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SUM 심층기획②]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 통과의 속도를 늦춘 ADVERSUM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가 만든 체류의 시간, 공공 로비에서 작동한 전시의 조건

2026-06-08     박준식 기자
[ADVERSUM 심층기획②]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 통과의 속도를 늦춘 ADVERSUM.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동대문구 아르코(DDM ARCO) 로비 한가운데 흰 가벽이 들어섰다. 안내를 확인하고, 약속을 기다리고, 건물 안팎을 오가던 길 위에 검은 원형 작품과 직사각형 회화, 새장과 깃털, 의자와 검은 천, 차 도구와 원통형 오브제가 놓였다. 2026년 6월 2일부터 7월 28일까지 이어지는 ‘ADVERSUM’은 전용 전시실이 아닌 공공 로비에서 관람객의 발걸음을 늦추는 방식으로 전시를 펼친다.

로비는 작품 감상을 위해 따로 분리된 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은 짧게 머물고 다시 이동한다. 출입구, 안내 동선, 대기 장소, 약속 장소의 기능이 한 공간 안에 섞인다. 관람 순서도 고정돼 있지 않다. ‘ADVERSUM’은 이런 조건을 덜어내지 않고, 이동과 대기가 겹치는 장소 위에 작품을 놓는다.

흰 가벽은 통행을 막는 벽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장치로 놓인다. 관람객은 벽을 따라 걷다가 검은 원형 작품 앞에서 속도를 늦춘다. 직사각형 회화는 이동하는 몸의 옆면에서 다시 나타나고, 바닥 가까이에 놓인 오브제는 고개를 아래로 향하게 한다. 벽면을 보던 시선은 새장과 의자, 차 도구를 거쳐 다시 맞은편 작품으로 옮겨간다.

대리석 질감의 바닥과 높은 층고, 샹들리에가 있는 밝은 공간은 흑백의 대비를 더 강하게 만든다. 검은 사물들은 어두운 전시실에 묻히지 않고 밝은 표면 위에서 윤곽을 드러낸다. 새장과 깃털, 의자와 검은 천은 로비의 장식성에 쉽게 흡수되지 않는다. 밝은 공공 공간 안에서 검은 오브제의 낯선 밀도와 무게가 더 또렷해진다.

[ADVERSUM 심층기획②]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 통과의 속도를 늦춘 ADVERSUM.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바닥 가까이에 놓인 사물들은 로비의 수평적 흐름을 끊는다. 이동하는 사람의 시선은 보통 정면과 안내 표지, 출입구를 향한다. ‘ADVERSUM’의 오브제는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다시 벽면으로 올려 보낸다. 관람객은 작품을 한 번 보고 지나가기보다 위와 아래, 앞과 옆을 번갈아 살핀다. 지나가던 몸이 작품 사이에서 잠시 머무는 몸으로 바뀐다.

공공 로비에는 전시실과 다른 소리가 남는다. 통행 소리, 대기하는 사람의 움직임, 건축 조명, 짧은 체류 시간이 작품 주변을 채운다. ‘ADVERSUM’은 이런 요소를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로비의 일상적 움직임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흰 가벽과 검은 사물을 얹는다. 준비된 관람과 우연한 대면이 같은 장소에서 겹친다.

검은 의자와 새장은 열린 로비 안에서 더 뚜렷한 대비를 만든다. 비어 있는 의자는 실제로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맞물리고, 새장은 개방된 공간 안에서 안과 밖의 경계를 선명하게 만든다. 검은 천은 바닥 가까이에서 무게를 만들고, 깃털은 밝은 표면 위에 가벼움과 잔해의 이미지를 함께 남긴다.

차 도구와 컵, 원통형 용기는 로비의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바꾼다. 로비에서는 손에 든 물건, 짧은 대화, 기다림의 시간이 자연스럽다. 차를 매개로 한 오브제는 작품 감상을 벽 앞의 시선에만 묶지 않는다. 손에 닿는 사물, 향과 맛, 온도와 머무는 시간이 대기의 흐름과 만나 전시의 일부가 된다.

[ADVERSUM 심층기획②]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 통과의 속도를 늦춘 ADVERSUM.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품은 서로 다른 높이에서 관람객을 붙잡는다. 벽면의 원형 작품과 직사각형 회화는 멀리서 먼저 보이고, 바닥 가까이의 새장과 의자, 차 도구는 가까이 다가선 뒤에 시선을 나눈다. 멀리서 보이는 흑백 대비와 가까이에서 만나는 사물의 질감이 로비의 동선을 여러 겹으로 나눈다.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의 공공성은 전시의 문턱도 낮춘다.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과 이동 중에 멈춘 사람이 같은 흰 가벽 앞에 선다. 깊숙한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움직이던 몸 앞에 작품이 먼저 놓이는 방식이다. ‘ADVERSUM’은 관람 태도를 강요하지 않고, 이동 중인 시선을 잠시 붙잡는다.

로비형 전시는 오래 머물 것을 요구하기 어렵다. 짧은 시간 안에 시선을 붙잡고,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구성이 필요하다. 흰 가벽과 검은 작품은 멀리서 먼저 대비를 만들고, 가까이에서는 오브제의 높이와 간격으로 시선을 나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잠시 멈추고, 맞은편을 다시 보며 자신이 선 위치를 확인한다.

동대문구 아르코 로비는 작품을 놓기 위한 빈 배경으로 남지 않는다. 통과의 장소는 흰 가벽과 검은 오브제 사이에서 체류의 장소로 바뀐다. 밝은 공공 공간 안에 놓인 흑백의 구조는 관람객의 발걸음과 시선을 조정하고, 로비의 일상 위에 전시의 시간을 겹쳐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