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정부 1년⑥] 법의 기준을 국민에게 여는 국가법령정보 개편

행정심판 재결례 99만여 건 공개, 하급심 판결 접근성·AI 법령 검색까지 번진 법치 인프라 논의

2026-06-02     박준식 기자
이재명 대통령, 종교단체 해산 필요성 재차 언급…법제처 민법 38조로 가능  사진=2025 12.09  KTV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6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 겸 제11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법제처 보고는 법령 정비 실적을 넘어 국민의 정보 접근권으로 이어졌다. 행정심판 재결례와 법령해석 회신 사례 공개, 국가법령정보센터의 AI 전환, 해외 법령정보 검색 개편, 하급심 판결 공개 문제가 한 흐름 안에서 다뤄졌다. 법은 국민에게 적용되는 기준인 만큼, 판단의 근거와 행정 결정의 축적도 국민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방향이 회의 안에서 제시됐다.

법제처는 먼저 공공부문 법적 자문 체계 확대를 보고했다. 자문 대상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넘어 전체 342개 공공기관까지 넓어졌다. 법제처는 국가 행정과 행정 법령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책 수립과 집행이 법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명확히 제시해 적극행정을 뒷받침하겠다고 설명했다. 자문기구 출범 뒤 3주 동안 70여 건의 자문 요청이 접수됐고, 평균 처리 기간은 9일로 보고됐다.

적극행정은 의지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무원이 법적 근거를 확인하지 못하면 새로운 정책은 지연되고, 기관은 감사와 책임 부담을 우려해 기존 관행을 반복하기 쉽다. 법제처 자문 체계 확대는 공공기관이 법령의 경계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더 빠르게 확인하도록 돕는 장치다. 정책 집행의 속도를 높이려면 법적 판단을 사후 책임 추궁의 도구로만 두지 않고, 사전 안내와 조정의 기능으로 활용해야 한다.

법제처 보고의 중심은 국가법령정보 제공이었다. 국민주권정부 출범 뒤 44개 중앙행정기관의 행정심판 재결례와 법령해석 회신 사례 등 약 99만 건이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통합 공개됐다고 보고됐다. 법제처는 이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행정기관 결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행정심판 재결례 공개는 법률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심판은 국민이 행정처분에 다툴 수 있는 주요 절차다. 영업정지, 과징금, 인허가, 복지급여, 보훈, 조세, 출입국, 교육, 환경 등 생활과 생업에 가까운 행정 결정이 여기에 포함된다. 비슷한 사건에서 행정기관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국민은 자신의 권리구제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재결례와 법령해석 회신 사례가 흩어져 있으면 정보의 힘은 기관과 전문가에게 쏠린다. 국민은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고, 기업은 규제 적용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렵다. 담당 공무원도 선례를 확인하지 못하면 같은 사안을 기관마다 다르게 처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99만여 건의 공개는 행정 결정의 기준을 국민과 공무원이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힌 조치다.

이날 회의에서 법 정보 공개는 사법 영역으로도 확장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에게 적용되는 판단 기준은 비밀일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뿐 아니라 판례와 행정 결정례, 해석 사례도 국민이 자신의 행동 기준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라는 인식이었다. 특히 하급심 판결 공개가 충분하지 않으면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국민이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급심 판결은 대법원 판례 못지않게 생활 속 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1심과 2심에서 끝난다. 임대차, 노동, 손해배상, 행정처분, 형사 경미 사건, 가족관계, 소비자 분쟁 등 국민이 실제로 마주하는 법적 분쟁의 상당수는 하급심 판단을 통해 정리된다. 하급심 판결 접근성이 낮으면 국민은 법원이 비슷한 사건을 어느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회의에서는 하급심 판결 접근 방식의 불편도 언급됐다.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재판 결과임에도 판결문 접근은 부분적이고 방식도 어렵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 사법연수원 건물 안의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고, 검색 뒤 메모조차 제한되는 방식이 언급됐다. 공개의 형식은 있어도 실제 접근이 어렵다면 국민의 정보권은 충분히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

판결 공개 확대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충돌하는 의제가 아니다. 법원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더라도 판단 기준은 공적 기록으로 남아 국민에게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정보와 민감정보 보호를 위한 비식별 처리, 사건 유형별 공개 기준, 검색 편의성 보완은 필요하다. 그러나 공개된 재판의 결과가 사실상 전문가와 일부 기관만 접근 가능한 자료로 남아 있다면 법의 예측 가능성은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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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법의 기준을 공개한다는 말은 단순히 자료를 많이 올린다는 뜻이 아니다. 검색할 수 있어야 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사안과 연결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수십만 건의 자료가 축적돼 있어도 키워드를 정확히 모르는 국민은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정보 공개의 다음 단계가 AI 검색과 자연어 기반 법령 안내로 옮겨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제처는 국가법령정보센터, 정부입법지원시스템, 세계법제정보센터의 단계적 AI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해외 법령 정보를 제공하는 세계법제정보센터는 최신 해외 법령을 한국어로 쉽게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6월 말 나올 ISP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도 예산 확보를 추진하고, 안정화 단계를 포함해 3년, 사업비 약 18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는 설명도 제시됐다.

해외 법령정보 개편은 기업 활동과도 연결된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은 현지 인허가, 환경규제, 노동규정, 개인정보, 수출입 절차, 세제 변화에 민감하다. 법령이 각국 언어로 흩어져 있고 업데이트 속도가 다르면 중소기업은 규제 변화에 늦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최신 해외 법령을 한국어로 검색하고 활용하는 체계는 수출 지원과 경제안보의 법제 기반에 해당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의 AI 전환도 논의됐다. 법제처는 현재 국민이 하루 평균 80만 명가량 국가법령정보센터를 이용하고 있으며, 법령 관련 정보를 넣어 AI 전환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7월쯤 자연어로 입력하면 관련 법령 정보를 제공받는 시스템을 국민에게 시범 제공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이 대목에서 논의는 행정 속도로 옮겨갔다. 현재 법률 관련 검색 체계가 키워드 기반에 머물러 있고, 자연어 입력과 생성형 AI 활용을 통해 민원 문서나 생활 속 사례를 법령 정보와 연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왔다. 사람이 최종 검증하는 절차를 두더라도, 이미 공개된 생성형 AI 모델과 추가 학습을 활용하면 더 빠른 적용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질의가 이어졌다.

행정의 디지털 전환에서 자주 나타나는 병목도 언급됐다. 사업을 시작하려면 용역을 주고, 예산을 따지고, 다시 검토를 거치는 동안 절차가 1년 가까이 흐르는 관행이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절차가 쌓이면 기술 적용의 속도는 늦어진다. 법제처의 AI 검색 전환은 장기 시스템 구축과 단기 시범 적용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사안으로 남았다.

AI 법령 검색은 행정 편의 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이 자신의 민원 문서, 처분 통지서, 계약서, 사업 인허가 내용을 입력했을 때 관련 법령과 유사한 행정 결정례, 판례, 법령해석 사례를 찾을 수 있다면 정보 접근의 문턱은 크게 낮아진다. 다만 법률 판단을 기계가 대신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는 관련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도구로 쓰고,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과 기관이 맡는 구조가 필요하다.

법령정보 공개와 AI 검색은 권리구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행정처분을 받은 국민이 비슷한 재결례를 찾고, 소송을 고민하는 사람이 유사 판결을 확인하며, 기업이 해외 법령 변화를 제때 파악할 수 있어야 대응 비용이 줄어든다. 정보가 닫혀 있을수록 권리구제는 전문가에게 의존하게 되고, 법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제도에서 멀어진다.

법의 예측 가능성은 법치주의의 핵심 기반이다. 국민은 어떤 행위가 허용되고 제한되는지 알아야 한다. 기업은 규제의 기준을 알아야 투자와 계약을 결정할 수 있다. 공무원은 기존 해석과 선례를 확인해야 같은 사안을 일관되게 처리할 수 있다. 판결과 재결례, 법령해석 사례가 공개되고 쉽게 검색될수록 법은 권력기관 내부의 문서가 아니라 국민이 활용하는 기준에 가까워진다.

이재명정부의 긍정적 흐름은 법제 개편을 행정 내부의 정비 작업으로만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44개 중앙행정기관의 결정 사례 공개, 공공기관 법적 자문 체계 확대, 국가법령정보센터 AI 전환, 해외 법령정보 개편, 하급심 판결 공개 논의는 모두 국민이 국가의 판단 기준에 접근하는 통로와 연결돼 있다. 법령을 많이 만드는 정부보다, 법의 기준을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쉽게 찾게 하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된 셈이다.

남은 변수도 분명하다. 행정심판 재결례와 법령해석 사례 공개는 양적 확대 이후 품질 관리가 필요하다. 검색 결과가 정확해야 하고,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가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오래된 결정례와 최신 기준이 구분돼야 한다. AI 검색은 환각과 오류를 막기 위한 검증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 하급심 판결 공개는 사법부의 제도 개선과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6월 2일 회의 이후 법제·사법 정보 공개 논의는 세 갈래로 이어진다. 법제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와 세계법제정보센터의 AI 전환을 추진하고, 공공부문 법적 자문 체계를 통해 적극행정의 법적 기반을 넓히게 된다. 행정기관 결정례 공개는 통합 검색과 품질 관리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하급심 판결 접근성 개선은 사법부와 국회, 정부가 각각의 권한 안에서 제도적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사안으로 남는다.

출범 1년을 맞은 국민주권정부의 법제 논의는 법을 더 많이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국민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국민이 찾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 행정심판 재결례, 법령해석 회신 사례, 하급심 판결, 해외 법령정보, AI 검색 체계가 서로 연결될수록 법치의 기준은 기관 내부의 자료실에서 국민 생활 가까이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