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광고경제③] 광고대행사, 집행 수수료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시장

AI가 미디어 플래닝·소재 제작·성과 보고 자동화, 대행사 역할은 운영 대행에서 플랫폼 검증·성과 설계로 이동

2026-06-23     최기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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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최기형기자]광고대행사가 오랫동안 팔아온 업무의 상당 부분이 AI의 자동화 영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 플래닝, 예산 배분, 타깃 설정, 소재 제작, 성과 보고는 광고대행사의 기본 수익원이었다. 광고주가 플랫폼 안에서 AI 기반 캠페인을 직접 만들고, 예산을 자동 배분하고, 성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환경이 확산되면 대행사가 가져가던 집행 수수료와 운영 수수료의 방어력은 약해진다.

디지털 광고시장에서 대행사는 광고주와 매체 사이의 중간자였다. 광고주는 어느 검색어를 사고, 어느 매체에 배너를 넣고, 어느 소셜 플랫폼에 동영상을 집행할지 대행사와 상의했다. 대행사는 캠페인 목적에 맞춰 예산을 나누고, 소재를 만들고, 매체를 구매하고, 노출·클릭·전환 성과를 정리했다.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다뤄야 하는 광고주에게 대행사는 실행 조직이자 해석 조직이었다.

AI 광고경제에서는 실행의 가치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플랫폼은 광고주에게 자동 타깃팅, 자동 입찰, 자동 소재 조합, 자동 예산 배분 기능을 제공한다. 광고주는 몇 개의 문구와 이미지, 상품 정보만 넣어도 여러 광고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시스템은 소비자 반응을 보며 소재를 바꾸고, 예산을 옮기고, 성과가 좋은 조합을 반복한다. 사람이 캠페인별로 조정하던 많은 일이 플랫폼 내부의 최적화 엔진으로 넘어간다.

맥킨지의 2026년 6월 보고서 ‘The agentic advertising economy: From attention to action’는 광고대행사를 AI 광고경제에서 노출도가 높은 사업자로 분류했다. 미국 광고주와 마케팅 리더 가운데 90% 이상은 이미 AI를 미디어 계획, 예산 설정, 타깃 최적화, 크리에이티브 생성에 쓰고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대행사의 핵심 업무인 플래닝, 구매, 리포팅, 제작이 AI로 빠르게 흔들릴 수 있는 지식노동 영역이라고 짚었다.

집행 중심 대행사는 먼저 압박을 받는다. 광고주가 플랫폼의 자동화 상품을 직접 쓰면 매체 구매 절차는 단순해진다. 검색, 소셜, 동영상, 커머스 광고의 기본 운영은 플랫폼이 제안하는 캠페인 목표와 예산 설정만으로도 가능해진다. 과거에는 대행사의 숙련도가 입찰 전략, 타깃 세분화, 소재 운영에서 차이를 만들었지만, AI 기반 플랫폼은 그런 차이를 제품 기능 안으로 흡수한다.

직접 매체 구매 확대는 대행사 수익구조를 더 좁힌다. 맥킨지 보고서에서 현재 미디어 지출의 52%는 직접 구매, 26%는 대행사 구매, 22%는 프로그램매틱 구매로 제시됐다. 앞으로 12개월 안에 AI 광고 포맷을 직접 구매하겠다는 광고주 비율은 82%에 달했다. 광고주가 AI 네이티브 플랫폼이나 폐쇄형 플랫폼과 직접 거래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대행사의 매체 구매 수수료와 운영 대행 수익은 줄어들 수 있다.

광고대행사가 받던 ‘더 좋은 단가’의 논리도 흔들린다. 과거 대형 대행사는 광고 물량을 모아 매체 협상력을 만들고, 광고주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설명했다. 광고비가 폐쇄형 플랫폼과 AI 네이티브 환경으로 집중되면 단가 협상의 여지는 줄어든다. 플랫폼이 자동화된 입찰과 성과 최적화 시스템을 직접 제공하는 상황에서 대행사가 더 낮은 단가만으로 차별성을 증명하기는 어려워진다.

제작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AI는 카피, 이미지, 짧은 영상, 상품 설명, 랜딩페이지 문구를 빠르게 만든다. 하나의 캠페인에 수십 개, 수백 개의 소재를 조합하고, 소비자 반응에 따라 노출 비중을 바꾼다. 대행사가 장시간을 들여 여러 시안을 만들고, 광고주 검토를 거쳐 집행하던 제작 흐름은 압축된다. 제작 인력의 경쟁력은 소재의 양보다 브랜드 언어, 법적 검토, 플랫폼별 성과 해석, 장기 캠페인 설계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성과 보고 업무도 자동화 압력을 받는다. 광고주는 대시보드에서 노출, 클릭, 전환, 구매 기여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플랫폼은 자체 측정 체계를 통해 캠페인별 결과를 제시한다. 대행사가 월간 보고서로 숫자를 정리하는 방식은 점점 낮은 부가가치 업무가 된다. 광고주가 필요로 하는 것은 숫자의 재가공이 아니라 플랫폼이 제공한 수치가 실제 매출과 브랜드 가치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검증하는 일이다.

광고주에게는 편리함과 불안이 함께 온다. 플랫폼 자동화는 캠페인 운영을 쉽게 만들지만, 어떤 기준으로 광고가 노출되고 예산이 이동했는지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맥킨지 조사에서 광고주의 42%는 AI가 미디어 투자 전략에 가져오는 주요 위험으로 ‘블랙박스 최적화’ 의존을 꼽았다. 자동화가 강해질수록 광고주는 플랫폼 내부 판단에 기대게 되고, 대행사가 대신 확인해야 할 영역은 운영보다 검증으로 바뀐다.

대행사가 남길 수 있는 가치는 여기에서 갈린다. 광고주가 직접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일은 대행사의 주력 상품이 되기 어렵다. 여러 플랫폼의 성과를 비교하고, 플랫폼별 측정 기준의 차이를 해석하고, AI 추천과 자동 입찰이 브랜드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는 업무는 여전히 사람이 맡아야 한다. 광고가 단기 판매에는 기여했지만 장기 브랜드 자산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특정 소비자군을 과도하게 배제하지 않았는지, 규제와 개인정보 기준을 넘지 않았는지 검토하는 역할도 커진다.

국내 대행사들도 같은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포털, 동영상, 숏폼, 커머스, 배달·여행·패션 플랫폼은 광고 상품과 자동화 기능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다. 광고주는 각 플랫폼의 관리자 화면에서 직접 캠페인을 만들고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대행사가 단순 운영 인력으로 남으면 광고주 내부 조직이나 플랫폼 자동화 도구와 직접 경쟁하게 된다. 수수료를 받는 이유를 매달 새로 증명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대형 종합대행사는 데이터와 조직 설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여러 업종의 광고 데이터를 축적했고, 브랜드 전략, 미디어 구매, 제작, 디지털 운영, 리서치 조직을 함께 갖고 있다. 다만 내부 업무가 집행과 보고에 치우쳐 있으면 AI 도구 도입이 비용 절감으로만 끝날 수 있다. 광고주가 원하는 것은 대행사의 내부 효율이 아니라 AI 광고환경에서 더 나은 성과와 더 낮은 위험이다. 대행사가 줄인 인건비가 광고주 가치로 연결되지 않으면 가격 인하 압박만 커진다.

중소 디지털 대행사는 더 빠른 선택을 요구받는다. 검색광고 운영, 소셜 광고 세팅, 소재 변형, 리포트 작성처럼 반복성이 높은 업무는 자동화 속도가 빠르다. 특정 업종의 상품 데이터 관리, 커머스 플랫폼 광고 최적화, 지역 기반 성과 마케팅, 병원·교육·부동산·패션처럼 규제와 소비자 신뢰가 함께 중요한 업종별 전문성은 방어력이 생길 수 있다. 범용 운영 대행보다 업종별 판단과 검증이 붙은 서비스가 남는다.

광고대행사의 가격 모델도 바뀔 수밖에 없다. 시간과 인력 투입량을 기준으로 받는 수수료는 AI 자동화와 잘 맞지 않는다. 같은 일을 더 적은 인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광고주는 왜 기존 수수료를 내야 하는지 묻게 된다. 맥킨지 보고서는 대행사의 대응 방향으로 독자 AI·데이터 자산, 브랜드 안전성·AI 편향·컴플라이언스 검토 같은 거버넌스 서비스, 검증된 사업 성과와 연동한 가격 모델을 제시했다.

성과연동형 가격은 대행사에 기회이자 부담이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매출, 신규 고객, 재구매, 오프라인 방문 같은 결과와 보상을 연결하기 쉽다. 대행사 입장에서는 플랫폼, 가격, 재고, 프로모션, 영업망, 제품 경쟁력까지 광고 성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상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단순 ROAS만 걸면 할인과 단기 전환에 쏠릴 수 있고, 브랜드 장기 가치나 신규 시장 개척은 낮게 평가될 수 있다.

AI 시대의 대행사는 광고주 내부 조직과도 경쟁한다. 생성형 AI 도구는 마케팅팀이 직접 카피를 만들고, 이미지 시안을 만들고, 캠페인 구조를 짜는 일을 쉽게 만든다. 플랫폼 자동화는 미디어 운영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광고주 내부에 데이터 분석과 퍼포먼스 마케팅 인력이 늘어나면 대행사는 외주 실행 조직보다 외부 전문 판단을 제공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광고주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제시하지 못하면 외주 예산은 줄어든다.

대행사의 새 역할은 플랫폼을 대신 믿어주는 일이 아니다. 플랫폼이 제시한 최적화 결과를 검증하고, 광고주가 가진 고객 데이터와 실제 매출 데이터를 연결하며, AI가 읽을 수 있는 브랜드·상품 정보를 정비하는 쪽에 가깝다. 소비자가 AI 답변과 추천 피드, 커머스 플랫폼 안에서 상품을 발견하는 환경에서는 광고 소재만 잘 만드는 것으로 부족하다. 상품명, 기능, 가격, 후기, 인증, 재고, 배송, 반품 정보가 광고 성과에 직접 들어간다.

광고대행사가 오랫동안 쥐고 있던 실행 권한은 줄어들고 있다. 대신 광고주가 플랫폼 자동화에 과도하게 종속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은 커진다. 여러 폐쇄형 플랫폼을 가로질러 성과를 비교하고, AI 최적화의 편향을 점검하고, 브랜드와 상품 데이터의 품질을 높이고, 광고 성과를 실제 사업 성과와 연결하는 역량이 수익의 근거가 된다. 집행 수수료의 시대가 약해질수록 대행사는 운영자가 아니라 검증자와 설계자로 살아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