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환④] AI 바이오 경쟁, 데이터·클라우드·규제 인프라의 새 산업전선

맥킨지 ‘학습 루프’로 읽는 국가 경쟁력 조건…미국·유럽·아시아, 신약개발을 산업 운영체계로 재편

2026-07-09     최기형 기자
[AI 전환④] AI 바이오 경쟁, 데이터·클라우드·규제 인프라의 새 산업전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신약개발의 AI 경쟁이 후보물질 설계 기술을 넘어 데이터 접근권, 클라우드·컴퓨팅 인프라, 임상 네트워크, 규제 기준의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약 하나를 시장에 내놓는 비용이 약 40억 달러 수준으로 높아지고, 임상 1상 진입 자산의 성공률이 약 13%에 머무는 상황에서 바이오·제약 산업은 연구실 안의 속도만으로 비용 압박을 넘기 어렵게 됐다. 맥킨지앤드컴퍼니의 2026년 6월 바이오·제약 R&D 분석은 AI 전환을 개별 도구 도입이 아니라 연구개발 구조 전체를 학습 회로로 바꾸는 문제로 다뤘다.

맥킨지가 제시한 AI 기반 R&D 모델은 환자와 질병 생물학 이해, 약물 표적 발굴과 검증, 후보물질 최적화, 임상시험 설계와 실행, 승인 이후 환자 영향 확대를 서로 연결한다. 신약개발은 후보물질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선형 절차가 아니라, 임상과 제조, 실제 처방 데이터가 다시 초기 연구 판단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국가 간 경쟁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AI 모델 성능만이 아니라 어떤 나라가 데이터를 안전하게 연결하고, 규제 기준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며, 병원과 기업의 연구 흐름을 한 회로 안에 묶는지가 산업 경쟁력을 가르는 조건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강점은 민간 기술 생태계와 규제기관의 축적된 경험이 결합되는 지점에서 나온다. 대형 클라우드 기업, AI 반도체 기업, 바이오 벤처, 글로벌 제약사가 같은 시장 안에서 움직인다. FDA는 의약품 개발 전 주기에 걸쳐 AI 활용이 늘고 있으며, 비임상·임상·시판 후 관리·제조 단계까지 AI 요소가 포함된 제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AI가 연구실의 계산 도구를 넘어 허가 자료와 제조 품질, 안전성 감시까지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유럽 규제기관은 AI 활용을 무조건 늦추기보다 공통 기준을 세우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FDA와 유럽의약품청(EMA)은 2026년 1월 의약품 개발에서 AI를 활용할 때 적용할 ‘좋은 AI 관행’ 원칙을 공개했다. 원칙에는 인간 중심 설계, 위험 기반 접근, 표준 준수, 사용 맥락의 명확화, 다학제 전문성, 데이터 거버넌스와 문서화, 모델 설계와 개발 관행, 성능 평가, 생애주기 관리, 필요한 정보의 명확한 제공이 포함됐다. 연구와 임상, 제조, 안전성 감시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 기준을 마련하려는 흐름이다.

유럽은 데이터와 규제 질서에서 다른 방식의 경쟁력을 쌓고 있다. 유럽연합의 유럽보건데이터공간(EHDS) 규정은 2025년 3월 26일 발효돼 적용 준비 단계에 들어갔다. EHDS는 전자건강데이터의 접근, 공유, 재사용을 제도화하는 틀이다. 바이오 AI 경쟁에서 유럽의 전략은 단순히 더 큰 모델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의료 데이터가 어느 조건에서 이동하고, 연구와 정책, 혁신에 어떻게 재사용될 수 있는지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의약품 규제 영역에서도 유럽은 AI의 안전한 활용과 감독 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MA는 AI 관측 보고서를 통해 의약품 규제 네트워크가 AI 활동과 흐름을 점검하고, 향후 규제 수요에 대비한다고 설명한다. 신약개발에서 AI가 임상 근거 생성과 안전성 감시, 제조 품질까지 들어갈수록 규제기관의 데이터 해석 능력과 모델 검증 기준도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기업이 AI를 활용해 더 빠르게 개발하더라도 허가 자료의 추적 가능성과 설명 가능성이 부족하면 개발 속도는 규제 단계에서 다시 느려질 수 있다.

아시아의 흐름은 제조 기반, 임상 역량, 데이터 인프라, 글로벌 파트너십이 맞물리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 제약사와 중국·홍콩계 AI 신약개발 기업의 협업,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 확대, 한국의 병원 데이터와 반도체·클라우드 인프라 논의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I 신약개발은 연구 알고리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후보물질을 검증할 실험 인프라, 임상을 수행할 병원 네트워크,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할 컴퓨팅 기반, 글로벌 허가 기준에 맞출 규제 경험이 함께 필요하다.

맥킨지 분석이 강조한 ‘학습 루프’는 국가 산업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환자 데이터가 병원 안에 머물고, 후보물질 데이터가 기업 내부에 갇히며, 임상 운영 데이터가 다음 시험 설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AI 투자는 분절된 자동화에 그친다. 데이터센터를 짓고, AI 모델을 도입하고, 바이오 R&D 예산을 늘려도 연구개발 판단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생산성 개선은 제한된다. 신약개발 비용을 낮추는 힘은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패와 성공의 데이터를 다음 의사결정으로 되돌리는 구조에서 나온다.

글로벌 경제 환경은 이런 전환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고금리 이후 바이오 벤처의 자금 조달은 더 까다로워졌고, 대형 제약사는 특허 만료와 파이프라인 공백에 대응해야 한다. 후기 임상 실패는 기업 가치와 투자 여력에 직접적인 충격을 준다. 개발 기간을 줄이고 실패 가능성을 앞에서 낮추는 능력은 연구 효율을 넘어 재무 전략이 됐다. AI는 후보물질을 더 많이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어떤 자산에 자본을 배분할지 가르는 판단 인프라로 들어가고 있다.

데이터 주권과 산업 개방성 사이의 균형도 각국 정책의 난도가 됐다. 의료 데이터는 연구개발에 매우 높은 가치를 갖지만, 개인정보와 안전성, 차별 가능성, 상업적 독점 우려가 함께 따라온다. 지나치게 닫힌 데이터 체계는 AI 모델의 성능과 일반화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지나치게 느슨한 활용 체계는 사회적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바이오 AI 경쟁에서 앞서는 국가는 데이터 활용을 막지 않으면서도 품질, 추적 가능성, 책임 기준을 세우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클라우드와 AI 반도체는 신약개발의 기초 인프라로 들어왔다. 생성형 AI와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하고, 임상 데이터와 실제 진료 데이터, 오믹스 데이터, 영상 데이터를 함께 다루려면 안정적인 데이터 처리 체계가 필요하다. 다만 컴퓨팅 자원만으로 학습 루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병원, 제약사, AI기업, 임상시험수탁기관, 규제기관이 같은 기준으로 데이터를 만들고 해석해야 한다. 인프라 투자가 산업 생산성으로 바뀌는 지점은 장비와 센터가 아니라 데이터와 의사결정의 연결 방식에 있다.

한국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AI 모델, 병원 데이터, 바이오헬스 R&D, 임상시험 인프라를 각각 보유하고 있지만, 경쟁력은 개별 항목의 보유 여부보다 연결 방식에서 갈린다. 병원 데이터는 환자군 정의와 임상 설계로 이어져야 하고, 제약사와 바이오벤처의 실험 데이터는 표적 검증과 후보물질 최적화로 돌아가야 한다. 임상 운영 데이터는 다음 시험의 기관 전략과 모집 전략을 바꿔야 한다. AI기업의 모델 개발과 제약사의 연구개발 판단이 따로 움직이면 성과는 개별 프로젝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 정책 논의에서 반도체, 피지컬 AI, 데이터센터 같은 대형 산업투자가 성장전략의 축으로 거론되는 흐름도 바이오 AI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로이터는 한국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여력을 활용해 장기 성장 투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반도체·피지컬 AI·데이터센터를 포함한 대형 산업 프로젝트가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바이오 AI 관점에서 중요한 부분은 특정 프로젝트의 규모가 아니라, AI 인프라가 병원 데이터와 임상, 신약개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맥킨지는 AI 기반 R&D 경쟁에서 데이터 전략, 광범위한 AI 통합, 내부 역량 확보, 아웃소싱 범위 결정을 중요 조건으로 제시했다. 클라우드 기업은 확장 가능한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지만 과학적 업무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대신 설계할 수는 없다. 전문 AI 기업은 특정 알고리즘을 제공할 수 있지만 기업 내부의 학습 구조를 대신 만들 수는 없다. 지속적인 우위는 어떤 데이터를 전략 자산으로 삼고, 어떤 AI 역량을 내부에 남기며, 어떤 판단 권한을 연구조직 안에 둘지에서 갈린다.

미국, 유럽, 아시아의 AI 바이오 경쟁은 같은 기술을 두고 다른 방식의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미국은 민간 기술 생태계와 규제 경험을 앞세우고, 유럽은 건강 데이터 공간과 규제 원칙을 제도화하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은 제조와 임상, 데이터 인프라, 글로벌 파트너십을 묶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어느 쪽도 AI 모델 하나로 경쟁을 끝낼 수 없다. 신약개발의 비용과 실패율이 높아질수록 데이터와 규제, 인프라가 연구개발의 외곽 조건이 아니라 산업 경쟁의 본체로 들어온다.

AI 바이오 산업정책은 연구비 증액이나 기술 구호만으로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 환자 데이터가 안전하게 연결되고, 실험과 임상 결과가 다음 판단으로 돌아가며, 규제기관이 AI 기반 근거를 검증할 역량을 갖출 때 신약개발의 비용 구조가 바뀐다. 맥킨지의 학습 루프는 기업 운영모델을 넘어 국가 산업정책에도 같은 기준을 요구한다. AI 신약개발 경쟁은 더 큰 모델을 가진 쪽보다 더 빠르게 배우는 산업 시스템을 갖춘 쪽에 먼저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