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SUM 심층기획③] 임하나 작가, 검은 새장과 깃털로 빚은 역경의 물성
의자·검은 천·가지 오브제가 만든 갇힘과 이탈, 부재와 생장의 설치 언어
[KtN 박준식기자]검은 의자 위로 어두운 천이 내려앉았다. 새장과 깃털, 가지 형태의 오브제가 주변을 둘렀고, 벽면의 검은 원형 작품은 바닥 가까이에 놓인 사물들과 시선을 나눈다. 동대문구 아르코(DDM ARCO)에서 열리는 ‘ADVERSUM’에서 임하나 작가는 역경을 설명문으로 풀지 않는다. 검은 사물의 무게, 비어 있는 자리, 갇힌 형태, 떨어진 깃털이 관람객을 작품 앞에 세운다.
새장은 임하나 작가의 설치에서 가장 먼저 경계를 만든다. 열린 전시장 안에 놓였지만, 새장이라는 사물은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관람객은 새장 안의 내용보다 새장이 만드는 구획을 먼저 의식한다. 들어갈 수 있는 자리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한 사물 안에 겹치며, 압박의 감각이 말보다 앞서 다가온다.
깃털은 새장 옆에서 다른 결을 만든다. 날개와 비행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지만, 바닥 가까이에 놓인 순간 가벼움만 남지 않는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흔적, 지나간 움직임, 더는 날지 않는 잔해의 이미지가 함께 생긴다. 새장과 깃털이 나란히 놓이면서 자유의 상징과 붙잡힌 상태가 한 공간 안에서 부딪힌다. 임하나 작가의 깃털은 장식적 부드러움보다 사라진 움직임의 흔적에 가깝다.
의자는 사람이 앉기 위한 가구에서 벗어나 부재를 남기는 자리로 바뀐다. 검은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빈자리는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고, 사라진 몸의 자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의자는 휴식을 권하지 않는다. 누군가 떠난 뒤 남은 자리처럼 놓이며, 관람객에게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을 요구한다.
검은 천은 의자와 바닥 사이에서 설치의 무게를 낮춘다. 천은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만들면서도 바닥 위에 어두운 면을 넓힌다. 밝은 전시장 조건 속에서 검은 천은 주변의 빛을 흡수하듯 놓이고, 의자와 오브제의 중심을 아래로 끌어내린다. 바닥에 닿은 천의 무게는 설치 전체를 낮고 무겁게 만든다.
가지 형태의 오브제는 정지된 사물들 사이에 움직임의 선을 넣는다. 가지는 자라나는 형상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얽히고 걸리는 구조로 읽힌다. 뻗어 나가는 선과 서로 엉키는 선이 함께 보이면서 생장과 구속의 감각이 분리되지 않는다. 임하나 작가의 가지는 자연의 장식이 아니라, 빠져나가려는 힘과 다시 붙잡히는 힘이 겹친 형태다.
작품명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설치를 읽는 중요한 단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는 얽힘과 단번에 끊어내는 결단의 이미지를 함께 품는다. 전시장 안의 새장, 깃털, 의자, 검은 천, 가지 형태의 사물도 하나의 이야기로 매끈하게 풀리지 않는다. 사물들은 한데 묶인 듯 보이면서도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한다. 관람객은 얽힘을 곧장 해소하기보다 사물 앞에서 관계를 더듬게 된다.
임하나 작가는 회화의 표면을 설치, 음악, 차, 향, 동선으로 넓혀온 작업을 이어왔다. ‘ADVERSUM’에서는 감각의 확장이 검은 사물의 밀도 안으로 모인다. 작품은 움직임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객의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빈 의자와 새장 앞에 몸을 세우며, 검은 천과 가지의 윤곽을 따라가게 만든다.
검은색도 하나의 의미로만 머물지 않는다. 의자의 검정은 부재와 정지를 남기고, 천의 검정은 바닥에 그림자 같은 면을 만든다. 새장과 가지 주변의 검정은 선과 경계를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임하나 작가의 검은 오브제는 어둠을 과장하지 않는다. 밝은 공간 속에서 사물의 윤곽을 선명하게 세우며, 관람객의 시선을 낮은 곳에 붙잡아 둔다.
벽면의 원형 작품은 바닥의 사물들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같은 흑백의 긴장을 만든다. 원형은 닫힌 세계처럼 보이고, 새장과 의자, 검은 천은 닫힘의 감각을 바닥 가까이에서 다시 받아낸다. 관람객의 시선은 벽면에 걸린 원형에서 출발해 새장과 의자, 깃털과 가지로 내려온다. 작품은 한 점의 이미지로 끝나지 않고, 시선이 움직이는 경로 안에서 설치 전체로 확장된다.
임하나 작가의 사물들은 익숙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전시장 안에서는 쓰임이 조금씩 비껴난다. 새장은 새를 위한 물건에서 경계를 드러내는 사물이 되고, 의자는 앉는 가구에서 부재를 남기는 자리가 된다. 깃털은 장식이 아니라 떨어진 흔적이 되고, 천은 덮는 물건이 아니라 무게를 만드는 표면이 된다. 관람객은 사물의 원래 쓰임을 떠올리면서도 작품 앞에 선 자신의 위치를 다시 의식한다.
임하나 작가의 설치가 강하게 남는 이유는 거대한 규모나 화려한 장치에 있지 않다. 새장과 깃털, 의자와 천, 가지 형태의 오브제는 일상에서 완전히 멀리 떨어진 물건들이 아니다. 익숙한 사물들이 검은색과 부재, 얽힘의 배열 안에 들어서면서 낯선 압력을 만든다. 역경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눈앞의 사물 사이에서 관람객을 멈춰 세우는 힘으로 바뀐다.
‘ADVERSUM’ 안에서 임하나 작가의 작업은 역경을 감정적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검은 새장과 깃털, 비어 있는 의자와 천, 얽힌 가지가 조용히 놓이고, 사물 사이에서는 갇힘과 이탈, 부재와 생장의 감각이 겹친다. 관람객은 작품을 지나쳐 가기보다 잠시 멈춰 선다. 임하나 작가의 설치는 풀리지 않는 매듭 앞에서 관람객이 어느 방향을 향해 서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