megan), 소피아(Sophia), 윤채(Yoonchae)는 미국 애틀랜타·로스앤젤레스·호놀룰루, 스위스 루체른, 필리핀 마닐라, 한국 서울을 배경으로 한 다국적 멤버 구성이다. 활동 거점은 로스앤젤레스다. 한국 기획사의 제작 문법과 미국 레이블의 팝 시장 운영 방식이 결합한 그룹이라는 점에서, 캣츠아이는 K-팝의 미국 진출 방식이 달라졌음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국 K-팝 시장에서 캣츠아이의 의미는 한 팀의 신인 걸그룹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LA)비즈니스센터가 정리한 미국 K-팝 시장 분석에서 캣츠아이는 “한국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보다 “K-팝 제작 시스템의 미국 현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분류된다. 하이브와 게펀 레코드(Geffen Records)는 선발, 훈련, 프로모션, 팬덤 형성을 미국 중심으로 설계했고, 유튜브·위버스·아베마를 통해 선발 과정을 공개했다.
2000년대 후반의 미국 진출은 한국에서 성공한 가수를 영어 음원, 미국 방송, 현지 레이블, 투어 오프닝 무대에 올리는 방식에 가까웠다. 보아(BoA), 원더걸스(Wonder Girls), 비(Rain)의 사례는 미국 팝 시장의 기존 문법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였다. 캣츠아이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한국에서 완성된 그룹을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K-팝의 훈련·퍼포먼스·서사·팬덤 운영 방식을 미국 안에서 생산하는 모델이다.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팬덤 사전 구축 장치였다. 참가자들은 미션을 수행했고, 팬들은 선발 과정부터 멤버 후보를 지켜봤다. 음악을 먼저 내고 시장 반응을 확인하는 전통적 팝 그룹 제작 방식과 달리, 그룹의 탄생 과정 자체가 콘텐츠가 됐다. 팬덤은 데뷔 뒤 모인 것이 아니라 데뷔 전부터 형성됐다. K-팝식 제작 시스템이 강한 이유는 노래와 퍼포먼스를 훈련시키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멤버별 캐릭터, 성장 서사, 팬 커뮤니티, 플랫폼 참여를 한 묶음으로 설계하는 데서 산업적 힘이 나온다.
넷플릭스 다큐시리즈 ‘팝 스타 아카데미: 캣츠아이(Pop Star Academy: KATSEYE)’는 제작 과정을 다시 콘텐츠로 전환했다. 넷플릭스는 이 작품을 하이브와 게펀의 첫 글로벌 걸그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룬 8부작 다큐멘터리로 소개했다. 시청자는 완성된 그룹의 무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트레이닝과 평가, 갈등, 탈락, 최종 선발의 과정을 따라간다. 미국 시청자에게 K-팝은 낯선 외국 음악 장르가 아니라, 스타를 만드는 방식과 팬덤을 조직하는 시스템으로 설명됐다.
캣츠아이의 상업적 성과도 빠르게 쌓였다. 2024년 6월 첫 싱글 ‘Debut’를 냈고, 같은 해 8월 데뷔 EP ‘SIS (Soft Is Strong)’를 발표했다. 2025년 6월에는 두 번째 EP ‘BEAUTIFUL CHAOS’를 발매했으며, 해당 EP는 빌보드 200 차트 4위에 올라 그룹의 첫 톱10 기록을 만들었다. ‘Gnarly’와 ‘Gabriela’는 EP 발매 전후의 흐름을 이끈 싱글로 배치됐다.
2026년 1월 캣츠아이는 빌보드 Hot 100에 세 곡을 동시에 올렸다. ‘Gabriela’는 21위까지 상승했고, ‘Internet Girl’은 29위로 진입했다. ‘Gnarly’도 89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기반 걸그룹이 K-팝식 제작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고, 영어권 팝 시장의 핵심 차트에서 복수 곡을 동시에 움직인 장면은 캣츠아이 실험이 단순한 기획 단계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캣츠아이 모델은 K-팝의 정체성 논쟁도 함께 끌고 왔다. 한국어 가사, 한국인 중심 멤버 구성, 한국 방송 활동을 기준으로 삼으면 캣츠아이는 전통적 의미의 K-팝 그룹과 거리가 있다. 반대로 트레이닝 방식, 퍼포먼스 완성도, 멤버별 서사 설계, 팬덤 플랫폼 운영, 글로벌 오디션 구조를 기준으로 보면 캣츠아이는 K-팝 산업의 핵심 문법을 미국 시장 안에서 구현한 사례다. K-팝을 국적이나 언어가 아니라 제작 시스템으로 읽을 때 캣츠아이의 위치가 분명해진다.
미국 레이블 입장에서도 캣츠아이는 활용 가치가 큰 모델이다. 미국 팝 시장은 솔로 아티스트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고, 걸그룹·보이그룹 제작은 주기적으로 반복됐지만 지속 가능한 팬덤 운영 모델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K-팝은 멤버별 매력, 군무 퍼포먼스, 자체 콘텐츠, 팬 커뮤니티, 굿즈, 투어, 브랜드 협업을 장기간 운영하는 방식에 강점을 갖고 있다. 게펀 같은 미국 레이블이 하이브와 손잡은 이유도 단순히 한국 시장 진입이 아니라 글로벌 팬덤을 설계하는 방법론을 가져오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하이브 입장에서 캣츠아이는 K-팝 시스템의 수출이 아니라 현지 생산 실험이다. 한국에서 아티스트를 키워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현지 멤버를 선발하고 현지 레이블과 함께 훈련시키며 현지 플랫폼에서 팬덤을 형성하는 방식은 다른 차원의 확장이다. K-팝이 미국 밖에서 들어오는 수입 콘텐츠가 아니라 미국 음악산업 내부에서 생산 가능한 제작 포맷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이브·게펀의 글로벌 걸그룹 오디션 페이지는 15~20세 지원자를 대상으로 보컬, 랩, 댄스, 송라이팅, 프로듀싱 분야 지원을 받고 있다. 지원자는 온라인으로 영상을 제출하고, 보컬 또는 랩 영상과 댄스 영상을 기본으로 내야 한다. 오디션 요건 자체가 K-팝형 퍼포먼스 역량과 팝 시장의 창작 역량을 함께 요구하는 구조다. 캣츠아이 이후의 모델이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인재 발굴 파이프라인으로 설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캣츠아이의 등장은 한국 기획사와 미국 레이블의 역할 분담도 바꿨다. 한국 기획사는 트레이닝, 퍼포먼스, 팬덤 운영, 멤버 서사화의 방법론을 제공한다. 미국 레이블은 영어권 음악시장 네트워크, 라디오·플레이리스트·미디어 프로모션, 글로벌 팝 유통망을 담당한다. 어느 한쪽이 보조적 역할을 하는 구조가 아니라 제작과 유통, 훈련과 시장 운영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팬덤 운영 방식도 기존 미국 팝 그룹과 다르다. 캣츠아이는 데뷔 전부터 팬들이 참가자별 서사와 미션을 따라가도록 설계됐다. 데뷔 후에는 음악, 댄스 영상, 멤버 콘텐츠, 다큐멘터리, SNS 숏폼, 팬 커뮤니티가 병렬로 움직인다. 팬덤은 곡을 듣고 끝나는 청취자가 아니라 멤버의 성장 과정, 스타일 변화, 무대 완성도, 그룹 내부 관계까지 소비하는 장기 이용자 기반이 된다. K-팝식 팬덤 경제가 미국 팝 시장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캣츠아이 모델의 부담도 적지 않다. 첫째, 국적과 문화 정체성 논쟁이 계속 따라붙는다. 한국식 제작 시스템을 쓰지만 미국 기반 글로벌 팝 그룹으로 활동할 경우, K-팝 팬덤 안에서는 “K-팝의 확장”과 “K-팝 문법을 활용한 글로벌 팝”이라는 해석이 갈릴 수 있다. 둘째, 훈련 강도와 미성년 참가자 보호 문제도 검증 대상이다. K-팝식 트레이닝이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으로 들어갈수록 노동 환경, 심리적 부담, 공개 경쟁 구조에 대한 비판도 함께 커진다.
셋째, 현지형 제작 모델은 성공할수록 복제 경쟁이 빨라진다. K-팝식 트레이닝과 팬덤 운영이 효과를 입증하면 미국 레이블과 글로벌 플랫폼은 비슷한 구조를 반복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차별화가 약해지면 다국적 멤버 구성과 성장 서사만으로는 장기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음악적 완성도, 멤버별 스타성, 무대 경쟁력, 팬덤 신뢰, 플랫폼 운영의 균형이 장기 생존을 가른다.
캣츠아이는 미국 K-팝 시장의 방향을 바꾼 사례다. 한국 아티스트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시대를 지나, K-팝 제작 시스템이 미국 안에서 글로벌 팝 그룹을 만드는 단계로 이동했다. 국적보다 제작 방식, 언어보다 팬덤 운영, 데뷔보다 데뷔 이전의 서사 설계가 중요해졌다. 2026년 이후 캣츠아이의 성과는 한 팀의 차트 순위가 아니라 K-팝 산업이 미국 음악산업 내부의 생산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