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enciaga⑤] 발렌시아가 2027 봄, 테크웨어와 스포츠웨어를 쿠튀르 옆에 세우다
브라톱·스웨트셋업·후드 아우터·스니커즈가 바꾼 생활복의 위치
[KtN 박인경기자]발렌시아가 2027 봄 컬렉션에는 드레스와 코트만 놓이지 않았다. 검은 집업 셋업, 로고 브라톱, 스웨트셋업, 후드 아우터, 테크니컬 스니커즈가 긴 드레이프와 와이드 팬츠, 로브형 아우터, 큰 가방 사이에 들어왔다. 옷장은 살롱과 거리, 이브닝웨어와 생활복을 나누기보다 한 줄에 세우는 쪽으로 정리됐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가 디자인한 2027 봄 컬렉션의 제목은 ‘Unsized – A Lightness of Being’이다. 발렌시아가는 이번 시즌에서 테크웨어를 테일러링과 나란히 놓고, 청바지를 이브닝웨어 아래 배치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발렌시아가가 오랫동안 밀어온 거리의 옷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과장된 충격보다 쿠튀르의 부피와 여백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검은 집업 셋업은 가장 직접적인 생활복이다. 상하의가 같은 색과 질감으로 이어지고, 몸에 과하게 붙지 않는 품이 만들어진다. 셋업은 운동복에 가까운 편안함을 떠올리게 하지만, 룩 안에서는 단순한 홈웨어로 보이지 않는다. 큰 가방, 선글라스, 부츠, 정돈된 헤어와 함께 놓이면서 발렌시아가의 외출복 안으로 들어온다.
브라톱은 몸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아이템이다. 로고가 들어간 짧은 상의는 스포츠웨어의 직선적인 감각을 가져오고, 시스루 플리츠 스커트와 부츠는 착장에 이브닝웨어의 긴장감을 더한다. 노출은 가벼운 운동복의 방식으로 시작하지만, 긴 스커트와 강한 신발이 더해지면서 거리의 옷과 밤의 옷 사이에 걸친다.
핫핑크 후드 아우터는 컬렉션의 무채색 흐름을 끊는 룩이다. 블랙, 화이트, 그레이, 브라운 중심의 착장 사이에서 밝은 색의 후드는 기능복의 형태를 빌리면서 색으로 시선을 끌어온다. 후드와 집업, 넉넉한 품은 실용적인 옷의 요소지만, 색의 강도와 큰 실루엣 때문에 평범한 스포츠 아우터와는 거리를 둔다.
스웨트셋업은 발렌시아가가 생활복을 다루는 방식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스웨트셔츠와 팬츠는 가장 편한 옷에 가깝지만, 컬렉션 안에서는 트렌치나 큰 아우터, 가방과 함께 놓이며 외출복의 형태를 얻는다. 편안함을 전면에 놓으면서도, 실제 룩은 집 안의 옷보다 도시의 이동에 맞춰져 있다.
테크니컬 스니커즈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발렌시아가의 신발은 이미 거리의 이미지와 깊게 연결돼 있다. 2027 봄 컬렉션에서 스니커즈는 드레스와 코트, 와이드 팬츠 아래로 들어가면서 착장의 무게를 낮춘다. 굽 높은 구두나 얇은 샌들이 만들었을 법한 긴장 대신, 발과 바닥 사이의 현실감을 남긴다.
테크웨어와 테일러링의 병치는 이번 컬렉션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기능복은 보통 방수성, 활동성, 수납, 보호 같은 목적에서 출발한다. 테일러링은 몸을 정리하고 사회적 격식을 부여한다. 발렌시아가는 두 성격을 분리하지 않고 한 착장 안에 넣는다. 기능복의 표면과 테일러링의 외곽선이 겹치면서, 옷은 편안함과 격식 사이의 중간 지대를 차지한다.
뎀나(Demna) 시기의 발렌시아가는 거리의 옷을 더 거칠고 노골적으로 밀어붙였다. 낡은 듯한 표면, 큰 로고, 과장된 신발, 일상에서 떼어온 물건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었다. 피치올리의 2027 봄 컬렉션은 거리의 옷을 지우지 않는다. 후드, 브라톱, 스웨트셋업, 스니커즈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충격을 앞세우기보다 쿠튀르의 여백과 색, 드레이프 사이에 배치된다.
이 접근이 모두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브라톱과 시스루 스커트, 스웨트셋업과 트렌치, 스니커즈와 드레스의 조합은 룩북에서 선명한 대비를 만들지만 실제 소비자에게는 착용 상황이 애매할 수 있다. 편안한 옷을 표방하면서도 실루엣은 크고, 길이는 길며, 일부 룩은 관리와 이동에서 부담을 남긴다.
발렌시아가 2027 봄 컬렉션의 테크웨어와 스포츠웨어는 쿠튀르를 일상 쪽으로 끌어내리는 장치다. 검은 집업, 브라톱, 후드 아우터, 스웨트셋업, 스니커즈는 화려한 드레스와 큰 코트 사이에서 현실의 옷을 붙든다. 다만 현실과 가까워진다는 말이 곧바로 입기 쉬운 옷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음 평가는 매장에서 소비자가 실제로 움직이고, 앉고, 걷고, 가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