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인사이트 김주덕⑤] K-뷰티 신흥시장, 한류 뒤에 오는 현지화
동남아·중동·중남미·아프리카로 넓어지는 수출 지도, 피부톤·기후·규제·유통이 가르는 재구매
[KtN 박준식기자]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수출액은 22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중국 20억 달러, 일본 11억 달러가 뒤를 이었다. 상위 10개국 비중은 70.7%였다. 아랍에미리트와 폴란드는 수출 증가세를 보이며 각각 8위와 9위에 올랐다. K-뷰티 수출의 중심축이 미국과 중국, 일본에 놓여 있는 가운데 신흥권 시장도 수출 지도 안으로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중국 시장의 비중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K-뷰티는 여러 시장을 동시에 두드리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해외 화장품 홍보 팝업부스 운영지원 사업도 중국 수출 감소와 유럽,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 수출 증가를 배경으로 삼았다. 지원 대상 권역에는 유럽, 중남미, 아시아, 중동이 함께 들어갔다. 신흥시장 판로 개척과 현지 유통채널 확대가 정책 사업의 전면에 놓인 이유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김주덕 석좌교수는 K-뷰티의 글로벌 확장을 설명하며 국가별 차이를 먼저 짚어왔다. 현지화, 클린뷰티, 포용성, 시장별 규제는 K-뷰티가 해외에서 오래 남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제시된다. 한류가 제품의 첫 관심을 만들었다면, 반복구매는 국가별 피부 특성, 생활문화, 규제, 유통 구조를 얼마나 세밀하게 읽느냐에서 갈린다.
동남아 시장의 매대에서는 가벼운 사용감과 빠른 흡수, 고온다습한 기후에 맞는 제형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자외선차단, 진정, 보습, 트러블 케어는 익숙한 수요지만, 무겁고 끈적이는 제형은 일상 사용에서 밀릴 수 있다. 같은 스킨케어 제품이라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소비자가 느끼는 기후와 피부 고민은 다르다. K-뷰티의 장점인 세분화가 현지 언어와 유통 방식 안에서 다시 조정돼야 하는 이유다.
중동 시장에서는 자외선, 건조한 기후, 향 사용 문화, 종교·문화 기준이 함께 움직인다. 향수와 방향 제품의 수요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성분 기준과 인증, 유통 파트너, 현지 소비자의 사용 습관을 함께 봐야 한다. 색조 제품은 피부톤과 표현 방식, 베이스 메이크업의 색상 폭을 더 넓게 요구받는다. 스킨케어는 보습과 장벽관리, 자외선 대응을 앞세울 수 있지만, 제품 설명과 효능 표현은 현지 제도 안에서 조정돼야 한다.
중남미 시장에서는 가격 접근성과 유통망이 먼저 부딪힌다. 한국 제품에 대한 호감과 한류 노출이 있어도 소비자의 구매력, 현지 통관, 오프라인 유통 파트너, 온라인 판매망이 맞지 않으면 시장 안착은 쉽지 않다. 멕시코와 브라질은 2025년 해외 팝업부스 지원사업의 수출 유망국가로 포함됐다. 팝업과 체험 행사는 제품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장기 판매는 현지 리테일과 가격 운영, 재고 관리, 소비자 대응에서 결정된다.
아프리카 시장에서는 피부톤과 기후, 유통 접근성이 제품 전략을 바꾼다. 베이스 메이크업은 더 넓은 색상 폭을 요구받고, 스킨케어는 강한 자외선과 건조·고온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도시별 구매력과 유통 인프라 차이도 크다. 한류 이미지로 첫 관심을 얻더라도, 현지 소비자가 실제로 살 수 있는 가격과 채널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품은 일회성 노출에 머문다.
색조 제품의 현지화는 단순히 인기 색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피부톤, 피부색 표현, 메이크업 강도, 종교·문화적 기준, 직장과 학교에서 허용되는 미감이 모두 다르다. 한국식 쿠션과 립이 K-뷰티의 상징이 됐지만, 해외 시장에서 같은 색상과 같은 톤만 반복하면 포용성의 한계가 드러난다. 신흥시장 소비자는 K-뷰티를 좋아하면서도 자기 피부와 생활에 맞는 선택지를 요구한다.
스킨케어 제품도 같은 방식으로 조정된다. 진정, 장벽관리, 저자극, 보습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용 환경은 시장마다 달라진다. 고온다습한 지역에서는 가벼운 제형과 산뜻한 마무리가 중요하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보습 지속성과 장벽 보완이 더 크게 읽힌다. 여드름과 색소침착, 민감성, 자외선 노출에 대한 인식도 지역마다 다르다. K-뷰티의 세분화 전략은 이 차이를 제품 개발 단계에서 반영할 때 힘을 갖는다.
클린뷰티와 친환경 흐름도 시장별로 다르게 번역된다. 어떤 시장에서는 천연 유래 원료와 비건 인증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다른 시장에서는 안전성 자료와 알레르기 정보, 포장재 지속가능성이 더 민감하게 다뤄진다. ‘클린’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원료의 출처, 제조 과정, 시험자료, 포장재, 표시 문구가 함께 설명돼야 한다. 정부가 전북 남원 천연물 화장품시험검사센터와 충북 오송 클린 화장품 기술지원 인프라를 구축하는 배경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정부의 수출 지원도 신흥시장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2026년 K-뷰티 진출 거점 재외공관 4곳을 시범 운영하고, 신흥시장 중심 팝업부스는 2025년 4개소에서 2026년 10개소로 늘린다. 미국과 유럽연합에는 대형 화장품 판매장을 새로 설치하고, K-뷰티 플래그십 스토어도 8개소로 확대한다. 판촉과 거점은 시장의 문을 여는 장치지만, 현지 소비자의 재구매는 제품과 서비스의 지속성에서 만들어진다.
19개국 약 1만6000명의 피부·유전체 정보를 수집·분석해 제공하는 사업은 현지화 논의를 더 구체적으로 만든다. 정부는 2026년 신흥국 약 500명의 피부 특성 정보를 추가할 계획도 제시했다. 국가별 피부 특성에 맞춘 제품 개발 지원은 신흥시장 공략을 단순 판촉이 아니라 연구개발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장치다. K-뷰티가 여러 시장에 같은 제품을 보내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피부 데이터와 기후, 사용 습관, 규제 정보를 함께 다뤄야 한다.
김주덕 석좌교수의 화장품 교육론은 해외시장 전략과도 이어진다. 김 석좌교수는 화장품이 기능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소비자의 신뢰와 감정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산업이라고 봤다.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시선, 기술과 감성의 균형, AI 기반 뷰티테크 시대의 융합 역량도 후학에게 강조했다. 현지화는 단순 번역이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과 감각을 이해하는 일에 가깝다.
해외 규제는 신흥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자외선차단제, 미백, 주름개선, 여드름 케어처럼 기능을 강조하는 제품은 국가별 제도 안에서 다르게 분류될 수 있다. 할랄 인증, 비건 표시, 천연 원료 주장, 효능 표현, 성분 제한은 시장마다 다른 문턱을 만든다. 현지 파트너가 있어도 브랜드 내부에 성분 자료와 표시광고 근거, 안전성 평가 자료가 없으면 제품 설명은 흔들린다.
K-콘텐츠는 여전히 강한 출발점이다. 드라마와 음악, 숏폼 영상은 해외 소비자가 한국 화장품을 처음 접하는 계기를 만든다. 그러나 신흥시장 소비자는 더 이상 한류 이미지만으로 제품을 고르지 않는다. 성분표를 읽고, 후기와 가격을 비교하고, 자신의 피부톤과 기후에 맞는지 확인한다. 브랜드가 현지어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면 한류로 열린 관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동남아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의 소비자는 K-뷰티에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어떤 시장은 가벼운 제형과 빠른 배송을 보고, 어떤 시장은 색상 폭과 인증을 본다. 또 다른 시장은 가격과 유통망, 사후 대응을 먼저 확인한다. K-뷰티가 신흥시장에서 오래 팔리려면 제품 하나를 더 빠르게 내는 능력보다 시장마다 다른 질문에 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K-뷰티의 해외시장은 미국과 중국, 일본의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아랍에미리트와 폴란드가 상위 10개국 안에 들어왔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팝업과 판로개척의 대상으로 올라섰다. 한류가 만든 첫 관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흥시장 매대에 남는 제품은 그 뒤의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피부톤과 기후, 성분 기준, 인증, 유통, 가격, 현지 언어가 맞아떨어질 때 K-뷰티는 수출 품목을 넘어 생활 속 반복구매 제품으로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