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인사이트 김주덕④] K-뷰티 정책, 판촉보다 규제 대응
창작자 300개사·소상공인 500개팀 지원 속 안전성 평가·R&D·해외 인증의 무게
[KtN 박준식기자]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12.3% 늘어난 역대 최대 실적이다. 미국 수출액은 22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중국 20억 달러, 일본 11억 달러가 뒤를 이었다. 상위 10개국 비중은 70.7%였다. 수출액이 커지는 동안 시장의 문턱도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안전성 평가제와 새 규제가 시행되면서 제품력 못지않게 규제 대응과 안전성 자료가 수출의 조건으로 올라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보건복지부는 2025년 11월 27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K-뷰티 수출성과 제고 및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화장품은 2023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중소기업 수출품목 1위를 이어갔다. 정부는 성과의 배경으로 기획·생산·유통 전문기업의 분업화, 제조 역량, 한류와 결합한 해외 마케팅을 들었다. 글로벌 보호무역, 비관세 수출규제, 경쟁국 추격은 지속성을 흔드는 요인으로 함께 제시됐다.
2030년까지 청년 뷰티 등 브랜드 창작자 300개사를 발굴하고, 2026년 강한 소상공인 500개팀을 선발하는 방안은 정책의 첫머리에 놓였다. 수출바우처와 수출컨소시엄을 연계하고, 온라인에서 시장성을 확인한 제품을 오프라인 수출상품으로 전환하는 ‘오프라인 첫수출 원클릭 패키지’도 포함됐다. 온라인에서 잘 팔린 제품을 현지 매장과 바이어 앞에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인디 브랜드와 소상공인을 앞세운 지원은 K-뷰티 산업의 실제 구조와 맞물린다. 브랜드 기획자는 온라인 반응을 보고, 제조사는 제품을 빠르게 만들며, 플랫폼은 판매 데이터를 쌓는다. 정부 지원은 민간 생태계의 속도를 수출망으로 연결하는 장치에 가깝다. 첫 수출 문턱은 낮출 수 있다. 해외 시장에서 같은 자리에 남으려면 가격 질서, 정품 유통, 표시광고 관리, 현지 소비자의 반복 구매가 뒤따라야 한다.
K-콘텐츠 연계 마케팅도 정책 안에 남았다. K-팝과 드라마를 활용한 체험전과 판촉전, 현지 인플루언서와 대행사를 활용한 SNS·전문서적·방송매체 홍보 지원이 들어갔다. 한류는 여전히 K-뷰티의 첫 노출을 만드는 통로다. 다만 한류 마케팅은 제품을 알리는 데 강하고, 제품을 오래 팔리게 만드는 일은 별도 역량을 요구한다. 피부에 닿는 제품의 신뢰는 홍보 문구보다 안전성 자료, 품질관리, 성분 설명에서 쌓인다.
지역 거점 사업에는 K-뷰티 클러스터가 들어갔다. 2026년 지방정부 공모를 거쳐 1∼2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2030년까지 8개 안팎 지역으로 넓히는 계획이다. 뷰티 창업기업 제품 중심의 전시와 체험, 글로컬 상권 육성, 향수·방향제 등 수출 확산이 더딘 품목의 상품화 지원도 포함됐다. 해외 관광객 체험 공간인 K-뷰티플레이는 2026년 3개로 늘리고 기존 공간도 리모델링한다.
재외공관을 활용한 해외 거점도 마련된다. 2026년 K-뷰티 진출 거점 재외공관 4곳을 시범 운영하고, 2027년 이후 5개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흥시장 팝업부스는 2025년 4개소에서 2026년 10개소로 늘어난다. 미국과 유럽연합에는 대형 화장품 판매장을 새로 설치하고, K-뷰티 플래그십 스토어는 8개소로 확대된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 중동, 중남미 시장은 같은 판촉 방식으로 묶기 어렵다. 미국은 자외선차단제 등 일부 품목에서 비처방의약품 규정이 걸리고, 유럽은 성분 안전성과 표시 기준이 까다롭다. 동남아는 고온다습한 기후와 가벼운 제형, 중동은 문화·종교 기준과 향·피부톤, 중남미는 유통 파트너와 가격 접근성이 변수로 따라붙는다. 팝업부스와 판매장은 입구를 만들지만, 현지 기준을 맞춘 제품과 문서가 없으면 소비자의 반복 구매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AI와 금융 지원은 K-뷰티 정책의 기술 축에 배치됐다. 정부는 뷰티·헬스케어 제품에 AI 기술을 결합하는 협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2026년 5개 안팎의 과제를 시범 지원하기로 했다. 400억 원 규모의 K-뷰티 펀드 투자, 투자 로드쇼, K-뷰티론·뷰티보증 확대, 제조 스마트화도 함께 제시됐다. 빠른 기획과 제조에 강했던 K-뷰티를 데이터와 기술 기반 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전북 남원에는 천연물 화장품시험검사센터가 들어선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총 190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충북 오송에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총 236억 원 규모의 글로벌 클린화장품 산업화 지원센터가 구축된다. 원료·생산·포장을 아우르는 클린 화장품 기술지원 인프라다. 원료 양산 시설·장비 지원, 고부가가치 신소재 연구, 미래화장품 개발도 정책 항목에 담겼다.
피부와 유전체 데이터도 수출 정책의 일부가 됐다. 19개국 약 1만6000명의 피부·유전체 정보를 수집·분석해 제공하는 사업을 확대하고, 2026년에는 신흥국 약 500명의 피부 특성 정보를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수출국별 피부 특성에 맞춘 제품 개발을 돕겠다는 취지다. K-뷰티가 같은 제품을 여러 나라에 보내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시장별 피부 특성과 기후, 사용 습관을 제품 개발 단계에서 다뤄야 한다.
규제 대응 항목은 이번 대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목이다. 정부는 2026년부터 미국에서 비처방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자외선차단제 등 화장품을 대상으로 FDA 제조소 등록을 지원한다. 화장품 다빈도 성분의 안전성 평가자료를 생산해 수출 중소기업에 제공하고, 안전성 평가 전문인력을 연간 약 500명 양성하는 교육사업도 지속 추진한다. 화장품 원료 안전성 정보와 국가별 시장·규제 정보를 AI로 통합 제공하는 사업도 들어갔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김주덕 석좌교수의 정책 제언은 이 대목과 맞물린다. 김주덕 석좌교수는 해외 선진국 수준의 규제 완화, 효능 중심 체계 검토, 전략적 R&D 투자, 기술 주도형 경쟁체제 전환을 정부에 제안했다. 기능성화장품 중심의 제한된 범주를 넘어 과학적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효능을 인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규제 완화는 안전 기준을 낮추자는 뜻으로 읽기 어렵다. 김주덕 석좌교수의 제언은 제품이 주장하는 효능을 과학적 근거와 임상 자료로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요구하는 쪽에 가깝다. 해외 시장에서는 기능성 표현 하나도 국가별 제도 안에서 다르게 읽힌다. 국내에서 통했던 문구가 해외 유통망에서는 곧바로 수정 대상이 될 수 있다. 효능을 말하려면 실험과 자료, 표시 기준을 함께 갖춰야 한다.
기초 소재 개발과 중장기 효능 검증도 김주덕 석좌교수가 정부에 요구한 대목이다. 민간 기업, 특히 중소 브랜드가 장기간 임상과 원료 연구를 자체적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창작자와 소상공인의 수출을 돕는다면, 판촉비와 전시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원료 안전성 자료, 효능 평가 방법, 장기 사용 데이터, 해외 인증 컨설팅이 함께 가야 한다.
기업을 향한 주문도 같은 방향이다. 김주덕 석좌교수는 일회성 제품 출시보다 지속가능한 브랜드 전략, 품질 안정성, 핵심 기술, 장기 제품 라인업을 강조했다. 정부가 창작자와 소상공인을 발굴해도 기업 내부에 원료 이해, 효능 근거, 품질관리, 해외 규제 대응 능력이 쌓이지 않으면 수출 제품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첫 수출은 지원사업으로 가능해도 반복 구매와 현지 신뢰는 기업의 관리 역량에서 갈린다.
K-뷰티 정책은 창작자 발굴과 수출 지원을 넘어 안전성, 원료, 데이터, AI, 인력 양성까지 포함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300개사와 500개팀이라는 숫자는 진입로를 넓히는 장치다. 4개 재외공관, 10개 팝업부스, 8개 플래그십 스토어는 해외 접점을 늘리는 장치다. 수출 시장에서 오래 남는 브랜드는 그다음 층위에서 나온다. 안전성 평가자료, 효능 근거, 원천기술, 현지 규제 대응, 품질관리 체계를 갖춘 기업이 해외 유통망 안에서 자리를 지킨다.
2025년 114억 달러 수출은 K-뷰티의 외형을 키웠다. 이재명 정부의 K-뷰티 정책은 민간 생태계의 속도를 제도와 수출 지원망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판촉과 거점 확대는 시장의 문을 열 수 있다. 해외 시장 안에서 오래 팔리는 제품은 안전성과 효능을 설명할 자료, 현지 제도를 읽는 인력, 원료와 기술에 대한 투자에서 나온다. K-뷰티 지원 정책의 무게도 이제 행사와 홍보보다 규제 대응, R&D, 안전성 평가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