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 취임 1호 결재가 왜 반도체였나…경기도의 셈법은
취임사보다 먼저 나온 서명…추미애 1호 결재는 반도체였다 8개 시 잇는 세계 최대 벨트 구상…비수도권 우대 시행령은 변수로 남아
[KtN 임우경기자] 지난 7월 1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식을 마치고 처음 마주한 결재 서류는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K-반도체 혁신 대책'이었다. 복지 정책도, 조직 개편안도 아니었다. 민선 9기 경기도정의 첫 문서에 도지사의 서명이 올라간 대상은 반도체였다.
속도전으로 시작한 도정
추 지사는 서명을 마친 뒤 취재진 앞에서 "경기도지사 제1호 결재로 이렇게 직접 도정에 반영할 수 있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차질 없이 준비해서 대한민국이 목표하는 글로벌 초격차 유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결재 문서에는 세계 최대 K-반도체 생태계 조기 완성, 팹 건설 기간 단축과 생산능력 5년 내 2배 확대를 목표로 한 반도체 속도전, K-반도체 생태계 미래성장 전략까지 3대 추진전략이 담겼다.
경기도가 그리는 벨트는 수원(R&D), 용인(제조·소부장), 화성(제조·소부장), 성남(팹리스), 안성(소부장), 평택(제조·소부장), 오산(소부장), 이천(제조) 8개 시를 잇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3S+1F 전략 가운데 수도권 생산거점 조기 완성을 목표로 한 '속도전' 항목과 맞물려, 도지사가 직접 전력·용수·도로 등 핵심 인프라를 기업 투자 일정에 맞춰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실행할 조직으로 도지사 직속 반도체전략위원회를 즉시 구성하고, 국회와 광역·기초지자체가 참여하는 가칭 K-반도체 클러스터 완성 협의체도 만들 계획이다.
8월 시행 앞둔 반도체특별법과의 시차
이번 대책이 나온 시점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가 지난 1월 국회에서 처리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반도체특별법이 오는 8월 1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이 시행되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가 설치돼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인프라 조성 자금 지원 등을 추진하게 된다. 800조 원 규모로 거론되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도 이 법을 근거로 뒷받침된다.
문제는 이 법의 시행령 설계 방향이다. 지난달 입법예고된 시행령은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정과 조성·운영, 기반시설 지원, 기업 유치와 생태계 조성에 관한 세부 기준을 담았다.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들어가는 전력·용수·도로 같은 기반시설 설치비의 절반 이상을 국비로 지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만 클러스터를 지정할 때와 재정·행정 지원 과정 모두에서 국토 균형발전과 산업격차 해소 기여도를 고려해 수도권 외 지역을 우대하도록 했다. 앞서 정부가 수도권을 클러스터 지정에서 아예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경기도 등이 반대 의견을 냈고, 최종안은 배제가 아닌 비수도권 우대로 정리됐다.
실제 지원 규모의 격차는 이미 다른 지역 사례에서 드러난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공장 부지와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을 최대 100%까지 국비로 지원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국공유지 사용료와 대부료도 50~100% 감면받을 수 있다. 반면 경기도 남부 벨트는 수도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같은 수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취임 첫날 경기도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8월 시행령 확정 전에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목소리를 먼저 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반도체특별법을 뒷받침할 재정 수단인 특별회계 역시 당장 가동되지는 않는다. 신규 특별회계를 설치하려면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함께 처리됐어야 했지만 국회가 정국 경색으로 특별법만 먼저 통과시키면서, 2조 원 규모의 반도체 특별회계는 내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올해는 부처별 개별 사업과 예산으로 반도체산업을 분산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가 이번 대책에서 내건 목표들이 실제 예산으로 뒷받침되는 시점은 도가 발표한 일정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자체 재정 여건도 변수다. 추 지사의 취임을 다룬 보도에서는 경기도가 짊어진 채무 규모를 "뼈 깎는 심정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표현이 함께 등장했다. 경기미래투자공사 설립이나 용인 이동·오산 세교3 공공주택지구 기숙사·임대주택 공급처럼 초기 투자가 필요한 사업들을 이런 재정 여건 속에서 어떻게 추진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추정이 필요한 대목으로, 실제 사업비 규모와 재원 조달 방식은 하반기 세부계획이 나와야 확인할 수 있다.
세수 문제도 함께 꺼내들었다
추 지사는 서명 직후 질의응답에서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세수가 경기도로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법인지방소득세가 현재 구조상 기초자치단체로만 귀속되고 광역단체인 도에는 들어오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다. 인수위원회 단계에서도 법인지방소득세를 광역단체가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 반도체 대책이 산업 유치에 그치지 않고 재정 구조 개편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수출 훈풍은 명분을 더한다
경기도의 이번 행보는 반도체 산업 전반의 호황과도 맞물린다. 6월 반도체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4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전체 수출 상승을 강력하게 견인했고, 지난달 전체 수출은 월 기준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이 기록을 세웠다. 상반기 누적 수출과 무역흑자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경기도가 산업 유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명분은 한층 뚜렷해진 셈이다.
경기도의 K-반도체 혁신 대책은 산업정책이자 지역발전 전략, 그리고 재정 구조 개편 요구까지 겹쳐진 복합적 선언에 가깝다. 취임 첫날 결재라는 상징성은 도정 우선순위를 분명히 보여주지만, 실제 성과는 8월 시행령 최종안에서 경기도가 어느 수준의 재정·행정 지원을 확보하느냐에 좌우될 전망이다. 반도체 특별회계 가동 시점, 법인지방소득세 배분 구조 개편 논의, 하반기 발표될 반도체전략위원회와 K-반도체 클러스터 완성 협의체의 세부 운영 계획이 이번 대책의 실효성을 가늠할 다음 변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