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Kiko Kostadinov SS27, 큰 옷 다음에 남은 구조

프린트와 로고가 물러난 자리, 보닝·원단·아이웨어·풋웨어로 다시 짠 남성복

2026-06-29     박채빈 기자
Kiko Kostadinov SS27 Distorts Materiality With "EXTROFLEXION" 사진=Kiko Kostadino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키코 코스타디노프(Kiko Kostadinov)의 2027년 봄·여름 남성복 ‘EXTROFLEXION’은 멀리서 단번에 시선을 빼앗는 컬렉션은 아니다. 로고가 크게 걸리지 않았고, 프린트가 옷의 앞면을 채우지도 않았다. 지퍼와 금속 장식도 전면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재킷 안쪽의 보닝, 원단 위에 남은 눌림, 몸에 가까운 실루엣, 얼굴을 가로지르는 오클리(Oakley) 아이웨어, 팬츠 밑단 아래의 신발이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남았다.

남성복은 오랫동안 큰 옷으로 존재감을 만들었다. 넓은 어깨와 긴 소매, 넉넉한 팬츠는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 테일러링 사이에서 가장 익숙한 형식이 됐다. 몸을 감추는 큰 부피는 편했고, 한 벌의 힘을 빠르게 키웠다.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SS27에서 같은 방식으로 가지 않았다. 옷의 폭을 더 넓히기보다 몸 가까이 붙이고, 좁아진 거리 안에 절개와 보닝, 원단의 압력을 넣었다.

재킷과 블레이저는 평평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깨에서 앞여밈으로 내려오는 선은 어느 부분에서 솟고, 다시 눌리며 원단 위에 굴곡을 만들었다. 겉에 붙인 패치나 장식 때문이 아니다. 옷 안쪽에 넣은 뼈대가 천을 받치며 생긴 형태다. 키코 코스타디노프가 이번 시즌에 건드린 지점은 남성복의 겉모습보다 겉모습이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컬렉션명 ‘EXTROFLEXION’은 이탈리아 작가 아고스티노 보날루미(Agostino Bonalumi)의 작업과 맞닿아 있다. 보날루미는 캔버스 뒤에 구조물을 넣어 단색의 평면을 바깥으로 밀어낸 작가다.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해당 참조를 그림처럼 옷 위에 올리지 않았다. 캔버스 아래의 구조는 재킷과 블레이저, 패치워크 티셔츠 안쪽의 보닝으로 바뀌었고, 회화의 돌출은 의복의 부피와 눌림으로 옮겨졌다.

미술 참조는 패션에서 자주 쓰인다. 작품 이미지를 프린트하거나, 색과 분위기를 빌리거나, 작가 이름을 컬렉션 설명에 붙이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SS27의 차이는 참조가 놓인 자리다.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보날루미의 그림을 빌리지 않고, 보날루미가 표면을 만드는 방식을 빌렸다. 옷 위에 미술을 붙인 것이 아니라, 옷 안쪽으로 미술의 구조를 들여온 셈이다.

여밈을 숨긴 선택도 같은 흐름에 있다. 노출 지퍼와 큰 하드웨어가 빠지면서 옷의 앞면은 훨씬 조용해졌다. 플래킷 뒤로 들어간 고정 방식은 기능을 지우지 않으면서 시선을 절개와 원단의 당김으로 옮긴다. 부속품이 말하던 옷에서 봉제와 패턴이 말하는 옷으로 이동한 변화다.

Kiko Kostadinov SS27 Distorts Materiality With "EXTROFLEXION" 사진=Kiko Kostadino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실루엣은 넓어지지 않았다. 슬림한 울 코트는 목 주변을 단단하게 세웠고, 크롭 블루종은 상체를 짧게 끊었다. 몸에 가까운 재킷은 마른 재단처럼 단순히 붙지 않고, 안쪽 구조 때문에 곳곳에서 솟고 눌렸다. 키코 코스타디노프의 좁은 옷은 몸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몸 가까운 거리에서 형태를 다시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팬츠는 발목 부근에서 다시 갈라졌다. 허리와 허벅지에서는 비교적 좁게 내려오던 선이 밑단에 가까워지며 벌어지고, 방사형 헴은 신발 위로 내려왔다. 와이드 팬츠가 넓은 면적으로 힘을 만들었다면, SS27의 팬츠는 절개가 벌어지는 방향과 발 주변의 기하학으로 무게를 만들었다. 큰 옷이 주던 존재감을 좁은 옷 안의 복잡한 선으로 바꾼 방식이다.

마름모형은 컬렉션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코트의 목선, 블루종의 절개, 팬츠 패널, 신발 표면, 오클리 아이웨어의 렌즈와 프레임에서 같은 각도가 반복됐다. 한눈에 박히는 로고는 아니었다. 옷의 가장자리와 패턴 조각, 얼굴과 발끝의 윤곽 속에 나뉘어 들어가며 착장의 박자를 맞췄다. 반복은 문양이 아니라 구조로 작동했다.

원단은 이번 컬렉션의 온도를 바꿨다. 일본 생산 실크울 수팅은 재킷과 코트의 선을 매끈하게 잡으면서 안쪽 보닝이 만든 미세한 돌출을 드러냈다. 폴리우레탄 코팅 데님은 일반 데님의 일상적인 질감을 줄이고, 단단한 광택과 막처럼 굳은 표면으로 팬츠의 절개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길게 떨어지는 저지 튜닉과 부드러운 누벅 톱, 퍼널넥 파자마 셔츠는 딱딱한 구조 사이에 흐르는 층을 넣었다.

색보다 오래 남는 것은 원단의 상태였다. 실크울의 눌린 선, 코팅 데님의 광택, 저지의 낙차, 누벅의 차분한 표면이 착장마다 다른 속도를 만들었다. 프린트와 로고가 줄어든 옷에서는 소재가 더 많이 드러난다. 옷감이 빛을 받는 방식, 접히는 방향, 눌린 깊이가 정보가 된다. 이번 시즌의 소재는 겉감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옷의 형태를 정하는 출발점에 놓였다.

오클리 아이웨어는 얼굴 주변에서 같은 선을 이어받았다. 컬러 아세테이트로 바꾼 테라포마(Terraforma) 모델과 바이저형 콘셉트 피스는 계절용 선글라스처럼 가볍게 놓이지 않았다. 코트의 목 보호 디테일이 얼굴 아래를 받치고, 오클리 프레임은 눈가를 넓게 가로지르며 단단한 윤곽을 만들었다. 스포츠 장비의 인상은 남아 있었지만, 런웨이에서는 옷과 따로 노는 협업품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술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의 만남은 로고만으로 설득되기 어렵다. SS27에서 오클리의 존재감은 브랜드명보다 렌즈의 폭, 프레임의 각도, 얼굴을 감싸는 구조에서 나왔다. 코트와 팬츠, 신발에 이어진 각진 선이 아이웨어에서 다시 닫혔다. 협업은 이름보다 형태가 맞물릴 때 오래 남는다.

Kiko Kostadinov SS27 Distorts Materiality With "EXTROFLEXION" 사진=Kiko Kostadinov,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발은 팬츠 밑단 아래에서 컬렉션을 마무리했다. 사르고(Sargo) 레이스업은 로퍼와 미드컷 가죽 부츠로 갱신됐고, 음각 표면을 넣은 가죽 슬립온은 낮은 형태 안에 조형적 밀도를 만들었다. 팬츠 밑단이 신발 가까이 내려오는 컬렉션에서 풋웨어는 작게 사라질 수 없었다. 로퍼와 부츠, 슬립온은 바지 끝의 선을 받아내며 하체 실루엣을 정리했다.

크록스(Crocs) 협업 모델은 가죽 풋웨어와 다른 방식으로 들어왔다. 기존 클로그 이미지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여름 시즌에 맞춘 더 가벼운 형태, 새로 개발한 신발끈 결속 구조, 여러 소재를 섞은 갑피가 더해졌다. 위쪽에서는 보닝과 수팅, 코팅 데님이 단단한 인상을 만들고, 발끝에서는 기능성 신발의 가벼움이 착장의 무게를 풀었다.

크록스 협업은 시장과도 맞닿는다. 크록스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이고,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패턴과 구조, 산업적 소재 감각을 오래 다뤄온 디자이너다. 두 브랜드의 만남은 이름을 나란히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제품 형태가 얼마나 바뀌고, 런웨이의 조형감이 실제 신발로 얼마나 옮겨지는지가 관건이다. SS27의 크록스 모델은 구조적 남성복을 소비 시장과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통로에 놓였다.

이번 컬렉션을 단순히 슬림핏의 복귀로 묶기에는 부족하다. 옷의 폭이 좁아진 것은 맞지만, 키코 코스타디노프가 보여준 변화는 옷을 작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넓은 옷이 물러난 자리에 보닝과 절개, 원단의 눌림, 각진 아이웨어, 구조적인 풋웨어가 들어왔다. 남성복의 힘은 부피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몸 가까운 거리에서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는가도 중요한 기준이 됐다.

Kiko Kostadinov SS27은 표면 장식 이후의 남성복을 또렷하게 다룬 컬렉션이다. 프린트와 로고가 줄어든 옷은 조용했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안쪽 보닝이 원단을 밀어 올리고, 좁은 실루엣이 절개로 갈라지고, 아이웨어와 신발이 같은 각도를 이어받았다. 옷의 겉면을 비운 뒤 남은 것은 빈자리가 아니라 제작의 흔적이었다.

크록스 협업 모델의 공식 제품명, 발매 시점, 가격, 국내 유통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현재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SS27은 키코 코스타디노프가 남성복의 장식을 다시 배치한 시즌이었다. 옷 바깥에 붙던 이미지는 줄었고, 옷 안쪽의 뼈대와 원단의 성질, 얼굴과 발끝의 제품 설계가 앞으로 나왔다. 큰 옷 이후의 남성복은 작아지는 쪽이 아니라, 더 가까운 거리에서 더 치밀하게 만들어지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