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③] YeaH1의 1억 뷰, 베트남 로컬 IP가 만든 역전 구도
‘첫사랑은 늑대’와 ‘Kieu의 실수’ 흥행…중국식 숏드라마 문법을 현지 배우·밈·고전 서사로 재가공
[KtN 전성진기자]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에서 2025년 하반기 가장 눈에 띈 이름은 글로벌 앱이 아니라 현지 미디어 그룹 YeaH1이었다. YeaH1 산하 BigCat이 제작한 ‘Tinh Dau La Soi’(첫사랑은 늑대)는 2025년 10월 29일 유튜브와 틱톡 ‘YeaH1 Shorts’ 채널을 통해 공개된 뒤 방영 6편 만에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겼다. 편당 15분 미만의 세로형 8부작 시리즈가 한국·중국 콘텐츠가 강하게 자리 잡은 베트남 온라인 영상 시장에서 로컬 IP의 존재감을 키운 장면이었다.
‘Tinh Dau La Soi’는 조회수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현지 데이터 분석 업체 유넷미디어(YouNet Media)의 소셜트렌드 집계 기준 36만4000건 이상의 SNS 언급량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소셜트렌드 순위 1위에 올랐다. YeaH1 그룹이 게재한 하퍼스 바자 베트남 기사도 해당 작품이 6편 방영 뒤 1억 조회수를 달성했고 36만4000건 이상의 토론량을 모았다고 전했다.
베트남 숏드라마의 첫 흥행 공식은 중국식 장르 문법에서 출발했다. ‘Tinh Dau La Soi’에는 재벌 로맨스, 신분 차이, 비밀스러운 남자 주인공, 싱글맘, 숨겨진 아이, 늑대인간 판타지 요소가 한꺼번에 들어갔다. 베트남 배우 레하아잉(Le Ha Anh), 강철(Kang Chul), 아역 배우 트룽히에우(Trong Hieu)가 중심을 잡았고, 갈등과 해소는 짧은 회차 안에서 빠르게 반복됐다. 현지 기사에는 ‘Tinh Dau La Soi’가 매 회차 15분 미만으로 구성됐고, 빠른 장면 전환과 연속된 갈등 구조가 시청자를 붙잡았다는 설명이 담겼다.
작품의 완성도만이 흥행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다소 과장된 대사, 낯선 설정, 배우 조합, 짧은 클립으로 재가공하기 쉬운 장면들이 틱톡과 스레드, 페이스북에서 밈의 재료가 됐다. ‘Tinh Dau La Soi’는 잘 만든 장편 드라마의 축소판이라기보다, 시청자가 웃고 따라 하고 공유할 수 있는 모바일용 멜로드라마 상품에 가까웠다. 베트남 로컬 제작사가 숏드라마 시장에서 얻은 성과는 고급 영상미보다 빠른 확산 구조와 현지 반응을 읽는 능력에서 나왔다.
YeaH1의 또 다른 성과는 ‘Nang Kieu Lo Buoc’(Kieu의 실수) 시리즈다. 2025년 초 방영된 시즌1은 누적 조회수 2억 회 이상과 50만 건 이상의 인터랙션을 기록했다. 같은 해 8월 공개된 시즌2는 첫 7편 만에 누적 조회수 1억5000만 회를 달성했다. YeaH1이 다룬 현지 기사도 시즌2가 7편 만에 1억500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12회차는 단일 회차로 1500만 조회수를 넘겼다고 전했다.
‘Nang Kieu Lo Buoc’의 흥행은 베트남 로컬 IP가 단발성 바이럴을 넘어 시즌제 확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시즌1은 사랑, 욕망, 배신, 계급 상승, 여성 주인공의 생존 서사를 앞세웠고, 시즌2는 복수극과 삼각관계, 연속된 반전을 강화했다. YeaH1 기사에는 시즌1이 2억 조회수와 50만 인터랙션을 기록했고, 주인공 끼에우(Kieu)가 상처와 배신을 겪은 뒤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올라서는 서사가 소개됐다.
베트남 고전 문학 ‘Truyen Kieu’의 모티브는 로컬 IP 전략의 중요한 축이다. ‘Nang Kieu Lo Buoc’는 중국 숏드라마식 갈등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베트남 시청자에게 익숙한 이름과 정서, 여성 수난과 욕망의 서사를 현대적 멜로드라마로 바꿨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베트남비즈니스센터의 ‘베트남 콘텐츠 산업동향 2026년 3호’도 해당 시리즈가 베트남 고전 문학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가수 팀(Tim) 등 현지 인지도가 높은 출연진과 정기 편성 전략을 결합해 성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베트남 로컬 제작사의 강점은 장르 선택보다 현지 반응의 처리 속도에서 드러난다. YeaH1은 유튜브와 틱톡, 페이스북 채널을 동시에 활용하며 시청자 댓글, 짧은 클립 반응, 배우 조합에 대한 팬덤 움직임을 곧바로 유통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글로벌 숏드라마 앱이 유료 회차와 광고 소재를 중심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동안, 로컬 제작사는 무료 소셜 채널에서 반응을 먼저 만들고 화제성을 키우는 방식으로 시장을 넓혔다.
한국 콘텐츠 기업이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베트남 시장은 K-드라마 완성작을 기다리는 빈 공간이 아니다. 로컬 제작사는 이미 재벌 로맨스, 복수극, 신분 상승, 비밀 출생, 계약 관계 같은 한국 드라마와 가까운 장르 요소를 짧은 세로형 드라마로 재가공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기존 드라마 IP를 그대로 수출하면 베트남 로컬 숏드라마와 장르적으로 겹치고, 속도와 유통 방식에서는 뒤처질 수 있다.
K-드라마의 경쟁력은 여전히 크다. 한국 드라마는 감정선 설계, 배우 캐스팅, 미장센, 로맨스 장면 구성, 음악 활용에서 오랜 제작 경험을 갖고 있다.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에서 재벌 로맨스와 멜로드라마 코드가 반응을 얻는다는 사실은 한국 IP에 기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도 베트남 시청자들이 ‘재벌 로맨스’ 같은 장르 코드에 강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K-드라마의 로맨스 장르 노하우와 직접적인 접점을 만들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베트남 로컬 IP의 성과는 한국 기업에 협업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말한다. 현지 배우의 인지도, 베트남어 대사의 밈 가능성, 틱톡 클립의 확산 방식, 페이스북 커뮤니티 반응, 정기 공개 시간대는 현지 제작사가 더 빨리 읽는다. 한국 기업은 대본 구조와 장르 완성도, 촬영·편집 역량을 제공하고, 베트남 파트너는 배우 캐스팅과 소셜 유통, 자막·더빙 톤, 현지 광고주 연결을 맡는 분업이 현실적이다.
‘Tinh Dau La Soi’와 ‘Nang Kieu Lo Buoc’의 성과는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의 방향을 압축한다. 베트남 시청자는 중국식 숏드라마 클리셰를 낯설어하지 않지만, 현지 배우와 현지어 밈, 베트남 문화 자산이 붙을 때 더 빠르게 반응한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도 같은 조건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 K-드라마 IP의 장점은 완성작 판매보다 현지 로컬 IP와 결합할 때 커질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 숏드라마 시장의 다음 경쟁은 어느 나라 콘텐츠가 들어오느냐보다, 누가 현지 시청자의 손가락과 댓글, 공유 습관을 더 빨리 읽느냐에서 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