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쟁과 패션, 군복의 언어를 바꾸는 옷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로 본 남성복의 전환 카무플라주·스커트·포인티 부츠가 밀어낸 군복의 긴장
[KtN 임우경기자]파리의 런웨이에 군복은 없었지만, 군복의 문양은 남아 있었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COMME des GARÇONS HOMME PLUS)가 2026년 6월 26일 공개한 2027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은 전쟁을 말하면서도 전쟁의 이미지를 그대로 입지 않았다. 가와쿠보 레이(Rei Kawakubo)가 붙인 제목은 ‘If The War Were To End..’였다. 전쟁의 끝을 선언하는 문장도, 평화를 장식처럼 앞세운 구호도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옷은 어떤 몸을 만들 수 있는가에 가까운 가정이었다.
패션은 전쟁의 옷을 오래 빌려 입었다. 트렌치코트는 참호의 기억을 갖고 있고, 보머 재킷은 조종사의 옷에서 왔으며, 카고 팬츠와 필드 재킷은 군용 장비의 실용성을 일상복으로 옮겼다. 컴뱃 부츠와 카무플라주는 군복의 기능이 시장과 거리로 이동한 대표적 물건이다. 전쟁은 패션에 주머니, 벨트, 견장, 두꺼운 밑창, 방수 소재, 위장무늬를 남겼다. 남성복은 그 유산을 강인함, 질서, 실용성, 반항의 기호로 소비해왔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은 그 흐름을 정면으로 반복하지 않았다. 군복의 문양은 가져왔지만 군복처럼 몸을 세우지 않았고, 카무플라주를 사용했지만 몸을 숨기지 않았다. 쇼 초반에는 핑크, 그린, 블루 계열 셔팅 스트라이프가 재킷과 프록코트 위로 펼쳐졌다. 긴 상의 아래에는 튜닉, 젤라바형 셔츠, 헐렁한 쇼츠, 스커트가 겹쳤다. 재킷과 코트는 남아 있었지만, 착장은 명령을 기다리는 몸보다 더운 도시를 걷는 몸에 가까웠다.
전쟁의 옷은 몸을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군복은 행진에 맞고, 은폐에 맞고, 명령에 맞고, 소속에 맞는다.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통제한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의 옷은 반대로 몸의 긴장을 낮췄다. 정장 팬츠의 직선은 중심에서 물러났고, 쇼츠와 스커트는 하반신의 움직임을 넓혔다. 긴 코트와 헐렁한 하의가 겹치며 보폭은 단단한 행진보다 느슨한 이동에 가까워졌다.
카무플라주는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선명하게 의미가 바뀐 문양이다. 위장무늬는 원래 몸을 지우기 위한 디자인이다. 숲, 흙, 모래, 그림자 사이로 몸의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의 카무플라주는 라일락, 시폼, 레몬, 블러시 계열의 밝은 색으로 바뀌었다. 몸을 숨기던 문양이 몸을 앞으로 끌어냈다. 군복의 문양은 남았지만 군복의 목적은 약해졌다.
파스텔 카무플라주는 단순히 부드럽거나 귀여운 패턴이 아니다. 문양의 출처가 전쟁이라는 사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밝은 색은 더 복잡한 긴장을 만든다. 전쟁의 기호를 아름답게 만들면 고통을 장식으로 소비할 위험이 생긴다. 반대로 전쟁의 기호가 더 이상 전쟁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가와쿠보 레이는 카무플라주를 지우지 않았다. 대신 카무플라주가 숨김과 공격의 언어로 읽히지 않도록 색과 비율을 바꿨다.
스트라이프와 타탄도 같은 방향에서 작동했다. 스트라이프는 남성복에서 질서와 단정함의 문양이었다. 셔츠와 수트, 유니폼 안에서 줄무늬는 반복과 간격으로 몸을 정리했다. SS27의 스트라이프는 정장의 규칙보다 여름 천의 흔들림에 가까웠다. 타탄은 클래식 남성복의 오래된 문양이지만, 이번 컬렉션에서는 단정한 체크 슈트가 아니라 여러 천이 붙고 어긋나는 방식으로 쓰였다. 문양은 익숙했지만, 쓰임은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났다.
신발은 전쟁과 패션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물건이다. 군화는 땅을 단단히 딛게 하고, 같은 속도로 걷는 몸을 만든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의 포인티 부츠는 군화와 반대편에 있었다. 길게 뻗고 위로 말린 앞코는 효율적 보행보다 과장된 움직임을 만들었다. 발끝은 착장의 끝이 아니라 시선이 머무는 또 하나의 형태가 됐다. 군화가 행진을 만든다면, 포인티 부츠는 춤에 가까운 걸음을 만든다.
멕시칸 댄싱 부츠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는 2015년 봄·여름 시즌 ‘Jugo’ 부츠의 기억도 함께 불러왔다. SS27에서의 귀환은 단순한 복각보다 아카이브를 현재 컬렉션 안에 다시 놓는 방식에 가까웠다. 긴 코트, 쇼츠, 스커트 레이어, 파스텔 카무플라주 사이에서 포인티 부츠는 발끝까지 비율을 늘렸다. 옷이 방어의 구조를 내려놓았다면, 신발은 행진의 질서를 내려놓았다.
전쟁을 패션으로 다룰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은 고통의 장식화다. 군복의 문양과 장비는 현실의 폭력, 국가의 명령, 죽음의 가능성과 떨어져 있지 않다. 패션은 그 물건들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만, 아름다움만 남으면 전쟁의 현실은 사라진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이 흥미로운 이유는 전쟁의 상징을 사용하면서도 강한 남성성의 환상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카무플라주는 밝아졌지만, 출처의 불편함까지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엘리제 몽마르트르(Élysée Montmartre)의 발표가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Dover Street Market Paris) 안뜰 설치로 이어진 점도 이 컬렉션의 성격을 넓혔다. 옷은 런웨이에서 몸을 따라 움직였고, 설치에서는 색채와 그래픽으로 다시 머물렀다. 전쟁 이후의 옷이라는 가정은 한 번의 쇼로만 소비되지 않고, 편집숍과 설치, 협업 신발과 그래픽 제품을 거쳐 시장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강한 개념은 상품이 되는 순간 더 복잡해진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는 그 복잡성을 숨기지 않았다. 파스텔 카무플라주는 패턴 상품이 될 수 있고, 스트라이프 코트는 여름 테일러링의 변주가 될 수 있으며, 포인티 부츠는 컬렉터가 찾는 아카이브형 물건이 될 수 있다. 전쟁 이후를 상상한 컬렉션도 결국 시장을 통과한다. 다만 SS27은 전쟁의 상징을 더 강한 소비 이미지로 키우기보다, 군복의 목적을 약화한 뒤 옷의 색과 길이, 걸음으로 다시 배치했다.
전쟁과 패션의 관계는 단순히 “군복에서 온 옷이 멋있다”는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전쟁은 패션에 실용성과 구조를 남겼고, 패션은 전쟁의 물건을 취향과 시장의 언어로 바꿨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은 그 오래된 관계를 다시 건드렸다. 카무플라주는 몸을 숨기지 않았고, 재킷은 몸을 세우지 않았으며, 부츠는 행진을 만들지 않았다. 전쟁의 옷에서 빠져나온 남성복은 밝은 색, 넓은 길이, 흔들리는 하의, 과장된 발끝으로 다시 쓰였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SS27은 전쟁의 이미지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전쟁의 문양을 남겼다. ‘If The War Were To End..’라는 제목 아래 파스텔 카무플라주, 셔팅 스트라이프, 쇼츠와 스커트 레이어, 포인티 부츠는 군복의 긴장을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군복은 몸을 숨기고 세우고 맞추는 옷이었다. 이번 컬렉션의 남성복은 몸을 드러내고 풀고 흔들리게 했다. 전쟁과 패션의 오래된 관계는 파리의 런웨이에서 더 어둡고 단단해지지 않았다. 밝은 색과 느슨한 걸음으로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