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rgio Armani⑤] 조르지오 아르마니 SS27, 160여 벌 안의 안정과 반복
리넨 팬츠·긴 재킷·큰 가방으로 넓힌 여름 남성복, 낮은 채도와 비슷한 비율 속에 남은 단조로움
[KtN 박채빈기자]2026년 6월 22일 밀라노 팔라초 오르시니(Palazzo Orsini) 안뜰에 오른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SS27 남성복 컬렉션은 160여 벌 규모로 이어졌다. 레오 델 오르코(Leo Dell’Orco)가 맡은 런웨이에는 리넨 팬츠, 긴 재킷, 메쉬 니트, 사파리 재킷, 큰 가방, 검은색 이브닝웨어가 차례로 등장했다. 품목은 넓었지만, 색과 비율, 착장 방식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반복됐다.
흰색과 모래색, 회색 계열은 쇼의 바탕을 만들었다. 낮은 채도는 아르마니 남성복이 오래 다뤄온 색이다. 이번 시즌에도 강한 프린트나 선명한 그래픽보다 바랜 듯한 색과 마른 소재 표면이 앞섰다. 중반 이후 선블리치드 그린과 코발트 블루가 섞였고, 후반부에는 검은색 셔츠와 팬츠, 이브닝 재킷이 나왔다. 색의 변화는 있었지만, 전체 인상은 차분한 쪽에 머물렀다.
160여 벌이라는 규모는 브랜드가 보여줄 수 있는 남성복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리넨 팬츠와 셔츠, 메쉬 니트, 긴 재킷은 더운 계절의 도시복으로 읽혔다. 사파리 재킷과 유틸리티 베스트, 콤뱃 팬츠는 야외복과 작업복의 요소를 더했다. 큰 가방과 플랫 슈즈, 스트로 햇은 해안가와 여행자의 이미지를 보탰다. 검은색 이브닝웨어는 낮의 휴양복에서 밤의 남성복으로 넘어가는 출구 역할을 했다.
재킷은 쇼 전반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품목이었다. 길이는 기존보다 조금 길어졌고, 어깨는 높게 세우지 않았다. 허리를 강하게 조이는 재킷도 많지 않았다. 바지는 넓게 퍼지는 쪽보다 다리선을 따라 좁게 정리됐다. 재킷과 팬츠의 비율은 무겁지 않았고, 부드러운 어깨와 가벼운 소재 덕분에 수트의 딱딱한 인상도 줄었다. 이 지점은 이번 남성복의 강점이다.
문제는 같은 장점이 길게 반복될 때 생긴다. 긴 재킷, 좁아진 팬츠, 열린 칼라, 낮은 신발, 큰 가방이 계속 이어지면서 룩 사이의 차이는 점차 작아졌다. 낮은 채도와 마른 질감, 느슨한 착장 방식은 컬렉션의 방향을 분명하게 만들었지만, 160여 벌 전체를 끌고 가기에는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았다. 품목은 많았고, 이미지의 온도는 비교적 일정했다.
소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리넨과 코튼, 메쉬 니트, 성글게 짠 니트는 더운 계절의 남성복에 필요한 통풍과 가벼움을 제공했다. 데님처럼 보이는 샨퉁 실크는 소재 측면에서 가장 뚜렷한 실험이었다. 셔츠와 비구조적 재킷 일부는 데님의 거친 표면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실크의 가벼운 물성에 가까웠다. 이런 소재 실험은 분명한 장점으로 남는다.
다만 소재의 질감에 많은 부분을 맡기면서 시각적 변화는 제한됐다. 마른 리넨, 성근 니트, 데님처럼 보이는 실크, 낮은 색채가 이어지는 방식은 세련됐지만 강한 충돌을 만들지는 않았다. 소재를 가까이 보면 차이가 있지만, 멀리서 보는 런웨이 이미지에서는 비슷한 색과 비슷한 부피가 반복되는 구간이 생겼다. 아르마니식 절제는 유지됐고, 그 절제가 단조로움으로 읽힐 여지도 함께 남았다.
사파리 재킷과 유틸리티 베스트, 콤뱃 팬츠는 반복을 깨는 장치로 쓰였다. 다중 포켓과 큰 가방은 남성복에 이동성과 수납의 이미지를 붙였다. 긴 리넨 재킷 아래 유틸리티 베스트를 넣거나, 테일러드 재킷에 콤뱃 팬츠를 맞춘 착장은 수트 중심 남성복의 질서를 조금 흐렸다. 그러나 낮은 색과 부드러운 소재 안에서 정리되면서, 기능복의 거친 인상은 크게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브닝웨어도 큰 반전을 만들지는 않았다. 후반부의 검은색 셔츠와 팬츠, 간결한 재킷은 낮 시간대의 리넨과 니트에서 밤의 남성복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만들었다. 라펠과 칼라를 덜어낸 착장은 장식을 줄인 방향과 맞닿아 있었다. 검은색이 쇼의 무게를 높였지만, 전체 구조를 뒤집는 변화라기보다 낮은 채도의 연장선에 가까웠다.
이번 남성복은 실제 매장과 옷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품목이 많았다. 리넨 팬츠와 가벼운 셔츠, 메쉬 니트, 긴 재킷, 플랫 슈즈, 큰 가방은 무대용 이미지보다 현실적인 옷에 가깝다. 더운 계절에도 재킷을 입어야 하는 남성에게 수트의 무게를 낮추는 방식은 설득력이 있다. 아르마니가 오래 다뤄온 부드러운 테일러링도 여전히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반대로 새로움은 제한적이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SS27 남성복은 낮은 색, 긴 재킷, 가벼운 팬츠, 느슨한 셔츠, 큰 가방이라는 익숙한 조합 안에서 움직였다. 소재와 착용감의 설득력은 컸지만, 남성복의 비율이나 이미지를 크게 바꾸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160여 벌의 긴 흐름은 브랜드의 장점을 충분히 펼쳤고, 동시에 같은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힘의 감소도 보여줬다.
레오 델 오르코의 SS27 남성복은 과격한 전환보다 정돈된 조정에 가까웠다. 재킷은 조금 길어졌고, 바지는 좁아졌으며, 소재는 가벼워졌다. 사파리 재킷과 큰 가방은 이동의 이미지를 더했고, 샨퉁 실크는 소재의 표면을 바꿨다. 그러나 컬렉션 전체는 익숙한 아르마니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60여 벌은 아르마니 남성복의 안정적인 힘을 보여준 동시에, 다음 시즌에는 더 뚜렷한 차이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