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정부 1년②] 중동전쟁 장기화, 한국 외교가 공급망을 붙든 95일
미·이란 협상·호르무즈·레바논 불확실성 속 공관망이 수출 물류 지원망으로 이동
[KtN 박준식기자]청와대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 겸 제11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외교 현안은 국제정세 보고에 머물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호르무즈 해협 개방 조건, 레바논 남부 정세, 에너지·원자재 대체 수급선, 중동행 수출 중소기업의 물류 루트가 한 흐름 안에서 다뤄졌다. 중동전쟁 장기화는 한국 외교의 업무 범위를 안보 현안 관리에서 공급망과 수출 지원, 국내 물가 안정까지 넓혀놓았다.
외교부 보고의 출발점은 미·이란 협상이었다. 미국은 핵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둘러싸고 강화된 조건을 제시했고, 이란은 자체 수정안을 준비하는 동시에 합의 불발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으로 설명됐다. 양측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는 상태로 정리됐다. 종전 협상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협상 테이블 위에는 핵 문제와 해상교통로, 에너지 항로의 안정성이 함께 놓여 있었다.
레바논 남부 정세도 협상 흐름을 흔드는 변수로 보고됐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공세 확대에 대해 이란은 휴전 합의 위반이라고 규정했고, 미국과의 종전 협의를 위한 메시지 교환 중단까지 언급했다. 외교부는 레바논 정세가 미·이란 종전 협상의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고 판단했다. 중동전쟁의 전선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았고, 레바논의 군사 긴장은 호르무즈 해협과 미·이란 협상까지 연결됐다.
한국 정부가 주시한 대목은 협상 자체보다 협상 지연이 국내 경제로 옮겨오는 경로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의 에너지 수급과 직결되는 해상교통로다. 해협 개방 조건이 협상 쟁점으로 남아 있는 동안 원유와 가스, 나프타 수급은 산업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안보와 경제안보가 겹치는 사안이 됐다. 외교부 보고가 산업통상부의 에너지 수급 보고와 맞물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산업통상부는 전쟁 발발 95일째에도 에너지 수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7월까지 원유는 86%, 나프타는 83% 확보됐고, 나프타 가동률도 전쟁 전 평시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설명됐다. 천연가스는 한 차례 공급 불가항력 선언이 있었지만, 연말까지 대체 물량을 확보한 상태로 보고됐다. 에너지 수급 불안이 당장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보고의 문장은 안정보다 관리 지속에 더 가까웠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시점은 여전히 불확실한 변수로 남았다. 산업통상부는 5월까지 운영하기로 했던 비축유 스와프 제도를 한 달 더 연장하기로 했다. 전략경제협력 특사단을 통해 확보한 물량도 차질 없이 도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유 도입 물량, 나프타 가동률, 천연가스 대체 물량은 각각 별개의 숫자처럼 보이지만, 모두 같은 국제정세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석유 가격 안정 대책도 함께 보고됐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2주 연속 소폭 하락했고, 네 차례 선정된 367개 착한 주유소는 리터당 평균 15원 이상 저렴하게 판매한 것으로 설명됐다.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 원칙과 기준을 담은 고시는 조만간 마련하기로 했다. 6월 중에는 정산위원회를 구성해 손실 보전 절차를 준비하겠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중동전쟁은 국제면 기사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었다. 협상 지연은 호르무즈 해협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해협 불확실성은 원유·나프타·천연가스 수급 점검으로 이동했다. 에너지 수급은 다시 주유소 가격과 산업 원가, 장바구니 물가로 내려갔다. 외교 현안과 국내 생활비 사이의 거리는 전쟁 장기화 속에서 빠르게 좁아졌다.
재정경제부 보고에서도 전쟁의 영향은 경제지표로 확인됐다. 국제유가는 90달러대를 유지했고, 환율은 1,500원대에 머문 것으로 설명됐다. 5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3.2% 증가한 877억5,000만 달러로, 1984년 1월 이후 42년 4개월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뿐 아니라 컴퓨터, 조선, 2차전지 등 12개 분야가 수출 증가를 이끈 것으로 보고됐다.
수출 지표는 좋았지만, 같은 보고 안에서 물가 부담도 함께 다뤄졌다. 중동전쟁 여파로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석유류 가격이 올랐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제시됐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등 정책 대응이 없었다면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았을 것으로 봤다. 전쟁의 충격은 수출 실적의 호조를 덮지는 않았지만, 국민 생활비를 압박하는 별도의 경로를 만들고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중동전쟁 장기화로 국민들의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 취약계층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실질소득 감소가 양극화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 비축분 선제 공급, 할인 지원 강화, 할당관세 물량 확대 등 필요한 대책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외교와 물가, 공급망과 취약계층 보호가 한 회의 안에서 이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교부 보고의 실무적 성격은 수출 중소기업 지원에서 더 분명해졌다. 중동행 수출 중소기업들은 제2차 민관합동 수출·수주 외교지원단 회의에서 대체 물류 루트 정보를 요청했다. 외교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현지 공관을 통해 대체 항만에서 활동 중인 물류사 정보를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중소기업에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공관망의 역할이 정세 파악에서 물류 지원으로 확장된 것이다.
현지 공관이 대체 항만과 물류사 정보를 찾는 일은 단순한 민원 지원이 아니다. 중동 항로가 흔들릴 때 기업은 운임 상승, 선적 지연, 계약 이행 차질을 동시에 겪는다. 대기업은 자체 물류망과 해외 법인을 활용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현지 항만·물류 정보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크다. 외교부의 공관망 활용은 국제정세 대응이 기업의 선적 일정과 운송비 부담으로 내려가는 지점을 겨냥한 조치다.
이재명정부 외교의 긍정적 변화는 이 대목에서 읽힌다. 외교 대응은 정상외교의 언어에 갇히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동향을 살피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에너지 대체 물량 확보, 비축유 스와프 연장, 수출 중소기업 대체 물류 지원, 장바구니 물가 대응이 함께 배치됐다. 전쟁 대응 외교가 안보와 경제, 민생을 함께 관리하는 실무형 외교로 확장된 흐름이다.
부처별 보고는 각기 다른 항목처럼 보였다. 외교부는 협상 동향과 대체 물류 정보를 보고했고, 산업통상부는 에너지 확보율과 가격 안정 조치를 설명했다. 재정경제부는 수출과 물가 대책을 제시했다. 회의 전체로 보면 세 부처 보고는 하나의 경제안보 연결망을 이뤘다. 중동 정세는 원유 수급으로, 원유 수급은 주유소 가격으로, 해상교통로 불확실성은 수출기업 물류로 이어졌다.
한국 외교의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 한미 관계와 중동 정세 관리, 에너지 수입 안정, 수출기업 물류 지원, 국내 물가 대응이 동시에 맞물렸다. 정부는 미국 주도의 협상 흐름을 지켜보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현지 공관망을 활용해 기업 지원 창구를 넓히고 있다. 외교의 무게중심은 안보 현안 관리와 경제안보 집행을 함께 떠받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부담도 작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글로벌 공급망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판단이 회의에서 제시됐다. 전쟁이 멈춘다고 물류망이 곧바로 정상화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복 배정, 보험료, 항만 적체, 대체 항로의 비용 부담, 원자재 조달 계약은 협상 타결 이후에도 일정 기간 기업 비용으로 남을 수 있다.
중소기업에는 시간이 곧 비용이다. 대체 항만 정보가 늦어지면 선적 일정이 밀리고, 물류비가 오르면 수출 마진은 줄어든다.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버티면 생산비와 운송비가 동시에 오른다. 외교부의 대체 물류 정보 제공 계획은 이런 부담을 줄이는 초기 조치다. 실제 효과는 현지 공관이 확보한 정보의 구체성, 기업 전달 속도, 관계 부처의 금융·물류 지원 연계에서 갈리게 된다.
6월 2일 회의 이후 외교 대응은 협상 동향 관리와 공급망 지원으로 나뉘어 이어진다. 레바논 정세와 미·이란 종전 협상은 외교부의 상시 점검 대상에 남고, 호르무즈 해협과 에너지 수급은 산업통상부의 비축·대체 물량 관리로 연결된다. 중동행 수출기업 지원은 현지 공관이 파악한 대체 항만과 물류사 정보 제공으로 구체화된다.
출범 1년을 맞은 국민주권정부의 외교는 국제무대의 발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쟁 장기화 속 외교는 원유 확보율, 나프타 가동률, 주유소 가격, 중소기업 물류 루트, 장바구니 물가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2년 차 외교의 실효성은 협상 동향을 읽는 능력뿐 아니라, 해외 공관망과 국내 부처 대응을 얼마나 빠르게 묶어내는지에서 드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