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rth Face Purple Label FW26⑤] 고프코어 이후, 기능복은 조용한 생활복으로 내려왔다

성능 과시보다 착용 습관을 겨냥한 아웃도어웨어, Purple Label FW26이 드러낸 시장의 다음 국면

2026-07-11     박인경 기자
The North Face Purple Label FW26. 사진=The North Face Purple Labe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The North Face Purple Label FW26은 기능복이 패션 시장 안에서 한 차례 과시를 거친 뒤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셸 재킷, 패딩, 카고 팬츠, 테크 백, 윈드브레이커는 여전히 컬렉션의 중심에 있다. 다만 옷의 표정은 산악 장비나 스트리트웨어의 강한 선언보다 낮은 채도, 넓은 실루엣, 워싱된 소재, 느슨한 레이어링 쪽으로 기운다. 기능복은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된 옷”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하루 안에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조정되고 있다.

고프코어는 아웃도어웨어를 도시 패션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방수 재킷, 플리스, 트레킹화, 카고 팬츠, 백팩은 산과 캠핑장의 장비에서 거리의 스타일 코드로 이동했다. 기능성이 높은 옷은 실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기술적 소재, 절개선, 로고, 포켓, 지퍼는 착용자가 어떤 취향과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인지 말하는 시각 언어가 됐다. 아웃도어웨어는 성능의 옷이면서 동시에 태도의 옷이 됐다.

FW26의 퍼플 라벨은 고프코어의 강한 표식을 그대로 키우지 않는다. 컬렉션에 등장하는 패딩과 셸, 윈드브레이커는 기술적 기반을 유지하지만 색과 스타일링은 훨씬 낮게 잡혀 있다. 회색, 베이지, 브라운, 워시드 블루, 화이트가 반복되고, 패딩 안쪽에는 니트와 후디, 데님 셔츠와 체크 셔츠가 들어간다. 기능복은 단독으로 두드러지기보다 일상복 사이에 섞인다. 도시 패션이 아웃도어를 받아들인 뒤, 다시 생활복의 리듬으로 흡수하는 과정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의 피로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강한 로고와 기술적 디테일이 쌓일수록 기능복은 빠르게 알아볼 수 있는 대신 쉽게 소모된다. 트레킹화와 셸 재킷이 거리에서 흔해진 뒤, 소비자는 더 노골적인 장비 이미지보다 덜 말하는 옷을 찾기 시작했다. 퍼플 라벨 FW26의 낮은 색과 오래 입은 듯한 표면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한다. 새 장비처럼 반짝이는 옷보다 이미 옷장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옷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The North Face Purple Label FW26. 사진=The North Face Purple Labe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나나미카(nanamica)가 조정한 The North Face Purple Label의 방향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더 노스 페이스의 기능적 유산은 남기되, 옷의 목적지를 산악 활동에서 도시 생활로 옮긴다. 본가의 아웃도어웨어가 방한, 방수, 등반, 탐험의 이미지를 직접 떠올리게 한다면, 퍼플 라벨은 기능을 뒤로 물리고 착용자의 생활 반경을 앞에 둔다. 항만 주변, 회색 벽, 콘크리트 바닥, 골목의 빛이 캠페인의 배경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옷은 극한 환경보다 이동과 체류, 산책과 출근, 주말의 낮은 활동성에 맞춰져 있다.

시장의 변화는 ‘기능’이라는 단어의 위치를 바꾼다. 과거의 기능복은 특정 환경을 견디는 능력으로 설명됐다. 비를 막고, 바람을 막고, 체온을 지키고, 몸을 움직이기 쉽게 만드는 성능이 핵심 구매 이유였다. 고프코어 이후의 기능복은 성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같은 방수 재킷이라도 어떤 팬츠와 입는지, 어떤 색으로 낮췄는지, 도시의 옷장 안에서 얼마나 튀지 않는지, 오래 입은 옷처럼 보일 수 있는지가 함께 평가된다.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기능만으로 스타일을 설득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FW26의 패딩은 이 변화를 잘 드러낸다. 부피가 크고 보온성을 떠올리게 하지만, 색은 어둡게 닫히거나 강하게 튀지 않는다. 어두운 올리브, 밝은 그레이, 차분한 네이비는 패딩의 물리적 존재감을 낮춘다. 안쪽에 니트와 셔츠, 후디를 겹치면 패딩은 겨울 장비가 아니라 도시의 외투가 된다. 기능복의 구조는 남아 있지만, 착장은 생활의 층위 안에서 완성된다.

팬츠와 신발도 같은 방향으로 조정된다. 카고 팬츠와 넓은 팬츠는 활동성을 남기지만, 군복이나 등산복의 직접적인 인상으로 닫히지 않는다. 워싱된 색, 여유 있는 실루엣, 운동화와의 조합이 기능적 디테일을 낮춘다. 테크 백 역시 장비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전체 색조가 낮아 착장 위에서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기능적 요소가 많지만, 컬렉션은 기능성을 선전하기보다 기능성이 이미 생활 속에 들어온 상태를 연출한다.

이런 흐름은 브랜드에 기회가 된다. 아웃도어웨어가 특정 활동에 묶이지 않으면 착용 빈도는 늘어난다. 등산이나 캠핑을 하지 않는 소비자도 패딩, 윈드브레이커, 카고 팬츠, 테크 백을 살 수 있다. 제품은 주말 산행보다 출근길, 여행, 동네 산책, 실내외 이동, 계절 전환기에 더 자주 쓰인다. 퍼플 라벨은 바로 이 넓어진 사용 장면을 겨냥한다. 성능복을 일상복처럼 보이게 만들수록 구매 이유도 넓어진다.

The North Face Purple Label FW26. 사진=The North Face Purple Labe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계도 같은 자리에서 생긴다. 기능복이 생활복으로 내려올수록 실제 성능과 이미지 사이의 거리는 더 꼼꼼히 따져야 한다. 컬렉션 이미지가 제안하는 편안함은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지만, 소재의 방수성, 보온성, 무게, 세탁 관리, 내구성, 가격은 별개의 판단 영역이다. 흰색 팬츠와 밝은 후디는 컬렉션 안에서 계절감을 가볍게 만들지만, 도시의 먼지와 비, 장시간 착용을 거치면 관리 부담이 커진다. 넓은 실루엣과 두꺼운 레이어링도 체형과 생활 반경에 따라 실용성이 달라진다.

퍼플 라벨의 취향성은 시장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좁힌다. 낮은 채도의 색, 조용한 로고, 빈티지한 질감, 느슨한 핏은 옷을 오래 입는 사람에게 매력적이다. 반대로 즉각적인 존재감, 선명한 브랜드 표식, 강한 기능 이미지를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밋밋하게 보일 수 있다. 퍼플 라벨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대중형 아웃도어라기보다, 기능복을 이미 패션의 언어로 받아들인 소비자에게 더 정확히 가닿는 라인이다.

고프코어 이후의 시장은 더 큰 소리로 기능을 말하는 방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셸 재킷을 더 밝게 만들고, 로고를 더 크게 키우고, 포켓을 더 많이 붙이는 방식은 빠르게 피로해질 수 있다. FW26의 퍼플 라벨은 반대 방향에서 답을 찾는다. 색을 낮추고, 소재를 부드럽게 섞고, 니트와 데님, 체크 셔츠와 스웨트를 기능복 사이에 넣는다. 옷이 장비로 보이는 순간보다, 평소의 옷장 안에 자연스럽게 걸릴 수 있는 순간을 더 중시한다.

The North Face Purple Label FW26이 남긴 시장적 의미는 과장된 혁신보다 방향 전환에 가깝다. 아웃도어웨어는 패션의 중심으로 올라온 뒤 다시 생활의 표면으로 내려오고 있다. 성능은 사라지지 않았고, 로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성능과 로고가 앞에서 외치는 자리는 줄어들었다. 도시의 소비자는 이제 기능복을 입고 산에 가는 사람만이 아니다. 기능복을 입고 일하고, 걷고, 이동하고, 쉬는 사람이다.

FW26의 퍼플 라벨은 이 변화를 조용하게 정리한다. 기능복은 더 이상 특별한 날의 장비로만 팔리지 않는다. 평범한 날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입히는지, 다른 옷과 얼마나 오래 섞이는지, 계절과 장소의 경계를 얼마나 부드럽게 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The North Face Purple Label의 이번 컬렉션은 고프코어가 남긴 유산을 크게 외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이어간다. 아웃도어의 다음 시장은 산보다 도시, 성능보다 습관, 새 장비보다 오래 입을 옷의 얼굴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