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한민국⑥] 전력망과 물, AI 시대의 숨은 국가 경쟁력

반도체 팹·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움직이는 기반…서남권 6.3GW·65만톤, 용인 15GW·150만톤의 산업 방정식

2026-07-08     박준식 기자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대통령.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반도체 팹은 전기와 물 없이는 돌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냉각 없이는 확장되지 않는다. 피지컬 AI도 공장과 로봇, 센서와 설비를 움직일 전력이 있어야 현실에서 작동한다. 2026년 6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전력과 용수가 별도 축으로 다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로봇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물을 어느 속도로 확보하며, 전력망을 어디까지 깔 수 있는지가 국가 기반망의 속도를 정한다.

경부고속도로 시대의 산업 기반은 도로와 항만, 공단이었다. 정보고속도로 시대의 산업 기반은 통신망과 인터넷 접속이었다. AI 기반망 시대의 숨은 바닥은 전력망과 용수다. 도로가 없으면 화물이 움직이지 못했고, 통신망이 없으면 데이터가 오가지 못했다. 전력망과 물이 부족하면 반도체 팹과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설비는 계획보다 늦게 움직인다. AI 시대의 병목은 모델 성능보다 전력망과 물에서 먼저 드러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보고회 모두발언에서 글로벌 AI 경쟁의 전선이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넘어 전력과 용수 같은 기초 인프라까지 확대됐다고 밝혔다.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가 대도약의 삼각축이라면, 전력과 용수는 그 삼각축을 떠받치는 바닥이다. 전력과 용수가 풍부하고 안정적 부지를 갖춘 지역을 새로운 산업 사이트로 개발해야 한다는 방향도 함께 제시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발표는 수치를 통해 산업의 실제 규모를 드러냈다. 서남권 반도체 공장에는 6.3GW 전력과 65만톤 용수 공급이 필요하고, 수도권 용인 반도체 팹에는 약 15GW 전력과 150만톤 용수 공급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제시됐다. 충청·영남·호남·강원권 등에 들어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에는 약 8GW 이상의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I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용 요금제 신설도 함께 언급됐다.

6.3GW와 15GW라는 숫자는 단순 전력 수요 전망이 아니다. 반도체 산단 하나가 지역 전력망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규모라는 뜻이다. 팹은 24시간 멈추지 않고 가동돼야 하고, 미세공정과 클린룸, 냉각, 초순수 생산, 장비 운용이 동시에 전기를 쓴다. AI 데이터센터도 대규모 서버와 냉각 설비를 계속 돌려야 한다. 산업단지 조성에서 전력망이 뒤따르는 방식으로는 AI 경쟁의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 전력망이 먼저 준비되거나, 적어도 공장 일정과 병행돼야 한다.

용수도 같은 성격을 갖는다. 반도체 공정은 막대한 물을 필요로 한다. 초순수 생산과 세정, 냉각, 폐수 처리 체계가 맞물려야 공장이 돌아간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 팹만큼 물을 쓰지는 않더라도 고밀도 서버 냉각과 지역 환경 조건에 따라 용수 관리가 중요해진다. 후속 자유토론에서는 서남권 용수 공급과 관련해 현재 상태로도 35만톤, 조정 시 65만톤, 다른 기관까지 포함하면 100만톤 정도까지 충분하다는 취지의 설명이 나왔다. 용수 문제가 투자 결정의 민감한 변수로 다뤄지고 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

호남에서 생산된 전기를 호남의 반도체 팹에 쓰는 구상은 AI 시대 산업입지의 변화를 압축한다. 과거 호남은 원전과 햇빛, 바람으로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지역으로 설명됐다. 국민보고회에서는 호남에서 생산된 전기가 호남의 반도체 팹을 움직이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구상이 나왔다. 전력 생산지와 대규모 수요 산업을 가까이 붙이는 방식이다. 전기를 멀리 보내는 구조에서 전기가 있는 곳에 산업을 배치하는 구조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지역 전기요금제는 이 구상의 경제적 장치로 제시됐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의 비용 구조를 어떻게 나눌지에 따라 산업입지는 달라진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발표는 지역 전기요금제 도입이 철강·석유화학 같은 전통 제조업과 지방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은 더 이상 에너지 분야의 기술적 항목에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팹과 AI 데이터센터를 어느 지역에 둘 것인지 결정하는 산업정책 수단이 됐다.

AI 데이터센터 전용 요금제도 같은 맥락에 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높은 전력을 소비한다. 전력 단가와 공급 안정성, 송전망 접속 가능성은 투자 입지를 바로 바꾼다. 전용 요금제가 산업 유치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전력계통 부담과 일반 소비자·다른 산업과의 형평성도 함께 따져야 한다. AI 데이터센터가 국가전략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요금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력망 증설, 냉각 인프라, 지역 수용성, 데이터센터 주변 산업 생태계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전력 수요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서만 늘지 않는다. 전기차 보급, 산업과 건물의 전기화, 피지컬 AI 장비 확산까지 겹치면 전력 소비 구조가 달라진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AI 시대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고, 태양광과 풍력, 원전, SMR, LNG 수소 전환 등 모든 에너지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력망도 대형 발전소 중심의 일방향 체계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양방향·분산형 체계로 바꿔 나가겠다는 방향이 제시됐다.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대통령.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분산형 전력망은 AI 기반국가의 지역 전략과 맞물린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방식만으로는 반도체 팹과 권역별 AI 데이터센터를 동시에 감당하기 어렵다. 전기가 생산된 곳에서 소비될 수 있는 지산지소형 전력망, ESS와 양수발전, 전력계통 안정화 설비가 함께 필요하다. 태양광과 풍력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원전과 SMR, LNG, 수소 전환을 어떤 비율로 결합할지에 따라 산업입지와 비용 구조도 달라진다.

ESS와 양수발전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AI 전력 수요 사이를 잇는 장치다. 태양광과 풍력은 생산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팹은 전력 공급이 끊기거나 크게 흔들리면 안 된다.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방출하는 설비가 부족하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계통 안정성 문제가 커진다. 국민보고회 발표에서 ESS와 양수발전 확대가 함께 언급된 것은 전력 생산량보다 전력의 시간표가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가 함께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전력과 물의 충돌 가능성도 커진다. 반도체 팹은 전력과 용수를 동시에 많이 쓰고, AI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냉각 인프라를 요구한다. 같은 권역에 두 산업이 몰리면 송전망과 변전소, 취수원, 정수·폐수 처리 시설, 냉각 설비가 함께 늘어야 한다. 산업단지, 데이터센터, 주거와 도시 인프라를 따로 계획하면 어느 한 부분에서 병목이 생긴다. AI 기반망은 처음부터 전력·용수·도시 계획을 한 묶음으로 짜야 한다.

SK 측 발표도 전력과 용수의 의미를 기업 관점에서 확인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용인 클러스터 완공 계획을 12년 앞당기겠다고 밝혔고,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 선정과 기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공장에는 대규모 부지와 전력, 용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됐다.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9년이 걸렸다는 설명은 부지와 기반시설 확보가 곧 산업 경쟁 속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용인과 서남권의 차이는 단순 위치 차이가 아니다. 용인은 기존 반도체 생태계와 인재, 공급망이 집중된 지역이다. 서남권은 넓은 부지와 전력·용수 조건, 신규 생산기지 가능성이 부각되는 지역이다. 용인은 속도전의 중심이고, 서남권은 확장전의 중심이다. 두 지역 모두 전력과 용수 없이는 산업전략이 완성되지 않는다. 용인에서 전력망과 용수 공급이 늦어지면 조기 완공이 흔들리고, 서남권에서 기반시설이 늦어지면 제2 생산기지 구상도 지연된다.

전력망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도 현실 변수다. 송전선로와 변전소, 취수 시설, 산업단지는 지역 생활환경과 직접 맞닿는다. 전력망을 빨리 깔기 위해 주민 설득과 보상, 환경 검토를 건너뛸 수는 없다. 반대로 절차가 길어져 투자 시점이 밀리면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AI 시대의 전력망은 기술 설비이면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속도와 수용성을 함께 맞추는 방식이 필요하다.

전기 생산과 소비의 지역적 재배치는 지역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 전력을 생산하던 지역이 대규모 전력 소비 산업을 함께 유치하면 일자리와 세수, 협력업체, 대학·연구기관 수요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전력 생산 부담만 지고 산업 효과를 충분히 가져가지 못하면 지역 수용성은 낮아진다. 지산지소형 전력망은 기술 논리만이 아니라 지역이 전력 생산과 산업 성과를 함께 나누는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

전력과 물은 기업형 첨단도시 구상과도 연결된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엔지니어, 연구자, 장비업체, 유지보수 인력, 협력사 직원이 함께 이동한다. 산업단지 안에 전력과 용수만 깔아서는 인재가 정착하기 어렵다. 주거, 교육, 의료, 문화, 교통까지 갖춘 도시가 필요하다. 국토교통부 발표가 산업·혁신·정주환경을 하나로 연결하고, 기업이 원하는 방식의 첨단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힌 배경도 이 구조와 맞닿아 있다.

AI 기반망에서 전력망은 단순 공급망이 아니다. 반도체 팹의 생산 일정, 데이터센터의 추론 비용, 피지컬 AI의 현장 확산, 지역 산업 생태계 형성이 모두 전력망에 연결된다. 전기요금이 높으면 데이터센터 운영비가 커지고, 송전망이 늦으면 산단 착공이 늦어지며, 용수 공급이 불안하면 반도체 팹의 생산 안정성이 흔들린다.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이 분리돼 움직이던 방식으로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발표에는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운반하고 소비하는 전체 산업 생태계를 세계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태양광과 풍력, SMR, 전력 그리드, ESS, 수소, 히트펌프까지 포함한 전기 산업망을 키우겠다는 방향이다. AI 시대의 전력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자체가 될 수 있다. 전력기기, ESS, 냉각, 전력변환, 스마트그리드, 데이터센터 전력관리 기술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가 도로 건설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 철강, 시멘트, 정유, 물류 산업을 함께 키웠듯, AI 시대의 전력망도 주변 산업을 만든다. 송전망과 변전설비, ESS, 데이터센터 냉각, 전력반도체, 전력관리 소프트웨어, 수처리와 재이용 기술이 함께 커진다. 전력과 물을 산업의 뒤편에 있는 비용 항목으로만 보면 이 흐름을 놓치게 된다. AI 기반국가에서 전력망과 용수는 산업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장치다.

전력망과 물의 평가는 발표된 공급 계획이 실제 일정으로 이어지는지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서남권 6.3GW와 65만톤, 용인 15GW와 150만톤, 권역별 AI 데이터센터 8GW 이상 전력 수요가 각각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 전체 메가프로젝트도 흔들린다. 전력과 용수는 착공 직전에 붙이는 부속 조건이 아니다. 반도체 고속도로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고속도로가 동시에 달리기 위한 가장 낮은 기반망이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숨은 승부는 전기가 흐르고 물이 공급되는 지점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