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①] 베트남 숏드라마, K-드라마 수출 공식을 흔드는 1억3700만 모바일 시장
8560만 인터넷 이용자와 틱톡 7610만 성인 도달권…독자 앱보다 세로형 재가공·소셜 유통이 먼저
[KtN 전성진기자]베트남에서 2025년 말 기준 1억3700만 개의 모바일 회선이 운용됐다. 전체 인구보다 많은 접속 단위가 스마트폰 위에 놓여 있다. 인터넷 이용자는 8560만 명, 소셜미디어 이용자 정체성은 7900만 개로 집계됐다. 틱톡 광고가 도달할 수 있는 18세 이상 이용자는 7610만 명에 달했다. 베트남 콘텐츠 시장을 설명하는 첫 숫자는 방송 가구도, 극장 스크린도, 유료 OTT 가입자도 아니다. 2026년 6월 1일 현재 베트남 영상 시장의 출발점은 손안의 모바일 회선과 세로형 영상 소비다.
K-드라마의 동남아 수출 공식도 이 숫자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16부작 드라마를 완성한 뒤 해외 플랫폼에 판매하던 방식만으로는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베트남에서 커지는 콘텐츠는 긴 호흡의 완성작보다 짧은 시간 안에 갈등을 터뜨리고, 다음 회차를 누르게 만들고, 틱톡·유튜브 쇼츠·페이스북 릴스에서 먼저 퍼지는 세로형 드라마다. 한국 콘텐츠 기업이 베트남을 새 시장으로 보려면 수출할 작품 목록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유통 방식과 서사 길이다.
전 세계 숏드라마 시장은 중국발 세로형 드라마 포맷을 따라 빠르게 커졌다. 옴디아(Omdia)는 2025년 글로벌 마이크로드라마 매출이 1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1분 안팎의 회차, 초반 무료 공개, 결정적 장면 직전의 끊기, 결제 또는 광고 시청 유도 방식이 모바일 이용자의 습관과 결합하면서 숏드라마는 부가 콘텐츠가 아니라 독립 산업으로 올라섰다.
앱 시장의 숫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센서타워 집계에서 2025년 1분기 전 세계 숏드라마 앱 다운로드는 3억7000만 건을 넘었다. 2024년 1분기보다 6.2배 증가한 규모다. 2025년 3월 기준 누적 다운로드는 9억5000만 건에 근접했다. ReelShort, DramaBox, DramaWave 같은 플랫폼은 북미에서 결제 모델을 검증한 뒤 동남아시아와 남미로 이용자 확보 경쟁을 넓혔다.
베트남은 글로벌 플랫폼들이 트래픽을 놓고 부딪치는 동남아 전략 시장으로 부상했다. 5월 28일 배포된 ‘베트남 콘텐츠 산업동향 2026년 3호’는 베트남 숏드라마·웹드라마 시장을 최신 동향으로 분석하며, 베트남이 1억3000만 건이 넘는 모바일 통신 가입 수와 안정적인 데이터 인프라를 바탕으로 숏드라마 소비 거점이자 플랫폼 간 트래픽 경쟁 시장으로 떠올랐다고 짚었다.
베트남의 모바일 환경은 숏드라마 포맷과 구조적으로 맞아떨어진다. 스마트폰을 눕히지 않아도 볼 수 있는 9대16 세로형 영상, 편당 1~3분 안팎의 짧은 러닝타임, 매 회차 말미에 배치되는 갈등과 반전은 이동 중 시청과 대기 시간 소비에 최적화돼 있다. 베트남은 PC 기반 유선 인터넷 시대를 길게 거치기보다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이용 환경으로 빠르게 넘어간 시장이다. 오토바이 이동이 많은 도시 생활과 야외 대기 시간이 잦은 생활 리듬도 장시간 TV용 롱폼 콘텐츠보다 짧은 영상 소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드라마 문법도 달라졌다. 기존 K-드라마가 인물 관계를 쌓고 감정선을 누적해 후반부 몰입을 만든다면, 숏드라마는 첫 장면에서 배신, 계약 결혼, 숨겨진 정체, 계급 차, 복수 같은 갈등을 곧장 꺼낸다. 시청자는 인물의 과거를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30초 안에 다음 편을 볼 이유가 생기지 않으면 손가락은 다른 영상으로 넘어간다. 베트남에 들어가는 K-드라마 IP는 16부작을 단순히 잘라내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갈등의 순서를 다시 놓고, 인물의 감정을 짧은 회차 안에서 즉시 드러내는 세로형 편집 문법이 필요하다.
한국 드라마 산업의 장점은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 로맨스, 가족 갈등, 신분 차이, 복수 서사, 배우 중심 팬덤 형성은 K-드라마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영역이다.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에서도 ‘재벌 로맨스’와 강한 멜로드라마 코드가 반응을 얻고 있다. 2025년 하반기 이후 베트남 로컬 미디어 그룹의 자체 숏드라마 IP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YeaH1 그룹의 ‘Tinh Dau La Soi’는 방영 6편 만에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긴 사례로 거론됐다. ‘Nang Kieu Lo Buoc’ 시즌2도 첫 7편 만에 1억5000만 회를 달성하며 베트남 로컬 콘텐츠가 자체 IP 시리즈화 단계로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 시장을 낙관론만으로 보기에는 수익 구조가 만만치 않다. 트래픽은 크지만 결제는 약하다. 동남아시아는 글로벌 숏드라마 앱 다운로드의 약 24%를 차지하지만 실제 인앱 결제 수익 비중은 7% 수준에 그친다. 베트남 모바일 이용자들은 편당 소액 결제에 심리적 저항을 보이고, 유료 결제 구간에서 소셜미디어 비공개 그룹이나 불법 유통 영상으로 빠지는 사례도 발생한다.
수익 모델의 무게중심은 유료 회차 결제보다 광고와 커머스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에서 인앱 결제는 결제 저항과 불법 유통 이탈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광고 기반 보상은 대규모 트래픽을 전제로 작동하고, 유튜브 수익 배분은 이미 익숙한 방식이지만 뷰당 단가가 낮아 압도적인 조회수가 필요하다. 브랜드 간접광고와 틱톡 숍을 활용한 소셜커머스 연계는 제작비 회수와 구매 전환을 동시에 노릴 수 있어 베트남 시장 적합성이 높은 모델로 제시된다.
한국 기업의 초기 진입 방식은 독자 앱 출시보다 소셜미디어 우회 유통에 가까워야 한다. 베트남에서 틱톡과 유튜브 쇼츠, 페이스북 릴스는 홍보 채널에 머물지 않는다. 숏드라마를 처음 만나는 유통 창구이자 시청 반응을 검증하는 실험장이다. 기존 K-드라마 IP의 갈등 장면, 로맨스 전환점, 인물 간 충돌 장면을 세로형으로 재편집해 현지 반응을 확인하고, 조회수와 완주율, 댓글 반응, 공유 속도를 기준으로 파일럿 제작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 비용 부담을 낮춘다.
현지 파트너의 역할은 제작보다 유통 단계에서 더 커진다. 베트남 제작사는 배우 캐스팅, 틱톡 알고리즘 대응, 밈 확산, 자막의 속도감, 현지 광고주 영업망에서 강점을 갖는다. 한국 기업은 IP와 대본 개발, 촬영·편집 역량, 장르 노하우를 제공하고 베트남 파트너는 배우·로케이션·소셜 유통·브랜드 협찬을 맡는 분업 구조가 독자 진출보다 안정적이다. 베트남 고전 문학과 현지 정서를 자체 IP로 바꿔 흥행시킨 로컬 미디어 그룹과의 공동 제작 또는 IP 라이선스 협력은 완성작 직수출보다 현지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규제 비용도 첫 단계부터 계산해야 한다. 베트남 시행령 147호는 온라인 플랫폼과 소셜미디어 사업자에게 당국 요청 후 24시간 안에 위법 콘텐츠,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점검·차단·삭제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을 포함한다. 베트남 이용자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플랫폼 운영은 콘텐츠 삭제 대응, 이용자 식별, 현지 법규 검토, 지식재산권 침해 모니터링을 함께 요구한다. 숏드라마 앱을 직접 내는 방식은 마케팅비뿐 아니라 규제 대응 비용까지 안게 된다.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은 K-콘텐츠의 새 출구이면서 기존 수출 방식을 압박하는 시장이다. 모바일 접속 기반은 충분하고, 세로형 영상 소비는 빠르게 확산됐지만, 낮은 결제 전환율과 해적판 유통, 플랫폼 규제는 수익 구조를 흔든다. 한국 콘텐츠 기업이 베트남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지표는 앱 매출보다 시청 지속률, 공유 속도, 댓글 반응, 브랜드 협찬 가능성, 커머스 전환율이다. 1억3700만 모바일 회선은 K-드라마의 다음 시장을 열고 있지만, 베트남에서 통하는 K-콘텐츠는 완성작 수출보다 1분 안에 시청자를 붙잡는 세로형 문법에서 갈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