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팩토리 시대④] 이재명 정부 AI 정책, GPU 확보 이후의 집행 경쟁

공공 연산자원·민간 AI 팩토리·국산 반도체·전력망이 동시에 움직이는 산업정책

2026-06-09     박준식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코스피 8000, 반도체 호황, 자본시장 재평가를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자리였지만, 실제 회견의 중심은 성과보다 위험 관리와 정치적 경고에 가까웠다.  사진=2026. 06.08 kt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6년 6월 8일 네이버클라우드, 삼성SDS, 엘리스그룹을 첨단 GPU 확보·구축·운용지원 사업 참여 기업으로 선정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은 장비 확보 이후의 집행 경쟁으로 들어섰다. 2026년 기준 2조800억 원 규모 사업을 통해 GPU 9704장을 확보하고, 민간 클라우드 기업을 통해 공공과 민간의 AI 수요를 지원하는 구조다. AI 3대 강국 구상은 이제 연산 자원을 어느 기업과 기관에, 어떤 조건으로, 어떤 산업 수익으로 연결할지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 분야 국정운영 방향 안에 AI 3대 강국 도약을 배치했다. AI 인프라와 데이터를 확충하고, 기업과 연구기관, 공공부문이 활용할 수 있는 연산 기반을 넓히는 구상이다. 정부가 말하는 AI 고속도로는 통신망 하나를 가리키지 않는다. 초거대언어모델을 학습시키는 GPU,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클라우드, 공공과 민간의 데이터 활용 체계, 국산 AI반도체 실증, 산업별 AI 전환, 전력망 투자가 함께 움직이는 기반이다.

정부 GPU 사업은 이 구상의 첫 대형 집행안에 가깝다. 정부가 직접 데이터센터를 짓고 모든 GPU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 클라우드 사업자를 선정해 장비 확보와 운용을 맡기는 구조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자체 초거대언어모델과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을 갖고 있고, 삼성SDS는 기업 IT와 클라우드, 업무 시스템 고객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엘리스그룹은 AI 교육과 개발 플랫폼을 통해 대학, 기업, 개발자 수요와 맞닿아 있다. 정부는 이들 사업자를 통해 연구, 공공, 기업의 연산 수요를 흡수하려 한다.

GPU 9704장은 국내 AI 생태계에 적지 않은 규모다. 초거대 AI 모델 학습과 고성능 추론에는 대규모 GPU 클러스터가 필요하다. 국내 스타트업, 대학, 연구기관은 글로벌 빅테크와 비교해 연산 자원 접근성이 낮고 비용 부담도 크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GPU를 확보하면 AI 모델 개발과 산업 실증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다만 확보된 GPU가 실제로 누구에게 배정되는지, 이용료가 어느 수준으로 정해지는지, 중소 AI 기업과 대학 연구자가 어느 정도 쓸 수 있는지가 정책 효과를 가른다.

네이버클라우드의 선정은 앞선 NVIDIA 협력과 바로 연결된다. NAVER는 NVIDIA DSX 기반 AI 팩토리를 세종 GAK 데이터센터에서 확장하고, 55MW 규모에서 시작해 장기적으로 기가와트급으로 키우는 구상을 공개했다. 정부 GPU 사업과 민간 AI 팩토리 투자가 겹치면 NAVER는 자체 HyperCLOVA X 고도화, 소버린 AI 클라우드, 공공 GPU 운용, 해외 AI 인프라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위치에 선다. 국내 플랫폼 기업이 AI 서비스 사업자이면서 인프라 운영자, 정부 사업 수행자로 겹쳐지는 구조다.

삼성SDS의 역할은 기업 AI 전환과 맞닿아 있다. 제조, 금융, 물류, 공공 영역에서 생성형 AI 도입이 늘어나면 기업은 단순 챗봇보다 업무 시스템과 연결되는 AI 서비스를 원한다. 문서, 고객 응대, 보안, 설비 운영, 물류 최적화, 내부 데이터 분석이 AI와 결합된다. 삼성SDS는 기업 IT 시스템과 클라우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GPU 인프라를 산업 현장 수요와 연결할 수 있다. 정부가 민간 클라우드 기업을 선정한 배경에는 장비 조달만이 아니라 실제 업무 현장으로 이어지는 운용 능력이 들어 있다.

엘리스그룹의 참여는 공공 GPU가 대기업 전용 인프라로 굳지 않아야 한다는 점과 연결된다. AI 교육, 실습, 개발 플랫폼을 운영해 온 기업이 사업자에 포함되면 대학, 중소기업, 개발자 커뮤니티의 접근 통로가 넓어질 수 있다. GPU가 확보돼도 절차가 복잡하거나 비용이 높으면 중소 AI 기업의 체감 효과는 제한된다. 정부 사업이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장비 대수보다 이용 구조가 중요하다.

정책의 무게는 “GPU를 얼마나 확보했는가”에서 “GPU를 어떤 산업으로 흘려보내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공공서비스 고도화, 제조업 AI 전환, 과학기술 연구, 의료·법률·미디어·재난안전 서비스가 주요 활용처가 될 수 있다. 산업 현장에 필요한 것은 모델 순위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쓰이는 업무 변화다. 제조업에서는 품질 검사, 설비 예지보전, 공정 최적화, 디지털 트윈이 수요가 될 수 있고, 공공부문에서는 민원, 재난 대응, 복지 행정, 법률 정보 접근성이 연결될 수 있다.

2025년 10월 경주 APEC 계기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NVIDIA 최고경영자 면담은 민간 AI 팩토리와 정부 정책이 만나는 출발선이었다. 당시 삼성전자, SK, 현대차그룹, NAVER가 함께했고, 한국의 AI 인프라와 제조업, 자율주행, 로봇 등 피지컬 AI 협력이 논의됐다. 대통령실 브리핑에는 한국에서 26만 장 이상 GPU 확보를 비롯한 AI 컴퓨팅 인프라 확대 논의가 포함됐다. 이 흐름은 2026년 NAVER, SK하이닉스, SK텔레콤과 NVIDIA의 개별 협력 발표로 이어졌다.

민간 대기업의 AI 팩토리 투자는 정부 재정사업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NAVER는 세종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AI 클라우드와 소버린 AI 수요를 겨냥하고, SK하이닉스는 NVIDIA와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개발하며 반도체 제조 공정에 AI를 적용하려 한다. SK텔레콤은 통신망과 데이터센터를 결합한 AI 클라우드 사업을 추진한다. 삼성과 현대차도 반도체 제조, 자동차, 로봇, 자율주행, 피지컬 AI 영역에서 NVIDIA 협력 축을 넓히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 투자를 따라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대기업은 자체 투자 여력이 있고 NVIDIA와 직접 협력할 수 있다. 공공 재정은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 중소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연산 자원과 실증 환경을 여는 데 쓰여야 한다. 민간 대기업 중심 AI 인프라가 빠르게 커질수록 정부는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는 개발자와 기업의 접근성을 보완해야 한다. GPU 사업의 배정 기준, 이용료, 보안 조건, 성과 공개 방식이 중요한 이유다.

국산 AI반도체와의 균형도 정책의 핵심 변수다. 최신 NVIDIA GPU 확보는 단기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초거대 모델 학습과 고성능 추론에서 NVIDIA 생태계의 우위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재정이 장기간 해외 GPU 구매와 임대 지원에 집중되면 국산 AI반도체 기업의 시장 진입 공간은 좁아질 수 있다. 국산 NPU와 AI 가속기는 대규모 학습보다 특정 추론, 엣지, 온디바이스, 공공·산업 특화 서비스에서 먼저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해외 GPU와 국산 반도체를 경쟁 관계로만 두지 말고 역할이 다른 인프라 포트폴리오로 설계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정책도 AI 인프라와 분리되기 어렵다. SK하이닉스가 NVIDIA와 차세대 메모리 공동개발에 들어가고, 삼성전자가 메모리와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을 동시에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설비투자 지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HBM, 차세대 D램, 첨단 패키징, 소재·부품·장비, 용수, 전력, 전문 인력, 연구개발 세제, 수출통제 대응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AI 인프라 경쟁은 GPU를 사들이는 정책과 반도체 공급망을 키우는 정책을 동시에 압박한다.

전력망은 AI 정책의 가장 현실적인 병목이다. AI 팩토리는 막대한 전력을 쓰는 산업이다. NAVER의 GAK 세종 55MW 확장, 민간 기업들의 기가와트급 AI 팩토리 구상, 정부 GPU 클러스터 구축은 모두 전력 공급과 연결된다. 전력 인입이 지연되거나 냉각·입지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GPU 확보는 실제 서비스 지연으로 이어진다. AI 고속도로가 연산 자원의 문제라면, 에너지 인프라는 그 연산 자원을 계속 돌릴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지역 산업정책도 함께 움직인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수도권 전력망 부담과 입지 제약을 피해 비수도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세종, 울산, 경남, 전북 등 지역 데이터센터와 제조 AI 실증이 늘어나면 지방 산업단지는 AI 인프라의 수요처이자 공급지가 될 수 있다. 데이터센터가 지역에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지역 경제 효과가 생기지는 않는다. 전력과 부지를 쓰는 시설이 지역 제조업의 AI 전환, 대학 인재 양성, 스타트업 성장, 산업 데이터 활용과 연결돼야 한다.

AI 정책은 여러 부처가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다. 과기정통부는 AI 인프라와 모델, 클라우드를 다루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와 전력, 제조업을 맡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AI 활용을 담당하고, 행정안전부와 각 부처는 공공서비스 전환 수요를 갖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금융·의료·통신 규제기관은 데이터 활용과 보안 기준을 정한다. 범부처 조정이 예산과 규제 정비로 이어지지 않으면 AI 정책은 GPU 사업, 반도체 사업, 데이터 사업, 인재 사업으로 흩어질 수 있다.

국제 경쟁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NVIDIA와 빅테크를 중심으로 AI 인프라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고, 중국은 자체 AI 반도체와 클라우드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유럽과 중동은 소버린 AI와 데이터 주권을 앞세워 지역형 AI 인프라를 확보하려 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 통신망, 플랫폼 기업을 함께 보유했지만 초대형 AI 클라우드와 파운데이션 모델 생태계에서는 선두권과 격차가 있다. 정부 GPU 사업은 격차를 줄이기 위한 단기 처방이자 산업 전환의 출발점이다.

정책 성과는 장비 도입 대수보다 활용 구조에서 갈린다. GPU 9704장이 국내 AI 연구와 서비스 개발에 얼마나 열리는지, 이용료가 어느 수준으로 책정되는지, 대학과 중소기업이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지, 독자 AI 모델 개발팀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지, 공공서비스와 제조 현장에서 반복 가능한 수요가 생기는지가 평가 기준이 된다. GPU를 확보하고도 활용률이 낮으면 재정사업은 장비 구매로 끝난다. 활용률이 높아도 국내 모델·서비스·반도체 생태계로 부가가치가 남지 않으면 플랫폼 의존은 더 커진다.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은 GPU 확보 이후의 집행 경쟁으로 들어섰다. NVIDIA와 국내 대기업의 협력은 민간 투자 속도를 높이고, 정부 GPU 사업은 공공과 민간의 연산 자원 부족을 메우는 역할을 맡는다. 다음 평가는 전력망, 데이터센터 입지, 국산 AI반도체 실증, 중소기업 접근성, 공공서비스 적용, 범부처 조정 능력에서 나온다.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는 발표 문구가 아니라 GPU가 실제 산업 생산성과 서비스 경쟁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검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