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②] 제작지원 현황, 중간 규모 영화로 옮겨간 정책 무게

순제작비 20억~100억 원 미만 작품군 지원 확대 기획개발·독립예술·AI·국제공동제작까지 넓어진 지원 범위

2026-06-01     김동희 기자
박정민, 백상 3관왕의 여유…청담동 갈라 디너 밝힌 그레이 수트핏  사진=2026. 05.30 2026년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영화 ‘얼굴’로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2026년 한국영화 제작지원은 순제작비 20억~100억 원 미만 작품군으로 정책의 무게가 옮겨갔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26년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예산을 전년 10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늘렸고, 지원 대상도 순제작비 20억 원 이상 100억 원 미만의 장편 실사 극영화로 정했다.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 예산은 25억 원에서 46억 원으로 확대됐다. 독립예술영화 제작·유통·개봉지원, AI 기반 영화 제작지원,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도 올해 지원체계 안에 함께 들어왔다.

2026년 1분기 극장가는 대형 흥행작을 앞세워 반등했다. 관객이 다시 극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흥행이 일부 작품에 몰린 구조도 함께 드러났다. 극장 시장이 안정적으로 회복되려면 관객을 한 번 불러들이는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규모의 한국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개봉하고,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제작지원 현황을 따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진위는 2026년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선정작 16편을 확정했다. 접수작은 334편이었다. 전년 선정작 9편보다 7편 늘어난 규모다. 순제작비 구간별로는 20억 원 이상 30억 원 미만 7편, 30억 원 이상 60억 원 미만 6편, 60억 원 이상 100억 원 미만 3편이 선정됐다. 300편이 넘는 접수 규모는 중간 규모 영화 제작 수요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중간 규모 영화는 한국영화의 장르와 인력을 넓혀온 영역이다. 신인 감독의 첫 장편, 중견 제작사의 새 프로젝트, 스타 의존도가 낮은 장르 영화, 사회적 소재를 다루는 극영화가 이 구간에서 자주 나왔다. 대형 상업영화처럼 막대한 손익분기점을 떠안지 않으면서도, 저예산 영화보다 넓은 제작 규모와 배급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작품군이다. 이 구간이 줄어들면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의 종류도 함께 줄어든다.

팬데믹 이후 투자 환경은 중간 규모 영화에 가장 큰 부담을 남겼다. 극장 관객 수가 줄고, 제작비와 마케팅비 부담이 커지면서 민간 투자는 검증된 지식재산권, 스타 중심 대작, 손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은 저비용 프로젝트로 쏠렸다. 순제작비 20억~100억 원 미만 작품은 제작비를 줄이기에는 규모가 크고, 대작처럼 강한 사전 시장성을 내세우기에는 위험이 크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투자 문턱이 높아진 배경이다.

2026년 선정작에서는 신인 감독의 비중도 두드러졌다. 영진위는 차세대 한국영화를 이끌 신인 감독들의 약진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앞서 2026년 주요 지원사업 계획에서는 최종 선정작의 30% 이상을 신인 감독 작품으로 선정하는 쿼터가 제시됐다. 투자 시장이 위축될수록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와 초기 경력 작품은 출발선에 서기 어렵다. 제작지원은 제작비 일부를 보태는 장치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연출자와 제작사가 시장에 진입하는 통로가 된다.

기획개발지원 확대는 제작지원의 앞단을 보강하는 조치다. 2026년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 예산은 46억 원으로 늘었다. 작가·제작사 부문 공모는 기존 연 1회에서 연 2회로 확대됐다. 작가 부문은 상반기 45편, 하반기 40편을 선정하고, 제작사 부문은 상반기 30편, 하반기 30편을 선정하는 구조다. 제작사 부문은 초고와 각색고를 구분해 편당 2000만 원을 지원한다. 제작사 라인업 개발지원도 새로 도입됐다.

문체부는 2026년 제1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영화 분야에 총 656억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영화계에 공유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개봉 직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나리오 개발, 제작사 내부 검토, 투자 유치, 캐스팅, 배급 협의, 촬영과 후반작업이 이어진 뒤 관객 앞에 선다. 기획개발 단계가 약해지면 몇 년 뒤 극장에 나올 한국영화의 폭도 좁아진다. 올해 기획개발지원 확대는 당장 박스오피스 성적을 바꾸는 정책이라기보다, 2027년 이후 극장에 도착할 작품군을 준비하는 성격이 짙다.

독립예술영화 지원도 제작과 유통, 개봉을 함께 보는 방향으로 정비됐다. 영진위는 2026년 주요 지원사업에서 독립예술영화 제작·유통·개봉지원 예산을 총 205억 원 규모로 제시했다.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유통배급지원, 개봉지원이 함께 정비됐고, 개봉지원 대상도 배급사 중심에서 제작사와 감독 개인으로 넓어졌다. 개봉 이후 수익 발생 시 지원금을 반환해야 했던 의무도 폐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독립예술영화는 제작비 규모가 작아도 관객과 만나기까지의 부담이 크다. 극장 상영 기회가 제한되고, 홍보비와 배급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작지원만으로는 완성된 영화가 관객에게 닿기 어렵다. 유통과 개봉 지원이 함께 붙어야 독립예술영화가 영화제 이후의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 대형 흥행작 중심으로 극장가가 움직일수록 작은 영화에는 상영망과 홍보 노출이 더 절실해진다.

추가경정예산은 영화 분야 지원 규모를 더 키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26년 1회 추경 자료에는 영화 분야 655억9000만 원이 반영됐다. 세부 항목은 국민 영화관람 활성화 271억 원,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 지원 260억 원, 한국영화 첨단 제작 지원 80억 원,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 44억9000만 원이다. 관람 수요를 직접 자극하는 예산과 제작 기반을 보강하는 예산이 같은 묶음 안에 들어간 구조다.

관람 할인은 당장의 극장 수요를 움직이는 정책이다. 제작지원은 관객이 앞으로 볼 영화를 준비하는 정책이다. 두 정책은 같은 영화산업 지원 안에 있지만 작동하는 시간이 다르다. 관람 지원은 단기 처방에 가깝고, 제작지원은 다음 작품군을 만드는 데 더 가까운 역할을 한다. 극장 관객 회복이 일시적 반등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작 단계에서부터 작품의 폭을 넓히는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AI 기반 영화 제작지원은 2026년 제작지원 현황에서 새로 등장한 항목이다. 장편 부문은 134편이 접수됐고 최종 7편이 선정됐다. 지원 총액은 16억 원이다. 선정작에는 ‘국제시장2’, ‘초이스’, ‘몰핑’, ‘만선’, ‘내 다리 내놔라!’, ‘하이재킹’, ‘홀린(Possessed)’이 포함됐다. 장편 심사에서는 AI 기술 전문성과 기술 구현 가능성, 영화 제작 완성 가능성, 개봉 가능성, 기획의도와 제작의지, 총제작비 편성의 타당성, 포트폴리오 완성도 등이 평가 기준으로 제시됐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단편 부문은 접수 규모가 더 컸다. 2026년 AI 기반 영화 제작지원 단편 부문에는 274편이 접수됐고, 최종 32편이 선정됐다. 지원 총액은 6억 원이다. 생성형 AI 활용, 실사 촬영과 AI 결합, SF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제작 방식과 장르가 심사 대상에 올랐다. 단편 심사에서는 AI 기술 이해도, 실제 제작 과정에서 구현 가능한 계획, 제한된 제작 기간과 예산 안에서 완성될 가능성, 기술적 실험성과 영화적 완성도의 균형이 주요 기준으로 다뤄졌다.

AI 제작지원은 새 기술을 쓰는 작품을 늘리는 데서 끝나기 어렵다. 장편 부문 심사총평에는 AI 장편영화의 구체적인 제작 사례와 제작 흐름이 아직 충분하지 않고, 일부 지원작의 AI 활용 기획서와 예산서, 마케팅·배급계획이 모호했다는 지적이 담겼다. 일부 작품은 AI 적용이 기계적이고 편의적으로 보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지원사업이 요구한 기준은 기술 사용 여부가 아니라, 해당 작품이 왜 AI를 필요로 하는지, 제작 과정 안에서 AI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완성된 영화가 관객 앞에 설 수 있는지에 더 가깝다.

국제공동제작 지원도 제작지원 체계 안으로 들어왔다. 영진위는 2026년 주요 지원사업에서 총 30억 원 규모의 영화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을 도입하고, 연 2회 공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에서도 국제공동제작 영화 쿼터가 최대 20% 범위로 적용된다. 국내 극장 시장만으로 제작비 회수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해외 투자, 해외 배급, 해외 창작 인력과의 결합은 점점 더 현실적인 제작 방식이 되고 있다.

국제공동제작은 해외 로케이션을 늘리는 방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획 단계부터 투자 구조, 권리 배분, 배급망, 해외 관객 접근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국내 제작사가 글로벌 플랫폼과 해외 시장을 상대하려면 공동제작 경험과 권리 협상력이 함께 필요하다. 국내 극장 시장의 회수 가능성이 좁아진 상황에서 공동제작은 제작비 조달 방식이자 해외 유통 전략이 될 수 있다.

2026년 제작지원 현황은 한국영화 정책이 단기 관객 회복에서 제작 기반 회복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순제작비 20억~100억 원 미만 작품군 지원은 대작과 저예산 영화 사이의 공백을 겨냥한다. 기획개발지원은 다음 작품의 출발점을 만들고, 독립예술영화 지원은 다양성의 기반을 지킨다. AI 제작지원은 새 기술을 제작 현장에 적용하는 실험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고, 국제공동제작 지원은 국내 시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제작비와 배급 문제를 해외 협력으로 풀어가려는 시도다.

지원 확대의 성과는 예산 규모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선정된 작품이 실제 제작에 들어가고, 투자와 배급을 확보하고, 개봉 이후 관객과 만나는 과정까지 이어져야 한다. 2026년 제작지원은 한국영화가 다시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는가보다 어떤 규모와 장르의 영화가 살아남는가를 가르는 출발점에 서 있다. 극장 반등 이후 남은 과제는 관객을 한 번 더 부르는 일이 아니라, 관객이 계속 선택할 수 있는 한국영화를 꾸준히 내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